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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른 뼈, 생기, 큰 군대 (겔 3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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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뼈, 생기, 큰 군대 (겔 37:1~10)

                                                                                        
작년 여름, 저도 단기선교팀과 함께 선교지를 방문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 목사님들에게 강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거기서 파송선교사님의 귀한 사역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지 목사님들과 교제하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그 이후에는 이우림 협력선교사님을 방문하여 사역 현장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우림 선교사님께서 지난 수요일 우리 교회에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 선교사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깊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세계에서 가장 큰 미전도 종족 중 하나인 순다족을 품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13년의 세월입니다. 이우림이란 이름은 가명입니다. 신변보호 때문에 한국에선 본명을 쓸 수 없습니다. 선교사님과 이메일을 교환할 때도 선교사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선교사님은 현지에서 사업가로 통합니다. 가내수공업 일감을 제공하면서 산지 회교도들을 접촉해오고 있습니다. 현지인들의 경조사를 일일이 챙기면서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러다가 기회라고 판단되면 정말 조심스레 복음을 제시하곤 합니다. 만일 이슬람 지도자들이 알아차리면 즉시 추방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단기선교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주일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인도네시아 산골마을의 한 아주머니 이야기를 언급했습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뭐 1년 전 설교 내용을 기억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겠지요? 다음은 그 때 설교했던 내용입니다.  

선교사님과 함께 ‘나니’라고 하는 가난한 아주머니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아주머니는 한 쪽 가슴을 앓고 계셨습니다. 고름이 보였습니다. 생후 1년도 채 안돼 보이는 아들이 다른 한쪽 가슴으로 젖을 먹고 있었습니다. 웬일인지 젖을 먹고 있는 아이의 귀에도 고름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생채기들이 아기의 온 얼굴에 생겨있었습니다. 이 부인은 너무도 가난하여 병원 치료도 받지 못했습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고름이 줄줄 흘러내렸다고 합니다.

극심한 통증을 견디기 어려워 아주머니는 보건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보건소 직원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검사받고 수술 받으려면 경비가 너무 많이 드니 아예 포기하라.” 

한국 사람에게는 그리 큰 경비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골 사람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비용이었습니다. 온 식구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님 가정은 단지 항생제를 드리고 소염진통제 연고를 정성껏 발라 드리면서, 기도하는 방법 외에 달리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몇 주 전부터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직 빨간 부위가 보였고, 여전히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얼마나 많이 호전되었는지 모른다고 선교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떠나오는 저에게 선교사님께서는 부탁하셨습니다. “이 나니 부인은 아직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기적같이 완치되어 이 마을에 복음이 더욱 전파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해주십시오.” 저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살피기 위해 산골마을을 심방하면서 주님 사랑과 복음을 증거하고 계시는 이우림 선교사님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작년에 보고했던 내용입니다. 여러분 지난 수요예배 때, 선교사님께서 준비하신 동영상 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나니 부인께서 완치되셨답니다. 그리고 나니 부인은 가족과 함께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셨답니다. 할렐루야! 

곧장 죽을 것 같은 인생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생명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영생까지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우리 모두에게 생명 주시길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생명 주시는 분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골짜기 가운데 옮겨져 있습니다. 거기서 에스겔은 아주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골짜기에는 수많은 뼈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2절 말씀 보니 뼈들이 아주 말라버린 것으로 나옵니다. 그 어떤 생명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완전히 끝장났다는 겁니다. 

본문 바로 다음 11절은 이 마른 뼈들은 하나님 선민 이스라엘이라고 밝힙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선민답지 못하게 하나님 등지고 살던 유대 땅에 고대 강국 바벨론 군대가 밀고 들어왔습니다. 수도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습니다. 가옥이 불타고 토지는 황폐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노예로 전락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포로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심지어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성전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영적 안식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성전만큼은 보호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마저 무참히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면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선민인 우리에게 어찌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사실상 죽은 것이며, 말라버린 뼈입니다. 

이것이 어찌 이스라엘만의 경험이겠습니까? 우리나라도 자주 자주 마른 뼈였습니다. 옛날부터 주변 강대국들이 우리나라를 수시로 괴롭혔습니다. 왜 그렇게 못살게 하는지요? 중국은 수시로 쳐들어왔습니다.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왕조가 바뀔 때마다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삼기 위해 밀고 들어온 겁니다. 일본도 대륙 정복 야욕의 발판으로 우리나라로 쳐들어왔습니다. 서로 세력 다툼할 때는 꼭 우리나라에 와서 합니다.  

개화기 때는 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할 것 없이 서구 열강들도 합세하여 우리나라 자원을 뜯어먹으려고 서로 어르릉거렸습니다. 나무도 베어가고 금이고 은이고 다 캐어갔습니다. 국보급 문화재도 뺏어갔습니다. 그 때 우리는 마치 주변 열강들의 처분에 달려 있는 마른 뼈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남북한 동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습니다. 지난 수요일이 6.25였습니다. 한반도에는 총소리 대포소리 탱크소리 비행기 소리가 멈추질 않았습니다. 가족이 죽고, 가까운 이웃이 피 흘렸습니다. 자료마다 약간 다른 통계를 보이고 있지만, 외국군인 빼고 남북한사람 사상자가 대략 50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비전투요원의 인적 손실은 전쟁역사에서 유례없이 컸습니다.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1951년 의회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평생을 전쟁 속에서 보낸 본관과 같은 군인에게조차 이러한 비참함은 처음이어서 무수한 시체를 보았을 때 구토하고 말았다.”

꾀죄죄한 옷차림, 슬픔과 절망의 눈빛, 고사리 손에 구걸 깡통 들고 서 있는 한 장의 전쟁고아 사진! 바로 이것이 당시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국토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나라가 잿더미 위에 주저앉은 거지요. 거기엔 아무런 미래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마른 뼈였지요.   

국가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 개인도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경험 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망했다고 느낍니다. 하나님 택함 받은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언제나 만사형통은 아닙니다. 내 인생 전체가 망쳐진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일이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나에게 일어났을까? Why me?

이스라엘은 선민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가두어버렸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하나님 심판을 자초한 것이지요. 선지자들은 재난이 우상숭배 때문에 닥친 것이라고 해석해주었습니다. 

사실 이런 재난 속에서 하나님 은혜를 알게 됩니다. 편안할 때는 우리가 잘 나서 그런줄 압니다. 하지만 재난 가운데 하나님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 지 여실히 깨닫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새 생명의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사실 환상을 보여주시는 목적은 마른 뼈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리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 명령을 따라 자신이 대언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랬더니 마른 뼈들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이 뼈 저 뼈가 서로 맞아 골격을 이룹니다. 또 뼈에 근육이 생겨나고 살도 오르며 가죽까지 덮이게 됩니다. 곧 이어 생기에게 명령하니 생기가 들어갑니다. 번쩍 일어섭니다. 살아난 겁니다.

오늘 말씀은 창세기 기록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어내고는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생기가 들어가자 살아 움직이는 생령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은요 하나님께서 생기 주시면 살아 있는 거고, 생기 거두시면 한 줌 흙에 불과합니다. 

이 생기는 구약에서는 ‘루아흐’라고 하고, 신약에서는 ‘프뉴마’라고 하는데 바람이나 숨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인간의 영이나 성령 하나님을 가리킬 때도 사용합니다. 옛날 하나님도 잘 모를 때 우리나라말에도 이 기는 매우 중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생기발랄하다. 용기가 대단하다. 정기를 받아야 한다. 기를 넣어준다. 기가 살아났다. 기가 죽다. 사기가 떨어졌다. 기가 빠졌다. 기가 막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야 삽니다. 흩어진 마른 뼈 같은 인생도 하나님 생기 받는 순간 살아납니다. 인생의 모든 활력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생명으로 충만할 때 우리 인생도 생기 넘칩니다. 일이 자연스레 잘 풀리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감사가 넘칩니다. 어려운 순간에도 평안하고 담대합니다. 하나님 생기를 받게 되면, 세상에 부러운 것 없어지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 생기 받으니 살아났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도 재건하고 예수살렘 성벽도 수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도 살아났습니다. 전쟁의 비극 중에서도 신앙의 선배들은 밤낮으로 구국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눈물의 기도 응답하시어 하나님의 놀라운 생기가 한반도를 덮으셨습니다. 전쟁으로 꺼져가던 나라가 회복된 겁니다. 애국가 가사 그대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하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나니 아주머니처럼 다 죽어가던 인생조차도 인공호흡 하듯 하나님께서 숨을 훅 불어넣어주시면 반드시 소생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시길 축원합니다. 모두 하나님 생명을 받아 활력 넘치는 인생을 사시길 축원합니다. 주여 우리 성도님들 새 생명으로 늘 충만하게 도와주옵소서! 

그런데 보세요. 세상에서 받고자 하는 일반적인 기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기는 내가 건강하면 끝입니다. 세상 기는 내가 웰빙하면 다입니다. 세상 기는 내가 풍요로우면 목적 달성한 겁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개인 도덕이나 사회적 책임과도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기에는 거룩한 사명이 따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에는 생기 받은 이스라엘이 큰 군대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생기 주셔서 살려내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와 흑암의 권세와 싸우는 거룩한 전사들이 되는 것입니다. 

천상교회는 이미 승리한 교회입니다. 하지만 지상교회는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싸우되 세상방식이 아니라 거룩한 방식으로 싸웁니다. 우리는 내 안의 죄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미혹하는 악한 영과도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를 선포하고 더 많은 영혼이 하나님 백성이 되도록 복음도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 지으면서 하나님 생기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정욕에 이끌리면서도 하나님 생기 내려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등지고 세상길 가면서도 하나님 생명으로 충만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생기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더욱 부어집니다. 우리 이웃이,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참된 복 받도록 우리가 기꺼이 희생할 때 하나님 생기는 한껏 부어집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즉 하나님의 생기가 우리에게 임하시는 목적은 복음 증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 증거 하려고 결단할 때도 하나님 생기는 물 붓듯이 쏟아집니다. 인도네시아 순다족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드린 선교사님에게 하나님께선 생기를 부어주셨습니다. 그 생기는 나니 부인에게 나누어졌고, 나니 부인도 다함없는 그 하나님 생명을 또 다른 이웃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도 생명의 행진은 계속됩니다. 하나님 생명 전하기 위해 여러선교팀들이 떠나 나갑니다. 가시는 분들은 시간과 물질, 그리고 몸을 드리고자 결단했습니다. 단기 선교팀에게 하나님께서 생기 부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물질과 기도를 지원하는 보급부대 군사가 되어주십시오.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 생기 받아, 하나님 생명 나누고, 생명 살려내는 십자가 군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장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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