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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반석 위에 기초를 놓은 집 (눅 6: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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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기초를 놓은 집 (눅 6:46~49)

세계에서 가장 고층 빌딩들이 많이 모여 있는 대표적인 곳을 말하라고 하면 뉴욕의 맨해튼을 들 수 있습니다.  제가 학생 때 미국에 대하여 공부할 때에 뉴욕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층 건물인 102층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다고 했습니다.    뉴욕의 맨해튼에는 1931년에 완공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한 세계적인 건물들이 수없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일종의 섬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지역에 이렇게 세계적인 건물들이 들어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그곳 지반이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층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쓰촨 성에서 지난 5월 12일 현지시각 오후 2시 28분경에 발생한 진도 7.9 의 지진으로 인한 사상자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사망자, 실종자가 8만 명에 이르고, 부상자가 30만 명,  졸지에 부모를 잃은 고아가 400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재민은 약 1천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지구촌의 대재앙을 바라보며, 인간의 과학문명이라는 것이 자연 앞에서 정말 무력한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홍콩신보는 중국의 최대의 댐인 쌴샤댐이 이번 지진을 유발한 원흉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쌴샤댐을 건설할 당시에 과다한 저수량과 수압의 영향으로 지표층에 변화를 가져와 인근 지역에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제기했던 전문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재지변이라고만 여겼던 이번 대지진의 원인을 두고 큰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싼샤댐이 지진을 불러왔다는 주장에 대하여 중국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만리장성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로서 무려 25조원을 들여 만든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쌴샤댐, 이 댐이 대지진의 원인이라고 하면 참으로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거대한 댐과 댐에 가두어놓은 물의 무게를 못 이기고, 암석층이 깨지고 그 깨어진 틈새로 스며든 물이 지각 단층활동의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지진을 유발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홍콩신보는 댐을 건설할 당시부터 지질학자나 지진 전문가들은 댐건설이 인재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지난 3월에는 미국의 한 과학 잡지도 쌴샤댐이 지반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지진과 해일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에서는 이번 지진의 진원지로부터 수백 킬로미터가 떨어진 쌴샤댐이 지반을 약화시켜 지진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으니, 대지진의 원인을 놓고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갈 것입니다. 

우리는 한 주간 신문과 TV 보도를 보면서 가장 마음이 안타까운 것은 학교 건물들이 너무나 부실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어린 학생들이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이 초고속으로 성장하면서 수많은 건물을 지었지만, 내진설계를 하지 않고, 얇은 철근과 콘크리트, 벽돌로 지은 것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중국의 지진이나 미얀마의 재난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는 지진에 있어는 안전지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웃에서 발생한 지진의 영향으로 해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쓰나미 같은 것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해야 합니다.   오래된 건물들은 재건축할 수 있도록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번 중국에서 일어난 그런 끔찍한 대지진이 우리 한반도를 강타한다면 우리 집이나 학교 건물은 안전하다고 할 것입니까?  우리 서울의 20년 전, 30년 전에 지은 다세대 주택이나 연립주택 같은 것은 지진에 전혀 무방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건물 중에 오래 된 건물은 내진설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진 설계가 필요한 이유는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대형 토목구조물의 경우 사회적 필요성과 그 중요성을 감안할 때 구조물이 지진으로 인하여 기능을 상실하거나 파괴되거나, 붕괴되었을 경우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재산 피해로 막대한 손실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글을 보니 과거 일본 고베 지진 때 고베 항이 파괴되었는데, 고베 항을 이용하던 환승 화물이 우리나라 부산항으로 옮겨오게 되었고, 이것은 한동안 부산항이 세계 1, 2위의 자리를 지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이 고베 지진을 복구하는데 세계 경제 2위의 일본도 7년 정도의 시간을 소비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은 재난에 대비한 예산을 편성하고, 인력을 항시 배치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이 다른 것은 재난에 대비하는 능력에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서부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 당국에서는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가상하면서, 지진에 대비하기 위하여 지질학자들, 정부 관계자, 구조대원, 업계 관계자들 300여명이 모여 지난 1년간 연구하고 토의한 것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지진에 대비하여 많이 연구하며 대비하는데, 우리는 지진에 대비한 예산도 전무하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우리나라는 정치, 사회, 경제, 사회 종교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인 부실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각계각층에 깔려 있는 기초의 부실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아니면 말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짓이 난무합니다.   누구의 말도 정직한 말로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복선을 깔고 앞뒤를 재면서 하는 말이라고 접고 듣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면서 기초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을 예로 들면서, 두 사람은 각기 자기의 집을 건축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지혜로운 건축가였으며, 또 한 사람은 어리석은 건축가였습니다.  한 사람은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위에 놓았으며, 한 사람은 주추 없이 흙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마태복음7:24-28에 보면 지혜로운 한 사람은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이었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두 본문이 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거나 전해 듣고 기록한 것인데, 어느 것이 더 예수님의 말씀에 근접한다고 볼 수 있느냐고 하면 누가복음의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을 쓰는 첫 장에서 “그 모든 것을 시초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보고 순서대로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산상수훈, 산상설교의 결론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의 두 집을 비교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나아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지은 집과 같고, 예수님에게 나아와 말씀은 들었지만, 행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지은 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본문을 놓고 한 주간 동안 깊이 생각하는 중에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두 사람은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지은 집과 어리석은 사람이 지은 두 집을 비교해보면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집을 지었다는 점에 있어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실 집이란 결코 사치품은 아니고, 누구나에게 가장 필요한 의식주의 하나입니다.  남자라면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살고 싶은 좋은 집을 건축하고 싶어 합니다.  이 두 사람은 집을 지어야겠다는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집이란 사치품은 아니지만 정말 튼튼하게 지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장식이나 가구는 나중의 문제입니다.    집이란 튼튼하게 지어야 들어가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지은 집을 비교해보면 외형적인 모습은 거의 같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주추를 놓을 때에 깊이 파고, 반석 위에 놓은 집이나, 그냥 땅 위에 지은 집이나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좋은 때, 평안할 때, 일기가 좋고 기상이 좋을 때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건물의 외형적인 모습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건물의 외형이란 피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과 진실이 중요한데, 건물의 외형이란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것이요, 내용보다는 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용보다는 외모양이 좋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사람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좋은 때에는 거의 같았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집을 지으면서 땅을 깊이 파고 주추를 놓으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땅을 파는데, 반석이 나올 때까지 파고 들어가서 주추를 놓으려고 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직 기초공사도 끝내지 않았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집을 거의 다 지었습니다.   그 집도 외형적으로는 그럴듯하였습니다.  아주 쉽게 집을 짓는 사람도 있는데, 고집스럽게 땅을 깊이 파고 반석이 나올 때까지 파고 들어가니 비용도 많이 들고, 인력도 많이 필요하였습니다.  

언제 두 집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입니까?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은 탁류가 부딪치면서 곧 집이 무너져 내리는데, 파괴됨이 심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였다”고 했습니다. 환난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우리는 다 신앙의 집을 건축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은 가져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을 취미삼아, 오락 삼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같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외형적인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오래 믿었다는 것도 하나의 외형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외형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 믿은 것, 그것은 외형에 불과하고, 그것을 가지고 신앙을 평가하는 것은 피상적인 것입니다.  수박 겉핥기라는 말입니다.  무슨 직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 교회 생활에 익숙한 것, 사회도 잘 보고,  회의도 잘 진행하고, 아주 예리하게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럴듯하게 발언하는 것도 잘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그의 성숙한 속사람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신앙의 내용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찬송도 잘하고, 기도도 유창하게 하고, 교회 안에서 어떤 장 자리에 있는 것도 피상적인 평가에 불과합니다.  

우리 주님이 46절에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마태복음7:21에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적더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찬송을 잘 부르고, 기도 잘하고, 봉사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서 교회 생활 모든 것이 자연스럽기만 합니다. 그래도 그는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집을 짓는데, 자기만이 압니다.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기만에 빠질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으로부터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라는 책망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에 가면 고대 7대불가사이의 첫째인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현재 80기 정도 남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800년 전에 그런 무덤을 세우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렇게 큰 피라미드를 어떻게 세웠을까 연구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먼저 피라미드를 세울 장소를 선택하는데, 아무리 홍수가 나도 물에 잠기지 않을 땅을 선정하고, 땅 속에 바위가 들어날 때까지 모래와 자갈을 파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땅 속 깊은 곳 반석 위에 무덤을 설치하고 반석 위에 피라미드를 쌓습니다.  10만 명의 사람이 2개월 씩 동원되어 20년 동안 일하여 만든 것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피라미드는 140m의 높이에 환기 구멍까지 내었고,   북극성의 방향과 일치되게 무덤을 안치한 것을 보면 정말 세계적인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는 건축가들입니다.   한 사람이 일생 살아가면서 ‘자아’라는 인격의 집을 짓습니다.  신앙인이라는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도 건축하는 예를 들어 신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터를 닦아두었습니다.    마치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두었습니다.   이제는 다른 터를 닦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터전이 되십니다. 

고전3:10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구든지 예수님에게 나아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 주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 주님의 말씀이 곧 그의 가치관이 되고, 주님의 말씀이 곧 길이 되는 사람, 주님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만세 반석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기초가 되고, 터전이요, 성전의 모퉁이돌이 되고, 성전의 산돌이 되십니다. 

행4:11-12에서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요,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살아가는 이유가 되시고, 예수님은 나의 가치관이요, 예수님 때문에 살아가고,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죽어도 그대로 살아갈 것이요,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라고 하면 죽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알아준다고 하여 우쭐 거릴 것도 없으며,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내가 알고, 우리 주님이 알고, 하나님이 알아주시는데 무엇을 더 바랄 것입니까? 우리는 하루하루를 은혜로 살고 주님과 의논하고,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면서 보내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이 지났습니다.  1970년 서울 신촌의 로터리 근처에 와우 시민아파 5층 건물 한 동이 붕괴되어 33명이 죽고, 40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 사고가 있었습니다.  

아파트가 오래 된 아파트가 아니라, 지은 지 불과 4달밖에 되지 않았고, 주민이 입주한지 20일 밖에 되지 않은 아파트였습니다. 그런 새 아파트가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왜 그런 대형 참사가 일어났는가에 대하여 건축전문가들이 나중에 알아본 결과 이 아파트는 기둥 하나에 19㎜ 철근이 70개씩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규정에 1/12 밖에 안 되는 5개 정도씩밖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무너지고 말았으며 또 콘크리트 배합비율도 시멘트를 알맞게 넣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멘트 비용은 업자들이 다 떼어먹고 정작 넣어야 할 시멘트는 넣는 시늉만 내었기에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뜯어먹다보니 모래성을 쌓아놓은 것이었습니다. 

에이브라함 메슬로우(Abraham Maslow)가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과 궁극적으로 평화를 맺으려고 하면   화가는 그림을 그려야만 하고, 시인은 시를 써야만 하고, 음악가는 곡을 만들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읽으면서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면 자신 자신과 화해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봐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 안에서 주인이 되시고, 내 안에 모시고 있는 예수님이 나로 하여금 말씀대로 살게 하시고, 진리로 이끌어 가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유명한 의사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의사는 처방만 내려줄 뿐이고, 병은 환자 자신이 고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특히 당뇨나 혈압 같은 성인병들은 그렇답니다. 의사가 처방해준 대로 정시에 약을 잘 먹고 하루도 걸리지 않고 운동하고, 의사의 지시대로 순종하는 환자는 치료가 잘 되고, 약을 제대로 먹지 않고, 지시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환자는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치료가 된 환자는 담당 의사를 실력 있는 명의라고 하고, 치료가 안 된 환자는 똑같은 의사인데, 돌팔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신학자 윌리엄 버클레이는 “건축 재료는 인생과 비슷한 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성된 인생을 제공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재료를 제공해 주시는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서 자신의 인생을 지어 내야만 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성된 건물처럼 인생을 살게 하시지 않고, 인생의 재료를 제공해주신 대로 우리 자신이 지어가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쉽게 집을 지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 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예수님을 앞장 세워 그의 뒤를 따르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쳐서 말씀에 복종하고 계십니까?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좀 힘들지만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여기서 나아와 듣는 것보다 강조하신 말씀은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이란 집을 잘 짓고, 신앙이란 집을 잘 짓는데, 말씀 중심으로 행하는 중에 아름다운 집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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