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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성령이 오셨네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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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오셨네 (행 2:1~4)

미국은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나라입니다.  그래서 역사와 전통을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또한 큰 변화나 갑작스런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집과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는 대대로 내려오는 지역을 떠나지 않는 가정도 많습니다.  그런 미국도 큰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그야말로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은 백인들, 더 정확히 말하면 영국에서 건너온 소수의 앵글로색슨족의 혈통만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명문대학의 상징인 하버드와 예일대학 출신들만이 꿈을 꾸는 자리였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미국이 금년에는 여성과 흑인대통령 후보라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전통적인 서구 사회는 우리보다 훨씬 더 여성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미국에서 이젠 여성이 대통령후보로 나왔다는 것이 파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놀라운 변화는 흑인 대통령후보입니다.  이제 거의 오바마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여성보다 흑인들에 대한 편견은 지금도 대단합니다.  어떤 마을에는 아예 흑인들이 살지 못하고, 마을로 기웃거리지도 못하는 곳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흑인출신의 대통령후보가 나왔습니다. 이제 다음 대통령은 순차적으로 가면 민주당의 차례인데, 만약 오바마가 후보가되면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미국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신앙은 날마다 변화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현상유지가 없는 법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앙이 전진하지 않으면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뒤떨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의 전진과 변화를 위해서는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매일 새로운 은혜와 변화를 통해 신바람 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달력에 의하면 지금 우리는 성령강림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역사에서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오심을 기념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예수님의 부활이후 40일 동안 이 땅에 더 계신 것과 승천하신 이후 강림하신 것을 계산하여 해마다 부활절이후 7주가 되는 때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금년에는 부활절이 일찍 찾아와 지난 5월에 이미 성령강림주일은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교회력은 대강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로 순환되기에 지금 우리는 성령강림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절기는 교회력에서 그리 중요하게 강조된 절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은 변화요,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신앙생활의 전부요, 핵심입니다.  성령의 은혜는 믿는 자가 반드시 체험해야 할 중요한 과정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개인과 공동체에 불어와야 내가 살고, 우리가 살고, 공동체가 바로 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성령이 오신 걸까요?  성령은 어떻게 우리 가운데 임하는 걸까요?  사도행전에 처음 오신 성령은 그냥 임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시는 때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과연 성령은 언제, 어떻게 임하는 것일까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몇 가지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모하는 곳입니다.

본문은 성령이 이 땅에 최초로 강림한 사건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이후 주님은 여러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활의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 말씀을 알려줍니다.  그들이 한곳에 모여 있을 때 하늘로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이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다고 강조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처음 이 땅에 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과 함께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성령은 바람처럼 최초로 강림하여 세상 끝날 까지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며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령의 강림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실 때 많은 부분에서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리고 사도행전에 들어와서도 1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여기 주님의 말씀가운데, 떠나지 말라, 기다리라, 받으리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모두 사모하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은 사모하는 자에게 임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시편에서는 사모하는 것을 사슴에 비교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성령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임합니다. 

영국에 불어왔던 성령의 오심이 그것을 잘 증명해 줍니다.  영국은 오랜 기독교의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영적황금기와 침체기를 경험한 나라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인상적인 성령의 오심을 경험한 때가 있었습니다. 1904년 영국 웨일즈의 한 조그만 지방에서 일어난 성령의 바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에 임했던 성령의 바람은 영적 지도자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대도시의 큰 교회에서 시작된 운동도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반 로버츠(1878∼1951)라는 한 청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광부의 아들로 출생한 평범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성령의 은혜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살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사모하던 어느 날 그가 다니던 교회에서 자기 삶을 간증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성령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당시 그의 간증을 들은 성도들은 모두 불같은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오순절과 같은 성령이 그곳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자 모두 뜨겁게 기도하며, 통곡하며, 회개하게 되었고, 서로 부둥켜 않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렇게 성령의 은혜를 받았고 성령의 불길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모하는 자에게 오십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성령을 기다리고, 성령을 강력히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하면 관심이 생기고, 사모하면 추구하고, 사모하면 방법과 길이 뚜렷이 보입니다. 이제 이 시대에도 내 삶에 성령이 임하도록 성령을 사모하며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기도하는 곳입니다.

사도행전에 임한 성령의 오심은 성도들이 성령을 강력히 사모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한 기도의 결과였습니다. 1장 14절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여기에서 ‘전혀’라는 말은 ‘오직’이란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직, 오로지라는 말은 우선순위와 중심을 여기에 두었다는 말이고, 다른 것보다 더 치중했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의 초반부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성령이요, 또한 기도입니다.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전혀 기도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의 성령은 모두 기도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기도가 바로 성령이 오시게 하는 통로라는 것입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에 전념하고, 경건에 힘쓰고, 성령을 기다리며 부르짖을 때 성령은 오셨습니다. 바로 그렇게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오직 기도했고, 기도가 우선순위요, 중심이었습니다.  기도보다 앞선 것은 없었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기도에 힘쓰되, 오직 기도, 철저한 기도를 했을 때 성령은 그들에게 바람처럼 강림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주님은 우리 신앙과 삶에 기도를 우선순위로, 강력한 해법으로, 하늘 문이 열리는 통로로, 성령이 임하는 기회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신앙의 본질이요, 우선순위입니다.  기도 빼놓고 다른 것에 치중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늘 문이 열리는 통로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한 하늘문은 모두가 기도할 때 일어났습니다. 기도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문제의 해답입니다.  우리가 문제와 난관으로, 장벽과 막힘으로 답답할 때 기도를 통해 시원한 답을 얻고, 고민과 어려움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기도는 결국 성령이 오시는 통로입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성령이 오시는 길은 기도에 힘쓸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한국 땅에 임한 성령의 바람이 바로 이것을 증명합니다. 한국은 영국이나 유럽에 비해 기독교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성령의 바람을 두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첫 번째가 1907년에 임한 성령의 은혜요, 1970년대 불어온 성령의 바람입니다. 특히 1970년대에 임한 성령의 바람은 우리 모두를 흥분과 감격의 시대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당시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구원받는 자가 더하여지고, 교회가 놀랍게 부흥하고, 대규모의 집회가 열리고, 그때만큼 성령의 열기로 뜨거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바람의 출발은 바로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전혀 기도, 오직 기도,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새벽마다 성도들이 교회로 모였습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골방에서, 산에서, 밤을 지새우며 눈물과 통곡으로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바람이 불어 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자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바로 주님을 신실히 믿는 자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과 축복은 기도하는 자에게, 기도하는 곳에 임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령이 임하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성령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신앙의 선진들처럼, 예수님처럼,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여 성령의 바람이 개인과 공동체에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곳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도록 성령을 사모하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당시 성령은 ‘오순절’에 오셨음을 매우 강조합니다. 여기 오순절은 이스라엘이 해마다 지키는 절기입니다. 다른 말로 칠칠절, 맥추절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오순절을 지킬 때마다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부터 많은 오순절을 지켜왔지만 그 어느 오순절에도 성령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바로 그 오순절에 오셨습니다. 오순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특별한 때에 임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강림은 하나님의 특별한 때에 임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수고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도나 계획으로 완성시킨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뜻대로 때가 되자 보내신 것입니다. 성령은 그렇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정한 시간, 하나님이 원하는 바로 그 때에 오셨습니다.  이것을 아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시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의‘시간’은 그냥 하나의 시간으로 표현하여 말하지만 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의 시간은 2개의 다른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라는 시간입니다.  크로노스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역사와 연대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크로노스에서 ‘연대기’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간이 있습니다.  바로 카이로스라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특별한 때를 가리킵니다.  주님이 종종 ‘내 때가 이르지 아니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서 말하는 ‘때’가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특별한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카이로스의 시간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사셨습니다.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카이로스의 시간도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믿습니다. 

사람이 세우는 시간이 있지만 하나님이 세우는 시간이 있습니다.  사람이 허무는 시간도 있지만 하나님의 허무는 시간도 있습니다.  내 뜻, 내 계획, 내 시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그분의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시간을 알아야 하고, 그 하나님의 시간을 믿고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시간, 내수고와는 다른 것입니다.  나와는 또 다른 계획 속에 하나님은 당신이 정한 특별한 카이로스의 시간에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최근 남미에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지금 남미에는 성령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마치 초대교회의 오순절처럼, 마치 1904년 영국처럼, 마치 한국의 1970년대처럼,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예상한 일이 아닙니다. 누가 계획해서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카이로스 때에 정확하게 바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바람이 지속될지, 옮겨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성령의 오심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정한 카이로스, 해마다의 오순절이 아니라 바로 그 오순절에 임한 것입니다.  그 날은 인간이 정한 날이 아닙니다.  그날에 임할 것이라고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날은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카이로스였습니다.  그 시간은 당시 제자들의 수고와는 다른 것입니다.  성도들의 전혀 기도와도 또 다른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는 수고와 사모함과 기도가 통로였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가십니다.  주기도 하시고 빼앗기도 하시고, 세우기도 하시고, 허물기도 하시고, 일으키기도 하시고 지나가게도 하시는 바로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간절히 사모하면서, 이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되면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십니다.  분명 그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릅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일수도 있습니다.  더디올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요엘 선지자도 이렇게 예언하며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우리는 성령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압니다.  성령의 바람이 아니면 나도, 가정도, 교회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힘으로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령을 말세에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이 우리에게도 임해야 합니다. 2008년 성령강림절기를 보내고, 특히 성전건축의 역사를 이루어가며, 내 삶에 변화와 능력을 경험하기 원하는 우리에게 강력히 임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또 오십니다.  사모하고, 기도하고, 바라보는 자에게 오십니다.  이 믿음으로 성령의 바람을 체험하며 한주간도 승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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