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 지도자의 자세 (벧전 5:1~4) - 장로

  • 잡초 잡초
  • 1149
  • 0

첨부 1


교회 지도자의 자세 (벧전 5:1~4)

존 워너메이커의 책을 읽다가 나는 큰 은혜를 받았다. 그의 주일 성수 신앙으로 그가 섬기는 베다니교회가 5달러 전세 상가 교회에서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세우는데 쓰여진 신앙의 모습, 비즈니스 사업가로서 물질보다 하나님의 일을 앞세운 신앙의 모습 등 영적 거인의 모습 앞에 머리가 숙여졌다. 특히 워너메이커가 교회에서 양무리를 치는 자가 되었을 때 그 당시 세계 최대의 교회학교가 된 것이 너무도 가슴 벅차는 감동이었다.

지도자는 중요하다. 교회의 지도자는 잘 세워져야 한다. 아무나 세우면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수 있기에 기도를 충분히 하고 세워야 한다. 예수님도 12제자를 세우실 때 밤이 새도록 기도하고 세우셨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독일 속담에 “군대 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직장 얻을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다. 교회의 지도자를 세우는 일도 결혼만큼 중요해서 더 많이 기도해야 할 것을 보여준다.

오늘 본문은 장로들에게 권하는 말씀이다. 벧전5:1에 기록된 장로는 오늘날의 장로의 직임을 말하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 기록된 장로들은 교회의 지도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장로란 연장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말은 “나이가 들었다”라는 말보다는 “성숙한 지도자가 된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지도자들에게 권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벧전5:2에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라.”고 하였다. 양무리는 목자의 손에 의해 꼴을 얻어먹어야 하고 길을 안내받아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러므로 양들은 목자가 절대적이다. 영적으로 양들의 목자는 양을 치는 지도자이다. 교회 지도자가 양을 치는 것은 단순히 먹이는 사역만을 뜻하지 않는다. 먹이는 것 이외에 인도하는 사역, 경계하는 사역 등을 포함한다. 피곤할 때 쉬게 하는 돌봄도 필요하지만 때론 싸메고 훈련하는 사역을 해야 한다.

양은 모두 하나님의 양이다. 교회 지도자로 세워진 장로님, 권사님들은 양을 하나님의 양으로 생각하고 치는 소중한 마음이 중요하다. 거기서 최선이 나온다. 나를 본받으라고 말한 교회 지도자 바울을 보라.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돌보았다. 행20:18~35에 나오는 바울의 돌봄은 다음과 같다.

① 겸손과 눈물로 훈계하며 돌보았다.
② 시험을 참고 돌보았다.
③ 유익한 것을 성도에게 가르침으로 돌보았다.
④ 회개와 믿음을 증거하므로 돌보았다.
⑤ 깨끗함으로 돌보았다.
⑥ 모본이 되어 돌보았다. 이것이 양을 치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는 양을 칠 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자원함으로 하라. (벧전5:2上)

벧전5:2上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라고 하였다.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양무리, 곧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를 돌보는 일은 자원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의 뜻이 돌봄의 네비게이션이라는 것을 알고 오직 그 뜻을 좇아 따라가야 한다. 자원한다는 것은 잘난 척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맡겨진 일에 대한 사명감이 나를 강권하기에 주어진 일을 향해 마음과 몸이 기울어지기에 스스로 움직이는 헌신을 말한다. 누가 시켜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억지나 부득이 함의 자세가 아니다.

교회는 징집병으로 일해서는 고달프다. 교회는 정말 자원병으로 일해야 한다. 징집된 군사로 일하면 억지로 하는 일이다. 징집된 마음을 가진 교인은 시간이 아깝고 돈이 아깝고 모든 일들이 손해보는 것 같다. 교회가 강한 병영이 되지 못하고 사단에게 속고 실패하게 된다. 교회는 징집된 자를 모아놓는 수용소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사역이 좋아서, 즐거워서, 자원하여 몸을 드리는 잔치집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더 많은 것으로 드리고 짚어서 남보다 앞장 서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특수 단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찬송 소리가 높고 기쁨과 열정, 비전이 불타오르는 사역으로 보람이 넘쳐야 한다. 지도자들은 특히 하나님의 뜻이라면 주저할 것 없이 그 뜻을 좇는데 자원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지도자가 있는 교회야말로 견고한 교회이다.


둘째, 즐거움으로 하라. (벧전5:2下)

벧전5:2下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라고 하였다.

자원하는 섬김의 특징은 즐거움이다. 자원하는 마음은 즐거움으로 일하는 뜻과 상등이다. 자원함과 즐거움은 사명이란 어머니가 낳아주신 두 아들이다. 그런데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유혹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해(利害) 관계다.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며 기르는 일에 적절한 보상과 상급이 따를 수 있다. 고전9:9에서 바울은 곡식을 밟아 떨며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므로 자신의 사역에 해당하는 사례를 받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고전9:13~14에서도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 하였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때때로 평신도들이라 할지라도 적절하게 대우하고 물질적 공급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역의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교회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더러운 이를 구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즐거움을 빼앗기게 된다. 지도자의 일하는 자세는 즐거운 뜻으로 일해야 한다. 

나는 항상 주의 사역이 즐겁다. ‘왜 즐거운가?’ 생각해보면 나 같은 인생이 만왕의 왕이 되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감격 때문이다. 광림 수도원에 가서 기도하면서 고전15:10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는 이 말씀이 떠오르는데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무자격자, 죄 밖에 내세울 것 없는 자, 남보다 특별한 배경도 없는 자,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갈 꿈도 없던 내가 목사가 된 것 자체가 은혜 중의 은혜다. 주님이 꿈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열정을 주셔서 목사가 되었다. 내가 된 것이 아니고 되게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이것도 은혜, 저것도 은혜, 하나님과 관계된 것은 다 은혜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잠기면 즐거움 밖에 없다.

목회는 고난의 길이라고 한다. 괴로움의 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즐거움으로 걷는 소풍길이다. 가시밭길이 아니고 꽃밭길이다. 사람이 변화되어 구원을 얻고 예수 때문에 행복해 하는 일을 하는 것 어찌 즐거움 이외에 다른 것이 대신할 수 있겠는가?


셋째, 본이 되어 맡기운 일을 하라. (벧전5:3)

벧전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하였다. 

사람은 묘한 존재다. 자기가 속하여 있는 곳이 회사든지, 교회든지, 맡기운 일을 하다보면 자기 방법에 도취되어 겸손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주장하는 자세를 갖게 된다. 이 일은 내가 경험자이고 내게 주어진 권한이다. 그러므로 양무리를 치는 가장 좋은 자세는 자기를 돌아보아 주장하는 자세를 버리고 본이 되어 일하는 것이다. 사실 본이 되는 지도자가 가장 권위있게 가르치는 자다. 

본대로 모든 것은 만들어진다. 붕어빵 본을 놓고 빵을 구우면 본대로 붕어빵이 만들어진다. 호두과자 본을 놓고 빵을 구우면 호두과자 빵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본으로 보여주는 것이 만 마디 설교보다 더 확실하게 사람을 빚어내게 된다. 

일산 금란교회의 주성만 목사는 신학대학교 시험에 다섯 번 떨어졌다. 왜 이렇게 떨어지는지 일 수 없어 청주에 있는 기도원에 가서 예언 기도를 받았는데 ‘절대 주의 종이 될 수 없고 시험에 합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면제를 사서 먹고 죽기로 작정했는데 친구에게 발견되어 병원에 가서 살아났다. 그는 다시 순복음 기도원에 가서 기도실에 들어가 농약을 먹고 조용히 죽으려고 올라갔는데 김홍도 목사님의 “지옥은 있습니다.”라는 설교를 듣는 중 강사로 오신 김홍도 목사가 “자살하면 지옥간다.”고 거듭 세 번이나 자기 쪽을 보면서 외치시는데 지옥에 가면 안된다는 은혜를 받고 약병을 던져버리고 김홍도 목사님의 교회를 찾아갔다. 그때부터 주성만 목사의 삶의 본이 김홍도 목사가 되어 그 분의 입지 않는 옷을 달라고 하여 엘리야의 겉옷이라고 믿고 학교를 다녔다. 그 분에게 부어주신 영감을 갑절이나 받으려고 기도하면서 전도사의 일을 하였다. 

그가 김홍도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자네 재수 꾀 여러 번 했구먼. 하나님이 자네를 쓸걸세.”라며 그 때 해주신 말을 믿고 10번 만에 목원대 신학과에 합격했고 지금은 3년 만에 수 천명의 성도들이 모이고 있다. 그는 철저히 본을 보면서 배웠는데 억양, 몸짓, 설교 방법까지도 김홍도 감독님과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자신 역시 본으로 보여주며 목회한다는 것이다. 기도의 본을 보이고 헌금의 본을 보이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본을 보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의 본을 보이며 맡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권위요, 힘이다. 

가까운 지방에 있는 교회의 성도 10가정이 택지 개발로 보상을 받았다. 모두 다 그 보상금을 받고 조용히 지내는데 교회의 한 원로장로님이 보상금 30억을 받은 것 중에서 세금으로 3억을 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3억보다 더 드려야 한고 십일조 3억에 천만원을 보태서 3억 천만원을 헌금으로 드렸다. 이 원로장로님의 십일조가 본이 되어 나머지 분들이 모두 십일조를 드렸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가 1,500평의 논을 산 빚을 다 갚았다고 한다.

교회 안에서도 말보다 본이 더 감동이 된다. 본을 보여주는 것은 지도자의 책임이요, 자질이다. 

양무리를 칠 때 자원함으로 하고 즐거운 뜻으로 하고 본으로 일하는 이 세 가지 자세는 우리의 태도여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고치며 섬김과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한다. 이렇게 일하면 상급이 있다.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교회 지도자는 양무리를 치는 목자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자장은 주님이시다. 주님이 우리들이 하는 모든 사역에 대장이시다. 양을 먹이고 인도하고 경계하는 나의 모든 일에 관리 감독자이시다. 바로 그분이 면류관 상급을 주신다.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신다. 교회 지도자로서 집사, 권사, 장로직을 받은 것도 영광이다.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참예한 자로서 구별해 주신 것도 영광이다. 그러나 그것도 모자라서 양무리를 올바로 치기만 하면 상이 있으니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우리는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자. 지도자의 역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에 큰 일등공신이 되어 시들지 않는 상을 받는다.

오늘은 장로 취임식이 있는 날이다. 우리 모두가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지도자로 섬길 것을 다짐하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