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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병의 의사 예수님 (마 4:23~25) -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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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의 의사 예수님 (마 4:23~25)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의 초기 갈릴리 사역에 대한 기록입니다. 23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의 3대 핵심은 가르치시고(Teaching), 전파하시고(Preaching), 병든 자를 고치시는(Healing) 것이었습니다. 

1. 예수님은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이 사는 지역에는 가는 곳마다 회당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다행이도 이런 회당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전도하실 수 있었습니다. ‘회당’이라는 말은 두 개의 헬라어 즉 ‘함께’라는 말과 ‘모인다’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회당이란 곧 ‘만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회당은 바벨론 포로 당시에 생겨났는데, 포로 생활을 끝내고 귀환할 때 회당 제도를 그대로 옮겨왔다고 보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던 당시 하나님의 율법과 예배에 대한 굶주림이 마음에 용솟음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로서 생겨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는 예루살렘에서 먼 거리에 살았던 사람들이 자주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매 성읍에 적당한 규모의 회당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리하여 유대인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회당이 있었습니다. 

회당의 예배는 항상 안식일에 있었으며, 때로는 더 자주 드려지기도 했습니다. 회당 예배는 모든 사람들이 낭독되고 해설되는 하나님의 율법을 들을 수 있었고, 공중기도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회당장은 관습적으로 낯선 참예자가 있으면 그 회당의 회중에게 인사시키고, 권고나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가르치거나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주님과 제자들은 설교하고 가르칠 수 있는 장소로서 회당을 쉽게 찾았고, 그 기회를 십분 이용하셨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유대의 관원들도 편견에 덜 치우쳤기 때문에 주님의 회당 설교를 금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봅니다.

주님께서는 실로 위대한 교사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산상 설교가 끝났을 때 많은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랐는데,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했습니다. 그 주님께서 마지막 유언처럼 부탁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들은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르치는 일을 잘 해야 합니다. 사역자들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하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을 부지런히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행해진 갈릴리는 넓은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도보로 행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 때보다 한 세대가 지나간 후에 저술된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갈릴리에는 204개의 도시와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이 마을들을 두루 순회하셨습니다. 매일 두 개의 마을을 순회하더라도 안식일을 위한 휴식도 없이 줄잡아 3개월은 걸려야 되는 일수입니다. 육체적인 힘의 소모만도 엄청난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은 순회전도자이며 교사이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님은 가만히 앉아서 복음을 전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다니며 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곳이 회당이건, 해변이건, 산이건, 우물가건, 잔치집이건, 가리지 않고 어디든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또 의인이건, 죄인이건 가리지 않았고, 또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건 간에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주님을 본받아 복음을 들고 어느 곳이건 찾아 가야 합니다. 도시건, 시골이건, 작장이건, 개인 집이건, 학교건, 병원이건, 아파트건 가리지 않고 직접 찾아 가서 천국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찾아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건, 부한 사람이건, 건강한 사람이건, 병든 사람이건, 학문이 많은 사람이건, 학문이 적은 사람이건, 고관대작이건, 평범한 서민이건, 어른이건, 다음 세대이건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24절에 보면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 병자들을 데려 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한편, 인생들의 약한 것과 병을 고치신 것은, 주님의 무한한 자비성에서 흘러나오는 실천생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본래의 전도 목적은 인간의 구원에 있었지만, 주님은 육체적으로 고통당하는 인생의 현실을 외면치 아니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 고치신 병이 종류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나열된 병들은 치유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는 수술로 되는 것이 아니요, 약을 복용해서 고쳐지는 병도 아닙니다. 이것들은 오늘날도 난치병들입니다. 세상의 의술로는 치료 불가능한 병들도 주님께서는 단번에 고쳐주시므로, 이러한 치유의 기적을 통하여 그의 신성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성경의 질병관을 보면, 병은 직접적으로 어떤 특별한 죄의 결과일 수도 있고(요 5:14),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요 9:2-3) 말씀합니다. 그러나 모든 병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범죄 타락 후에 죽음과 함께 찾아 온 고통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이 메시야 시대가 오면 그 비참함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질병을 고치심으로 증명하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의사이십니다.

예수님은 복음과 함께 수많은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말씀이 증거 되는 곳마다 치료의 능력이 나타나, 세상에서 고칠 수 없는 수많은 병자들이 찾아와 고침을 받았습니다. 군대귀신이 들려 공동묘지 사이에서 사악하고 무서운 성품으로 변해 버린 자를 고쳐주셨고,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을 고쳐주셨으며, 앞 못 보는 소경을 고쳐주셨으며, 38년 된 베데스다 못가의 앉은뱅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고침 받을 수 없는 자들, 절름발이, 간질병자, 중풍병자 귀머거리, 벙어리가 예수님을 만나 육신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고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2) 예수님은 정신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이십니다.

육신적인 질병보다 더 괴롭고 고통스런 것은,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질병입니다. 자기만이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슬퍼하며 몸부림치는 질병은 심령을 상하게 하고 뼈를 마르게 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 무서운 질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육신은 건강한 것 같으나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몸부림치고 있으며, 물질은 풍요롭고 지위와 명예나 권력을 가져 가장 행복하게 보이는 것 같은데, 고독과 싸우며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상습적인 마약  복용자가 늘어가고 술집과 나이트 클럽 등 향락산업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현대인들이 정신적인 질병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질병에서 치료받으려면 만병의 의사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됩니다.

3) 예수님은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의사이십니다.

육체가 병들어 있는 것도 비참한 일이나 정신적인 질병은 더 불쌍하며, 더욱 비참하고 무서운 질병은 영혼의 질병입니다. 육체적인 질병이나 정신적인 질병은  현대의학으로 치료받을 수 있으나, 영혼의 질병은 세상에서 치료받을 수 없고 결국은 멸망당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영혼이 병든 사람은 양심이 마비되고 화인 맞아, 죄를 짓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며,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온갖 죄악으로 병들어 있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의 질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며, 하나님을 불신하여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으며,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결국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됩니다. 영혼의 질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에서 암초와 같습니다. 온갖 죄를 짓고도 양심에 가책도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도 없기 때문에, 결국은 죄로 인하여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혼의 질병에 걸려 소망 없는 죄인도, 예수님께로 나오면 얼마든지 용서받고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건강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은 건강하게 사는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건강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건강하신 하나님이시요, 또 그 건강하신 하나님의 영성이 우리 인간에게 임했기 때문에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으므로 말미암아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병든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못했고, 하나님이 주신 행복도 누리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죄가 사망에 이르듯 병은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죄가 괴로움을 주듯 병은 인간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죄가 인간을 소외시키듯 병든 사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합니다. 죄지은 사람은 자기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과 더 나아가서 사회를 병들게 하고 민족을 망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병든 사람 하나 있으면 가정이 괴롭고, 가족이 편할 날이 없으며,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병을 전염시키므로 온 사회가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곧 사망이요, 병이 사망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죄가 병을 가져왔고, 병이 인간을 멸망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보통 우리는 '병' 하면 육체적인 병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병은 영적인 병도 있고, 마음의 병도 있습니다.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보다 더 악한 것이며, 영혼의 병은 인간을 더 무섭게 파괴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들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이 곧 병든 인간이요,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면서 서로 나누어야 할 기쁨을 나누지 못한 체 끊임없이 파괴하는 인간의 악, 이것이 바로 병든 인간의 한 단면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은 병든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병든 인간을 치유하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에 하신 사역의 많은 부분이 병든 자를 고쳐주고, 귀신들린 자를 내쫓으며, 악한 자의 죄를 사유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이고,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병을 통전적으로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운 교회는 한마디로 말하면 병든 자를 고쳐주는 병원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병원은 육체적인 병만 고치나, 교회는 영적인 병, 정신적인 병, 육체적인 병을 고치는 곳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대로 인간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성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 병들어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다. 병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더 무서운 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병 가운데 무서운 병은 아픔을 모르는 병입니다. 그러한 병이 문둥병입니다. 문둥병은 자각 증상이 없고 통증이 없습니다. 자기 몸이 병들었는데도 병을 모르고 어느 날 사형선고를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병원에 가서 병을 체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자주 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자주 가면 좋은 병원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일주일에 한번씩 와서 진단을 받아야 됩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진단을 받으면서 ‘아, 내가 지금 어디가 병들었구나!’ 깨닫고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미국 뉴욕의 맨하탄에 가면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록펠러가 헌당한 ‘riverside church’가 있다고 합니다. 22층 종탑에 올라가서 허드슨 강을 바라보면 너무 너무 아름다운데, 그 교회는 록펠러가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한 기자가 교회 헌당식을 하는 날 록펠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한 교회당을 짓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록펠러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오늘의 이 복을 받은 것은 우리 어머니의 유언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나에게 유언하기를 ‘록펠러야, 너는 교회에 갈 때 언제나 앞자리에 앉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자리에 앉으라는 말은 예배시간에 늦지 말라는 말입니다. ‘앞자리에 앉아라. 그래야 목사님의 얼굴에서 광채가 네게 스며들 것이고, 음성의 파장이 네 가슴을 두들길 것이다.’ 두 번째로 ‘십일조는 절대로 손대지 마라. 그래야 네 양심이 편하다. 십일조를 먹으면 네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세 번째 ‘너는 목사님의 말씀에 언제나 순종하라. 목사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도 인간이다. 그러나 네가 순종하므로 네 인격을 성숙시킬 것이다.’ 이 어머니의 유언대로 나는 살았고, 그로 인하여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입니다.” 록펠러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복을 받았습니다. 그 어머니가 유언한 내용은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를 믿되 건강하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병든 신앙으로 믿지 말고 건강하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도 예수를 믿되 건강하게 믿으셔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자신에게는 행복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 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병자들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주님을 찾아올 때는 병든 몸으로 왔지만, 돌아갈 때는 건강한 몸으로 돌아갔습니다. 앉은뱅이는 뛰면서 돌아갔고,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며 돌아갔고, 말 못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후 입이 열려 찬송을 불렀습니다.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왔던 사람은 일어나 걸어서 돌아갔습니다. 12년을 혈루증으로 고통 받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도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귀신 들린 자들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예수님을 만나고 무덤에서 일어났습니다. 무신론적인 실존주의자 사르트르는 ‘출구가 없다’고 인간의 절망을 선언했습니다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출구도 있고, 길도 있고, 의사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영혼이 고침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단순히 영혼만 고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병든 육체도 고치시고 귀신도 내쫓으십니다. 그리고 병든 역사와 문명과 사회도 치료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루살렘 근교에 나인이라는 동네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마을에 살고 있던 과부의 외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지로 떠나는 외아들의 관을 붙잡고 통곡하며 따라가는 과부의 처절한 통곡 소리가 마을에 메아리 쳤습니다. 그때 주님이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시자 청년이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일어나라!’ 하시면 죽은 자가 일어납니다. ‘달리다굼!’ 하시면 죽은 소녀가 일어납니다. ‘나오너라.’ 하시면 죽은 자가 무덤에서 나옵니다. 주님은 과연 만병의 의사이셨습니다.

그 주님은 오늘도 병든 인생을 부르십니다.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남이 알지 못하는 혼자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눈물 흘리는 온갖 마음의 질병들, 온갖 죄를 짓고 불안해서 괴로워하는 영혼의 병든 자들을 주님은 부르십니다. 우리가 병을 고침받기 위해서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는 자신의 병을 자각하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주님만이 나의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여 나는 병들었습니다. 육체적인 병이 있습니다. 감정적인 병이 있습니다. 관계적인 병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나는 병자입니다. 나를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병의 근원을 살펴주시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시고, 나의 교만, 시기, 질투, 이기주의적인 근성, 헛된 자존심, 상한 마음, 쓴 뿌리를 치료하여 주옵소서. 주님만이 나의 치료자가 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고쳐 주시옵소서.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어 나를 낫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분명히 만병의 대의사이십니다. 앞으로 우리 신앙생활의 요람이 될 새 성전은 마치 베데스다 연못과 같은 곳이 되어서, 그 곳에 들어오는 자마다 죽은 영혼이 소생하고, 병든 심령이 고침을 받고, 육체적으로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병상에서 벌떡 벌떡 일어나는 강하고 놀라운 치유 공동체가 되기를 위해 힘써 기도합시다. 만병의 대의사이신 주님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육체적인 질병과, 마음의 병, 그리고 영혼의 질병까지 모두 고쳐주셔서, 영과 육이 한 가지로 건강한 참으로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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