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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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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 (막 10;46~52)

비가 올 것같아서 우산을 들고 나갔습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산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윗 사람이 말합니다.
<우산을 내게 줘!>
비올 때 우산을 뺏는 사람은 좋지 않은 사람입니다.

<비올 때 우산을 뺏지 말아야 합니다.>

은행의 생리가 있습니다.
잘 나가는 기업에게는 담보가 좀 부실하여도 대출을 잘 하여 줍니다. 그러나 부도나고 망할 것같은 기업에는 빨리 돈을 회수하려고 독촉합니다.
그러나 기업하는 사람 측면에서 보면 잘 나갈 때에는 대출을 좀 못 해주어도 부도나고 어려울 때 조금만 밀어주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가장 필요할 때 돈을 회수하려고 하는 것이 은행입니다.
그러나 전 기업은행장 강 권석 선생님 일화입니다.
그는 기업가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우리 기업은행은 기업하는 여러분과 같이 가겠습니다. 어려울 때 돈을 회수하지 않고 더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비올 때 우산을 뺏지 않겠습니다.>
기업가들은 다른 은행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 일제히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비올 때 우산을 뺏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원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이야기로 들어 갑니다.
여리고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가 살고 있었습니다.
디매오란 소경이라는 뜻이고 바는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디매오는 소경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디매오도 소경이요 그의 아버지도 소경이었습니다. 대대로 소경의 가정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경에 거지였습니다.
귀머거리와 소경과 거지중에 가장 불쌍한 것은 누구입니까? 그 대답은 소경입니다.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귀머거리와 소경과 벙어리 셋 중에 하나만 면하기를 바란다면 소경이라고 하였습니다. 보지 못 하는 고통은 듣지 못 한는 고통이나 말하지 못 하는 고통보다 훨씬 더 하다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47)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더욱 소리질렀습니다. 바디매오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성공적인 사람은 찰거머리와 같은 끈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가 두번째 소리지르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49) 

바디매오는 너무나 좋아서 겉옷을 버리고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은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 바디매오가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곧 보게 되어 예수를 좇아 갔습니다. 비올 때에 우산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바디매오와 예수님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보려고 합니다.

1. 비올 때 우산을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 

비가 옵니다. 우산을 주는 사람이 있고 우산을 뺏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소경에 거지입니다. 
바디매오는 5가지 절망적인 상황이 본문속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1) 대를 이은 소경
(2) 대를 이은 가난
(3) 일터는 길거리인 불행
(4) 그의 항상 사용하는 언어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마다 외치는 찌든 구걸소리.
(5) 언제나 사람들이 주는 멸시
어디를 가나 희망적이고 밝은 면이 없는 소경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바디매오는 오직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꾸짖었습니다.
<잠잠하라.>
바디매오는 더욱 소리를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비가 올 때 많은 사람들은 우산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불러 고쳐 주셨습니다.
일단 비가 오면 우산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미국사람들이 신사적이고 일등국민이요 선진국인 것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도 조금만 다듬으면 일등 국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는 보고 있습니다.
한 사건을 비교하겠습니다.
어머니가 미국 동생 집에 갔다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병에 걸렸습니다. 여행자입니다. 그런데도 병원에서는 말합니다.
<병든 사람은 일단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100% 치료하였습니다. 5만불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일단 살려 놓았으니 5만불을 갚으시오. 돈이 없으면 귀국하여 보내 주십시오. 안 보내셔도 됩니다. 그러나 안 갚으면 다시는 미국에 들어 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냥 귀국 시켰습니다.
신사적입니다. 일단 비가 오면 우산을 주고 보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그 수준이 아닙니다.
우리 8형제 목사님이 계십니다. 제일 맏 형님이신 김 우영 목사님은 이미 하나님께 돌아 가셨습니다. 둘째 형님이신 예광 교회 최 덕순이 교통사고로 아들 아내 셋이 모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 연락을 받고 달려가 보니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모님은 사고나며 혀가 물려서 잘려져 있었습니다. 목사님과 아들은 기절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당직 의사는 70만원을 내야 치료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70만원이 있을 리가 없어서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카드는 밤이라 안 받겠다는 것입니다. 치료하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간신히 70만을 구하여 입금시키고 혀를 꼬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울었습니다.
비올 때 우산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일단 비가 오면 우산을 주어야 합니다. 


2. 비올 때 우산을 주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바디매오에게서 우산을 빼앗았습니다. 말도 못 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가가셔서 우산을 주셨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디매오가 아닙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오늘 그 좋으신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세 가지 호칭이 있습니다. 나를 사람들이 부를 때에도 여러 가지 호칭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부를 때에는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부흥회에 가면 <강사님>이라고 부릅니다. 학교에 가서 강의할 때에는 <교수님>, 아들이 부를 때에는 <아빠>, 아버지가 부를 때에는 <아들아>, 은행에 가니까 <손님>, 친구들이 부를 때에는 <야!> 여러 가지 칭호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를 때에는 세 가지 호칭이 있습니다.

(1) 나사렛 예수
(2) 그리스도 예수
(3) 다윗의 자손 예수

나사렛 예수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선지자 예수를 만났는 데 나사렛에 살고 있는 예수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나다나엘이 이 말을 받아 하는 말이 이 것이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

조그만 촌 동네에서 무슨 그리 큰 선지자가 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은 <촌놈 예수>라는 말로서 예수를 깔보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깔보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을 때에는 <나사렛 예수>라는 불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성전 문앞에 앉은 뱅이가 앉아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 거지가 언제나 그런 것처럼 구걸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미국 달라스 신학교 세이프 학장은 이 거지에 대하여 세밀한 분석을 하였습니다. 이 거지는 이스라엘 거지 왕초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국에서 가장 명거지 명당자리가 성전 문앞입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최고 좋은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그토록 오래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예루살렘 거지 왕초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돈을 주려고 하였으나 돈이 없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은 거지 손목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앉은뱅이는 갑자기 발과 발목에 힘이 생기더니 일어나 걷고 또 뛰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5천명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온 사람들, 예수를 나사렛 촌놈이라고 깔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위력을 보여 주고 싶을 때에는 <나사렛 예수>라고 불러야 합니다.

인도네시아 장글속으로 다니며 전도하던 선교사의 고백입니다.
산속 어느 마을로 전도하러 들어 갔습니다. 그 마을을 영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무당이 다가 왔습니다. 선교사는 기겁을 하였습니다. 몸은 골리앗같이 크고 눈은 소눈처럼 컸습니다. 얼굴에 색칠을 하고 옷은 울긋불긋하게 입었습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습니다.
<죽기 전에 당장 나가!>
선교사는 겁이 났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도망치다 싶이 빠져 나왔습니다. 선교사는 한 달을 금식하며 예수님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힘이 생겼습니다. 자신만만한 권세가 생겼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7-19)

이런 말씀들을 의지하였습니다. 확실히 믿어졌습니다. 한 달 후 다시 그 장글 동네로 들어 갔습니다. 그 거인 무당이 또 나타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난 번에는 도로 돌려 보냈는 데 이제는 죽여 버리겠다.>
그리고 달려 들었습니다. 선교사는 눈을 크게 뜨고 달려 드는 그를 째려 보았습니다. 그 무당은 갑자기 주춤하더니 땅에 얼어 붙었습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 하고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선교사가 눈을 마주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 가라.>
그는 땅바닥에 푹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데굴데굴 굴러 버렸습니다. 그 마을이 이 사건으로 복음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우습게 여기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위력을 보여 줄 때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게 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권세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립니다.

어느 영국 사람이 대서양을 건너 뉴욕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식사시간이 되면 가진 돈이 없어서 혼자 슬그머니 갑판으로 올라가서 싸가지고 온 비스케트와 치즈를 먹곤 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허기져서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선장이 그렇게 먹고 있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식사시간이면 갑판으로 가서 혼자 그렇게 먹습니까?>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선장님! 저에게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먹을 돈이 없습니다.>
선장이 혀를 차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지불한 돈에는 식사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귀신을 제어할 나사렛 예수님의 권세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가 있습니다. 예수의 뜻이 무엇입니까?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예수라는 뜻은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죄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에는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조그만 죄가 끼어 있으면 형통하지 못 합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죄가 있으면 기도응답이 없습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 교통이 없습니다. 죄가 있으면 평안이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에는 <그리스도 예수>라고 부르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용서가 임하면 내가 나를 용서하십시오. 외치십시오.
<주님이 용서하셨으니 나는 죄에서 자유롭다. 나도 나를 용서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사십시오.

어느 부부 이야기입니다.
아침 남편이 출근하려고 하다가 사소한 일로 부부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대판 큰 싸움이 되었습니다. 둘 다 상처가 깊어졌습니다. 아내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저 남편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조금 후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차를 몰고 직장에 출근하다가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장례를 치루고 15간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 묘에 가서 울었습니다. 이제는 기력이 쇠하여 아내도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도로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여 주셨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주님이 용서하셨으니 나는 죄에서 자유롭다. 나도 나를 용서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죄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죄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모세이고 가장 능력있게 보는 왕은 다윗왕입니다. 다윗왕은 온 나라의 적을 다 평정하였습니다. 통일된 나라를 만들고 나라를 크게, 부하게.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못 할 것이 없는 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일 처음 알려진 것은 17살 때 였습니다. 온 나라가 다 달려 들어도 골리앗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온 군사가 다 동원되어도 골리앗 장군을 잡을 수가 없어서 벌벌 떨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다윗이 돌멩이 하나로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사울왕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떠들어 대면서 다윗이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은 <못 할 것이 없는 왕> 다시 말하면 <능력있는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부른 것은 <내 앞에 지나가는 예수 당신은 못 할 것이 없는 왕,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이, 내 눈도 고쳐 줄 수 있고, 내 거지 생활도 청산하여 줄 수 있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지나가는 예수를 별 것 아닌 것으로 깔보았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지나가시는 분이 못 할 것이 없는 분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점이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있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기도중에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불러야 합니다. 다른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이런 고백을 하면 그 속에 믿음의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당한 문제를 해결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이여>라고 조용히 마음으로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 분에게 문제를 맡겨야 합니다.
그 분은 모든 문제를 맡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나는 외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십니다.

요즈음 저에게는 신비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CTS TV 방송국에서 여러번 출연하여 달라고 제안이 왔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내 때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내 때가 아니라는 말은 우리 교회가 더 성장된 다음에 나타나고 싶었습니다. 10번 정도 거절이 계속 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부산 CTS TV 방송국에서 이번 주간에 <진해 연합 집회>를 계획하고 나를 주강사로 세우고 녹화하여 시험방송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님들이 저에게 이번 기회에 CTS TV 방송을 할 때가 되었다고 권면하셨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십시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성령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지난 주간 부산 감림산 기도원 이 옥란 원장님이 우리 교회에서 머믈고 계셨습니다. 금년 8월 15일 기도원 창립 40주년입니다. 그 역사 책을 내가 정리하고 있습니다. 3000권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4명이 우리 교회 803호에 머믈면서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거물 목사님 100분의 축하 멧세지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CTS TV 방송 기자가 방문하였습니다. 원장님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방송중에 최고의 방송이 4인 4색입니다. 함량 미달인 목사님은 절대로 모시지 않습니다. 한 명이 비게 됩니다. 강 문호 목사님을 모시고 싶은 데 이야기 하여 주세요. > 원장님은 나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빨리 예약하세요. 강 문호 목사님이 안 한다고 하면 내가 방송료를 내겠습니다.>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계약을 하였습니다.
기자가 나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며 방송하라는 것입니다.
<강 목사님! 장 경동 목사, 김 문훈 목사가 4인 4색 출신입니다. 목사님 뜹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나는 뜨기 원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뜨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뜹니다.> 나는 교회가 뜬다는 말에 귀가 번쩍하여 즉석에서 장 경동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장 목사도 똑같은 말이었습니다.
<형님! 두 번 말하지 말아요. 떠요.>
나는 내가 뜨는 것보다 교회가 뜨기를 원한다며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를 위한 것이라면 안 하겠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하겠습니다. 인도하심을 주세요.> 그런게 김 도욱 장로님이 말도 안 했는 데 100만 짜리 수표 한 장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방송에 사용하세요.>
나는 해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구나!>
그래서 기도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예수님! 맡깁니다. 인도하심을 따르겠습니다.>
CTS TV 방송에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붙잡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비올 때 우산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올 때 우산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디매오의 예수님의 우리의 예수님이십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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