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 (사 40:25~31)

  • 잡초 잡초
  • 2052
  • 0

첨부 1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
사 40:25-31

요즈음의 현대인들은 참으로 피곤합니다. 그래서 새 힘이 필요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신경 쓸 일, 말들, 질병, 실패, 남모르는 고뇌, 과로로 지쳐서 피곤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피곤을 푸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주를 앙망하라고 합니다. 실패가 주는 피곤이든, 질병이 주는 피곤이든,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 인한 피곤이든 나를 앙망하면 내가 반드시 그 피곤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새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피곤한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피곤하지 않고 새 힘을 수 있습니까?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은 참으로 피곤하였습니다.
자기들이 믿고 따랐던 왕은 자꾸만 실망스럽게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해도 무기력했습니다. 살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북쪽의 형제같은 나라는 잘 못살아가고 있습니다. 곧 앗수리아의 공격이 있어 전쟁터에 나가야 하고, 전쟁이 나면 다 죽을 것 같은 걱정이 앞섰습니다. 말 그대로 참으로 피곤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사야가 그들을 향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다 던지고는 피곤했던 그들을 향하여 피곤에 지친 그들에게 그 문제의 해결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주님은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합니다. 주님이 오시면 인생의 피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피곤하여 모든 육체가 풀이나 꽃과 같이 시들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선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여도 용기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는 것입니다.
피곤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메시야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여러분들 가운데 임할 때 피곤한 삶이 부해질 것입니다.

문제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인생길이 잘 열리지 않아 고민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억울하게 타인 때문에 고통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해도 열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 있는 인생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만나 주십니다. 
인생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하나님은 이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인 개인의 문제든지, 가정의 문제든지, 공동체의 문제든지, 심지어 열방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고 길이 열린다고 하였습니다.
이세상의 인생들은 메뚜기와 같은 보잘 것 없습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도 잠깐 잘되는 것 같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인생의 모든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됩니다.
인생과 삶의 문제로 피곤에 지친 우리를  찾아오셔서 해결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만나시므로 문제 해결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우리가 앙망해야 할 창조자 하나님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시는 분이 십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면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나니”(사40:28-29) 

이사야 선지자는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앙망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앙망”이라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비틀어 하나로 묶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물건을 하나로 모으려면 비틀어서 한데 묶어 놓는다고 하면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 망앙이라는 말은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면 몸이 비틀어지지 않습니까?
다윗은 주님을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25:5)라고 고백합니다. 종일토록 기다리는 것이 바로 눈 빠지게 망망하면서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주님을 간절히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앙모하면 그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새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앙망한다는 것은 끌리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우리 하나님께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앙망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우리의 창조자이십니다. 창조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우리를 창조하여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26절을 보면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고 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 존재하게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분의 도우심을 가장 잘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알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강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아버지요 어머니입니다. 그들이 가장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자녀를 가장 알 알아봅니다. 자녀를 데리고 시장이나 놀이공원과 같이 복잡한 곳에 가도 부모는 자녀를 너무 잘 압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녀 되는 우리들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피곤에 지친 여러분들을 알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친자본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녀는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찾아갑니다.
이런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이 아이를 데리고 식당을 가거나 공원을 가면 다른 아이들을 툭툭 차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왜 그러니? 그러면 못써!”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차고 다녔습니다.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식당에 가면 다른 아이들을 툭툭 차고 다니는데 왜 그러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자기와 다닐 때는 안 그런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깨닫습니까? 이 아이는 아버지가 최고입니다. 최고로 힘이 세고, 최고로 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 안에서 거듭나면 이런 아들과 같은 행동을 합니다. 예전에는 항상 기죽고, 힘들어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 백 믿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가장 강하고, 힘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강하고 위대하고, 능하신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그 크고 위대하심을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우리가 종종 봄 꽃 축제에 참석한다면 그 장관을 보면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라고 찬양이 나올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다 보고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작은 것이라도 그곳에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만나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가 이와같이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것과 강하고 능하신 것을 두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하늘을 창조하신 이를 보라는 것입니다.
26절을 봅시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늘을 올려다 보아라. 누가 저 많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 많은 별들을 군대처럼 배치해 놓으시고, 하나 하나 그 이름을 점호하신다. 권능이 무한하시고, 힘이 강하신 그분은 별 하나도 빠뜨리심이 없느니라.”

여기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과 웅장함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 작품가운데 가장 웅장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창조하시는 데는 이틀이 걸렸습니다. 우리가 넓고 푸른 하늘을 쳐다 볼 때는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구름 아래에서 보아도 멋있지만 구름 위에 올라서 보면 얼마나 장관인지 모릅니다. “참으로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납니다.
게다가 밤하늘을 수 놓은 은하수 그리고 각종 별들을 보노라면 하나님의 그 광대하심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최초의 한국 우주인을 탄생시킨 소워즈호는 120만 Km/h으로 달려야 대기권을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의 세계는 얼마나 넓습니까? 이렇게 넓은 공간을 만들어 온갖 행성을 만들고 그들을 질서있게 운행하는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수백만 메가톤의 에너지가 담긴 바윗덩어리라 불리우는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데도 하나도 부딪치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작품이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내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주 가운데 그 모든 질서를 세우신 분이 바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은 정말 크고 위대하십니다. 전능하시고 크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버지나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삶과 관계 속에서 피곤에 지친 자들에게 “나를 앙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안다면 비록 내가 지쳐있지만 그분의 능력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나를 향하여 이름을 불러주고 계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2.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왜 사람들이 낙심하고 피곤한지 아십니까? 이웃나라를 나와 비교하였을 때 너무 힘이 크면 낙심합니다. 소위 피곤한 것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얼마나 자기 자신을 뽐내는지 모릅니다. 남보다 좀더 가지만 그 가긴 것 때문에 얼마나 교만한지 모릅니다. 
사회적인 지위가 남보다 조금 높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을 얼마나 무시합니까? 
이 세상의 사람들은 비교합니다. 심지어 우리들을 비교합니다. 무시합니다. 그럴 때 얼마 피곤합니까? 

이사야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분임을 또 다른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인간을 비하면 우리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이사야는 몇가지로 인간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한 방울의 물과 같다”고 합니다(사40:15). 이것은 하나님은 무엇을 만드신 분이십니까? 오대양 육대주를 만드신 분이신대 한 방울의 물과 같은 사람들이 어찌 나를 비유하고 피곤하게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저울의 작은 티끌 같다”고 합니다(사40:15). 하나님 편에서 보면 저울 위의 먼지와 같은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저로 저울질 합니다. 네가 옳고 내가 옳다고들 합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교만합니다. 남의 허물들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달아보시면 모두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나를 달아보면서 말하고 피곤하게 하겠습니까?
또 다른 하나는 “땅에 사는 사람은 메뚜기 같으니라.”고 합니다(사40:22). 인간이 메뚜기와 같이 작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메뚜기를 볶아 먹고, 구워먹고, 함부로 취급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하찮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키 재기를 하고, 남을 짓밟고 일어서곤 합니다. 거짓하고 사기를 칩니다. 얼마나 인간이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이런 모든 메뚜기와 같은 인간들을 다 보고 계시는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 하나님 아닙니까? 그분이 나를 아신다면 나의 형편과 처지를 보시고 자기의 자녀이기에 돌보시고, 신원하십니다. 
그렇게 위대하고 크신 분이 내 아버지인데 우리가 기죽어 살 수 있겠습니까?

저술가 에이든 토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새롭게 에너지를 보충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충분하십니다. ... 그분은 필요한 모든 힘은 자신의 무한한 존재 속에 내재하고 있으며, 줄지 아니하는 충만함 속에 거하십니다.”

에너지가 충만하시고 넘치는 분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힘 있고 능력 있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청년들입니다. 청년들은 열이 펄펄 넘칩니다. 무엇을 먹어도 다 소화할 수 있는 왕성한 소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힘은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며칠씩 밤을 새워도 지칠 줄 모릅니다. 
그렇다고 청년이 넘어지지 않습니까? 장정이 아무리 강하고 힘이 넘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피곤이 찾아옵니다. 게다가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 곧장 지치고 맙니다. 
피조물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건강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힘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능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지식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라고 합니다(40:28b-29).

실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을 살펴보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염색체가 정보량을 얼마나 가지느냐 하면 염색체 하나에 200억 바이트나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A4 용지 200만장을 찍어내는 정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500p 책으로 찍으면 4천권은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분석하면 사람들은 지혜와 명철은 한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주에도 갑니다. 그리고 머리카락 하나에 구멍을 뚫어낼 수 있는 천공 기술, 반도체에 정보를 싣는 기술, 그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나노기술을 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런 지혜가 있고, 기술이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지혜와 명철입니까?

그런 우리가 메뚜기 같다느니, 닭대가리니, 벌레 같다느니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쁩니까? 
사람들의 능력은 날로 더해갑니다. 체육은 날로 기록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세계 신기록이 계속해서 갱신이 된다는 것은 점점 더 나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면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이해하고 정복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 주시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힘과 권세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죽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3. 새 힘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31절을 봅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은 깊이 묵상하면 이런 말씀입니다.
오랫 동안 예수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은 새 힘을 얻기 때문에 강풍이 불어고 세파가 몰아쳐도 강풍을 타고 독수리처럼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 힘을 주시는 주님과 함께 달려가더라도 피곤한 줄 모르고, 아무리 먼 길을 걸어가더라도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길을 가면 곧장 실증을 느끼고 넘어집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새 힘을 불어 넣어주고 용기를 주면서 함께 하면 쉽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나 어머니가 함께 간다면 가면 갈 수 록 힘 있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목표가 어디든지 간에 부모와 함께하는 것이 즐거움이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일에 적용을 하자면 영적인 생활이 날로 나아지는 것입니다.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예수를 처음 믿고 감격해 합니다. 죄사 함의 은혜와 첫사랑을 깨달았을 때는 가슴이 벅찬 감격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 믿지 않고 지옥에 갈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전도에 불이 붙습니다. 이 때 “예수 나의 첫사랑 되시네!”고 마구 뛰는 시기일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진리의 말씀을 배우면서 신앙을 키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사리를 분별합니다. 아마도 이때는 신앙이 달려가는 신앙일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 가운데 먼저 된 자 가운데 나중 된 자들이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영적 성숙의 단계입니다. 이 때는 예수를 믿으면서 어려움도 겪습니다. 연단도 받습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명예로운 상처들도 얻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 록 우리의 모습은 예수님을 닮아 영적으로 성숙합니다. 이 때를 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걸어가는 모습니다. 속도가 조금은 느린 것 같고, 박력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피곤치 않고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찬송가 391장 “오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안전한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이 찬송을 부르면서 계속해서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지치고 쓰러지고 넘어질 것을 다 체험하시고 이제는 우리가 지치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도록 새 힘을 주시고 능력을 더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주님 주시는 새 힘과 능력으로 승리의 행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에 지쳤습니까? 무엇 때문에 피곤합니까? 삶의 현장에서 지쳤습니까? 사람들이 실망을 끼칩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까? 공부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까? 앞으로 전진 해 나가기라 너무 힘들어 넘어질 지경입니까? 
우리가 오래 토록 앙망하는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십니다. 그리고 나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무능한 자, 하찮은 존재로 무시해도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될 수 없는 지혜와 권능과 힘이 있으신 분이요 나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금도 그분은 나에게 새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사40:29, 31상)말씀으로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과 힘차게 일어서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