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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기념] 골육을 위한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 (롬 9:1~3, 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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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육을 위한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 (롬 9:1~3, 롬 10:1)


탈무드에 보면 '두 머리의 어린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먼저 "만약에 머리가 둘인 아기가 태어난다면 이 아기는 두 사람인가 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뜨거운 물을 한 쪽 머리에 부었을 때 양쪽이 다 비명을 지르면 한 사람이고 한쪽만 비명을 지른다면 두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이런 우화를 그저 자기네 자녀들의 사고능력을 기르는 수단으로만 삼는 것이 아니라 유태인들의 동족애를 키워 주는 교훈으로서 이렇게 적용시킵니다.
  
"이스라엘의 유태인이 박해를 받거나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태인이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을 느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유태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유태인이 아니다."라고 어느 랍비가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려 2천 년 동안이나 나라를 잃고 전 세계에 흩어진 방랑민족으로 살았었지만 바로 그런 동족애를 자자손손 끝까지 지켜왔던 까닭에 끝내 그들의 조국을 다시 건설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었겠습니까?
  
우리 한민족 역시 남다른 동족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엄격히 따질 때에는 어느 정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지금까지 반만년 동안 단일민족을 지켜내면서 살아왔으니 그것만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남한에는 민주주의의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북한은 공산화된 이래 이 한민족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둘로 나누어지고 서로의 교류가 단절된 가운데 60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가 같은 한민족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적인 동족애는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사도 바울이 자기 동족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가졌던 마음을 살펴보면서, 이 대한민국의 기독신자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공감해야 할 영적 '민족사랑'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한민족'을 사랑하는 기독신자라면 공산독재 밑에서 압제당하고 있는 북한의 2천만 동포를 위하여 근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9장 1절부터 3절에 "1-2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3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자기가 고백하고자 하는 말이 "참말"이며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마음에는 자기 동족으로 인한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형제"나 "골육" 그리고 "친척"이라는 표현들은 자신의 근친(近親)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민족'이라는 말 대신에 이런 표현들을 쓰고 있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자기 친형제와도 같고 다 가까운 친척처럼 여겨지는, 정말 사랑하는 동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의미하는 이스라엘 민족이란 어떤 개인이나 특정 부류에 속한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는 민족 전체를 가리키고 있음을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원래부터가 '민족'이라는 말은 어느 개인 한 명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항상 집합적인 의미에서 쓰입니다.
  
즉 우리가 '한민족'이라고 말할 때에는 당연히 대한민국에 있는 전 국민들과 북한의 전 인민들, 그리고 해외에 나가 있다 하더라도 같은 혈통을 나누고 있는 모든 우리민족을 통틀어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족애' 혹은 '민족애' 같은 말도 꼭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특히 북한을 두고 이 말을 쓸 때에 그것은 당연히 거기에 사는 우리 민족의 절대다수인 북한동포 2천 만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되어야지 그 어떤 경우에도 김정일 한 사람만을 두고 쓸 수는 없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우리 민족의 절대다수인 인민들은 과연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그 2천만 명의 우리 민족은 우선 정치적으로는 사상 최악의 독재 하에서 최악의 공포에 떨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조금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아니 아예 '인권'이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2007년에 'Economist Intelligence Unit'(경제학자 정보대)이라는 기관에서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지표'를 발표한 것이 있는데, 거기에서 북한은 '언론 자유' 부문에서 조사대상국 195개국 중에서 195위, '경제 자유' 부문에서 조사대상국 157개국 중에서 157위였습니다.
  
그리고 '선거 제도, 국민의 자유, 정부의 기능, 국민의 정치 참여, 정치 문화' 등을 기준으로 해서 조사한 총 민주주의 지표에서 북한은 조사대상국 167개국 중에서 167위를 차지했습니다.
  
그것은 현재 군사독재정권 하에 있는 미얀마나 아프리카의 대표적 독재국가인 짐바브 더 밑에 있다는 뜻이며, 한 마디로 말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불리고 있는 북한은 전 세계에서 최악의 독재국가이며 김정일은 세계 제일의 독재자인 것입니다.

그런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자연히 전 인민을 감시하는 체제가 필요하게 되고 거기에 걸려든 사람은 영락없이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물론 북한당국은 그렇게 부르지 않고 '제 몇 호 관리소'라는 식의 명칭을 붙여 놓고 마치 군부대인 것처럼 위장을 하고 있지만, 그런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와 그 곳에 수감된 사람들의 끔찍한 처지는 실제로 거기에 갇혀 살다가 탈출하여 우리나라까지 오게 된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통하여 이미 백일하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 증언들 중에서 한 가지만 제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누구든지 일단 그런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게 되면 죽을 때까지 나올 수 없게 되며 그 수용소 내에서의 결혼도 금지되는데, 그래서 거기 갇혀 있는 사람들은 '오누이'가 있는 가족을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정말 말로 옮기기도 힘든 것이지만, 오누이끼리 성관계를 하면서 성욕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같은 방에 자는 그 부모들도 다 알고 있지만, 어차피 평생 결혼도 못할 뿐 아니라 얼마 살지도 못할 것이 뻔하니까 그냥 눈감고 모른 체한다고 합니다.
정말 믿고 싶지도 않을 만큼 비참한 이야기이지만, 이런 것이 사람의 상상력으로 지어낼 수 있는 이야기 같습니까?

그 2천 만 명의 우리 동포들은 또한 경제적으로 최악의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며 실제로 무수히 아사(餓死)해 가고 있습니다. 
  
2007년에 한국은행은 '북한의 국민총소득(GNI)가 대한민국의 36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를 발표했습니다만,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같은 사람은 그것마저도 부풀려진 잘못된 평가이며 실제로는 100분의 1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36분의 1'이라고만 생각하더라도 북한의 경제적 실태가 어떠할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구가 대략 북한의 세 배라고 계산하더라도 북한 인민들은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이 버는 평균 수입의 12분의 1만 가지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며, 그것도 제일 넉넉하게 잡아 주어서 나오는 계산인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어느 탈북자의 증언 하나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산나물이나 풀뿌리 따위를 뜯어다 국을 끓여 먹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때 정말 아쉬운 것이 된장 한 숟가락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소금만 넣어서 국을 끓이면 아직 풀의 독소가 남아 있기 때문에 먹고 나서 머리가 지끈지끈 쑤시기 마련이지만, 거기에다 된장만 좀 풀어 넣으면 그런 독소들이 다 해소될 뿐 아니라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탈북자는 덧붙여 말하기를 "그리고 거기에다 기름 몇 방울만 더 떨어뜨려 먹을 수 있다면 일 년 내내 낱알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가 말한 '기름 몇 방울 떨어뜨린 국'이란 기름 한 병 값이 노동자 일 개월치 봉급과 맞먹는 북한사회에서 대부분의 주민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그저 '꿈에서나 먹을 수 있는' 국인 것입니다.

탈북자들은 자기네들이 이런 증언을 해 주면 마치 '쫓겨나온 며느리가 시댁 욕하는 것'처럼 여기는 남한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해도 이런 이야기를 자기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 그냥 지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지금 북한 주민의 평균 연령이 64.4세로 78.1세인 우리들보다 13년이나 더 짧다는 사실만 보아도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이야기 아닙니까?

반면에 이런 인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미하원 정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김정일의 재산은 40억 달러(4조 원)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는 북한 내에 50여 개의 별장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벤츠 자동차(500여 대)와 코냑을 위시한 양주(1만여 병 보관)의 최대 고객입니다. 
  
김정일이 먹는 밥을 할 때 검정부(검사부)의 아낙네들은 '금이 간 쌀'과 '깨진 쌀'을 한톨 한톨 일일이 손으로 미리 골라냅니다.

그런 가운데 북한 주민들은 공식적인 수자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백만 단위'의 수자가 이미 굶어 죽어갔습니다.
  
평생을 그 김정일 한 사람만을 섬기는 종으로서 다 바치고 자기 자신은 짐승만도 못하게 살다가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대한민국에서는 '민족애'라는 것을 순전히 이 김정일 한 사람만을 이해해 주고 그의 독재정권을 협조해 주고 그의 모든 만행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과 동일시하는 작태가 만연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짓입니까? 
  
김정일을 사랑하는 것은 '민족애의 발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우상화에 동조'하는 범죄행위일 뿐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진정한 '민족사랑'의 마음을 이런 극악한 독재자에게가 아니라 저 2천만 명의 북한동포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의 자유민주의 해방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일에 꼭 발휘할 줄 아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한민족'을 사랑하는 기독신자라면 특히 박해당하고 있는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의 고통을 함께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로마서 10장 1절에서 "1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다른 것이 아니라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즉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그들의 영적 상태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까 인용했던 로마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이 말했던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앙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한 것은 곧 그 이스라엘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소원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던 동족애와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공유하고 있던 동족애의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북한동포들을 생각하는 기독신자들이 반드시 느낄 줄 알아야 하는 영적 민족애입니다. 북한의 2천만 인민들이 당하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은 단지 정치적 압제와 경제적 극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 최악의 종교적 탄압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북한에서 인정되는 종교는 단 한 가지, 바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우상화'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인민들은 다 집집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을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그 앞에서 절합니다.
그 사진에도 차별이 있어서 일반 인민들과 달리 당 간부나 소위 성분 좋은 집안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아주 가끔 북한 취재가 허용되는 외신 기자들의 눈에는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제가 언젠가 북한 실태를 보여주는 무슨 다큐멘터리 특집을 보았는데, 어떤 외국 기자가 김일성 동상의 사진을 찍으면서 각도를 잘 잡아 보려고 땅바닥에 누워서 사진을 찍다가 북한 안내원으로부터 "감히 수령님의 동상 앞에서 드러눕다니 불경하다."고 야단을 맞으면서 당장 추방시키겠다고 위협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정말 문자 그대로 '살아 있는 사람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가 이 지구상에서 오직 북한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김일성과 김정일 우상화'에 가장 방해가 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이며 그런 까닭에 가장 극심한 박해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국제 기독교 선교단체인 '오픈 도어즈'(Open Doors)는 '2008년 세계 기독교 박해지수'라는 보고서를 통하여 전 세계의 기독교 탄압국가로 지정된 50개국 중에서 북한이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고 밝히면서 "전 세계에서 북한만큼 기독교인이 처참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고통을 받으며 전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박탈되는 나라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 기관은 또한 북한에는 현재 "최소한 20만 명의 지하교회 교인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에서 4분의 1 정도는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보고하면서, "정확한 수는 파악할 수 없지만 2007년 한 해만 하더라도 수백 명의 북한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었으며 이들 대다수는 구타와 고문, 그리고 사형에 처해졌다. 북한만큼 기독교인들을 조직적으로 끔찍하게 박해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수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은 이런 보고가 결코 과장이나 거짓이 아님을 확인해 줍니다.
그 중에서 탈북자 김우영 씨는 말하기를 "북한에서 기독교는 첫째로 꼽히는 공공의 적입니다. 나는 지난 98년 무산에서 3명의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 주민들은 그 처형 장면을 보도록 강요당했고, 나는 그들이 중국으로 건너가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이고 곧 처형될 것이라는 발표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나이는 19살, 24살, 32살이었습니다. 그들은 장대에 묶여 총살당했습니다. 보통 세발을 쏘지만 그때는 여섯 발씩을 쏘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정권에 체제에 반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이가 기독교인이라면 그 사람은 처형당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곳으로 보내어지면 심지어 그 가족들조차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외의 탈북자들 중에서는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채 화형을 당하거나 증기롤러 밑에 산 채로 던져져서 으깨어지는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고 증언하면서, 사람이 곁에서 그런 식으로 '죽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고 정신이 돌아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하여 기독신자가 된 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가정 혹은 친척 단위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그래서 그 무서운 탄압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지하교회들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북한의 용감한 성도들이 가장 유감스럽게 여기는 대상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바로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동조해 주고 있는 남한의 목사들입니다.

2007년 1월에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북한에 장로회, 천주교가 있고 교회를 짓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역사 발전이라고 생각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 발언을 들은 어느 조선일보 기자가 북한에 있을 때 기독교를 믿는 바람에 아버지는 강제수용소에 끌려가고 자기 언니와 함께 탈북하던 중 몽골 국경을 넘다가 언니는 체포되고 혼자 우리나라까지 오게 된 23세의 정은혜(가명) 씨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인터뷰의 마지막 문답은 이러했습니다.
"한국에서 목사들이 남북 기독교인 교류를 한다고 북한에 가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관계자들과 함께 예배를 보고 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 여성 탈북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하기를 "웃기는 얘기죠. 저는 북한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있다는 것을 중국에 가서야 처음 알았어요. 유명한 목사님들이 북한에 가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만나고 와서 마치 남북화해를 위해 큰일을 하고 온 것처럼 얘기하는 것을 볼 때면 우습고 가슴이 아파요. 그들이 봉수교회에서 조그련(조선그리스도교연맹) 사람들이랑 형식적인 예배를 볼 때, 숨어서 숨죽이고 예배를 보다가 잡혀가는 진정한 신자들을 잠시라도 생각했는지 묻고 싶어요."(월간조선 2007년 1월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께서는 우리의 골육일 뿐 아니라 훨씬 더 나아가서 '예수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북한의 박해 받는 지하교회 신자들을 "잠시라도 생각하면서" 그들 위해 기도드리고 있습니까?
  
제가 미국에서 그레이스 신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그 신학생들은 당시 소련의 공산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아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혀 있던 기독신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인쇄된 포스터를 각각 자기 방에 붙여 놓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었습니다.
  
그 포스터의 제목은 'Ambassadors In Bonds'였습니다. 
'쇠사슬에 매인 사신(使臣)'이란 뜻으로서 바로 에베소서 6장 2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가 신학교를 졸업한지 몇 년이 채 못 되어서 하나님께서 그 철옹성 같던 소련 공산정권을 붕괴시키고 바로 그 '쇠사슬에 매인 사신'들을 풀어 주시는 응답을 주실 줄이야 제가 그 포스터를 보면서 동료 신학생들과 함께 기도드릴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쇠사슬에 매인 우리의 골육'들을 "잠시라도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계십니까?
  
제가 한 2년 전 주일예배 시간에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렸던 성도, 우리가 다 알 길이 없는 수많은 북한 순교자들 중에 대표로 한 사람만이라도 기억하자면서 알려 드렸던 그 분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성분과 학력 다 좋은 공산당원 출신으로서 탈북하였다가 중국의 지하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서 전도하다가 체포당한 뒤, 2주간에 걸친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지하교회에 대한 비밀을 지킨 후에 끝내 공개 총살을 당하게 되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군중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다가 "주여"라는 한 마디 말을 끝으로 남기면서 12발의 총탄을 맞고 2000년 2월 10일 12시 정각에 함경북도 무산시 장마당에서 순교의 피를 흘리고 죽었던 저와 여러분의 진짜 '친 자매' 말입니다. 제가 다시 한 번 더 알려 드립니다.
그 분 이름은 '리영희'(당시 37세)입니다. 
제발 이 한 사람 이름만이라도 꼭 기억하십시오.
  
제 말은 그 이름과 함께 아직도 북한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최소한 20만 명 이상 되는 우리의 진짜 형제들, 문자 그대로 '예수 안에서 한 피 받아 이미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영적 골육들'을 같이 "잠시라도 생각하면서" 기도드리자는 뜻입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속하여 김정일의 하수인 노릇하는 자들이 우리가 사랑해야 주어야 할 동족이겠습니까, 아니면 오늘 주일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의 암혈과 토굴에 "숨어서 숨죽이고 예배를 보다가 정치범 수용소로 잡혀가거나 사형대로 끌려가는 진정한 신자들"이 저와 여러분이 그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 될 '참 이스라엘 사람'들이겠습니까? 
  
독재자와 포옹을 하고 그 동상 앞에 절하고 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예수 사랑'을 나누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소리입니까?
  
누구보다도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기독신자답게 저 북한에서 신앙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는 2천만 동포에게 마음껏 구원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날이 오기까지 특별히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의 '넉넉히 이기는' 전투를 끝까지 싸우게 해 달라고 함께 간구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을 향한 사도 바울의 민족애는 이런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우리 한민족을 향한 사랑이 바로 이 북한의 압제당하는 동포들과 박해당하는 지하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반드시 발휘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하면 '목사가 왜 이런 정치적 설교를 하느냐?'고 비판하는 소리들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왜 우리나라의 교사들은 이런 엄연한 역사와 이런 명백한 현실을 가르치지 않고, 그 대신에 전교조에 속한 교사들은 자기 마음대로 학생들에게 좌파의식을 세뇌시키고 있습니까?
  
왜 우리나라 공영방송국들은 평양방송의 선전 자료만 그대로 복사해서 마치 북한의 실상을 보여 주는 듯이 국민을 오도하고, 지금 벌써 1만 명을 넘어선 이 수많은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은 단 한 번도 국민들에게 소개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왜 우리나라의 청년들과 학생들은 어디까지나 사고에 의하여 불의의 죽음을 맞았던 여중생 두 명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정의감과 동정심을 발휘했으면서도, 이런 무섭고 악랄한 독재자에 의하여 모든 인권이란 인권과 자유란 자유는 완전히 다 박탈당하고 그저 공포와 굶주림 속에서만 살고 있는 2천만 명이나 되는 동족에 대해서는 6.25가 되어도 그 흔한 촛불 하나 켤 줄 모르는 것입니까?
  
왜 북한 동포를 위한 '근심과 고통'은 이렇게도 전달되지도 않고 공감되지도 않는지 정말 이상한 정서요 도시 이해할 길이 없는 감정입니다.
  
적어도 '한민족'의 핏줄을 나눈 자라면 가장 관심을 가지고 당연히 공감대를 가져야 할 북한 동포들의 비참한 실상에 대하여 이렇게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으니, 결국 목사가 일년에 한두 번 설교 시간에라도 가르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언젠가는 진정한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고 북한 동포들이 자유와 해방을 맞이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이 올 때 우리는 그들을 무슨 낯으로 대할 것입니까?
그들이 '우리가 김일성 김정일 독재 하에서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을 때 당신네 남조선 사람들은 우리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느냐?'라고 물어 온다면, 노력은커녕 기억조차 하지 않았던 자들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쌀하고 기름 보내 주었지 않았느냐?"라고 대답하시렵니까?
다 군량미나 군수품으로 돌려졌으니 북한 주민들은 "우리는 그런 것 받은 적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달러 보내어 주었다."라고 해 보았자, 김정일 비자금 계좌에 직접 넣어 주었고 원자폭탄 제조에나 사용되었던 것이 인민들에게 단 한 푼이라도 돌아갔을 리가 없습니다.
  
결국 기껏 할 수 있는 말은 "우리는 남북 축구대결 때 공동응원해 주었다."는 정도이겠지만 과연 실제로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염치가 있겠습니까?

처음에 서론에서 예를 들었던 유태인들의 우화 '두 머리의 어린이'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저 휴전선 건너편에 갈라져 있는 북한의 우리 골육들이 당하는 고통이 지금 자기 자신 속에서도 느껴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같은 한민족'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자기 양심과 인격에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우리 민족'이 아닙니다.
  
국제 엠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보다도 북한 인권에 대해 더 관심이 없고, '왜 햇볕은 평양만 내리쬐는가?'라고 의아해 했던 독일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 (Norbert Vollertsen)만큼도 북한 전체 인민의 비참한 삶에 대하여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결코 '같은 한민족'이 아닌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저 소련처럼 북한 공산정권 역시 단번에 무너뜨리시고 그 인민들에게 자유해방을 주시는 그날이 오기까지, 이 2천만 명의 동포를 위하여 '근심'하며 20만 이상 되는 지하교회의 골육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공감하면서 더욱 간절히 기도드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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