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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곁에 계신 하나님 (요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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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계신 하나님 (요 1:10)

식인종들에게 선교하셨던 분들 중에 아셀트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선교 활동을 하는 중에 식인종들이 여러 번 아셀트 선교사를 끌고 가서 잡아먹으려고 그의 집을 침입했습니다. 찾아갈 때마다 대문 앞에서 창칼을 들고 지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서워서 떨다가 그냥 가고 또 그 다음 번에도 왔다가 그냥 돌아가곤 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식인종들이 선교사를 죽이려는 마음을 버리고 아셀트 선교사를 찾아가서 그를 지키는 이상한 사람에 대하여 물어 보려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창칼을 든 사람이 없었습니다.“우리가 너를 잡기 위해 올 때마다 누군가가 칼과 창을 들고 너를 지키고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냐.” “우리 집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다.”그러자 식인종들은 “거짓말 마라. 한두 번이 아니고 우리가 너를 끌어다 잡아먹으려고 여러 차례 왔는데 그때마다 창칼을 들고 지키는 자가 있어서 무서워서 너한테 갈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아셀트 선교사에게는 퍼뜩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습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 쓸모없는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지켜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지키는 자가 없다고 불평했던 불신앙의 죄를 용서하옵소서.”아셀트 선교사는 순간적으로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장 약할 때는 자기 홀로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그러나 가장 강한 때는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을 때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10절에“그가 세상에 계셨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우리 말의 동사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그래서“교회에 갔다.”하면 과거이고,“교회에 간다.”하면 현재이고,“교회에 갈 것이다.”하면 미래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언어인 헬라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헬라어 동사는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딱 한 번의 일로 끝나는 동사가 있고, 또 하나는 계속적인, 연속적인 동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속적이냐 아니면 일회적이냐 하는 두 가지로만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문에“계셨으며”라는 말씀은 계속적으로 되어 지는 것을 나타냅니다.“그가 세상에 계셨으며”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그때 오셨다가 33년 후에 가버리신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계시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과거에도 계셨고, 현재에도 계시며, 미래에도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공기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곁에 계셔서 나를 감찰하시고 나를 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시편 139:1-12)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29-31에는“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항상 내 곁에 계셔서, 내 생각, 내 언어, 내 행동을 하나하나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사정, 내 처지를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 매사를 조심하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또한 어떠한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소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곁에 계셔서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베푸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시편 34:7~10말씀에“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공경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의 죄 값을 담당케 하시고자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또한 장차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자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임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드려 봉사하기를 즐겨합니다. 주를 위해 땀을 흘리면서 기뻐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라면 헌신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씨앗을 심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여 지키시며 은혜와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인도의 간디는 인도 사람들에게는 가히 신적인 존재나 다름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의 일대기를 쓴 책이 400권이 넘고, 그의 어록만도 80권이 넘습니다. 1948년 1월, 간디가 어떤 미치광이에 의해 피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도 전역에서 그를 따라 자살한 사람의 수가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학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많이 잡으면 100만~200만 명이나 되고, 적게 잡으면 20만~60만 명이라고 합니다. 간디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진정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간디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생명을 바친 사람이 수십만 명이라면, 창조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님까지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또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은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도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그 누구도 해치지 못하도록 주의 사자들로 하여금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신명기 4:7에“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지키시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 가운데 한 예로, 구약성경 가운데 사무엘서가 있습니다. 사무엘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명칭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처럼 훌륭한 인물이 된 배후에는 기도의 어머니 한나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본래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술 취한 사람으로 오해를 할 정도였습니다. 

한나가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한나가 마음이 괴로 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 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사무엘상 1:10~18)

이렇게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 사무엘 선지자입니다. 이처럼 기도 가운데 태어난 사무엘 역시 기도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블레셋 나라의 침략이 계속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온 국민들과 더불어 미스바라는 곳에 모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때의 응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사무엘 상 7:9~10) 이것이 곧 기도의 힙입니다. 

기도에 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24)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4:2에는“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또 한 말씀하시기를“쉬지 말고 기도하라.”하셨습니다. 

노예를 해방시킨 미국의 위대한 정치가 아브라함 링컨은 남북전쟁 당시 몸부림을 치며 예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나는 어려울 때마다 무릎 꿇고 기도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가 알지 못했던 지혜가 떠오른다.”라고 했습니다. 학교 교육은 9개월 밖에 받지 못한 아브라함 링컨이었지만 그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남북전쟁에서 기적적인 승리와 함께 노예를 해방시켰습니다. 

“두 나무꾼이 하루 종일 장작을 팼습니다. 한 사람은 쉬지도 않고 하루 종일 장작을 팹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1시간 일하고 10분 쉬고, 다시 1시간 일하고 10분 쉬고, 이렇게 쉬엄쉬엄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두 사람이 패놓은 장작을 보니 쉬면서 일한 나무꾼의 장작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약이 오른 나무꾼이 묻습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나는 한 시도 쉬지 않았고, 자네는 쉬엄쉬엄 일했는데, 어떻게 자네 장작이 더 많을 수 있는가?”그러자 다른 나무꾼이 대답했습니다.“나는 쉬면서 도끼날을 갈았다네.”그렇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로 지혜의 칼날을 갈아야 합니다. 성공하기 어려울 때 기도해야 합니다. 성공이 눈앞에 보일 때 기도해야 합니다. 성공했다고 생각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바로 지금이 기도할 때입니다.” 

시편 127:1~2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직접 개입하셔서 역사를 나타내시도록 하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3.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시편 34:18 에“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에 대하여 약속하시기를“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이사야 1:18)하셨습니다. 

자기가 지은 많은 죄로 인해 늘 괴로워하는 사람이, 나이 많은 한 수도사를 찾아가 하나님이 자신의 회개를 받아주실지 물었습니다. 수도사는 그에게 “당신은 옷이 찢어졌을 때 그것을 버립니까?”“아닙니다. 그것을 다시 수선해서 입습니다.”“당신은 돈이 찢어지면 그냥 버립니까?”“아닙니다. 다시 붙여서 사용합니다.”그러자 늙은 수도사는 그에게 말하기를“당신이 옷에도 그렇게 신경을 쓰며, 돈도 그 가치 때문에 찢어진 것도 버리지 않고 다시 붙여 사용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어찌 깊은 애착을 갖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람이 어찌 찢어진 옷만 못하며, 찍어진 화폐만 못하겠습니까?”라고 대답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고쳐서 쓰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에는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목수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기도 하지만, 고장 난 것도 잘 고칩니다. 목수이신 예수님의 공생애는 고장 난 영혼을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고장 난 심령들을 고치셔서 하나님의 고귀한 일에 쓰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사람은 회개함으로 깨끗해진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2:20-21에“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하셨습니다. 


4.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28:19~2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말씀입니다.“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이 말씀, 얼마나 마음 든든한 약속입니까? 사망권세를 이기신 전능하신 주님께서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까? 그러나 아무에게나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데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전적인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밖에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와 축복은 그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 예로, 신명기 28:1~6에는“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입니까?“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신명기 28:1~2)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 한하여 넘치는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를 예로 말씀을 드리면, 사람은 누구나 넉넉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을 향해 풍성한 삶을 약속하시기를“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라기 3:11~12)하셨습니다. 쌓을 곳이 없도록 물질의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입니까? 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입니까?“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말라기 3:10) 라고 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는데, 이 약속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까요?“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신 것입니다.“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약속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향해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혹 우리들은 나무 없는 열매를 기대한 적은 없습니까? 그것은 헛된 욕망입니다. 어찌 나무를 심지 않고 열매를 거두겠습니까? 열매를 거두려면 심고 가꾸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후에 나타나는 결과가 탐스러운 축복의 열매입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증거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기를“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린도전서 9:16)고 했습니다. 바울이라 하여 전도하면서 어떠한 핍박이나 멸시를 받아도 항상 기쁨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두려워 억지로 라도 복음을 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그의 저서에서 고백하기를“나는 내 교회의 전도 프로그램에 14년 동안 참가하여 10가정씩 140가정을 방문하여 전도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1966년 내가 주지사에 입후보하고 선거 운동 3개월 동안에 악수를 나눈 사람은 약 30만 명에 달한다. 나는 나를 위해서는 3개월 사이에 30만 명을 만나보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14년 동안에 겨우 140가정에게 복음을 전달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D.L 무디는 복음 전도에 무관심한 사란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그토록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벙어리라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벙어리로 태어나는 것을 커다란 재난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그 사실에 큰 슬픔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 벙어리가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교회에는 그러한 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치, 예술, 과학, 유행 등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곧잘 이야기 하지만 하나님 아들에 대해선 벙어리이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냥 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 속에 개입하셔서 역사하십니다. 은혜를 베푸십니다.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나가 아닙니다. 특별한 사랑과 은혜와 복을 주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령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자가 지키십니다. 

둘째, 하나님을 향해 뉘우치며 회개하는 심령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귀하게 쓰십니다.

셋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심령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신비한 응답을 주셔서 삶의 승리를 거두게 하십니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써 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집중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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