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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실에서 회복으로 (욘 2:1~10) -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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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에서 회복으로 (욘 2:1~10)


미국에서 한 때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끈 책이 있습니다. 챨스 콜슨이 쓴 ‘회복’ 이란 제목의 책입니다. 콜슨은 교도소에서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이 책을 썼습니다. 그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은 세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자학 죄수, 둘째, 포기 죄수, 셋째, 회복 죄수입니다. 자학하는 죄수는 절망감속에서 자해를 하고 자살을 기도합니다. 최악의 죄수입니다. 그리고 포기 죄수가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인정하고 맥없이 주저앉아 있습니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것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회복 죄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언제가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새로운 인생을 멋지게 살 계획을 세우고 그 날을 기다리며 당당하며 살아가는 죄수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건설적이고 생산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면서 살아가는 죄수입니다. 비록 지금은 자유를 상실하였고, 가족을 상실하였습니다. 일을 상실하였고, 고향을 상실하였습니다. 친구를 상실하였고, 모두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러나 회복을 꿈꾸며 살아가는 죄수입니다. 상실에서 회복으로 바뀐 사람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보면 바로 이런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 요나는 상실의 사람이 회복의 사람이 된 대표적인 모델입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저 큰 성읍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라.” 이런 명령을 받은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가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니느웨는 당시 강대국인 앗수르의 수도요,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원수국가였습니다. 요나는 원수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엉뚱한 데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마침 순풍이 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가는데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잘 되었다고, 중간에 잘 되었다고 진짜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끝이 잘되고 마지막 평가가 좋아야 진정으로 잘되는 것입니다. 

요나가 탄 배가 처음에는 순풍이 불었지만 결국 인간이 주체할 수 없는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선장은 큰 죄인이 이 배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큰 풍랑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 큰 죄인인가?’를 놓고 모두 제비를 뽑았습니다. 요나가 제대로 뽑혔습니다. 그는 풍랑 이는 바다로 던졌습니다. 때마침 큰 물고기가 요나를 꿀꺽 삼켰습니다. 요나는 3일 3야를 물고기 뱃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물고기가 요나를 해변에 토해냈습니다. 간신히 살아난 요나는 니느웨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복음을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모두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 왔습니다. 이것이 요나서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요나는 세 가지를 상실하였었습니다. 

1. 방향 상실

요나는 방향을 상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주신 방향은 니느웨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상실하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여러분, 현대인의 가장 큰 비극은 방향을 상실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쪽으로 가라는데 저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방향을 상실한 사람을 우리는 타락한 사람, 길을 잃어버린 사람, 불쌍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2. 의욕 상실

요나는 의욕을 상실하고 배 밑창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의욕을 상실한 사람의 특징은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헛되이 낭비합니다. 물론 의욕을 상실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이라든지, 그 일 때문이라든지, 혹은 말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3. 주인 상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요나는 주인을 상실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 안에서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여러분, 하나님을 상실한 사람은 이 세상의 쾌락은 있을지언정 인간이 누려야할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요나는 주인인 하나님을 상실하고 배 밑에 숨었습니다. 즉 물고기가 물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요나는 방향을 상실하고, 의욕을 상실하고, 주인을 상실한 상실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다시 찾았습니다. 그는 회복했습니다.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니느웨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요나의 전도를 받은 니느훼 사람들은 왕부터 짐승까지 모두 회개하였습니다. 요나는 모든 것을 회복하였습니다. 과연 요나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회복하였을까요?

1. 고난이 회복의 방법이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1-3절) 시편 기자도 말했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요나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지구 남해 바다에 살고 있는 특이한 새가 있습니다. 알바트로스라고 하는 새입니다. 날개가 무지무지하게 큰 새입니다. 그 날개는 그 새에게 결코 짐이 아닙니다. 그렇게 큰 날개 때문에 그 새는 비록 무겁지만 멀리 나를 수 있습니다. 공중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아도 그 날개만 펴고 있으면 공중에 떠있게 됩니다. 그 새에게 세차게 부는 바람은 방해물이 아닙니다. 거센 바람일수록 그 날개에 부딪치면서 몸을 가볍게 하여 줍니다. 

여러분, 고난은 우리에게 방해물이 아닙니다. 고난 때문에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되고, 고난 때문에 회개도 하게 되고, 고난 때문에 겸손해지게 되고, 고난 때문에 변화를 받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어찌 보면 외국 생활은 작은 일에도 큰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2. 기도가 회복의 방법이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속에서 기도하였습니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7절) 물고기 배속에서 요나가 할일은 기도 밖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바로 회복을 이끌어 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내려오시자 한 어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아와 간청을 했습니다. “예수님, 제 이 아들이 귀신이 들려 심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제 아들을 불 속에도 넘어지게 하고, 물 속에도 빠지게 하므로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제발 할 수 있거든 좀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은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그리고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었습니다. “벙어리 되고 귀 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그러자 귀신이 그 아이로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넘어트렸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아이가 죽은 모양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키니 귀신은 나가고 그 아이가 온전히 회복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회복이 되니 가정의 행복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본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회복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런 비결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여러분,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기도하는 사람은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에게 회복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기도가 회복의 방법입니다.

3. 다시 바라보는 것이 회복의 방법이었습니다.

요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 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 보겠다 하였나이다.”(4절) 요나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다시 성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그에게 회복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몇 년 전에 한국의 삼풍백화점이 통째로 무너진 사건은 온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때 정광진 변호사님의 사연이 지금까지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와 세 딸이 삼풍백화점에 갔다가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참으로 믿기지 못하고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 그는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보상금 7억원과 사유 재산 3억 그리고 모금 3억원 합쳐 13억원으로 회복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돈으로 큰 딸이 다니던 맹아 학교에 장학 기금으로 기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인재들을 길러 내고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을 나누어 주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물고기 뱃속에 있어도 다시 하겠다고 하면 다시 할 수가 있습니다.

부부관계나 가족관계가 어려워졌습니까? 다시 바라보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학교생활이 어려워졌습니까? 처음부처 다시 시작하십시오. 믿음의 생활이 어려워졌습니까? 다시 바라보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은 다시 시작 하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오늘도 회복시켜 주십니다. 

4. 맡기는 것이 회복의 방법이었습니다.

요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나이다.”(9절) 즉 자신은 아무런 힘이 없으니 구원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요나가 맡기려고 하여서 맡긴 것이 아닙니다.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기에 맡긴 것입니다. 코너에 몰렸기에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맡기자 하나님은 요나를 고래 뱃속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연합군과 독일군이 치열하게 싸울 때였습니다. 미국의 국방부 장관이었던 뉴턴 베이커가 프랑스 야전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베이커는 그 야전병원에서 두 팔이 잘라지고 두 다리가 잘라진 병사가 호박처럼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이커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무슨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눈물이 핑그르 돌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배 위에다 성경 한 권 올려놓고 병실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그는 국방부 장관에서 물러나 미국의 죤스 홉킨스 대학의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대학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베이커는 졸업식에서 이사장 상을 수여하려고 단에 올랐습니다. 그러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호박덩어리 같은 그 병사가 박사 학위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의 옆에는 결혼한 부인이 수발을 들고 있었습니다. 

팔다리가 잘라진 그가 박사가 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주셨던 성경이 나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 성경을 읽으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꿈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고통은 끝이 아닙니다. 다른 일을 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회복입니다. 그 어떤 상실의 사람도 예수님께 나아오면 회복이 됩니다. 손과 발이 잘라져 몸뚱이만 남은 사람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창녀와 세리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강도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어떤 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 바라보고, 기도하고 맡기면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을 회복시키십니다. 오늘도 이러한 회복의 역사가 우리들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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