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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자라면 이것만은 확실히 (마 25: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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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라면 이것만은 확실히 (마 25:31~46)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선임목사로 수고를 참 많이 하였다(?). 은사에도 없는 일을 하려니 많이 힘이 들었다. 그러나 저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아무래도 담임 목사님이시다. 그래도 끝까지 사랑해 주시고 열심히 밀어주셨던 담임 목사님과 장로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개척교회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생각나는 것을 memo 하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장소는 이미 결정되었고 지금은 준비기도를 하고 있다. 지나가다가 자체 건물을 가지고 있는 작은 교회를 보면, 비록 교회는 작아도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우리는 처음에 Latino 교회를 빌려서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관심사가 온통 개척교회이듯이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 이것은 마땅히 생명에 관한 것일 것이다. 그것은 첫째, 내가 영생을 소유하고 있는가? 내가 과연 거듭났는가? 이것만은 확실하게 해결해야 할 isuue이다. 둘째, 성숙과 성장이다. 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가? 이것도 역시 생명에 관한 issue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셋째, 재생산에 관한 것이다. 나는 지금 새로운 생명을 낳고 양육하고 있는가? 오늘 이 생명의 issue 세 가지를 놓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1) 거듭나고 영생을 소유하고 있는가?

31-33절을 보자.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심판의 자리에서 두 부류로 나눌 것인데 바로 염소와 양으로 나눈다고 하였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게 될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아 영생으로 들어갈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영원한 형벌로 들어갈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과연 구원을 받았는가에 대한 것은 개인적인 issue이다. 

우리 교회에 20년 전부터 출석하시는 성도들도 있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성도들도 있다. 이 교회에 왜 오셨는가? Social club이 필요해서 오셨는가? 잘 오셨다. 세상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어서 오셨는가? 역시 잘 오셨다. 좋은 교제와 영적인 갈급함 때문에 우리 교회에 오셨는가? 잘 오셨다. 우리 교회에는 vision이 넘치는 예배, 다락방, 훈련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확실히 해야 할 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구원 받았는가에 대한 확신이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문제는 사람들이 어두움을 사랑한 것이지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빛으로 나아오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처음부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사도 요한이 요한1서, 2서, 3서를 기록하면서 우리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천국을 소망하며 교제를 하라고 권면한 것은 바로 우리에게 영생과 구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향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요한1서 5:11-13을 보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개인적인 구원이며 개인적인 거듭남의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구원은 교리의 issue가 아니다. 구원은 신앙 년수에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구원은 교회의 성도수와 관련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교회는 성인 성도들만 약 4,700명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도 약 1,300명 내지 1,400명의 성도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며 봉사를 하고 있다고해서 나의 구원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구원은 개인적인 것이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렇게 설교하는 나도 가끔 흔들릴 때가 있다. 사도 바울도 생명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고 난 후에 도리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을 지를 걱정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는 어느 쪽에 서 있을 것인가? 구원의 문제를 확실히 알고 해결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2) 성장과 성숙을 이루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그렇다면 그 생명이 지금 잘 자라고 있는가? 영생이란 소유하는 issue 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성숙하고 성장해야 하는 issue가 중요하다. 35-36절을 보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남을 돕는 일은 성숙하고 성장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든지 흉내는 낼 수 있다. 

그러나 주차사역, 주방사역, Homeless 사역, 교도소 사역, 양로병원 사역, 그리고 장애우 사역을 보라. 이 사역을 하시는 분들의 수고를 보라. 15년 동안 주차 사역을 하시는 분도 있고, 10년 이상을 주방에서 사역하시는 분도 있다. 꾸준히 섬기는 모습은 진정으로 성숙하고 성장한 성도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과연 성숙하고 성장한 성도인가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주위 사람들과 자주 충돌하는가? 이것은 개인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모습에서 우리 스스로는 자신의 성숙과 성장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성도는 먹을 것을 먹어야 하지 엉뚱한 것을 먹으면 안된다. 사도 베드로도 우리가 갓난 아이처럼 신령한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과 염소로 나눌 때에 우리는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과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은사주의 같은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물론 은사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은사주의 위주로만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기초한 은사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단단히 자라갈 수 있다. 이것은 교회적으로도 적용할 수 있다. 말씀을 기초로 한 장애우 사역, Homeless 사역, 양로병원 사역, 교도소 사역 등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를 성장하게 할 것이고 이 시대에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와 정세, 그리고 세계의 흐름를 보면 참으로 하나님의 교회들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웃을 돌아보면서 벗은 자를 입히고, 병든 자를 치료하며, 굶은 자들을 먹일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이고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South Bay 사랑의교회를 준비하면서 이 사역을 중점적으로 구상하고 있다. 세상의 끝날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이 사역에 전력할 것이다. 교도소 사역, Homeless 사역, 양로병원 사역, 그리고 장애우 사역은 마땅히 교회의 할 일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성숙과 성장의 issue를 깨닫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3) 재생산을 지속하고 있는가?

우리가 성숙하고 성장하였다면 다음 단계는 당연히 재생산이다. 이것도 역시 개인적인 issue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6 가지의 항목을 말씀하고 있다. 주릴 때에 너희가 먹게 하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영적으로, 주릴 때에 말씀으로 먹이고, 영혼의 목마름이 있을 때에 생수의 말씀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여주고, 영적으로 벗었을 때에 의의 옷을 입혀주고, 죄로 더불어 병들었을 때에 그 영혼을 중보기도로 치유하고, 마귀에게 잡힌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는 이웃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다. 우리가 훈련을 받았다면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재생산을 계속해야 한다. 육신적으로 이웃을 돌보고 도와야 하며, 동시에 그들을 영적으로도 도와야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영혼의 양식과 생수를 주고,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고, 의의 옷을 입혀주고,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로 중보하여, 영혼으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3:17-18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돌아보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들은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였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이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책망하셨다. 그리고 흰 옷을 사서 입어 수치를 가리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고 하셨다. 

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참으로 많지만 이 세 가지는 정말로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적으로 이 세 가지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이 세 가지에 관심을 갖고, 이 세 가지에 생명을 걸고 신앙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성도들과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아멘. (황성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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