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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련을 영광이 되도록 하라 (벧전 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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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영광이 되도록 하라 (벧전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베드로전서 4:12-13)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겪어야 하는 과제 중 하나는 시련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핍박의 시련이 있는가 하면, 우리들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시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시련을 ‘시험’이나 ‘환난’, ‘고난’ 또는 ‘핍박’이란 말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시련의 과정은 우리에게 아프고 고통스러우며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시련을 ‘불 시험’이라고 했습니다. 영어성경에서는 ‘고통스럽게 하는 아픈 시련(painful trial)’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시련의 형태를 바울의 말씀 가운데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은 당하여도 낙심치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8-9)
  
시련은 우겨 쌈을 당하는 것처럼, 답답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핍박을 받는 자처럼,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것과 같은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꽃꽂이를 할 때에 꽃줄기의 끝은 일직선으로 자르는 것보다 대각선으로 자르면 물을 흡수하는 면적이 넓어져서 꽃의 수명이 오래갑니다. 그러나 꽃의 종류에 따라 대각선으로 자른 것만으로는 물을 빨아올리는 것이 부족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는 칼로 자른 자리를 불로 태웁니다. 그러면 물도 잘 빨아올리고 자른 끝도 잘 썩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에게 시련을 허용하십니다. 자르는 것으로의 시련을 겪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에 태우는 시련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련의 과정은 하나님 경험의 세계를 깊고, 넓고, 높고, 크게, 해주는 것입니다. 성서의 위대한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힘들고 아프고 어려운 시련에서 그들의 위대한 삶의 자원을 발견했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실에서 쫓겨나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배고픔과 초라함 속에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큰 시련의 기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련의 기간의 하나님 경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내고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게 되는 많은 시련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은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의 지도자가 되도록 만들었고 당시 중동지역의 큰 위기를 극복하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게 했습니다. 
  
시련은 우리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해 주는 것이고 우리로 진리 안에서 영광스러운 승리자가 되도록 해줍니다. 그럼 우리는 이 시련을 어떠한 태도로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시련의 가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루터는 “고통은 당하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던 시편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신학자인 러더포드(S. Rutherford)는 “혹독한 시련을 통해서 성경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깊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시련은 우리를 영적으로 강하게 성장하도록 해줍니다. 바울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고 했습니다.   
  
시련은 우리의 영적인 삶에 인내를 가르쳐주고 그 인내를 통하여 연단을 이루어 소망을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영적 강건함과 성장을 이루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련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저자는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12:6)고 했습니다. 사랑의 세계는 깨닫고 체험해야 하는 것이기에 평범함 속에서 단순하게 찾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픔 속에서 더 깊은 사랑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시련은 우리에게 유익한 일을 만들어 줍니다. 히브리 저자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히12:10).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시련은 우리를 훈련시켜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하고 그 거룩함을 나누며 사는 사람이 되게 하고, 의로움을 이루어 의로움 안에서 누리는 평강의 삶을 살도록 하는 유익함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시련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과 목적을 이루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활어 회를 먹어보면 자연산과 가두리양식장의 양식고기에는 그 맛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연산은 험한 파도와 바람 속에서 펄떡이며 힘 있게 자란고기이고 생존하기 위하여 갖은 시련을 다 겪은 고기이기에 그 맛이 쫄깃쫄깃하고 향기가 있으며 싱싱합니다. 그러나 가두리양식장의 양식고기는 조용히 고여 있는 물에서 아무런 갈등이나 고민 없이 편안히 자란고기이기에, 고기질이 힘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저항력에 의해 형성되는 맛을 낼 수 없는, 맛이 약한 고기가 되고 맙니다. 
  
‘불 시험’이란 말 자체는 용광로에서 값진 금이 세련되듯이, 시련은 우리에게 값진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는 영광스러운 역사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시련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따라오는 핍박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련은 우리로 맛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훈련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루터는 “유혹과 시련은 그리스도인 학생을 위한 훌륭한 신학교다”라고 했습니다. 
   
시련은 영적인 풍요를 갖춘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훈련된 인격과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의 멋을 드러내게 합니다. 시련은 우리로 강인하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주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사는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며, 의의 견실한 모습에서 드러나는 평강을 나누어주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흘러내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시련은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영광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의 가치를 망각하거나 잃거나 놓치지 말고 그 가치를 찾고 깨닫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시련에 대한 바른 믿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시련은 우리에게 가치 있는 귀한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의 자세가 있습니다.   
  
󰓍 시련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4:12)라고 했습니다.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은 놀라지 말고 충격적인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용감하게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 기쁨과 즐거움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롬5:3)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기뻐하라”(약1:2).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처럼 즐거워하라”(벧전4:13)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태 5:12) 
  
그리스도인으로 핍박의 시련을 받을 때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영광으로 알고 기뻐해야 합니다. 시련이 찾아올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시련을 넘어 은혜와 축복이 있음을 믿고 즐거움과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삶의 모든 문제와 함께 시련을 하나님의 견지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도록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에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고 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망하고 무너지는 이유는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내 지혜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 지혜의 한계에서 절망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내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귀로 들으며 하나님의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로 말미암아 가능성이 없는 것에서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가치 있는 깨달음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현실의 암담한 역사를 하나님의 지혜로 판단하며 보게 될 때에 그 역사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시련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과 뜻을 찾는 지혜를 가지고 시련과 대처해야 합니다. 내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생산적인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시련을 당하여 방황하고 불평하며 절망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처럼 가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시련의 때는 풍성한 영성의 세계를 체험하는 때로 보내야 합니다. 기도하는 때로 보내야 합니다. 말씀을 깊게 깨달을 때로 보내야 합니다. 결코 헛된 시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가장 소중한 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부탁할 찌어다”(벧전 4:19)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며 우리를 보호하시며 주관하십니다. 핍박을 받을수록 그 핍박의 상황에서 고통당하는 우리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시련을 통하여 우리를 훈련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한 모습을 이루도록 그분께 순종하고 맡겨야합니다.  
  
󰓒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시련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이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고 했습니다.  
  
시련은 그 시련이 가리키는 신앙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의 핍박이나 환난의 시련은 주님 앞에 설 때에 칭찬 듣는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련은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광과 승리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챨스 카우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벽에 등을 대고 사방에서 적을 대하며 겨우 설 수 있는 공간에 처할 수밖에 없는 좁은 모퉁이에 밀어 넣어진다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골목이 아무리 좁을지라도 ‘나’외에 한 분이 더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협소성 때문에 나와 나의 주님은 그곳에서 가장 친밀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장 가까이 접촉해야만 주님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분인 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련은 때로는 우리를 태우는 불과 같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적고 큰 시련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시련과 함께하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이 시련은 하나님 경험의 세계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주님체험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련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시련이 영광이 되도록 하십니다. 
  
시련이 영광이 되도록 하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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