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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시 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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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시 52:1~9)

(시52:1-9)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 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저를 비웃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1. 한국은 ‘산업스파이 천국’이라고 합니다. 반도체·LCD·휴대폰 등 우리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첨단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는 이미 산업 스파이의 각축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98년 이후 2006년 7월까지 산업 스파이 적발 건수는 85건인데, 기술이 유출됐을 경우 예상되는 피해액은 7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산업스파이 1명을 놓치면 1조대의 손실을 입게 된다고 합니다. 

TFT-LCD 제조사인 A사 연구원 성모 씨는 지난해 8월 퇴직, 미국계 한국지사인 B사로 옮겼습니다. B사로부터 연봉 인상, 팀장 직급 부여, 향후 일본지사 근무 혜택 등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입니다. 스카우트 조건은 “연구 자료는 물론 타 부서의 회사 내부 자료를 빼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성 씨는 퇴사 전·후 자신의 이메일을 이용해 본인 연구 자료는 물론 타 부서의 회사 내부 자료 등 다량의 영업 비밀을 사내 전산망을 통해 수집, 유출했습니다. 

그가 빼낸 것은 TFT-LCD 화면 제조 관련 차세대 핵심 기술 및 국내 외 거래 업체와의 계약 내용 등 경영상 영업 비밀 27건. 이 기술은 A사가 5년 간 연인원 50명, 연구 비용 440억 원을 투자해 개발한 것입니다. 성 씨는 그러한 기술 유출 과정이 국정원에 의해 확인돼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만약 이 기술이 유출됐다면 회사로선 1조6000억 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전자신문. 2006.2)

오늘 본문은 사울 왕의 스파이 도엑에 관련된 다윗 왕의 시편입니다. 사울의 첩자 도엑 한 사람의 밀고로 인해 당시 제사장들이 거주하고 있던 놉 지역의 제사장 85명과 그 성읍 백성 남녀와 심지어 젖먹는 아이들까지, 그리고 모든 가축떼까지 몽땅 진멸당하는 엄청난 비극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삼상22:11-19) 다윗은 블레셋 골리앗을 물매 하나로 때려 눕히고 위기에 처한 나라 민족을 구했습니다. 이 전과(戰果)로 인해 다윗의 인기가 급상승하게 되자 사울 왕은 자신의 권좌에 위기를 느끼고, 다윗이 비록 뛰어난 일등 공신이지만 은밀하게 암살을 기도합니다. 심지어 블레셋 사람 200명을 죽이면 자신의 딸 미갈을 주어 사위 삼겠다는 올무를 놓고 전쟁에 내몰아 죽이고자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수차례에 걸쳐 암살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났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공개 살해 명령을 내립니다.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보이는 대로 죽이라고 명령합니다.(삼상19:1) 그러나 요나단은 자신이 비록 왕세자이지만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차기 왕으로 이미 다윗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삼상 23: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

다윗과 요나단은 일찍이 그 마음과 믿음이 서로 하나가 되어 피차에 하나님 뜻 안에서 서로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는 남다른 우정관계의 친구였습니다.(삼상18:1) 비록 요나단이 다윗과 이처럼 둘도 없는 친구지간이었지만 왕권에 대한 욕심을 가졌다면 얼마든지 우정을 버리고 왕세자의 위치를 튼튼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살해하고자 음모를 꾀했을 때, 미리 그 사실을 다윗에게 알려 피하도록 했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사울 왕이 아들 요나단에게 이렇게 노발대발 소리칩니다.

(삼상20:31-30) 이 미친 놈아! 네가 네 자신의 수치와 네 어미의 수치도 모르고 천한 이새의 아들 쪽을 택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 녀석이 살아 있는 한 너는 절대로 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가서 그를 끌어오너라.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러나 요나단은 강력하게 아버지 사울에게 항의합니다.

(삼상20:32) 어째서 그가 죽어야 합니까? 그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사울 왕은 단창을 던져 이러한 아들 요나단을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더 이상 친구 요나단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점점 사울 왕의 추격이 갈수록 좁혀 오자, 다윗은 세상 어디에서도 자신의 피난처가 없음을 거듭 실감하게 됩니다. 이 때 다윗이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피난처가 되심을 고백하고 지은 시가 시편 18편입니다.

(시18:1-2)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리고 다윗은 거룩한 제사장들이 모여 사는 제사장 성읍 놉으로 도피하게 됩니다. 다윗이 놉으로 도피하게 된 연유는 선지자 갓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 다윗은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모압의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도움을 청한 바가 있었습니다. 모압은 사울의 통치권 밖이기 때문에 사울이 더 이상 다윗을 추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갓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다윗에게 전합니다. 아무리 사울 왕의 살해 위협이 급박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떨어져 이방인들의 거처를 도피처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유일한 피난처와 요새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 것입니다.(삼상22:1-5)

그래서 결국 다윗은 선지자 갓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놉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곳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을 묻고, 도피생활에 필요한 음식과 무기를 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삼상22:10) 

이 당시 놉의 대제사장은 아히멜렉이었습니다. 아히멜렉이 다윗을 보자 떨면서 “자네 혼자 웬일인가? 어째서 같이 온 자가 없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왕이 임무를 맡겨 나를 여기까지 보냈습니다.” 하고 거짓말을 하면서 “왕은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부하들에게는 나중에 만날 곳만 이야기해 주고 서로 헤어졌습니다. 지금 먹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빵 다섯 덩이나 그 밖에 먹을 것이 있으면 아무 것이라도 좀 주십시오.” 제사장은 “보통 빵은 없지만 거룩할 빵은 있네. 만일 자네 부하들이 최근에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면 자네들이 그것을 먹을 수 있네”라고 말하며 거룩한 성소에서 하나님께 예물로 바치는 거룩한 빵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물론 그들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통 임무를 띠고 나올 때도 나는 내 부하들이 난잡하게 굴도록 내버려 둔 적이 없는데 하물며 이처럼 특수 임무를 띠고 나온 우리가 어떻게 여자 문제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면서 거룩한 빵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그 거룩한 빵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또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왕의 일이 너무 급해서 서두르다 보니 내가 미처 병기를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하고 쓸 수 있는 창이나 칼이 있으면 달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자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인 채 옷장 안에 있네. 자네가 가지고 싶거든 가지게. 여기에는 칼이라곤 그것밖에 없네.” 하자 다윗은 “그보다 더 좋은 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을 나에게 주십시오.”하고 칼을 받아 쥐고 급히 그곳을 떠났습니다.(삼상21:1-9)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때 사울의 목자장인 에돔 사람 도엑이 예배 의식 때문에 그 곳에 와 있었습니다. 사울 왕이 뒤늦게 다윗이 놉 성읍을 다녀갔다는 사실을 듣고 손에 단창을 들고 이렇게 한탄합니다.

(삼상22:6-8)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어라. 다윗이 너희 모든 사람에게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그의 군대에서 지휘관으로 삼을 것 같으냐? 어째서 너희가 공모하여 다 나를 대적하느냐? 내 아들이 다윗 편에 가담했는데도 그 사실을 나에게 말해 주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너희 가운데는 나를 염려하는 자도 없고 내 아들이 다윗을 선동하여 그가 나를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도 나에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구나!

바로 그때 사울의 신하들과 함께 서 있던 에돔 사람 도엑이 이렇게 허위 날조 과장하여 밀고합니다. “내가 놉에 있을 때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또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그에게 주었습니다.” 이에 화가 잔뜩 난 사울 왕은 즉시 놉의 모든 제사장들을 강제 소환하여 심문합니다. 

“어째서 네가 다윗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느냐? 네가 무엇 때문에 그에게 음식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해 하나님께 물어 보았느냐? 도대체 네가 그를 선동하여 그가 나를 반역하고 이 곳까지 와서 나를 칠 기회만 노리도록 한 이유가 무엇이냐?” 

무고한 다윗을 역적으로 몰아 그의 소재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반란 선동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고자 하는 말입니다. 이에 아히멜렉이 “왕의 모든 신하들 가운데 왕의 사위 다윗만큼 충실한 자가 있습니까? 그는 왕의 경호대장일 뿐만 아니라 궁중 모든 사람들에게도 높이 존경을 받는 자입니다. 내가 그를 위해서 하나님께 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왕이 이 문제로 나와 내 가족을 문책하는 것은 정당한 처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번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며 당당하게 변론합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아히멜렉아, 너와 네 친척은 죽어 마땅하다.” 하고 자기 경호병들에게 명령합니다. “저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여라. 저들이 다윗과 합세하여 공모하였고 또 다윗이 도망할 줄 알면서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경호병들은 아무리 왕의 명령이라도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는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제사장을 죽인다는 것은 하나님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무모한 악행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하나님의 제사장을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자신에게 고용된 목자장 도엑에게 “네가 저들을 죽여라.” 하고 명령하자 즉시 그 자리에서 85명의 제사장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참하게 학살해 버립니다. 

그리고 왕의 명령을 받아 그 제사장들의 성인 놉으로 가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젖먹이들까지 제사장의 가족들을 몰살하고 심지어 소와 나귀, 양 등 모든 가축까지도 진멸해버립니다. 주어진 기회를 이용하여 에돔족이라는 이방인의 한계를 벗어나 정치적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한 기회주의자의 만행이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학살 중에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인 아비아달이 도망하여 다윗을 찾아가 사건 전모를 알립니다. 이에 다윗이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날 도엑이 거기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가 사울에게 말할 줄 알았소. 사실 당신의 모든 가족과 친척이 죽은 것은 나 때문이오. 당신은 나와 함께 여기 머물러 있도록 하시오.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당신을 지켜 주겠소. 왕은 당신과 나를 모두 죽이려고 하지만 당신이 나와 함께 있는 한 안전할 것이오.”(삼상22장) 


2. 오늘 본문 시편 52편은 이러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은 만행을 일삼은 도엑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자신의 권력 확장과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그 누구라도 얼마든지 희생물로 삼아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까지도 학살하는 참혹한 범죄를 서슴지 않고 오히려 잘한 일인 양 자랑까지 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기는커녕 마치 영웅적인 행위인양 떠벌리고 다닌 것입니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도엑의 그 간사하기 그지없는 한 마디 허위 날조 과장된 밀고와 그 혓바닥에 놀아난 사울의 권세가 빚어낸 엄청난 비극을 하나님께서 결코 묵과하시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반드시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에서 “멸하심이여”의 뜻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긴다는 것은 미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도엑과 그 일가족을 미치게 만들어 멸하는 심판을 받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는 말씀에서 “취하여”는 히브리어 ‘하타’인데 이는 아궁이 속의 재나 쓰레기를 치우듯이 인간사회에서 치워버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뽑아내며”는 히브리어 ‘나사흐’인데 이는 ‘파괴시킨다. 근절시킨다’는 것으로 일신상의 부귀영화와 권세를 위해서 허위 날조된 혓바닥을 놀려 악행을 일삼는 자의 삶을 아예 뿌리채 뽑아 파괴하고 근절시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회복 불가한 심판을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또한 도엑에 대해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7절)고 말했습니다. 이는 도엑이 에돔 족, 즉 이방인으로 이스라엘에서 출세하기 위해 사울 왕에게 아첨하고 빌붙어서 사울의 목자장이 되었고, 더 큰 신임을 얻어 권세를 잡고(삼상22:7) 부귀영화를 장악하고자 아히멜렉 제사장을 허위 날조 밀고 하여 하나님의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까지 떼죽음을 당하게 한 악한 자, 의인의 피 값으로 호의호식하며 세력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사울 왕을 버리시고 다윗에게 기름부어 왕으로 세우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불의의 삯으로 살찌우며 희희낙락 할 줄만 알았지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알지 못한 것입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는 자입니다. 악인은 공의보다 불의를 좋아하고 선행보다 불법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헛된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의 세력을 추종합니다. 악인의 언사(言辭)는 쉼없이 악을 토하고 그 혀는 죽이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의인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나라를 구하는 생활을 합니다. 반면 악인은 물질의 풍부함을 의지하고 심지어 재물을 자신의 영혼까지 책임져 줄 수 있는 의지처(피난처)로 삼습니다. 의인은 오직 하나님께 뜻을 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지만, 악인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삽니다. 

(딤전6:17-19)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한 밭에서 자라고 있는 것처럼 의인과 악인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하시는 심판을 하십니다. 알곡은 하나님 나라 창고에 들이고 가라지는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불못에 던집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마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끝에도 그러하리라 

악을 뿌리는 자는 반드시 재앙과 심판을 받게 됩니다. 

(잠 22: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결국 사울은 이스라엘 왕가에서 영원히 진멸되었고, 다윗은 영원한 왕가로 세워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악인은 반드시 그 삶의 근거까지 박탈당하여 영원히 멸망당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 24:1)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잠 24:19)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경우, 어떠한 환경에서도 “푸른 감람나무의 삶을 사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다윗은 자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8-9절)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는 하나님의 집, 곧 성전에 심겨져 사시사철 달마다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를 말합니다. 이 말씀은 첫째,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렘17:7-8)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물가에 심겨져서 그 뿌리를 시내로 뻗어 더위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잎이 언제나 푸르고 싱싱하며, 가뭄이 심한 해에도 걱정이 없고, 항상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은 자입니다.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을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생활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 표현하며, 이러한 사람을 마치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고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게 하는 생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요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푸른 감람나무”는 오직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희생되신 하나님의 어린 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대로 사는 성도를 말합니다. 

(계22:1-2)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진실로 어린 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어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행사가 다 형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는 둘째로,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을 사랑하며 사는 성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시84:1-12)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말합니다. 예수께서 만민의 기도하는 집, 성전이 장사꾼들의 소굴, 강도의 소굴로 타락한 모습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2: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곧 “(요 2:21)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세워지는 교회,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우시겠다고 하신 사망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전보다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예배생활로 “푸른 감람나무” 같이 형통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푸른 감람나무 같은” 신앙생활로 시절을 좇아 풍성한 열매를 맺는 마르지 아니하는 축복과 마침내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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