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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요단을 건널 것인가? (수 3:7~13) - 언약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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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요단을 건널 것인가? (수 3:7~13)


성지순례의 코스 중에, 모세가 죽었다는 느보산에 올라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기에 가보면, 높은 산 위에, 돌로 지어진 모세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당 앞에는 장대에 높이 달린 놋 뱀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넓은 땅이 보입니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모자가 벗어질 지경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이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거기서 내려다보면, 사해가 바로 앞에 놓여 있고, 저 위쪽으로 여리고가 보입니다. 
모세는 눈앞에 펼쳐지는 그 가나안을 바라보면서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모세의 심정이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해서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광야 40년을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들어가는 데에는 
요단강이라는 장애물이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고대하며 달려 온 가나안 땅입니까? 
그런데 그 땅으로 들어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냥 쉽게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거기에는 요단강이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앞길에도 항상 건너야 할 깊은 강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달려가기 위해서는 
때로 높은 산을 넘어가기도 해야 하고 또 때로는 깊은 강을 건너야 하기도 합니다. 
목표가 높을수록, 넘어야 할 난관도 많고, 높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위대한 일을 이루는데 장애물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살아가는 앞길에는 어떤 장애물이 있습니까? 
물질적인 어려움, 육신적인 질병, 능력의 부족, 돕는 사람이 없는 것 등등
여러분의 가정에도, 직장에도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가 가야 할 앞길에도 건너야 할 깊은 강이 있습니다. 
‘부흥’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가 건너야 할 강은 무엇일까요?
조직을 새롭게 정비하는 일, 모든 성도들이 헌신을 결단하는 일 등등
각각 장애물의 종류는 다를지라도 장애물이 없는 사람도, 그런 교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장애물이 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그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까요?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레바논의 높은 헬몬산의 눈이 녹아 흘러내려서 모인 물이 갈릴리 호수이고,
그 호수를 따라 사해바다까지 이르는 강이 요단강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야 할 시점에는 
일 년 중 그 강의 물이 가장 폭이 넓고 깊은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정들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부녀자들, 
노약자들과 온갖 가축들까지 함께 건너야 합니다.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요단을 건넜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요단을 건너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요구된 것은 그들의 성결이었습니다. 

여호수아3:5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전에 먼저 갖추어야 하는 조건은 성결함입니다. 
하나님은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깨끗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이기를 원하십니까? 
성결한 사람, 깨끗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다니엘은 유대 사람으로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왕은 그를 발탁하여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니엘은 왕조가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그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느부갓네살을 비롯하여 다리오, 벨사살 왕등이 다스리는 때에 총리직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비결을 다니엘6:4에서 발견합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성결이 곧 능력임을 믿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성결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이 임합니다. 
능력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기 바랍니다. 
회개하면 죄 용서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초대교회 성도들이 능력 있는 사람이 된 것은 회개하고 죄 용서함을 받아
성령의 충만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성결한 백성을 존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성결은 죄를 씻음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의미에서 성결은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우리 삶의 장애물을 극복하는 첫 번째 비결도 
우리의 죄를 씻음 받고 성결함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회개하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그 동안 기도 많이 하지 못한 것, 말씀을 더욱 사모하지 못한 것, 성결하지 못한 것
전도하지 못한 것, 부흥을 위해 헌신하지 못한 것, 책임을 남에게 돌린 것 등등  

요단이라는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성결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죄를 청산하는 자에게 미래의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2. 언약궤를 앞세워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영에 머무를 때, 언약궤는 항상 그들의 중앙에 있었습니다.
즉 언약궤를 중심으로 사방에 흩어져 진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동할 때 항상 언약궤를 맨 앞에 앞세웠습니다. 

여호수아3:6 “여호수아가 도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 가니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맨 앞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갔던 것입니다.  

그러면 언약궤는 무엇입니까? 
언약궤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십계명 돌판 두 개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궤 위 곧 속죄소 위에 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언약궤가 가는 곳에 하나님은 늘 그들과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너는 칼과 창을 가지고 나아오나 나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삼상17:45)

이것은 다윗이 자신의 어떤 재주나 실력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고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큰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따름에 있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2천 규빗(약600m) 안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수3:4)
그 이유는 너무 가까이 해서 얕보지 못하게 즉 경외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따르는 사람들이 쉽게 언약궤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수3:4)
즉 이 길은 그들에게는 초행길이었기 때문에 안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길은 우리에게 언제나 초행길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갑니다.
초행길을 가는 인생은 언제나 하나님을 앞세우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길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앞세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앞세우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매사에 먼저 기도하고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안하고 일을 시작했다가 
문제가 생기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수습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기도와 말씀이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도 항상 하나님을 앞세우기를 바랍니다. 
  

3. 믿음으로 요단강에 들어서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는 물이 양쪽으로 갈라진 다음에 건넜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널 때는 
강물이 갈라진 다음에 건넌 것이 아니고, 강물이 철철 흘러 넘치고 있을 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그 물로 들어 선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 위에서 내려오던 강물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가 아니고 강물이 멈춘 것입니다. 
홍해 바다는 양쪽에서 벽을 이루었는데 요단강에서는 오른쪽에서만 벽을 이룹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까?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전진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물이 갈라지지 않았으나 멈추어 설 줄로 믿고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믿고 들어섰을 때에, 물은 위에서 멈추게 된 것입니다. 기적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믿음은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에 도전장을 내는 것입니다. 
될 것 같지도 않은 일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다 위를 걷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시도하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기적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바람과 파도를 보고 의심이 일어날 때에 다시 바다에 빠졌으나
그래도 그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는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시도가 믿음인 것입니다.   

뭐든지 겁을 내서, 아무 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마음으로 
앞을 향해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막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온 교우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요단이라는 장애물을 넘어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하나님은 요단강을 마치 홍해처럼 건너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시각적으로
모세와 함께 하신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의 앞길에도 큰 승리가 있을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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