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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풍에서 항구로 (시 107: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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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에서 항구로 (시 107:23~32)
                                                                                          
제 고향 집은 바다하고 가깝습니다. 버스타고 30분만 가면 탁 트인 바다가 기다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바다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부둣가 생선 비린내가 싫지 않습니다. “끼룩 끼룩” 갈매기 우는 소리, “뚜 뚜” 뱃고동 소리는 지금도 그립습니다. 항구에는 정박 중인 배들도 보였습니다. 언젠가 망망대해를 가르며 떠나갈 배들이었습니다. 

쾌청한 날과 잔잔한 바다에서 배들이 미끄러지듯 항해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친 파도 달려들고 사나운 태풍 몰아치는 험난한 항해도 있습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하여 휴식 취하기도 하지만, 산더미만한 파도를 만나 파선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겠지만 풍랑을 겪지 않는 배는 이 세상에 한 척도 없습니다. 

“인생-항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 것입니다. 인생항로 중에도 견디기 힘든 모진 풍랑을 만나기도 합니다. 입시 실패나 취직 실패 풍랑, 승진 탈락이나 해고실직 풍랑, 흉년이나 적자 부도 풍랑, 이성교제 실패나 가정 위기 풍랑, 건강 위기나 상해사고 풍랑, 아끼는 동료나 가족과의 사별 풍랑! 이것뿐이겠습니까? 수없이 많은 풍랑이 우리 인생 배를 강타합니다. 하나가 끝났나 싶었는데 또 다른 풍랑이 찾아옵니다. 한꺼번에 몰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 풍랑은 웬만한 바람이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친 듯이 사납게 불어대는 문자 그대로 광풍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이 광풍은 모든 이에게 예외 없이 닥쳐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에게만 다가오는 것 아니고, 순진무구한 철부지 어린아이를 덮칠 때도 있습니다. 남편만 광풍 만나나요? 아내도 휘둘립니다. 모든 것 책임지고자 하는 부모에게만 일어나는 것 아니고, 무한한 꿈을 지닌 자녀에게도 속절없이 밀려듭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만 당하는 것 아닙니다. 대단해 보이고 심지어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다 광풍 있습니다. 광풍 피하기 위해 다른 직장으로 옮겨봅니다. 심지어 다른 나라로 옮겨가봅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광풍은 있는 법입니다. 쉴 새 없이 불어 닥치는 광풍을 피해 북한을 떠나온 새터민, 남한에서도 잔인한 광풍 경험하고 있습니다. 

개인만 광풍 만나는 것 아닙니다. 우리 교회도 예배처소 사용불가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두 종합대학과 상가 건물에서 예배드려도 좋다는 소식도 전달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기쁜 소식으로도 광풍은 잔잔해지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두 고등학교로부터도 연락이 와서 대화를 나눈 적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광풍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광풍은 조그만 가게도 만나고, 대규모 공장에게도 찾아옵니다. 개인 회사도 광풍 때문에 파산하고, 재벌그룹도 침몰할 수 있습니다. 정부나 나라도 광풍에 시달립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만난 전쟁의 광풍,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라지지도 않는 굶주림의 광풍, 미얀마나 중국이 만난 천재지변의 광풍은 그 몇 예입니다. 수습되지도 못한 시신이 아직도 강에 떠 있는 미얀마를 볼 때 가슴 아픕니다. 건물더미에 깔려서도 아내와 함께한 세월이 행복했노라고, 자식을 사랑하노라고 신음하듯 말하던 중국의 한 가장이 마침내 구조되었지만, 구조되자마자 곧장 죽어버렸다는 보도는 마음 미어지게 했습니다. 

광풍 만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저는 신학생 시절, 여수 앞바다 묘도라고 하는 섬에 하계 봉사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사역 잘 마치고 섬을 떠나려고 하는데 태풍이 불어온다는 겁니다. 그래도 다음 일정 때문에 저희 일행은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겁 없이 배 띄워달라고 선장에게 강청하고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출항하자 바다는 벌써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색깔은 흉흉했고, 물결은 사나웠습니다. 배가 얼마나 요동하는지 정신이 없었습니다. 속은 거북하여 다 토했습니다. 이러다 무슨 일 나는 거 아닌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엄습해왔습니다. 

광풍 앞에서 대단한 사람 없습니다. 광풍 만나면 천하장사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그 튼튼해 보이는 전봇대가 뽑히고, 나무가 쓰러지며, 집이 뜯겨나갑니다.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인생 배가 조정되질 않습니다. 아무리 실력 있고 능력 뛰어난 선장도 소용없습니다. 인간은 참 연약한지라 속수무책입니다.  

주님 모시지 않은 인생 배나 주님 모신 인생 배나 평시에는 다 순항합니다. 구별이 잘 안됩니다. 다 행복해 보입니다. 오히려 주님 모시지 않은 인생 배가 더 멋지게 세상 바다 가르며 항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광풍 만나면 달라집니다. 광풍 만나면 주님 모신 인생과 그렇지 못한 인생은 확연하게 차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광풍 속에서 누가 뛰어들어 도와주겠습니까? 직장동료가 도와주겠습니까? 친구가 도와주겠습니까? 형제도 구출해주지 못하고 부모도 도움 못됩니다. 혹시 도와주려는 마음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도와줄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를 기꺼이 도와주기 원하실 뿐 아니라 능히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는 없습니다.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여러분 인생 배에 모셨다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광풍 때문에 인생 배는 좀 흔들릴 수는 있겠으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권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배에 함께하셔서 기필코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29절을 보십시오.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만난 광풍을 얼마든지 고요하게 하십니다. 하루는 예수님 모신 제자들의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이 혼비백산하여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번에 권세를 갖고 명령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39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명령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을 괴롭히는 파도야! 당장 잠잠하라. 내 귀히 여기는 영혼들을 두렵게 만드는 바다야! 즉시 고요하라. 내 기뻐하는 생명들을 휘몰아대는 광풍아! 즉각 멈춰라!” 할렐루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항구까지도 기필코 인도하십니다. 30절,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러분, 하나님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의 마지막은 안전한 항구입니다. 과정에는 혹 우여곡절이 있고, 혼돈 속에서 방황할 수 있으며, 불안과 염려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견디고 참다보면 소원의 항구에 안전하게 정박하게 될 줄 믿습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을 향해 세워 놓으신 궁극적인 뜻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멸망시키고 파괴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그렇게 속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코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악한 아버지라고 할 찌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 주기 원합니다. 하물며 우리 때문에 그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 된 우리에게 어찌 좋은 것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주님 모르게 불어오는 광풍은 없습니다. 내가 당한 기막힌 사정, 내가 겪고 있는 고통,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25절 한번 보세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아주 특별한 섭리 때문에 하나님께서 광풍 일으키실 때도 있고, 광풍이 일어나는 것 허락하실 때도 있습니다.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내게 닥친 광풍, 하나님 모르시게 그냥 불어온 것 아닙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광풍 속에는 반드시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높은 뜻과 목적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난주 우리 문희곤 목사님께서 요나서 말씀 갖고 설교하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말씀 전하라는 하나님 명령을 뒤로 한 채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에서 빗나가고, 경로에서 이탈하였습니다. 그런 요나가 만난 광풍은 사실 빗나가고 이탈한 삶을 바로 잡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광풍이 없었던들 우리는 얼마나 기고만장하고 안하무인이었겠습니까? 교회 나오면서 하나님 존재는 어렴풋이 인정했겠지만, 하나님을 내 인생 속에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지요. 하나님 없이도 내가 대단한 줄 알았지요.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지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광풍 만나니 잘못한 것 없는지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자고하고 교만한 것, 남을 쉽게 정죄하고 아프게 한 것, 불평하고 감사치 않은 것 하나님께 회개하고 우리는 더 겸손해졌습니다. 참 고마운 광풍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광풍 통해 우리 믿음이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눅 8: 22-25을 보면 예수님 제자들이 만난 광풍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님은 곤하여 주무시는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습니다.” 이에 깨어나신 주님께서 바람과 물결을 잠잠케하십니다. 그리고 곧장 책망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광풍 속에서 제자들의 믿음을 짚어보십니다. 주님께선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길 원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하나 둘 광풍을 통과해가다 보면 이젠 웬만한 파도도 무섭지 않습니다. 선장되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 배를 책임져주신다는 것을 체득해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려고 허락하시는 광풍도 일어납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도 아니고, 부족한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함도 아닙니다. 행 27장에 보면 로마로 호송되던 바울이 탄 배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납니다. 로마 군인과 선원들이 죽는다고 아비규환입니다. 그 때 바울은 두려워하는 그들을 안심시키며 힘이 되어줍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 광풍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가운데 있지만, 교회 안팎으로 광풍만난 사람들 곁에 다가가 안심시켜주고 힘이 되어주면 참 좋겠습니다. 미얀마, 중국, 북한주민, 새터민, 주변의 빈민들이 다가가야 할 대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도 물질과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성도, 가족 잃어 슬픔 중에 있는 유족, 여러 가지 이유로 우울해지고 마음 아파하는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아무도 돌아보는 이 없이 혼자되면 참 서글퍼집니다. 하지만 고통 이해해주는 사람이 곁에서 격려해주고 같이 가주면 한결 쉽습니다. 기러기가 장거리를 날아 갈 있는 것도 무리를 지어 비행하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힘이 들지만 서로 소리쳐주고 격려하니 힘을 받고 멀리 날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광풍이 무슨 이유로 다가오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28절,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통을 이겨나갈 힘주시고, 고통에서 인도해내십니다. 저는 다음 찬송의 가사가 참 좋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 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 볼찌라.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은 기막힌 광풍을 견뎌 내신 적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 광풍 속에서 베풀어주신 하나님 은혜를 경험하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고 계시는 겁니다. 앞으로 어떤 광풍이 와도 또 이겨내며 항구에 도착하게 될 것을 분명히 믿으십시다. 우리 각자나 우리 교회가 하나님만 바라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하신 팔 의지하며 계속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항구에 도착하여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때가 오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장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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