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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영혼의 치료자 (마 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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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혼의 치료자 (마 9:9~13)

   1956년 1월, 부산과 여수 사이를 운행하는 정기 여객선 태신 호가 여수로 가던 중 객실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많은 승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3등 객실에서 불이 나자 선장이 문을 밀폐하라고 명령하는 바람에 한 명도 구하지 못하고 3등 객실에 있던 65명 모두가 희생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안에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뵈려고 가던 사람, 친척 집에 가던 사람, 결혼 후 회사 사정으로 잠시 헤어졌던 아내를 만나러 가던 사람 등 65명의 승객들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희생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타고 있는 배의 선장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탄 배의 선장되시는 주님은 결코 불이 난 객실의 문을 밀폐하라고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위험에 빠진 우리를 능력으로 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나는 구원 방주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 험한 시험 물결 달려들어도 전혀 겁내지 않죠 / 배삯 필요 없어요, 주님 선장되시니 나는 염려 없어요 / 나는 구원 방주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런 말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가 아마 정보화 시대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는 가능한 많은 정보를 확보해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떤 정보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정보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얻은 정보들은 대체로 경제, 정치, 교육, 군사, 문화 등에 관한 정보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보들은 정작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말해 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비록 어렵게 얻은 정보들이지만 그 정보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별로 배우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이런 정보들은 우리의 존재 자체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는 특별한 정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서 기자들이 들려 주고 있는 정보입니다. 성경이 바로 우리의 존재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정보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그 정보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 인간은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사람은 모두 다 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인이란 불이 난 배에 갇혀 있는 사람들과 같이 비참한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놔 두면 연기에 질식해 죽거나 불에 타 죽을 수밖에 없는 참으로 불쌍한 존재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정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 주는 이 특별한 정보는 그 어떤 다른 정보들보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우리가 믿는 주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오셔서 죄인들을 부르셨습니다. 죽게 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불쌍한 죄인들을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세리 마태입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로마서 8장 29절, 3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주님은 왜 그를 부르셨습니까? 주님은 그의 영혼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죄인인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또 그를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서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지극히 순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나중에 흔들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 영혼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철저히 준비하셨습니다. 주님이 어떻게 준비하셨습니까? 주님은 그를 위해서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태가 주님을 위해서 잔치를 베푼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이 죄인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그 자리에 아니 계셨을 것 같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잔치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셨습니다. 주님은 그 잔치를 통해서 마태로 하여금 그의 선택이 얼마나 잘한 것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 부어져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은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째서 사람들이 그렇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죄뿐이라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14장 41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자신의 체포가 임박한 것을 예고하시며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여기서 죄인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주님의 체포를 지시한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 그리고 장로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서 죄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8장 38절 말씀에서도 주님은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음란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다만 육체의 정욕에 사로잡힌 세대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을 바로 음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죄 많은 세대라고 말씀하신 것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오신 주님을 거절하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켜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죄가 죄 가운데 가장 악한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 그렇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옛날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그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마태는 분명히 죄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사죄의 은총을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그는 죄 많은 그의 동료들도 주님 앞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고침을 받은 것처럼 자신의 친구들도 그 영혼이 고침을 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영혼의 치료자이신 주님 앞에서 우리 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뿐입니다. 그가 사죄의 은총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죄인들이란 주님의 부르심에 쉽게 따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두개인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쉽게 따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순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순종하지 않았고 그 반면에 쉽게 순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의 상황도 쉽게 순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고향을 떠나고, 친척을 떠나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그 말씀은 아브람도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순종했기 때문에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그 자신뿐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악명 높은 죄인 세리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따르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즉시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그는 영혼과 육체의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정황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무거운 짐들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자신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욕망이 우리를 항상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시는 우리 영혼의 치료자 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끝까지 따름으로 말미암아 장차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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