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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나라가 회복되는 길 (렘 18:7~10, 행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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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회복되는 길 (렘 18:7~10, 행 1:6~8)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함을 보시고 멸망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일을 먼저 아브라함에게 물어보십니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왜 아브라함에게 못 숨깁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신데 마음대로 하시면 되는데 왜 아브라함에게 먼저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대화의 상대, 의논의 상대를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라의 멸망을 위해 기도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멸망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하기를 기대하시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기도가 끝나자 그 도시가 망했습니다. 우리의 국가를 위한 기도가 끝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참고 다시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 호국 영령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고귀한 죽음으로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고 좋은 나라가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목숨을 바치지는 않았지만 목숨을 바칠 각오로 나라를 위하여 일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라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애국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누가 국가를 위해서 이렇게 애쓰고, 기도하고, 열심히 수고 있습니까? 초대 국회는 기도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국회가 국가를 위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교회가 국가를 위한 기도를 하지 않으면 국가는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국가를 빼앗겼을 때의 설움을 많은 분들이 잊고 살아갑니다. 또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많은 국민들이 그 때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얼마나 서러웠습니까?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지구상에는 국토가 없는 민족이 많습니다. 이런 국민들은 주권도 물론 없습니다. 쿠르드나 아르메니안은 국민은 있지만 국토도 주권도 없습니다. 요즘 한참 주목을 받고 있는 티베트는 국민도 땅도 있지만 주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국토도, 주권도, 국민도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하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관계에서 외교적으로 격상되었다고 합니다. “전략적 동반자”란 한 단계 관계가 상승된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도 이제는 자기 나라 옆에 붙은 작은 나라가 아니라 격상된 동반자의 관계를 먼저 원했다고 합니다. 한국이 여전히 국가로 존재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합니다. 중국이 서쪽에서, 일본이 동쪽에서 협공하고 있고 양국의 역사왜곡에도 불구하고 국권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또 독도가 자기의 것이라고 일본이 말하지만 우리의 것은 우리의 것입니다. 수 세기 동안 본의 아니게 우리나라는 전쟁 게임의 주역이었습니다. 주변국들이 아무리 한국을 삼키려 해도 손상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쇠고기 파동이나 한미 FTA 문제도 국익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미국 산 쇠고기를 수입하면 부분적으로 손해 보는 개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덕을 보는 쪽이 손해 보는 쪽을 보상해야 합니다. 우선 쇠고기는 구매자가 선택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광우병 걸려도 좋으니 먹어도 좋다는 사람은 사먹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보세요. 그렇게 해롭다고 하고, 죽는다고 해도 자기가 선택하여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다. 그런데 담배는 왜 국가가 만들고 외국 담배를 수입합니까? 해로운 담배도 선택적인데 쇠고기 선택 못하게 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담배 피우면 발병 확률이 쇠고기 먹는 발병 확률보다 더 높습니다. 그러니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미국 산 쇠고기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의 선택권마저 빼앗지는 말아야 합니다. 한미 FTA도 그렇습니다. 지난 정권이 미국과 합의한 것을 왜 지난 정권 여당 사람들이 반대하고 그 때 반대하던 사람들이 찬성합니까? 정치는 참 이상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아마 한미 FTA를 국회에서 비준하지 않고 넘어간 것은 17대 국회의 가장 큰 오명이 될지도 모릅니다.

  구약의 국가관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신 신정정치시대이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땅이 하나님의 땅입니다. 이스라엘인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변방 국가들이 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사무엘에게 자기들도 왕을 세우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은 섭섭해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왕에게 지배당하고 왕에게 많은 것을 바쳐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백성들은 “우리의 후손들이 그 일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다스리시며 더 좋은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으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로마에 정복을 당해 오랫동안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1948년에 다시 독립하여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그들이 국가를 세운 곳이 바로 지금의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에는 그 땅은 자신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시고 주신 땅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땅입니다.

  그리스도의 국가에 대한 태도를 보세요. 첫째는 국가와 종교의 분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구분하셨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주지만 동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은 국가의 멸망을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면서 우셨습니다. 나라를 사랑하시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본회퍼는 국가는 하나님의 위임과 연결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위임하신 신적 위임이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대한 봉사를 위임받은 대리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대한 봉사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국가는 중요한 하나님의 선교의 장이며 섬김의 장입니다.

  여러분, 그룬트비 목사님을 아십니까? 그분은 1783에 태어나서 1872에 세상을 떠난 덴마크의 국부와 같은 인물입니다. 덴마크의 시인이며, 교회의 감독이며, 신학운동인 그룬트비주의의 선구자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동포 사랑을 외치며 덴마크를 세계적인 나라로 다시 세운 분입니다. 그분은 나라를 다시 세울 때에 “교회는 이 일에 앞장서라”고 외쳤습니다. 교회는 지금도 국가의 회복에 앞장 서야 합니다.

  회복이란 말은 헬라어로 ‘아포카티스타노’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종말론적 용어입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바른 질서로 돌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회복은 완전한 영구적인 회복입니다. 교회가 국가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회복에 앞장서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나라가 회복될 수 있을까요? 오늘 성경을 통하여 국가가 회복되는 길을 찾고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합니다. 국가회복에 대한 예수님의 첫째 대답은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는 것입니다. 권능이란 말은 헬라어의 ‘뒤나미스’인데 이 말은 ‘다이너마이트’란 말의 어원입니다. 힘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를 회복하려면 영적 기운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권능이란 하나님의 손에 잡혀야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찬송에 보면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풍랑 일어도 잔잔한 포구,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 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 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면 보혜사를 주겠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으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초대교회의 성도들에 대하여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라고 표현합니다. 힘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돈이 있길 했습니까? 그들이 대단한 육체적 힘이 있었습니까? 영적 힘을 가지니 사람들이 두려워했고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일어나라”고 하니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공회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지만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며 담대히 전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담대함이 나왔습니까?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가지고 와서 병자에게 얹으면 병이 나았습니다. 손수건이 뭐길래 병이 났습니까? 사도가 손을 얹은즉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손이 뭐길래 성령을 받습니까? 사도행전의 제일 끝에는 바울이 이태를 셋집에 머물며 복음을 전했지만 금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대단했습니다.

  성령이 임하고 권능을 받은 사도들을 보세요. 복음을 전하고 순교자가 되고 복음을 전하지만 굴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안드레는 스코틀랜드에서 전도하다가 X자 십자가에 박혀 순교했습니다. 
야고보는 스페인까지 가서 전도하다 다시 돌아와 참수 당하여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에베소까지 가서 교회의 감독이 되고 최후까지 순교하지 않고 자연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순교 이상의 고난을 당했습니다. 
빌립은 러시아 남부의 스키티아에서 전도하다 다시 히에라 폴리스에 돌아와 전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서 전도하다 순교했습니다. 
도마는 인도까지 가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다가 창에 찔려 순교하였습니다. 
마태는 카스피해 남쪽의 이디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알패오 아들 야고보는 시리아와 예루살렘에서 전하다 순교하였습니다. 
다대오는 시리아, 아라비아,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시리아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시몬은 터키와 북 아프리카와 아르메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에서 최초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톱으로 켜서 순교하였습니다. 
가룟유다 대신 뽑힌 맛디아는 아르메니아에서 선교하다 이디오피아에서 두 눈이 뽑히고 순교하였습니다. 

무기력하고 힘이 없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니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9:2에는 바울이 에베소에 갔을 때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에베소 사람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권능이 있습니다. 힘 있는 성도가 됩니다. 성령이 있음을 모르면 힘도 없습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이 평상시에 쓰고 있는 능력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 전체의 20-30%만 활용해도 천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90%의 능력을 써보지도 못한 채 이 땅을 떠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위급상황을 만나면 평상시의 6배의 힘이 나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기가 트럭에 치려고 하면 어머니가 트럭도 번쩍 든다고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이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들 평상시의 수백 배, 수천 배의 힘을 내게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우리 자신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힘을 키워야 합니다. 세상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회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것 없이는 절대로 권능을 받지 못합니다. 성령의 임재가 없이는 권능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18:8에는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서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하나님이 언제 회복하십니까? 회개할 때입니다. 언제 회개합니까? 성령이 임재할 때입니다. 성령은 회개하게 하는 영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 우리나라를 회복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국가를 외복하는 둘째 원리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라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동문서답입니까? 아닙니다. 국가를 회복하는 길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하여져서 복음의 나라가 되어야 나라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회복의 구체적인 방법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증인이 되어야 나라가 회복됩니다. 복음으로만 나라가 바뀔 수 있습니다. 나라가 회복되어야 할 내용은 경제나 군사나 우리나라의 통일이나 국가의 경쟁력이나 사회 규범이나 도덕성, 그 외도 너무 많습니다. 기술이나 정책이나 돈, 어떤 것을 가지고도 나라의 회복은 안 됩니다. 국가가 어떤 CEO가 나라를 회복합니까? 아닙니다. CEO가 아닌 기도의 사람이 나라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은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죄 사함과, 회개를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47절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라고 합니다. 48절에는 드디어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가 예루살렘에서 모든 족속에게 땅 끝까지 전해져야 합니다. 누가 이 일에 증인이어야 합니까? 제자들, 바로 우리들입니다.

  니체는 강인하고 남성적이며 억압적인 대담한 지배자를 통한 민족의 융성을 꿈꾸었습니다. 니체는 능력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연약함 때문에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니체의 이상은 ‘위버멘쉬’ 곧 슈퍼맨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상은 어린아이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가 예수님의 이상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를 가장 강하게 만듭니다. 복음의 증인은 성령으로 세상의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드는 자입니다.

  고린도전서 1:27에는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로 강하게 하십니다. 미련한 자로 지혜롭게 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약해도, 아무리 미련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증인의 역할을 합니다.

  마귀의 일은 땅 끝까지가 자기의 것이라고 우깁니다. 마귀는 예수님께도 천하만국을 보이며 자기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마귀는 한 번도 천하만국이 자신의 것이 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런 말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마귀는 지금도 땅 끝까지 이르러 이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합니다. 이 땅을 자신의 땅으로 만들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엄청난 영적 전쟁 시대입니다. 세상의 모든 환경을 보면 영적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영성을 추구합니다. 최근에 와서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 같은 옛날 소설이 다시 영화로 만들어집니다. 환타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것을 추구합니다. 기독교의 영성이 참 영성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협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미신이 점점 활발합니다. 이슬람을 비롯한 다른 종교와의 영적 갈등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교회가 앞장서서 바른 영성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증인은 “진실을 말하고 진실대로 말하며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합니다”라고 증언대에서 말합니다. 증인 본분은 진실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정의 증인과 그리스도의 증인의 다른 점이 있습니다. 법정의 증인은 언젠가는 증인석에서 내려오지만 그리스도의 증인은 증언대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성자 아우구스티누스는 ‘두 왕국론’을 그의 책에서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입니다. 아벨과 가인의 계보는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주권이 지배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두 나라는 세상 끝까지 평행선처럼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증인의 삶이고, 이것이 나라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역대상 27:11에는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다”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4:16에는 “하나님 아버지는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만들어야 하는 것이 증인의 삶입니다.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다가 취해서 종업원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술 깨는 좋은 거 있거든 가지고 와 봐.” 종업원은 “예” 하더니 얼른 계산서를 가지고 왔답니다. 영어에서 “What's the bad news?”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나쁜 소식이 무엇입니까?”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식당이나 상점에서 “계산서 가지고 와” 혹은 “계산합시다”란 말입니다. 많이 마시고 많이 샀지만 계산할 때는 즐겁지 않다는 말입니다. ‘나쁜 소식’(bad news)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 ‘좋은 소식’(good news)이 있습니다! 복음, 그리스도, 부활, 영생, 회개, 구원, 이 모든 것이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이런 모든 좋은 소식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회복됩니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이사야 32:15을 보세요.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움 밭이 되며”라고 합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영은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게 합니다. 완전히 회복됩니다. 우리나라도 위로부터 내리는 영으로 완전히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한 구절입니다. 이 나라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아버지의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되게 해야 합니다. 잠시 마귀의 손에 있는 이 땅의 나라를 하나님의 손에 있게 합시다. 이 나라를 하나님께 드리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증인이 되어 이 나라를 복음화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여 믿는 자를 많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복음 전도에 힘쓰고 우리교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성령 충만으로 능력을 받아, 땅 끝까지 증인 되어 우리나라를 완전히 회복하는 우리가 됩시다.

  복음 전파에 더욱 힘써 나라를 복음으로 변화시키고 믿음으로 회복하는 귀한 우리나라,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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