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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돕고 있습니다 (느 2:1~10) - 느혜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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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한 손이 돕고 있습니다 (느 2:1~10)


어느 성도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 믿으면 다 천국 가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천국가면 하나님 만나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하나님 어떻게 생겼나요? 

제가 뭐라 했을까요? “나도 몰라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의 눈으로는 안보이나 영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멘?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마치 사람처럼 표현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손”, “강한 팔” “하나님의 눈동자” “하나님의 발등상” 분명 성경은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에게 손이 있나요? 하나님의 강한 팔을 가지고 계십니까? 정말 눈동자가 있나요?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눈에 보이는 형체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모습을 갖고 계신 분으로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신인동성동형적(神人同性同形的)표현” 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서도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위대한 일을 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새롭게 중건하는 일이었습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B.C 516년에 예루살렘 聖殿(성전)을 다시 건축하기는 했지만 무너진 예루살렘 城壁(성벽)을 쌓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려 90년 동안이나 성벽이 없이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변 원수들의 방해가 너무 심해서 성벽을 쌓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렇게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느헤미야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8절 말씀을 보세요. 
따라서 합시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잘나거나 자신이 위대해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선한 손은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선한 손은 누구를 돕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돕는 것일까요? 


1. 자신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자기 할아버지가 포로로 붙들려와 살던 사람의 손자입니다. 포로 3세대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페르시아에서 엄청난 출세를 한 사람입니다. 

왕의 술을 맡은 관원이 되었다는 말은 왕의 목숨을 지키는 일로 상당한 신임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당대도 그랬고 우리나라 조선왕조 시대에도 음식을 맡은 사람은 왕의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에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음식에 독을 타서 먹이면 한 번에 왕조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느헤미야는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는 장관으로 출세를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마음이 페르시아 왕국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예루살렘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나라이기에 그의 마음은 늘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는 출세해서 대 왕국의 궁궐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었으나 마음은 이스라엘 나라, 하나님의 성전에 가 있었습니다. 몸은 이방 땅에 와 있으나 마음은 늘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을 쌓지를 못하고 성문도 없이 백성들은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충격을 받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느1:5~7절을 봅시다. 
5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1:11절도 보세요.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성도 여러분! 이 기도 속에 그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고 그의 마음이 이스라엘을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여 있습니까? 바라기는 여러분의 마음이 늘 성전을 향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늘 교회를 향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다고 말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다 세상을 향해 가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적어도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원 받은 성도라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보면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고후7:10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근심은 뭡니까?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의식주에 대한 근심입니다. 명예와 권력에 대한 근심입니다. 성경은 이런 근심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요? 이런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근심, 하나님의 일을 위한 근심, 이런 근심은 할수록 좋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요? 이런 근심이 있어야 후회할 것이 없다고 하셨고 더 큰 구원을 이루게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 나라, 우리 나라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염려하고 걱정해야 할 것은 성장이 멈추어 있는 한국교회, 예배와 거룩함이 무너져 내리는 한국교회의 타락을 근심하고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선한 손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은 누구위에 임할까요? 


2.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기도에 들어갑니다. 근심걱정만 하고 있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의 중건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울며 금식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과 조상들의 죄를 자복하며 기도했습니다. 

1장 6절 중반~7절을 보세요.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 당시 느헤미야는 왕의 술 장관입니다. 
그러기에 수시로 아닥사스다 왕을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향한 왕의 신임은 절대적입니다. 그러기에 느헤미야는 왕에게 직접 자기의 소원을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예루살렘 성 중건에 대하여 허락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 성 중건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스라 4장에 보면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건라고 이어서 성벽을 중건을 하려 합니다. 그 때 주변 방백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시기해서 모함하는 상소를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립니다. 왕이 이 상소문을 보고 예루살렘 성 중건역사를 중단하라고 조서를 내림으로 성 중건 사역이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아닥사스다 왕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기도했습니다. 자그만치 4개월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으시고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세요. 4개월이 지난 어느날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을 보고 묻습니다.  
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느헤미야는 그때 자신이 근심하는 이유를 소상히 말합니다. 그러자 왕이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할렐루야! 

이 때 느헤미야는 짧지만 간절한 기도를 하고 말했습니다.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자기가 소원하는 바를 소상하게 아룁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묵도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감사의 묵도였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소상하게 자기 소원을 구합니다. 

2:5절부터 다시 읽습니다. 
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성도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구절이 하나 딱 끼어 들어 갑니다. 

6절“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이 구절이 매우 중요합니다. 왕이 예루살렘 중건에 별 마음이 없던 왕이지만 왕후가 옆에 앉아 있었기에 느헤미야 소원을 다 들어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응답하실 때 완벽하게 응답하시고 오묘한 타이밍에 응답하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비록 가진 것 없고 아는 것이 없어도 골방에서 세계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골방에서 세계를 품고 일할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이여! 하나님의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것을 믿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다 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왕이 자기를 신임한다고 부탁하러 곧바로 왕에게 나간 사람이 아니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평상시에 늘 기도로 사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이 닥쳐도 당황치 않습니다. 느헤미야가 갑자기 어느 날 왕이 네가 원하는 것이 뭐냐 물었을 때 잠간 기도하고는 조목조목 구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기도의 응답으로 그가 요구하는 대로 왕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중요한 것은 느헤미야의 고백입니다. 

그는 이렇게 응답을 받은 것이 “내 하나님의 선한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2절)했다고 고백합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일이 여러분 소원대로 이루어졌습니까? 그때 착각하면 큰 일 납니다. 내가 인덕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왕의 신임을 받아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함께 함으로 일이 순탄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시면 우리는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 하나님의 선한 손이 일을 하도록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요? 내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왕이시고 만물의 주관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선한 손이 여러분 주변 사람의 마음도 움직임을 믿으시고 기도하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모르는 가족에게 전도하려는데 전도가 잘 안됩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업하는 상대가 마음이 닫혀 있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의 마음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식이 말을 안들어 쳐 먹습니까? 하나님이 선한 손으로 그 마음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내 입으로 사람을 움직이려면 잘 안되는데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움직이도록 일을 하면 하나님이 그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3. 응답의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즉시 응답된 것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성 중건을 위하여 기도를 시작한 때가 언제입니까? 

1장 1절에 보면 ‘기슬르’ 월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태양력으로 11월에서 12월사이입니다. 그런데 그가 기도한 것에 응답이 이루어 진 때는 ‘니산’월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3월에서 4월 사이입니다. 다시 말하면 느헤미야가 기도를 시작한 후 무려 4개월 동안을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다리기를 배워야 합니다. 
시편 40편 1절을 보세요.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했습니다. 다윗왕도 기도하고 기다렸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너무 조급합니다. 관광지에 가보면 한국 사람들의 별명이 빨리빨리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 응답도 너무 조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급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 급하시지 않습니다. 모세를 들어 쓰시기 위해 40년을 기다립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응답이 더딜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다리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됩니다. 
기도의 응답은 여러 가지 입니다. "Yes, No, Wait" 

기도하자마자 곧바로 yes도 있습니다. 또는 곧바로 no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믿으셔야 할 것은 wait 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에게 가장 적당한 때에 응답하셨습니다. 

니산월은 가장 좋은 때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까지 행보하기에나 에루살렘성 을 공사하기에 가장 좋은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후조건까지 감안해서 응답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정한 때, 가장 적당한 때에 응답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도할 때 무턱대고 기도만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계획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을 확신했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 어찌할까를 완벽하게 준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세밀하고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왕이 네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 할 때 조목조목 구합니다. 

예루살렘에 보내서 그 성을 중건해 달라고 하는 느헤미야의 요청에 아닥사스다 왕은 허락을 하면서 “성을 중건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느냐? 언제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겠느냐?” 묻습니다. 이 때 느헤미야는 ‘기한을 정하고’ 왕께 아뢰었다고 했습니다. 

7~8절을 다시 보세요.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무슨 말이냐면 “이 만큼 기한을 주시면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 가는 길에 어려움도 많을 것이니 통행증도 주십시오. 그리고 성 중건에 필요한 목재도 주십시오.” 느헤미야는 미리 기도하면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산다는 것은 무계획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고 대책이 없고 계획이 없다면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음을 아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뭐 계획이 필요하냐? 그냥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 

어찌보면 아주 믿음이 좋은 사람 같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세요.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 신령한 사람이면서도 분명한 계획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응답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응답의 확신이 있으면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어느 나라에서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내러 왕과 백성들이 산으로 올라갔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산에 엄마 손을 잡고 가던 어느 꼬마가 손에 우산을 들고 갔답니다. 엄마가 안 가져가도 된다하자 “기우제 지내면 비가 올텐데 왜 우산을 안 가져가지요?” 했답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양극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기도는 하지 않고 계획만 세우는 것으로 인본주의입니다. 또 한편은 기도만 하고 계획은 전혀 없는 것으로 신비주의입니다. 둘 다 잘못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기도하면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 계획을 정밀하게 세워놓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세워놓고 기도하는 느헤미야를 선한 손으로 도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선한 손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돕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늘 하나님을 향하고 교회를 향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힘써 기도하되 기다리면서 계획을 세우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도우셔서 위대한 일을 하셨듯이 오늘 이 세상을 사는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항상 도우시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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