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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주일]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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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7)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과정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몸이 자라고 뼈대가 크고 키가 자라는 일을 가리켜 성장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그 마음이 자라고 정신이 자라고 지능이 자라고 인격이 자라는 것을 가리켜 성숙한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바르게 자란다는 것은 몸이라고 하는 외적인 면이 성장해야 하고, 동시에 내적인 정신과 인격도 성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성장과 성숙이 동시적으로 균형을 이루면서 자랄 때에, 정상적이고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몸은 시간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성장하게 되는데, 그 정신과 인격이 성숙하지 못하게 되면 바로 정신박약이나 정신 지체아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날이 갈수록 그 신앙도 일취월장하며  성숙해 가야지, 그 믿음의 모습이 구태의연하여 제 모습 제자리만 지키고 있다면,  정박아 신앙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감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감사도 성숙한 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만의 감사, 형식적인 감사, 의식적이고 외식적인 감사, 습관적인 감사, 그리고 자신에게 베풀어진 좋은 일과 기쁜 일에만 드리는 감사는 정박아 감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맥추 감사절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성숙한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응답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먼저 신앙의 성숙 단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그리스도를 온전히 주로 받아야 합니다.

분문 6절에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본문에 의하면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곧 이 말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는 말씀인데, 이 말씀 속에는 몇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원자인 것으로 알고 주로 믿었다는 뜻이요, 다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인정하고, 그 분의 말씀 앞에서 절대 순종하며 충성하겠다는 종 된 의지를 표명하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다고 하는 말은,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뜻이고, 예수님을 내 심령 속에 모셨다고 하는 말이며,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셨다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난날에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멋대로 내고집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내 뜻대로 살 수 없고 주님 뜻대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입술의 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노래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이렇게 찬송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2. 예수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사람들은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6절에 “그 안에서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 안에서 행하라”는 말씀은 예수님 안에서 생각하고, 예수님 안에서 행동하고, 예수님 안에서 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중심으로 살지 않고 예수님 중심으로 산다는 말이요, 내 기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쁨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요, 내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행하여 산다는 의미요, 세상 나라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산다는 의미요, 이 세상의 풍조나 유행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대로 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주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는 차원에서 끝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입술의 고백으로만 머물러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원하시는 수준에 머물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올바로 행하기 위해서는 “주안에 뿌리를 박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안에 살아가는 것을 식물에다가 비유한 것입니다. 왜 뿌리를 박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있는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서입니다. 뿌리를 통해서 영양을 공급받아야 나무가 잘 자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뿌리가 있어야 나무가 든든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 때 뿌리가 약한 나무는 넘어지거나 뽑히기 쉽습니다. 뿌리가 깊게 넓게 자리 잡고 있어야 나무가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뿌리는 말씀입니다. 말씀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으면, 말씀을 통해서 영의 양식을 공급받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말씀의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영양실조가 걸려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합니다. 뿌리가 많이 있는 나무가 튼튼하듯이, 우리 믿음의 뿌리도 많아서 성경 말씀 한군데만 뿌리를 박는 것이 아니라, 신구약 모든 말씀에 뿌리를 박고 영양을 받아야, 튼튼하고 건강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주안에서 세움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건축에 대한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은 신령한 건축 생활입니다. 유다서에 보면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다 신앙의 집을 지으므로 믿음이 수시로 바뀌어져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감정에다 신앙의 집을 짓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기분에다 신앙의 집을 짓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에다 신앙의 집을 짓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의 견고한 기초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떤 철학적인 이론이나 신학적인 논리, 또는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자신의 감정이나 체험에 신앙의 기초를 두게 되면, 어느 날 반드시 무너지게 될 것이지만,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지나도 견고하여 변함이 없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우리의 신앙을 세울 때, 그것은 영원히 견고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7절에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데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넘치는 감사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이 감사한 일로 충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가득합니다. 한시도 그 괴로움과 고통과 어려움이 우리의 삶에서 떠나 있는 적이 없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저 문제가 생기고, 저 문제가 해결되면 또다시 이 문제가 생기고, 문제와 어려움은 파도가 밀려오듯, 우리의 삶 속에 쉬지 않고 밀려옵니다.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그것도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생각으로는 되는데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꼭 불가능한 것만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의 삶 속에 끊이지 않는 고난과 고통이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고난과 고통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더 많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지만, 그보다는 즐겁고 기쁜 일이 더 많습니다. 세상에는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도 많지만, 나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그리고 기쁘고 즐거운 일들은 다 당연한 것으로 쉽게 넘겨 버리고,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일만 붙들고,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처럼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과 고난만 바라보며 그것을 세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축복들을 바라보며 그것을 세어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찬송가 489장의 가사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힘들고 어려운 일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이 식어지고,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어려울 때, 여러분이 당한 고난을 세지 말고, 이미 받은 하나님의 축복을 세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험문제를 풀 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아는 문제부터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에는 나중에 풀기로 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감사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것부터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뒤로 넘기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풀기 어려운 문제부터 붙잡고 풀려고 하는 데에 있습니다. 때문에 감사를 놓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넘치는 감사를 위하여 첫 번째로 하여야 할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과 고통만을 세지 말고, 우리에게 주신 이해하기 쉬운 은혜와 축복을 먼저 세는 것입니다.

아는 문제를 푼 후에는 모르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여야만 합니다. 어려운 문제도 열심히 생각하고 풀면 풀리는 수가 있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먼저 생각하고 감사하였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아야만 합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과 역경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없는 고난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고통 속에는, 반드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과 어려움을 주시는 데에는, 대체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와 연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뉘우치게 하기 위하여, 채찍질하시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죄와 잘못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주시는데,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연단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8-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고난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고 살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그 때문에 믿음이 강하여졌고, 그 믿음 때문에 주님의 크신 능력이 함께하여 놀라운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고난과 역경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경을 만날 때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지만, 역경을 당할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환경이 남달리 좋아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많지 않습니다. 세상에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이 없이 편안히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환경이 좋아서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이 없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형편과 조건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곧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감사가 넘치지 못하는 것은, 남보다 환경과 여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이 적어서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여건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전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살전 5:16절 이하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기 위하여 꼭 하여야 할 일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일을 통하여 굳은 믿음을 얻게 될 것이고, 굳은 믿음을 갖게 되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굳은 믿음으로 늘 넘치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여 굳은 믿음을 얻게 되면,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감사할 수 있고, 나중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까지도 그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음으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굳은 믿음으로 넘치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넘치는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처럼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며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항상 기쁘게 사는 사람은, 자신만 기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 감사를 받는 대상을 기쁘게 합니다. 굳은 믿음으로 넘치는 감사를 하나님과 사람에게 드리며 살 수 있다면,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과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늘 감사를 표현하여야만 합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천국 백성으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십시다. 우리 같은 보잘것없는 인생들을 위하여 십자가의 피로 구속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성화해 가시는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갖가지 환난과 역경에서 건져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질병과 낙심과 좌절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영혼의 푸른 초장 맑은 시내와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직업과 직장과 산업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십시다. 우리 가정에 보배로운 자녀들을 주시고 길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미얀마의 사이클론과 중국의 대지진 같은 대재앙이 속출하는 재난 많은 세상에서 우리의 신. 혼을 이 시간까지 지켜 주신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고물가 저성장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 속에서, 고유가로 인한 3차 오일쇼크로 진단하는 상황 속에서도 성전 건축이 완공단계에 이르렀음을 감사하십시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감사할 일들이 많은데, 요즈음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태를 보면 실로 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금년에도 2백만 명이 굶어죽을 형편이라고 하는데, 남한 국민들은 쇠고기 수입 문제로 벌써 몇 달째 촛불 시위를 하며 사회와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 5억 마리의 소를 잡아서 먹었지만,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도대체 몇 백 년씩을 살려고 저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이라는 단체는 자신들의 임금 투쟁이라면 몰라도, 쇠고기 수입이라든지 대운하 반대라는 명분을 걸고 파업을 하는데, 그렇다면 의회정치는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모든 일들이 우리 국민들이 너무 배가 불러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분수도 모르고 하는 행동들이 아니겠는가? 욕먹을 각오로 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일에도 올바른 판단력을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은 곧 믿음의 척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하면 감사도 약하고, 믿음이 강하면 감사도 강합니다. 믿음이 크면 감사도 크고, 믿음이 작으면 감사도 작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는 곧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의 제사요, 마귀를 이기는 최대의 무기요, 성도의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진정으로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감사의 제단을 쌓는 민족이나 가정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모든 은혜 가운데 감사할 줄 아는 은혜가 참으로 귀한 은혜입니다. 성령 충만은 곧 감사 충만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사의 생활은 진보하는 삶이요, 성장하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감사할 때는 진보가 있고, 원망할 때는 퇴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감사하는 생활이요, 감사하는 신앙생활은 진보하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원망 불평한 사람은 40년간이나 광야를 배회하면서 살았습니다. 감사치 못한 백성은 가나안 땅을 향하지 전진하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불뱀에 물리고 염병에 걸려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의 편이시며, 감사하는 자에게 새로운 능력을 주십니다. 

진정한 감사는 기적을 불러일으킵니다. 문제의 문이 열립니다. 꿈꾸는 것같이 이루어집니다. 바울과 실라의 경우를 보십시오. 역경 가운데서도 진정한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되 계속적인 축복을 받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현재 받은 축복을 깨닫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받은 축복에 감사할 줄 아는 성도를  감찰하사 계속해서 복을 부어 주십니다.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라고 하는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심령에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귀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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