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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렘 33:1~9) -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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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렘 33:1~9)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기도의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1861년 2월 12일 워싱턴 DC로 떠나던 날 아침,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를 사랑하는 많은 시민들이 기차역으로 마중 나와 환호했습니다. 링컨은 고향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에 눈시울을 적시며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스프링필드에서 여러분 덕분에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떠나면서 여러분이 저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지금 저는 일찍이 워싱턴 대통령의 어깨 위에 놓였던 짐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는 마음으로 이곳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저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연방을 탈퇴한 6개주가 남부연합을 결성하고 따로 새 대통령을 선출하였습니다. 링컨은 취임 후, 남부연합 무효를 선언하므로, 4월 12일 남북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그는 전쟁의 승패가 사람의 지혜나 군사의 숫자나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1863년 4월 30일 링컨대통령은 국가적인 기도와 금식일을 선포하였습니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것은 사람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의무입니다. 그들의 죄와 허물을 겸손하게 자백하는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입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 우리는 하늘에서 골라준 선물을 받아 누려왔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 평화와 번영을 누려왔습니다. 우리는 수적으로, 물질적으로, 그리고 군사력에서도 지구상의 다른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할 만큼 월등히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번성하게 하시고, 부유하게 하시며, 힘이 있게 하신 그 은혜로운 손길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마음을 스스로 속이는 가운데 이 모든 축복들이 우리 자신의 월등한 지혜와 노력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헛된 생각을 했습니다. 계속되는 성공에 중독 된 나머지, 우리는 스스로 풍족해져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붙들어주시는 은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더욱 교만해져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하고, 이 나라의 죄악들을 고백하고, 그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 나는 이 선언에 의해 1863년 4월 30일 목요일을 국가적인 경비와 금식, 기도의 날로 정해 지킬 것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이날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삶에서 떠나 그 곳의 공적예배의 장소에 모이거나, 각자의 집에서 이 날을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지키고, 이 엄숙한 날에 적합한 종교적 의무들을 겸손히 실행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지금 둘로 나눠서 고통 받고 있는 이 나라를 이전의 연합과 평화의 행복한 상태로 되돌리실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 겸손히 안식합시다.”
 
1865년 3월 링컨은 두 번째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4월 9일 남군의 리 장군이 항복을 선언하므로 남북전쟁은 종식이 되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전쟁이 끝난 후에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 같은 명장이 없었음은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뜻하지 않은 어려운 시련과 역경을 겪을 수 있지만, 때때로 믿음 때문에 더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영적인 시련, 영적인 전쟁을 한다고 말을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일하던 때의 한 사건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가 일하던 시대는 민족적으로 아주 불운한 시대였습니다. 유다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의 팽창주의정책으로 열강들은 치열한 경쟁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주변국들을 장악했던 이집트가 서서히 쇠퇴하면서, 앗수르가 세력을 펼쳤고, 다음은 새로운 제국 바벨론이 일어났습니다.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 유다는 그 때마다 풍전등화 같은 위기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적으로도 친 이집트, 친 앗수르, 친 바벨론 세력들이 갈려서 싸웠습니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이웃나라들의 종교적인 영향을 받아서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불신앙 때문에 나라가 바벨론에 멸망한다는 예언을 서슴없이 하였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입바른 소리를 계속 쏟아내는 예레미야를 근위대 뜰에 있는 감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종말을 치닫고 있던 때에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는 소중한 신앙인의 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 내 삶은 내가 선택합니다.(1)  

선지자 예레미야는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나라의 불운한 미래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감옥에 갇히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불가피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 감옥 속에 놓이게 되었으나 추호도 억울하게 생각하거나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계속함으로 새로운 영적인 활로를 찾았습니다. 마치 금광을 채굴하는 광부가 지하 수 십 미터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광맥을 찾아가듯이,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관계 속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때로 아무리 노력해도 바꾸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어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때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은혜의 기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요나를 만납니다. 어느 날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는 심통이 뒤틀렸습니다. 이스라엘과 적국의 수도인 니느웨가 망한다는데 내가 알게 무람. 하고는 니느웨와는 정반대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은 눈감아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바다 속으로 던져졌고, 때마침 지나던 큰 물고기 뱃속에 통째로 삼켜졌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삼켜진 요나는 기도합니다. 

“내가 고통스러울 때 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스올의 한 가운데서 살려 달라고 외쳤더니, 주께서 나의 호소를 들어주셨습니다. ···내가 주께 아뢰기를 ‘주의 눈앞에서 쫓겨났어도, 내가 반드시 주님 게신 성전을 다시 바라보겠습니다.’ 하였나이다. ····내 목숨이 힘없이 꺼져 갈 때에, 내가 주님을 기억하였더니, 나의 기도가 주께 이르렀으며, 주님 계신 성전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주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저버립니다. 그러나 나는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주께 희생제물을 바치겠습니다. 서원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키겠습니다. 구언은 우직 주님에게서만 옵니다.” 주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니, 물고기가 요나를 물가에 뱉어 냈다.“(요나2:2-10)

지긋지긋한 삶의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힘들다고 어렵다고 불평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어느새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로 토하여 내었습니다. 
요나에게는 상황의 변화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그 때에 상황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연스럽게 풀렸습니다. 
상황의 변화를 요청하는 이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 복원하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환경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은 환경을 은혜로 받아들입니다.   


2.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2)  

근위대 뜰에 갇힌 예레미야가 기도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고백합니다. 
“땅을 지으신 주, 그것을 빚어서 제자리에 세우신 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이름이 ‘주’이신 분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믿느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레미야가 바라보며 기도하는 하나님은 땅을 지으신 주님이십니다. 한마디로 창조주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빚어서 제자리에 세우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주인이십니다.

지난 금요일 인천 용유도에 오션스카이 펜션을 건설하신 집사님 사업장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바닷가 1,600여 평의 대지위에 2m층으로 8개동을 건축하였는데  조경을 아름답게 하여 그림같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건물에 사용한 건축자재하나하나, 조경을 위하여 심겨진 나무 한그루 아무것이나 되는대로 심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뜻이 반영된 것입니다. 
하물며 이 세상의 그 어떤 하나도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과 관심 속에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공중에 나는 참 새 한 마리의 생명까지, 들에 피는 백합화 한 송이까지도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세상의 어느 것 하나도 우연히 생겼다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신바 되었다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창조주하나님,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고백하는 예레미야의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역사의 질곡 속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 안에서 이루저지고 있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와 바벨론을 들어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치시지만 그것이 단순히 군사력이 부족한 탓이 아이었습니다. 범죄 속에서 정신 차리지 못하는 자기 백성들을 일깨우고 바로세 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알았습니다. 

비록 그것이 사랑의 채찍이라 할지라도 그 매를 맞는 자식은 어느 누구나 그것이 사랑임으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느 날 그 엄청난 사람의 마음을 깨닫게 되는 날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때에 우리는 철이 든다고 말합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당신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그러므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3) 

기도 속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볼 수 있습니다.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   
현상적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관점을 가지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바라봅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사물 속에서 시상을 떠올립니다. 문학가는 글을 쓸 소재를 찾습니다. 사업가는 돈이 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사람은 배후의 영적인 흐름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같은 현실을 보면서 그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전혀 보이지 않는 그 이후의 세계를 발견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자아의 좁은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벗어나야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편집증증세를 보이고 있는 나의 아집의 세계를 벗고 더 넓고 큰 새로운 세계를 보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진리를 증거 한다는 이유로 밧모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그가 생활했던 곳은 대단히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아주 작은 섬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몇 걸음만 가면 바다에 다다르는 그 좁은 세계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곳에서 기도하는 중에 그는 지상의 세계너머에 펼쳐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기도 중에 보이는 세계를 그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 뒤에 내가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내가 들은 그 음성, 곧 나팔소리와 같이 나에게 들린 그 음성이 ‘이리로 올라오너라. 이 뒤에 일어ㅗ나야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곧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보좌가 하나 놓여 있고, 그 보좌에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요한계시록4:1,2)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부르짖어 기도하라 하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의 현실세계를 너머서는 영적인 도약입니다. 우리의 작고 좁은 영의 세계를 열어 더 넓고 큰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고 좁은 영이 크고 전능하신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를 너머에 계획되어 있는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계시를 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본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2:17은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삶에 변화가 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너희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 어떠하든지, 자신과 조국의 희망의 미래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멋있는 내일을 창출하는 주인공이 됩니다. 자신과 나라의 밝은 비전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오늘 기쁨으로 땀 흘리며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만이 오늘 어른답게 서서 시대의 기둥같이 설 수 있습니다. 

근위대 뜰에 있는 감옥에서 기도하는 예레미야에게 보여진 세계는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힘없고 비참한 조국의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치유하시고 낫게 하신 성읍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가기 전의 처음의 성읍의 건재한 모습이었습니다. 세계 열방 가운데서 기쁜 이름이 되고 찬송과 영광이 되는 성읍이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거리마다 즐겁고 기쁜 소리들이 가득한 활기찬 도시였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소리, 거리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예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며 찬미하는 소리들로 가득 찬 도심의 활기찬 거리였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장면입니까?

예레미야가 믿고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좋은 것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29:11-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희망을 주려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망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보면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전쟁의 상처, 칼에 상한 사람들의 신음소리, 굶주려 울 힘조차 없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는데 눈을 감고 기도하는 예레미야에는 전혀 다른 희망찬 도심의 거리가 생생히 보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특권은 기도입니다. 주님은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가끔 교회를 사용하기를 원하는 전화를 받곤 한다. 그러면 이 일은 성전관리위원화에서 주관하기 때문에 사무처로 전화할 것을 말하면서 하는 말 한마디가 있다. “담임목사와 대화가 되었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사무처에서는 우선적으로 그 일을 가능하도록 돕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능력이요, 충만한 카드와 같습니다. d l한 장의 카드면 모든 것이 통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나는 이 성경책 한 권이면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감옥 속에서 기도하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크고 놀라운 비밀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이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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