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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일을 결정하시는 분 (엡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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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결정하시는 분 (엡 1:8~14)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2)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1. 시작하면서
 
무슨 일을 혼자서 결정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는 독재한다고 싫어하며 반대할 것이고, 또 하나는 그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에게 의지하여 평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일을 혼자서 결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일으킬 것 같습니까? 경우마다 다르다고요? 우리 신앙은 경우마다 달리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 근본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며 따르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약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긍정성을 갖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절대 선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구약의 욥은 이런 절대 신뢰와 순종의 모범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농사짓는 소가 있습니다. 간혹 농사 일이 많고 힘들 때 소 두 마리를 나란히 세워 함께 멍에를 메게 하여 밭을 가는데 그것을 일컬어 겨릿소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두 마리의 소 중에는 벌써 오랫동안 농사일을 해본 소를 오른 편에 세워 안소라고 부르고 이제 일을 시작하는 소를 왼편에 세워 그를 마랏소라고 합니다. 왼편의 소가 젊고 힘이 세어도 마랏소는 오른편의 안소가 이끄는 데로 움직이고 방향을 잡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부는 채찍을 오른 손에 잡고는 안소만 잘 부리면 절로 두 마리의 겨릿소는 일을 잘한다고 합니다. 마랏소는 한참을 안소 따라 일하다가 나중 안소가 죽고 나면 그가 오른편으로 옮겨져 안소가 되는데 그 때까지는 안소를 따라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랏소는 안소를 신뢰하고 따르면서 좋은 일소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처럼 “내가 가는 길 그가 아시나니. . .” 하면서 모든 일을 결정하시고 이끄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됨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인도법

1) 계획하심을 알려주심 

오늘 우리 사회가 새로운 갈등에 빠져 혼란 속에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에 대하여 일반 국민들은 무엇이 옳은지 그런지를 깊이 생각 없이 촛불 시위의 동조자와 방관자로 나뉘어 있습니다. 갈수록 시위가 격렬해지고 정권퇴진 운동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지 불과 반년도 안되었는데 온 국민의 다수 지지로 선출된 국가 원수를 퇴진시키려 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 탄핵 사건 때도 오히려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탄핵 주도 세력이 나중 역풍의 된서리를 맞은 것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에게도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국민의 수준을 제대로 진단치 못하고 오로지 결과적으로 국가 이익이라는 판단에서 밀어 붙이려했던 소통의 부재에 잘못이 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은 필요하고 때때로 유익할 수 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결국 국가에 이익이다”고 만 생각한 것은 사업가의 판단입니다. 대통령과 국가 정부는 회사단체는 아닙니다. 국가는 말 그대로 “나라 가정”입니다. 가정은 가족의 의사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고 가족을 서로 아끼고 인정해주는 것이 그 기본입니다. 가정이 돈 보다는 행복과 건강이 우선임을 알듯이 국가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심에도 소통을 매우 중요히 여겼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8-9a)

우리 인생을 향하여 가진 구원계획을 막무가네로 혼자서 진행시켜나가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도록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시고 그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다고 했습니다. 이 구원 설명은 곧 구약 시대엔 선지자를 보네시어 말씀하셨고 신약 시대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네시어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십자가와 부활까지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설명하시고 설득하시기를 무지한 인생들에게 붙잡혀 죽기까지 하며 당신의 사랑의 심정을 우리에게 나타내시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처럼 자신의 마음을 열고 나타내 보이며 깨닫고 돌아오기까지 참고 기다리십니까? 아니면 내 생각 내 말이 맞으니까 알아서 무조건 따라오라고 욱박지르는 스타일입니까? 아직도 적지 않은 가정에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체 답답해하며 갈등하는 가족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지혜롭고 그리고 온유하며 겸손하게 일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강도사 고시 출제 위원으로 참석을 하면서 겪었던 일입니다. 월요일 1시에 숙소에 들어가면서 모든 통신 수단이 압수당했고 차단당했습니다. 다음날 고사 일 정오에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휴대폰을 압수당하자 어느 모 목사님께서 불안한 안색이 역력하시면서 “야~ 전화기가 없으니까 기가 죽는 게 영 힘이 없어지네~”라는 것입니다. 농담인줄 알았는데 정말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평소 목소리도 크고 활달하고 적극적인 분이셨는데, 정말 너무도 달라져버렸습니다. 휴대폰 중독성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동시에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핫라인이 열려져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항상 열려져 계신 분이십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며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미리 여러 정황으로 우리의 가는 길이 어느 길인지를 보여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눈이 어둡고 귀가 어두운 것입니다. 영성이 죽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결정하시고 인도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항상 알려주시고 길을 안내하십니다. 가서는 안 되는 위험한 길에 붉은 신호등을 미리 켜두고 있습니다. 가야 할 길에는 푸른 등을 켜주십니다. 때때로 방황할 때는 노란색의 경고등을 켜시기도 합니다. 이런 주님이 보여주시는 신호를 보고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

모든 일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은 단순한 독재자의 성향을 지니셨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이 혼자서 결정하시는 목적은 이렇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0절)

즉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위로 올라간다는 옛말처럼,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인도하심이 없다면 인류는 엉뚱한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결정에 불복했고 불순종했기에 그 결과는 사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통일이란 말을 두 가지 느낌으로 받습니다. 하나는 다양성의 상실 곧 획일성으로 느끼고, 또 다른 하나는 평화 그리고 안정을 느끼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는 통일이란 말을 정치적이고 사회공학적인 개념에서 다룰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 11장에서 만나는 바벨탑 사건이 있습니다. 바벨탑은 곧 인류가 그 탑을 중심으로 하여 흩어짐을 면하려는 통일 국가를 만들려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마음의 의도를 아시고는 내려와 그 탑을 무너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그 탑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이러려는 부정한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것을 인간이 결정하고 마음대로 하려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행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중심의 통일이 되면 결국 죄의 본성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뿐 아니라 결국은 만인에 대한 투쟁의 비극으로 치달음을 아시고 그 일을 방해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이미 오랜 인간 역사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고대 바벨론, 로마, 독일, 중국, 구소련 등의 역사에서 말입니다.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고 통일 제국을 만들었을 때 찬란한 문명은 세웠으나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약한 자들을 억압하는 악한 어둠의 역사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통일을 이루시기 원하신 것입니다.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해지고 하나가 되어 참된 평화와 행복이 이루어지길 원하신 것입니다.    

사람 중심의 통일은 새로운 갈등과 다툼의 나라를 이루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이룬 통일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오히려 다양한 인격이 존중받는 무지개 같은 아름다운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백성들은 왕이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12, 14절). 역으로 말하면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며 찬송하는 중에 모든 믿는 자들이 하나가 되어 평화와 자유 그리고 기쁨이 가득한 나라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하나님 중심의 통일과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분명히 알면서도 거역하는 몸부림이 곧 인간의 악한 역사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21-23절)

감사가 없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치 않으며 신뢰하지 않는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결정하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인도하심이 우리에게 가장 최고의 선이며 복된 길임을 신뢰하며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길이 열려지고 행복해집니다.


3. 마무리하면서

간혹 성도들이 설교를 들은 후 “목사님은 꼭 나에게 대 놓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내 사정을 너무 잘 아는 것 같아요!”라고 합니다. 그렇게 은혜가 되었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이 아시는 것이고 곧 여러분을 위하여 주신 주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정을 잘 아시고 우리를 도우시는데, 그 길이 곧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성령의 인치심을 주십니다. 인치심이란 곧 도장 찍는 것인데 “너는 내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당신의 기업으로 삼으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린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그 모든 것을 결정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맡기십시오. 그럴 때에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주님은 당신의 계획을 말씀 안에서 다 알려주십니다.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묵상해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잘 분멸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가는 길이 평탄하고 즐거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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