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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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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행복 나누기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나 중심, 탐욕과 욕심으로 사는 우리
끝없이 주심으로 행복해하신 주님 닮아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삶 살아야

 우리 모두는 사랑받고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사랑받기 원치 않고 행복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되는지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사랑받고 행복하게 되는 길을 배워보고자 합니다.

 1. 우주에서 가장 불행한 사탄

 우주에서 가장 불행한 자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끝없이 우리를 움켜쥐려 하는 탐심의 노예가 되어 가져도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심지어 사탄은 하나님의 보좌까지 탐했습니다.

 호수에 피는 꽃 중에 하나가 수선화입니다. 수선화는 영어로 나르시스라고 하는데 헬라신화에 보면 한 청년이 너무나 잘난 자기의 미모에 감동되었는데 거울이 없기 때문에 늘 호수에 얼굴을 비춰보고 싱글벙글 웃고 행복했습니다. 너무 자기만족에 심취해서 호수를 들여다보다가 그만 빠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꽃이 된 것이 수선화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랑, 자기 아름다움에 심취한 사람을 나르시스트라고 말합니다. 바로 사탄은 이 나르시즘에 빠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천사 중에 그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너무 아름답게 만들어 놓으니까 모든 천사들이 다 찬양을 하고 칭찬을 하니 자기 아름다움에 그만 홀딱 심취해 ‘이처럼 아름다우면 내가 하나님이 되지 하나님의 피조물로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반역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14장 12절로 15절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아름다움에 심취해서 하나님이 되려다가 쫓겨나 사탄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귀의 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기중심의 사상과 탐욕 그것으로 뭉쳐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마귀는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오면 나 중심으로 살게 하고 탐욕과 욕심으로써 모든 것을 취하게 합니다. 똑같은 것으로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한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욕심과 탐심을 가지고 살도록 하려고 사십주 사십야 금식하고 굶주린 예수님께 찾아와서 꾀였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물욕을 상징합니다. ‘무슨 하나님을 섬기느냐. 물질부터 먼저 취하라’ 그런데 예수님은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서고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명예욕으로 그를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려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단호하게 거부해 버린 것입니다. 탐욕과 명예욕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높은 산위에 올라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면서 말하기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보여 주고서 이것을 취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마귀의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는 그 어떤 유혹도 통하지 않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시고 탐심과 욕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마귀가 자기와 같은 줄 알고 자아중심의 탐심과 욕심을 가지고 꾀였으나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타락한 인간의 본심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탐심과 욕심인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9절로 30절에 타락한 인간의 본심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라고 말씀합니다. 이러니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사를 보면, 보통 10대는 이성에 가장 큰 관심을 갖습니다. 20대는 성(性)에 대한 관심을 갖고, 30대는 돈에 대해 관심을 갖고, 40대는 사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50대는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하고, 60대 이상은 건강에 가장 크게 관심을 갖고 건강하다면 온갖 보약을 다 먹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육신의 삶과 욕심에 있지 하나님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2. 우주에서 가장 행복하신 하나님

 그런데 그와 정반대로 우주에서 가장 행복하신 분은 아버지와 아들,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끝없이 주시고 또 주심으로 그로인하여 만족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끝없이 취하고 손에 쥐므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햇빛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물을 주시고, 식물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행복을 주시고 무엇이든지 자꾸 주시므로 하나님은 행복을 느끼시는 분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에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나중에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아끼지 않습니까? 자녀가 상처를 입으면 부모의 마음이 아프고 자녀가 병이 들어 열이 나면 밤새도록 부모가 같이 앓고 잠을 못잡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분신이신 독생자를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제물로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냥 특사로 파견한 것이 아니라 가서 죽어서 제물이 되어 인생을 죄에서 구출하고 부활하고 돌아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서로 심판합니다. 전부다 ‘나는 괜찮고 네가 잘못했다’고 손가락질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지적하여 심판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어찌하든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어서 죄인 대신에 십자가에 죽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부귀나 영화를 추구한 적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곳에 가나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배고픈 자는 먹이시고 환난을 당한 자에게는 평안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병든 자는 치료하시고 환난당한 자에게는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행 16:31)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손발이 다 닳도록 섬긴 것입니다. 왜 우리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깊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것입니까?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면서 우리를 키워 주시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절절히 맺혀져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오늘날 세상에 수십억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3. 사랑과 행복을 나누기 위하여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가치 있고 행복 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랑과 행복을 나누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강도 만난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있는 것 다 빼앗기고 얻어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길거리에 버려졌는데 한 제사장이 지나가면서 보고 혀를 차고 고개를 흔들고 말하길 “조심하지 어떻게 하다가 강도를 만나서 이 꼬락서니가 되었느냐. 나쁜 놈이구나”하고 지나가 버립니다. 제사장은 율법주의자인 것입니다. 

오늘 율법주의자들은 도와 주려고는 하지 않고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고 꾸짖습니다. 너무나 많은 율법주의자 때문에 이 세상에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 다음에는 레위인이 총총 걸음으로 지나오더니 고개를 흔들고 다른 길로 피해서 가버립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의식을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성전 장막을 치고 제단을 갖다 놓고 제물을 준비하는 돕는 자인 것입니다. 의식주의자인 것입니다. 이 의식주의자들은 ‘내가 주일날 교회 나오고 침례 받고 십일조 드리고 성찬 받고 예배 드렸으면 되었지 그 다음 교회 밖에 사람이 굶어 죽든지 병들어 죽든지 맞아 죽든지 내가 알 것 무엇이냐. 나는 관심 없다’고 말합니다. 

의식주의자는 자기중심이요, 무관심주의자입니다. 대개 이 세상 사람들은 율법주의자로 남을 비평하기를 좋아하고 그 다음에는 무관심주의자고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나간 후 한 사마리아인이 지나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 개로 취급받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종교를 갖고 있지도 아니하고 제사장도 아니고 레위인도 아닙니다. 사마리아인이 당나귀를 타고 지나가다가 이 상황을 보고 말에서 내려서 이 사람을 가만히 보았습니다. 그는 피투성이 된 사람에게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서 해독을 하고 그 다음에 자기 긴 옷을 찢어 붕대로 감아주고 말에 태워서 주막집에 들어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데 사마리아인인데 무슨 관계냐. 내가 뭐 있어야 도와주지”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사마리아인은 자기가 여행할 때 필요한 기름병과 포도주와 입은 옷으로 강도 만난 자를 도왔습니다. 있는 포도주를 붓고 있는 기름을 바르고 있는 옷을 찢어서 붕대로 만들어 감아주고 여관에 데려와서 그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마리아인이야 말로 가장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낀 사람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한 것입니다.

 오 헨리의 작품 중 「크리스마스 선물」은 너무나 유명한 소설입니다. 한 가난한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선물은 사줘야 되겠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살돈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대대로 이어 받아온 시계가 있었습니다. 그 시계를 몰래 팔아 아내의 긴 머리에 꽂을 핀을 샀습니다. 아내는 크리스마스 때 남편에게 선물을 해야 되겠는데 돈이 없으니 가발상에 가서 머리를 잘라 팔아서 시계줄을 샀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날 서로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아내의 머리카락도 없고 남편의 시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너무나 기뻐하고 행복해서 머리카락이 있을 때나 시계가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해 했다는 소설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줄 때에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주시고 아들과 성령을 주시고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부어 주시고 성령은 자기 존재를 우리에게 던져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행복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우리가 행복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살 수 있는 삶이 무엇이겠습니까? 

 마태복음 25장 35절로 40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가난하고 헐벗고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예수 이름으로 돌보아 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돌보아 주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에 주님 심판대 앞에 설 때 주님은 우리보고 말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로 8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많은 필리핀 병사들이 일본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는데 형편없는 식사와 생활환경 때문에 필리핀 병사들이 수없이 죽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병원도 없고 의사도 없고 약물도 없어서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심한 상처를 입은 비둘기 한 마리가 철조망을 건너서 포로수용소에 떨어졌습니다. 필리핀 병사들이 모여서 이 비둘기 한 마리를 서로 끌어안고 쓰다듬어 주고 치료해 주고 먹이를 주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비둘기는 건강을 회복해서 훨훨 창공을 날아 갔습니다. 그 후에 기적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파리 목숨처럼 죽어가던 필리핀 병사들은 죽지 않고 건강을 얻었습니다. 비둘기를 치료하다가 사랑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원한을 품은 것을 다 잊어버리고 사랑으로 마음이 채워지자 병든 자들이 죽지 아니하고 건강을 회복하고 해방을 얻게 되었다는 기록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불쌍한 마음이 들어 비둘기를 보살피기 시작한 그 마음이 나중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서 포로들의 사망률이 60%나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 때문에 신체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랑 때문에 인생이 달라집니다. 사랑 때문에 생명이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남의 죄를 들춰내고 할퀴고 소금을 치고 짓밟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엄청난 미움인 것입니다. 사랑은 상처를 덮어주고 돌봐주고 치료해 주는 것입니다. 허다한 허물을 덮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류가 구원을 얻었듯이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열매와 행복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사 하나님의 사랑과 행복을 나누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통해야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행복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또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가 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특권이요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가장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이란 사랑과 행복나누기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는 50년의 사역을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가운데 마치고 사랑하는 제자 이영훈 목사에게 강단을 맡기고 사랑과 행복 나누기 일선에 서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 슬픔과 고통 속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운동을 통해 진실로 하나님의 사업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과 행복 나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사탄은 자기만 알고 탐욕으로 움켜쥐기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있는 것을 다 내어 놓아주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 줄 때 우리도 사랑받고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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