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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뜻을 아는 방법 (행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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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뜻을 아는 방법 (행 21:1~11)


1.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의 뜻!” 이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 삶의 현장에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적인 궁금증은 “나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물음 앞에서 답답해 보신 적이 없습니까? 크게는 ‘내가 받은 소명이 무엇인가?’, ‘혹시 내가 목사나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닌가?’, ‘어느 대학으로 가서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평생을 살 것인가?’에서부터, 작게는 일상생활의 문제, 예를 들면,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마시며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어디에서 살 것인가?’ 등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고 많이 물었고 많이 기도해 왔습니다. 

저의 경우, 결혼 문제를 두고 40일 한 끼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었습니다. 그땐 제 감정, 제가 사랑한다고 하는 그 사랑을 믿을 수 없더라고요. 제 가슴에 생기기 시작한 그 감정이 진정한 사랑, 평생을 변치 않을 사랑인지 아닌지 저 스스로 확신할 수 없어 주님의 뜻을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도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눈 가린 채 절벽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 어떤 일에 대해 성도로서 내려야 하는 분명한 잣대와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사람들, 부당하고 억울한 고난에 울부짖는 사람들, 바쁜 삶으로 인생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 ‧‧‧ 이들 모두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설교집이나 신앙관련 서적들을 뒤적입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어떤 경우는 자신의 삶에 일어난 작은 일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뜻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우연히 미끄러진 일이나 넘어진 장소, 꿈이나 우연한 만남 등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죠.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뜻 알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하라고 할까봐, 자신에게 아주 힘든 삶을 강요할까봐서 피하려는 것입니다. 아무튼 모든 성도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깨달으시면서 오늘 여기까지 오셨는지요?

오늘 본문은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바울의 간증 속에 하나님을 뜻을 찾을 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도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아는 두 가지 원칙

1) 바울이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바울은 회심하기 전까지 철저한 유대주의자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성도들을 박해하는 일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그릇된 확신과 열심은 하나님께 정면으로 대적하는 범죄였습니다. 이런 확신과 열심을 가졌던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였으나 그들이 뿔뿔이 흩어져서도 여전히 복음을 전한다는 것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가, 다메섹에 믿는 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메섹으로 원정할 채비를 했습니다. 그는 다메섹 원정을 위하여 대제사장에게서 공문을 받았습니다. 당시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으로부터 예수 믿는 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압송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습니다. 그 합법적인 자격을 가지고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을 향하여 살기등등해서 가고 있을 때, 갑자기 빛이 비치며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아셨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쓰시려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정오의 태양빛보다 더 밝고 찬란한 빛으로 인하여 눈을 뜨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엎드려졌습니다. 그리고 선명한 그리스도의 음성은 바울의 기세를 압도하여 그의 마음을 꺾어놓았습니다. 바울은 주의 음성을 듣고는 “주여 뉘시니까”라고 물었습니다(8). 그러자 그 음성의 주인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응답했습니다. 바울은 그 찬란한 빛 가운데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가져왔던 소신, 확신,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는 바울의 육신의 눈을 멀게 했지만 그의 영의 눈을 뜨게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은 바울의 모든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예수님의 핍박자에서 예수님을 전파하는 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원칙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정오의 태양보다 더 밝은 빛 가운데서, 신비하게 들려오는 음성을 들으면서, 거꾸러질 수밖에 없었던 바울은 두 가지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째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둘째는, ‘제게서 무엇을 원합니까?’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두 마디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원리가 될까요?

2) 원칙1-내가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가

바울이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뉘시니이까?”라고 질문한 이것은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바로 알고, 그의 마음, 그의 생각, 그의 계획을 아는 데서부터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상대방과 친하지도 않은데, 그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알려고 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되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의 경우가 바로 이것이지요. 바울은 유대주의와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과 학문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기에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이런 자리에 머물고 있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하나님, 자신의 유한한 지식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는 하나님, 그렇다보니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일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장 우선적인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의 체험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열쇠는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그분의 임재 안에서 시간을 보냄으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를 보십시오.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나섰다가 동족이 그를 반대하고 애굽인 감독관을 죽인 일로 애굽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하자 그는 사막으로 도피를 했지 않습니까? 아마 시내 광야로 도피하던 모세에게는 “도대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했던 모세를 하나님은 시내산,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만나주셨습니다. 모세가 주님을 만났을 때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도 분명해 졌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그 전 단계는 바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요, 그 주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가끔 한 번씩 나누는 잡담이나 일주일 단위의 방문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그분의 집에 거할 때, 우리는 그분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분과 함께 오래오래 꾸준히 걸을 때 그분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죠.

바울이 다메섹을 향하여 가던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길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면서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비들에게 현혹되기도 하고, 이단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주님의 뜻을 알기 전에 먼저 주님을 아십시오! 주님과 친밀해 지십시오. 이것이 우선입니다.

성서유니온에서 나온 책으로 제럴드 L. 싯처가 지은 <하나님의 뜻>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대해 성도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마치 숨바꼭질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를 향하신 당신의 뜻을 숨바꼭질이나 보물찾기처럼 꼭꼭 숨겨놓으시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힘써서 찾아보라고 하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싯처 목사님은 ‘하나님은 성도 각자를 향한 당신의 계획과 뜻에 대해 빨리 보고 잘 보고 쉽게 보기를 원하신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천 번 만 번 지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술쟁이 할아버지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뜻을 알고 그 가운데로 행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친밀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여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그 말씀과 여러 가지 재료들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로, 인간의 지식으로, 인간의 경험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는 없습니다. 주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성도에게는 늘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그래서 주님을 알고 행하는 삶의 복이 있을 것입니다. 

3) 원칙2-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두 번째 원칙은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하나님이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이 주님께 두 번째 물은 질문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10절에서 바울은 주님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묻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겠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살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내 주장과 계획을 말하면서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기 전에, “당신이 제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를 먼저 묻는 것이 두 번째 원칙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사실 성도들의 삶에 이러한 경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신이 먼저 계획을 세우고서는 하나님께 그것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어떤 소원들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고 한다고 한다면,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직장을 정하고 ‘되게 하시옵소서’ 밀어붙이기 전에, 결혼하고픈 사람을 정하고 ‘저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라고 구하기 전에, ‘주여, 내가 어떤 직장에서 일을 하여야 그 직장에서 복음의 증인이 되고 주님의 복의 통로로 살 수 있습니까?’, ‘ 주여, 제가 어떤 사람을 만나야 그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며, 둘이 연합하여 주님을 더 영화롭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을 때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해야 할 것은 어떤 일이든지, 무슨 일이든지,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살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의 생각, 여러분의 계획, 여러분의 욕망을 내려놓으십시오. 내려놓지 않으면 주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이용규 선교사는 우리에게 자신의 힘을 내려놓으라고 권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고집쟁이가 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까지도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하나님께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과거, 여러분의 한(恨), 욕심, 강열한 의지, 그 모두를 내려놓으십시오. ‘반드시 잘 되어야 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도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의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남태평양의 섬들에서는 원숭이를 잡는 독특한 방법을 이용합니다. 나무에 여러 개의 야자나무 열매를 줄로 매어놓고, 그것을 파서 그 안에 땅콩을 잔뜩 넣어둡니다. 그리고 멀리서 숨어 기다리면 원숭이들이 땅콩 냄새를 맡고 다가옵니다. 주위를 살피던 원숭이들은 잽싸게 야자열매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는 땅콩 한 줌을 쥡니다. 그때 사람들이 다가가는데요,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서도 ‘꽥꽥’ 소리만 지를 뿐 도망을 못 갑니다. 땅콩을 움켜쥔 손을 놓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어느 날 한 꼬마가 값비싼 도자기에 손을 넣었다가 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아버지는 그 도자기를 깨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자, 한 번 만 더 해보자.” “아빠가 하는 것처럼 이렇게 손을 똑바로 편 다음 힘껏 당겨봐.“ 그러자 꼬마는 ”아빠, 아빠처럼 그렇게 손을 펼 수가 없어요. 그럼 동전이 떨어질 텐데요.“라고 했습니다. 그 소년은 도자기 안에 들어있던 동전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은 아마 웃음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 꼬마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 등을 꽉 쥐고 있습니다. 그것을 쥔 채로 주님의 뜻을 찾고 있는 것이죠. 『내 인생을 바꾼 긍정의 힘 실천 편』이란 책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치즈와 비스킷은 내려놓으라.” 이 말은 ‘시시한 복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풍성하신 복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을 내려놓지 않으면 계속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고, 끊임없는 망설임만 있을 것이고, 고민하고 갈등함으로서 힘든 삶을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그 뜻을 알리시기를 기뻐하시는 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1970년대 서울에서 빈민촌 사역을 시작하신 이후 현재 두레공동체를 이끌고 계신 김진홍 목사님은, 지난 37년 동안의 사역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주님의 뜻을 분별해 온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그 일이 교회와 겨레에 도움이 되는 일이냐 아니냐’는 기준이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한국교회 전체와 우리 겨레에 유익을 주는 일이란 확신이 있을 때에 그 일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내가 그 일을 감당하여야 되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도록 기다려야 하느냐’는 기준이었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이라도 자신이 다 감당할 수는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으면 좋고 그렇지 못하여 부득이 자신이 해야 할 경우에 그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꼭 하여야 할 일이고 또 내가 하여야 할 일이라면 지금 시작하여야 하느냐 아니면 때를 더 기다렸다가 다음 기회에 하여도 되느냐’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능하면 더 많은 준비와 더 좋은 여건이 갖추어 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지만, 모든 일에는 그 일을 시작하여야 할 적기(適期) 즉 타이밍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분별하여 그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김 목사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 맞추어 살아왔습니다. 오늘 본문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원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였지요? 첫 번째 원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알기 전에 먼저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십시오. 두 번째 원리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 하나님의 뜻을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을 때 주님의 뜻이 더욱 선명하게 여러분에게 다가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든지, “주여! 뉘시오니까? 주여! 내게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는 이 두 가지 질문을 먼저 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두 가지를 잘 기억하셔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하여 이리저리 기웃거리거나 여러 가지의 시도를 더 이상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원칙을 잘 작용하여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선하고 온전하고 기쁜 뜻을 알고 그대로 행하여 복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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