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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름 새 인생(3) : 바요나 시몬에서 베드로 (마 16:13~20) 


오늘의 주인공인 베드로의 본명인 ‘바요나 시몬’(히브리 식으로 읽으면 순서가 ‘시몬 바요나’입니다)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앞의 ‘바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어와 비슷한 아람어라는 말을 썼는데 아람어로 ‘바’ 즉 ‘바르’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요나’ ‘바르 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이지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을 붙일 때 이렇게 아버지의 이름을 넣어서 ◯◯의 아들이라고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아버지가 요나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베드로를 부를 때는 모두 ‘요나의 아들’이 아니라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나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베드로 아버지가 요나입니까, 요한입니까? 둘 다 같은 이름입니다. 아마 베드로의 아버지가 ‘요한’이라고도 불리고 ‘요나’라고도 불렸던가, 아니면 히브리 식 이름을 헬라어로 바꾸어 쓰면서 이렇게 발음이 두 가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시몬은 요나의 아들이기도 하고 요한의 아들이기도 한 것이지요.

또 그의 이름에서 뒤에 나오는 ‘시몬’은 고유한 이름으로 그 당시 아주 흔했던 남자 이름이므로 성경에도 꽤 많이 나오지요. 복음서에만도 일곱 명이 시몬이 나옵니다. 아무튼 베드로의 본명은 이렇게 요나의 아들, ‘바요나 시몬’이라는 아주 평범한 이름이었는데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예수님이 친히 그의 이름을 ‘베드로’라고 지어주십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름을 바꾸었다기보다는 ‘베드로’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셈인데 아무튼 이날 이후로 모든 사람이 바요나 시몬을 본명이 아닌 ‘베드로’라고 부르게 되었고 혹은 똑같은 뜻을 가진 아람어 ‘게바’라고 부르게 되었으므로 사실상 그의 이름이 ‘바요나 시몬’에서 ‘베드로’로 바뀐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새 이름 새 인생’ 시리즈 설교 세 번째 시간으로 이 ‘바요나 시몬’에서 ‘베드로’로 이름이 바뀐 사건을 함께 살펴보면서 예수님이 왜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는지, 그 뜻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왜 베드로인가?

자,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바요나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라고 바꾸어 주셨을까, 두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영어식으로 읽으면 피터(Peter)지요. 프랑스말로는 ‘피에르’ 스페인말로는 ‘페드로’(Pedro)가 되고요 이탈리아말로는 ‘피에트로’ 러시아말로는 ‘표트르’입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이 베드로입니다. 바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에게서 나온 이름이지요.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라는 이름은 ‘페트로스’라는 헬라어로 ‘반석’ 즉 ‘큰 바위’라는 뜻입니다. 지난번 성지순례 다녀오신 분들이 요르단에 있는 페트라에 가보았답니다. 가보니까 어마어마한 큰 바위 덩어리를 깎아 신전도 만들고 집도 만들고 무덤도 만들었지요? 그 ‘페트라’가 바로 헬라어로 ‘큰 바위,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낱말이지만 남성형으로 쓰면 ‘페트로스’ 즉 베드로가 되는 것이고 여성형으로 쓰면 ‘페트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에게 ‘큰 바위덩어리,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베드로라고 이름을 붙여주셨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그의 성격과 신앙적 스타일 때문에 예수님이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베드로는 참으로 굳건한 성격, 돌쇠 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성품 때문에 누구보다 앞장서 솔선수범하는 수제자가 되었지만 때로는 다혈질적이고 충동적이고 불처럼 급한 성격으로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언제나 말보다 행동이 앞서기 때문에 아주 실천력이 강하고 용감하고 헌신적이지만 때로는 자기를 억제하지 못해 일부터 저질러 놓고 나중에 크게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나름대로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성격대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화끈한 성격 가진 사람은 믿어도 화끈하게 믿고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을 가진 사람은 믿어도 조심조심 믿습니다. 화통한 성품 가진 사람은 교회 안에서도 화끈하게 일하지만 꼼꼼한 사람은 이것저것 많이 생각한 후에 조심스럽게 일을 추진합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성도들은 다 생긴 대로 믿습니다. 자기 타고난 성격대로 신앙생활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성격이 예수 믿는 데 좋은 성격일까요? 어떤 성격 가진 사람이 예수님 마음에 들 수 있을까요? 정답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님은 오늘 베드로에게 너의 성격을 단점을 만들지 말고(말고의 귀를 칼로 내리치거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등) 너의 고유의 성품을 장점으로 만들라는 뜻으로 이렇게 이름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모든 사람은 베드로처럼 고유한 성격, 타고난 성품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품이 다 좋을 수도, 반대로 다 나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성격에는 누구나 다 양면이 있어서 어떤 때는 좋게, 어떤 때는 참 나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내 성격이 아주 꼼꼼하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는 참 좋습니다. 남을 잘 살피고 배려하는 데도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너무 꼼꼼하고 세밀해서 남을 피곤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너무 예민해서 상처를 잘 받기도 합니다. 큰 배포가 필요한 일이나 힘 있게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할 때 이런 성격은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거꾸로 아주 성격이 호탕하고 큼직큼직한 사람들은 큰일을 추진할 때 참 좋습니다. 아주 용감하고 과감하게 일을 추진합니다. 웬만한 일은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에 상처도 잘 안 받습니다. 단, 남에게 상처 주기 쉽습니다. 남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남을 잘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성격에는 다 장단점이 함께 공존합니다. 따라서 무조건 좋은 성격도 없고 무조건 나쁜 성격도 없다는 것입니다. 잘만 사용하면, 즉 단점을 제거하고 장점만 잘 살리면 내 성격을 참 귀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잘 아셨기 때문에 제자들 모두의 고유한 성격과 스타일을 파악하시고 제자들마다 다 저 나름대로의 성격에 따라 장점을 살려 쓰셨는데 그 가운데서도 이 베드로에게 너의 그 호방하고 과감한 성격, 돌쇠같이 우직한 성격을 살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잘 사용하라는 뜻에서 이렇게 ‘반석, 큰 바위’ 즉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울퉁불퉁한 자연석 같은 ‘바요나 시몬’을 잘 다듬어 교회의 반석인 ‘베드로’를 만드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쿼바디스’라는 영화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성경에 나온 내용이 아니라 ‘베드로 행전’이라는 곳에 전해지는 내용이지만 로마에서 전도하던 베드로가 폭군 네로의 박해를 피해 로마 밖으로 도망합니다. 왠지 베드로답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로마 밖으로 피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로마 쪽을 향해 오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라틴어로 이렇게 묻습니다. 

“도미네, 꾸오 바디스?”(Domine, Quo Vadi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기 위해 로마로 들어간다.” 그 순간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우직하게 교회를 지키다가 돌쇠처럼 목숨 걸고 전도하다가 죽는 것이 베드로다운 모습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반석이라고 지어주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반석처럼 살다가 반석처럼 죽습니다. 그래서 그가 ‘베드로’인 것입니다.


둘째로, 앞의 첫 번째 이유보다 더 중요한 이유인데 바로 그의 신앙고백 때문에 ‘베드로’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보면 저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가 나옵니다. 

앞서 13절부터 보면 예수님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갔을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엘리야나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라고 하던데요.” 이 대답이 예수님 마음에 들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확인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제자들의 신앙이 지금 어떤 수준인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베드로가 수제자답게 베드로답게 제일 먼저 대답한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주님이 기대하신 만점짜리 대답이었습니다. 주님은 너무 기뻐하며 말씀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리고는 그 만점짜리 대답에 상이라도 주듯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풀어보면 이런 뜻입니다. “너는 이제부터 반석이요 큰 바위다. 내가 그 큰 바위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니 네가 천국 열쇠도 너에게 주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면 안 될 일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천주교(로만가톨릭)에서 주장하는 대로 예수님이 ‘베드로’라는 개인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천주교에서는 이 본문을 근거로 베드로를 1대 교황이며 지금의 교황이 베드로의 뒤를 이은 후계자이므로 교황이 교회의 근거요 기초라고 주장합니다만 이것은 분명히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베드로 위에가 아니라 오늘 본문 16장 16절에 나온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뜻인 것입니다.

결국 이 귀한 신앙고백 때문에 한 평범한 어부였던 바요나 시몬이 베드로가 되어 반석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그에 걸맞은 크나큰 복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 신앙고백이 베드로의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의 영적 아버지인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베드로가 베드로 되게 한 그 위대한 신앙고백은 우리의 영적 아버지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이 고백을 통해 베드로는 더 이상 혈육적인 인간, 요나라는 육신의 아버지의 아들 바요나 시몬이 아니라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의 자녀 베드로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입니다.


육신의 아버지의 바람, 영적인 아버지의 바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펴본 것과 같이 베드로의 본명은 ‘바요나 시몬’이었습니다. ‘바요나 시몬’은 육신의 아버지가 준 이름인데 물론 육신의 아버지가 주신 이 이름도 귀합니다. 그 이름을 지어주신 육신의 부모의 뜻을 따라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부모님이 우리 이름 지으실 때 내 아들 딸 잘되라는 뜻으로 지으셨다면 나도 그 부모의 뜻을 받들어 잘 되어야 합니다. 자녀 이름 지을 때 크게 되라, 성공해라 하는 바람을 가지고 지으셨다면 나도 부모님의 소망처럼 잘 되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나를 낳아주시고 내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바요나 시몬은 더 이상 바요나 시몬이 아니라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왜 이름이 바뀌었습니까? 바요나 시몬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사람 바요나 시몬이가 하나님을 믿어 이제 더 이상 육신의 아버지가 아닌 영적인 아버지의 뜻과 소망대로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요나 시몬이 베드로가 된 것은 이제부터 육신의 아버지, 내 육적인 부모의 뜻과 바람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내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그 분이 원하시는 소망과 바람대로 사는 존재가 되겠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 본명을 지어주신 육신의 부모님 뜻을 따라 그 이름대로, 이름값 하며 살면 우리 부모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것처럼 이제는 내가 하늘 아버지 하나님이 새로 지어주신 이름대로 그 이름값을 하며 산다면, 하나님 아버지가 바라시는 대로 살 수 있다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시겠냐는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만난 순간,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 순간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육신의 아버지와 부모님 뜻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존재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사랑하는 여러분, 육신의 부모를 무시하고 부모님 뜻에 어긋나게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교회 이름 때문에라도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고 그 뜻을 잘 받드는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 이제는 그 수준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그 분의 소망과 바람에 걸맞은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잘되면 우리 육신의 부모님이 “내가 너를 낳기를 참 잘했다”고 기뻐하시지만 내가 잘못되고 불효막심한 자녀가 되면 “내가 왜 너를 낳았는지 참 후회된다”고 하시는 것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바람대로 잘 살고 사명 감당하여 우리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왜 세상에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후회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길 참 잘했다. 내가 너를 세상에 보내길 너무 너무 잘했다”고 기뻐하실만한 그런 인생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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