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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부르실 때 아멘 하겠는가! (사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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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실 때 아멘 하겠는가! (사 6:1~8)


아이들이 말을 시작할 때 ‘좋아 할게’ 보다는 ‘싫어, 안해’라는 말을 먼저 하는 걸 봅니다. 
예전에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질문하면, 질문하는 사람이 뭘 원하는가에 맞춰서 ‘예 아니오’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답하는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예 아니오’를 말합니다. 모든 것이 너 중심에서 나 중심으로 모든 것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생활도 나 중심으로 ‘아멘’을 하기도 하고 ‘노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 중심의 ‘아멘’으로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습니다. 개인 신앙도 문제, 한국 교회도 이런 문제에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아담 이후로 사람들의 문제는 나 중심의 삶의 태도에서 생겨납니다. 

다시 하나님 중심의 ‘아멘’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중심의 ‘아멘’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신앙이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 신앙도 한국교회의 회복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은 회복의 4단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단계: 죄를 깨닫는 단계- 하나님을 만난 만큼 내 죄가 보인다. 

병을 진찰 받으려면 병원 가서 의사 앞에 서야 합니다. 엑스레이 앞에 서서 찍어봐야 압니다. 내시경을 해봐야 병이 있는지 없는지 압니다. 나는 괜찮은 것 같아도 암에 걸려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야 정확히 압니다. 그래야 병에서 나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봐야 자기 문제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진찰을 받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봐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보면 내 자신이 얼마다 악한 죄인인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이사야가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합니다. 1절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유대 나라에 웃시야라는 강력한 왕이 죽었습니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런데 그 해에 이사야가 새 왕을 보게 됩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5절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더욱 예배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의 옷자락으로 예배자를 덮어 주십니다. 아픈 마음을 덮어 주십니다. 아픈 몸을 덮어 주십니다. 죄를 덮어주십니다. 고단한 삶을 덮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입니다. 
어떤 예배자를 만나 주실까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는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이 만나 주시는 예배자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사야가 천사들의 예배를 봅니다.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천사)들이 날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날개 둘로는 발을 가립니다. 날개 둘로는 날면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최상급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고 있습니다. 천사들이라도 날개로 얼굴을 가립니다. 날개로 발을 가립니다. 죄 없는 순결한 천사들이라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가리고 발을 가립니다. 이사야는 지금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천사들의 찬송을 기쁘게 들으신 하나님께서 성전에 임재하십니다. 그 순간 성전 문지방의 터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요동합니다. 성전 안에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인 연기가 가득합니다. 그 때 이사야가 임재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바라보며 탄식하며 절규합니다. 5절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그 때는 하나님을 만난 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 당장 죽을 것 같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때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진짜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난 만큼 자신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만큼 자신의 죄도 크게 보입니다. 바울 사도의 유명한 고백을 기억할 것입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이사야처럼, 바울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자가 되십시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처럼 흉악한 죄인인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 벌벌 떨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될 것입니다. 


2단계: 죄를 깨달은 깊이만큼 깊은 회개를 하게 된다. 

의사 선생님이 암이라고 하면 시키는 대로 하게 됩니다. 그냥 두면 죽는 걸 압니다. 수술하자면 위험하든 아프든 돈이 많이 들든 출근 못하든 만사 제쳐두고 수술합니다. 항암치료 받으라면 머리 다 빠져도 치료받습니다. 그래야 치료받고 살 수 있습니다. 병을 심각하게 깨달은 만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료를 받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깊이만큼 자기 죄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죄를 깨달은 깊이만큼 깊은 회개를 하게 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자기의 죄를 깊이 깨달은 이사야가 회개기도를 합니다.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는 말로 죄를 많이 지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거짓말을 많이 했습니다. 욕도 많이 했습니다. 비웃는 말, 무시하는 말, 험담도 많이 한 것입니다. 판단하고 정죄하고 저주하는 말도 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입술이 부정했습니다. 어울려서 그들이 말하는 대로 산 것입니다. 
전에는 나만 그러냐 다들 그렇게 살지 했는데, 하나님 앞에 서 보니 그게 심각한 죄라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심각하게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의 죄악을 바라보십시다. 얼마다 거짓말을 하는가! 얼마나 무시하고 욕하고 악담을 하는가! 얼마나 교만한가! 얼마나 이기적인가! 얼마나 음란한가! 얼마나 쾌락을 원하는가! 얼마나 더러운가! 얼마나 추한가! 얼마나 불순종하는가! 얼마나 무관심한가! 
그 죄를 그냥 두고 살면 암세포가 전이되는 것처럼 내 인생을 죽게 만듭니다. 가정도 죽어가게 만들도 사회도 죽어가게 만듭니다. 회개해야 살 길이 열립니다. 죄를 회개해야 하나님이 치유를 주십니다. 죄를 회개해야 회복이 일어납니다. 


3단계: 죄를 회개한 만큼 은혜의 감격이 크다. 

이사야가 깊이 회개할 그 때에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천사가 제단 숯불을 가지고 와서 자기 입술을 지져버리는 체험을 합니다. 입술이 부정하다고 회개할 때 제단 숯불로 입술을 지져주신 것입니다. 그냥 숯불이 아닙니다. 죄사함을 받기 위해 드린 제물을 불태워드리는 제단 숯불입니다. 
이사야의 입술을 지져주신 것은 형벌이 목적이 아닙니다. 용서가 목적인 것입니다. 심판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목적인 것입니다.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우리가 회개할 때, 십자가 제단에서 제물이 되셔서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죄를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의 더러운 입술을 깨끗하게 씻어 주십니다. 회개하는 사람의 피 뭍은 손을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회개하는 사람의 암세포와 같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수술하여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주님이 대신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형벌대신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죄의 심판은 제물되신 예수님께 내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이사야의 입술을 지져버린 천사가 선포합니다. 7절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나님의 용서의 선포입니다. 사죄의 선포입니다. 
“이사야야 네 악이 다 제거되었다” “이사야야 네 죄를 내가 다 용서했다” 악이 열매라면 죄는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마음, 불순종하고 거부하는 마음이 죄입니다. 그런 마음에서 나온 온갖 행동들이 악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의 죄의 뿌리도 뽑아주시고, 죄의 열매도 다 제거해주십니다. 
죽을 줄 알았던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망할 줄 알았던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죄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은혜도 과소평가하게 됩니다. 회개의 깊이만큼 은혜의 깊이도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의 깊이가 약하면 은혜를 싸구려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은혜를 싸구려로 여기면 은혜의 감격이 없습니다. 은혜의 감격이 없으면 하나님이 작아 보입니다. 예수님도 대단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마음대로 하게 됩니다. 그런 신앙으로는 나를 부르실 때 아멘 할 수 없습니다. 
죄를 심각하게 여기고 깊이 회개하십시오. 그 사람이 은혜의 바다에서 은혜의 감격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4단계: 은혜의 감격만큼 나를 부르실 때 아멘하게 된다. 

네 번째 단계가 회복의 완성단계입니다. 소명을 받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아멘하는 단계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품에서 은혜의 감격을 누릴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무슨 음성인가? 나를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나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내가 주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의 소명입니다. 
하나님이 부를 때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이 선지자로 부르심에 “아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하고 헌신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누가 아멘 할 수 있을까요? 은혜가 회복된 사람이 아멘 할 수 있습니다. 
은혜의 감격만큼 하나님이 부르실 때 아멘할 수 있습니다. 은혜의 감격이 크면 인생을 다 거는 일에도 아멘하게 됩니다. 고생되느냐 그건 문제가 안됩니다. 돈이 되느냐 그런 것도 문제가 안 됩니다. 편하냐 이런 것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편한 집에서 침대에서 주무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사도들 중에 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없습니다. 


맺는 말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강력한 전기가 고압 송전선을 통해서 공장을 돌리고 도시를 밝힙니다. 집으로 오는 전기는 220V입니다. 집안을 밝히고 가정의 전자제품들을 돌아가게 합니다. 
은혜의 감격이 큰 성도는 고압 송전선 같은 은혜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아멘하고 달려가는 은혜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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