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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가정의 리더십 (엡 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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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리더십 (엡 5:22~33)

    5월 가정의 달을 지내면서 가정의 행복과 가족간의 사랑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기회를 가집니다.  지난 주간에 미얀마를 휩쓸고 지나간 사이클론과 중국을 강타한 지진이 그 짧은 순간에 수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무너뜨렸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금 빠른 변화와 즐거움 또는 쾌락, 그리고 편리한 세상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속, 정확, 즐거움, 편리함을 부르짖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편리하고 행복해야 할 사회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가정이 너무도 빨리 그리고 무참히 무너져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사이클론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만 우리의 행복을 위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행복하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가정이 소리 없이 그것도 너무도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과 편리만을 추구하느라 진정한 행복을 놓치고 사는 우리 시대 사람들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으로 돌아와 가정을 세우시고 행복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가정의 달을 보내기 바랍니다.

    이메일을 통해 매일 받아보는 ‘가정편지’를 읽으며 가정 목회에 대한 좋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읽은 본문 말씀과 뜻을 같이하는 내용들 몇 가지를 교우들과 함께 나누도록 합니다.   가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것, 즉 가정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정은 그 영향력이 절대적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최초의 기관이었고 사회의 기초단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짝지어 주심으로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은 친히 그 가정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 우리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인정을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가정을 이해하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은 교회와 함께 주님의 구원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사역 공동체입니다.  가정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서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역공동체라는 말입니다. 사랑이야 말로 가족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관문입니다.  먼저 가정에서 주의 사랑이 시작이 되고 실천됨으로 가족들을 주의 사랑으로 구원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배우자에게 부모형제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누어짐으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작은 교회이면서 가장 가까운 선교지가 됩니다.  

    그런가 하면 가정은 가장 치열한 영적 싸움터이기도 합니다.  사단은 가족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을 막으려 온갖 공작을 펼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가정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갈수록 높아지기만 하는 이혼율과 무분별한 낙태로 죽어가는 귀중한 어린 생명들, 자살율의 증가 등 가정이 붕괴되는 이 모든 현상들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도 예외가 없습니다.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하나님이 주신 가정의 사명을 순종치 않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분별 없이 따르는 그리스도인들 가정은 사단의 도전에 힘 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이처럼 교회의 기둥인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 역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이 긴박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가정이야말로 회개를 통해 변화 받아야 할 변화의 현장임을 깨닫게 됩니다.  변화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납니다. 부부와 부모자녀의 삶이 서로에게 숨길 수 없이 드러나 있는 가정이야 말로 변화를 체험하는 삶의 현장입니다.   허물과 실수와 죄가 고백되고 용서가 시행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격려하고 협력하는 변화의 현장이 가정입니다.

    가정에 대한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우리 각자의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우리 가정의 모습들, 그저 인간의 편리와 쾌락만을 우선으로 하다가 놓치고 사는 중요한 진리들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들이 변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의 참 의미를 회복하기 위하여 이제 가정과 교회는 구원 사역의 동역자로서 두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를 통한 변화를 힘써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믿음 고백과 삶이 하나 되지 못한 채 세속의 늪으로 빠져드는 영적 나태함에서 벗어나 사랑을 나누어주는 삶의 모범을 통해 이웃 가정들을 하나님의 가정으로 낳아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가정에 주신 주님의 사명입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무너뜨리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시작한 최초의 가정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 대적하는 사단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무너뜨릴 수 있는 대상이 가정임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와에게 다가갔고 하와를 무너뜨린 후에 하와의 손을 빌려 사랑하는 남편을 넘어지게 했으며 그 결과 서로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분열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하면서 사랑을 고백했던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책임추궁을 당하자 즉시 아내에게 그 화살을 돌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단은 최초부터 가정파괴를 주 목표로 삼았고 지금도 그 계략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모양만 바꾸고 찾아올 뿐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진다는 말은 너무도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말을 사단도 즐겨 사용하면서 오히려 이 논리를 가지고 가정을 넘어뜨리려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현대사회가 가정행복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가정 회복’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통일교의 사단적 행태가 가관입니다.   소위 ‘참 가정을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변장하여 사람들에게 다가와 자신들의 추악한 교리와 이득을 얻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합동결혼식이니 순결운동, 참 가정 만들기 등은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사회운동이고 결국에는 통일교의 거짓 진리를 퍼뜨려 통일교 왕국을 이루려는 술수일 뿐입니다.   겉으로는 가정행복을 말하지만 그 속에는 가정의 신성함과 결혼의 신성함을 부정하는 가증한 논리가 담긴 사단의 주장입니다.   통일교의 거짓된 교리에 대한 비판은 기회가 있을 때 자세히 나누기로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사단의 가정파괴 음모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곧 가정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불신과 반항이고 남편의 머리 됨을 부정하게 하는 것이며,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과 머리로서의 책임 회피입니다.    사도 바울도 2천년 전 가정의 소중함을 오늘 읽은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강조하였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과 ‘남편들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으로 가정을 이루는 부부의 위치와 사명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내인 교우들은 가정에서 남편의 위치를 잘 알고 계시는지요?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지으실 때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남자에게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에덴의 각종 짐승들을 아담 앞으로 지나가게 하시며 그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게 하셨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암수 한 쌍인데 아담만 홀로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아담을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들어 그의 곁에 주셨고 둘이 한 몸을 이루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먼저 남자가 있었고 다음에 여자가 있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로부터 나왔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남자의 머리 됨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비쳐지는 남편 또는 가장들의 위치를 생각해 봅시다.  머리인 남편은 늘 강한 남자로 아내와 가족들에게 비춰지기를 원합니다.  강한 남자가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자신의 약한 면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선지 남자들끼리 모인 자리에 가보면 남자들에겐 상처나 고민 같은 것들은 아예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직 더 높은 이상과 높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의욕들로 불타오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 혼자 있게 되면 남자들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절망감 속에 빠져듭니다.  그럴 때 아내들은 시무룩해져 있는 남편들을 보고 염려되어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조바심을 냅니다.  하지만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속을 내보이지 않고 의도적으로 회피하기도 합니다.  아내들은 자신의 충고에는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한다는 하소연을 합니다.  친구들의 조언은 두말없이 받아들이는 남편이 아내가 무슨 얘기를 하기만하면 벌컥 화를 내거나 정반대의 행동을 일삼으니 그 비뚤어진 심리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내들이 화를 내기 전에 먼저 남자의 심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늘 용감하고 씩씩하고 강해야 한다는 소위 ‘남자다움’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왔습니다.  이 남자다움이 실패와 좌절이 없는 삶이라는 잘못된 강박관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남편들은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대단히 소극적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차를 몰고 낯 선 길을 여행할 때 길을 잃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으면 금방 찾을 것 같은데 남자들은 웬만하면 자기 힘으로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을 많이 낭비하고 엉뚱한 길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옆에 탄 아내의 잔소리를 듣기 마련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될 것을 왜 쉬운 방법을 두고 고생하느냐 하는 등의 잔소리입니다.   쓸데 없는 고집을 피우다가 식구들 고생만 시킨다는 둥 시간이 흐를수록 잔소리의 강도는 높아갑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존심이 상해 있는 남편 귀에다 대고 급기야 ‘주제에 그래도 남자라고 자존심 내세우기는’ 이런 식으로까지 말이 나오면 남편의 입에서는 ‘차에서 내려’ 하고 반응을 하면서 그날 여행 분위기는 그것으로 끝장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남편은 맘 속으로 벌써 후회하고 있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지고 만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 남편들이 허풍을 떨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떤 아내들은 그것을 적당히 받아넘기지 못하고 즉시 코웃음을 칩니다.  “아이고, 그래요. 이번엔 또 얼마나 가는지 두고 봐야 알죠.”  남편에게 여러 번 당한 아내들은 지나가는 말로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어떤 결혼 상담가는 “남편은 강하지만 부서지기 쉽다. 반면에 아내는 부드럽지만 질기다”라고 말했다는데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이처럼 남자들이 가지는 심리, 그것이 종종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는 합니다만 그 남자다움이라는 것의 뿌리를 머리 됨에서 찾아봅니다.  

     아내들이 남편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대하는 것과 같은 것처럼 남편들은 자신이 존경 받을 만한 일을 했느냐 못했느냐에 관계없이 (머리라는) 신분에 대한 아내의 존경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가 이러한 남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매사에 충고하려 들고 잘못을 일일이 따지면 남편은 더욱 반발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남편이 좀 부족해 보일 때 무조건 도우려고 나섬으로 자존심을 꺾기보다는 먼저 머리 된 남편의 위치를 끝까지 존중해봅시다.  그러다가 남편이 진심으로 도움을 원할 때 친구처럼 편안한 의논 상대가 되어 조심스럽게 아내의 의견을 이야기해주는 이것이 바로 돕는 배필로써 지혜로운 아내의 태도입니다.    남편이 허풍을 떤다고 생각되면 얼른 그 심리를 파악하고 남편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맞장구를 쳐줄 수 있는 여유와 순발력이 아내의 지혜가 아닐까요?  남편의 머리 됨을 잊지 말고 여러분의 남편을 연구하십시오.  남편의 특징과 필요를 알아서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아내야말로 복된 가정을 이루어가는 아내가 가져야 할 필요한 지혜입니다. 

    그러나 남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분명히 반전이 있습니다.  남자들이 머리니까 남자들이 언제나 항상 다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남자의 머리 됨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비유로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머리 됨 즉 리더십이란 말에 매료되는 이유는 그 말이 지닌 의미에 대한 환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리더란 남보다 뛰어난 존재이며 그의 리더십을 통해 사람들에게 군림할 수 있다는 환상 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상에서 비롯된 리더십은 결국 사람들에게 상처만 안겨주게 되는 잘 못된 세속적 리더십입니다.  가정에서 남편의 머리 됨은 아내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 또는 폭군의 리더십이 아닙니다.  진정한 머리 됨은 예수께서 교회를 향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군림하기보다는 섬김과 희생을 통하여 진정한 머리 됨의 본을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셨습니다.  그 머리 됨의 목표는 결국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주께서 보이신 섬김의 머리 됨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머리 됨의 특권과 책임을 먼저 가정에서 실천할 사명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고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아내 역시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는 그의 머리 됨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에서의 리더십은 세속적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의 모범을 따라 사랑이 기초가 되어 다른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십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특히 아내를 향한 남편의 희생적 사랑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것처럼, 가정에서 아내의 머리인 남편은 자기 몸인 아내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기까지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머리인 남편에게 아내는 그 머리와 하나로 연결된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고, 남편의 머리는 예수그리스도이며,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으로 가정 리더십의 구조를 정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담과 하와의 관계에서 보듯이 우리들의 가정에서는 때로 아내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남편을 지배하려는 죄 된 욕구를 지니고 있는가 하면, 남편은 아내의 머리로 세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고 유약하다는 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 머리로서의 자격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부부가 함께 의논하면서 가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쪽 배우자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따라가기도 합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제서야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마음이 상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자녀양육과 교육, 가사에 대하여 전혀 무관심하고 아내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며 돈만 벌어다 주면 남편의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는 남편도 있습니다.  반대로 남편의 경제적 무능을 탓하면서 남편의 머리 됨을 인정하려 들지 않아 가정의 질서가 깨어지는 예들도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죄성으로 인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순종할 때 부부는 사랑의 마음을 선물 받아 서로를 위해 순종과 희생으로 넉넉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리더십의 기초가 되는 가정 안에서의 리더십이 교회로, 사회로 확산되면서 그리스도의 섬김과 희생이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가정 그리고 교회가 먼저 세속적 리더십을 버리고 서로를 섬기는 진정한 리더십의 모범을 세상에 보임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리더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그러하듯 아내가 남편을 머리로 인정하고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랑 이것이 바로 가정 리더십을 꿈꾸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입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서부터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부터 먼저 진정한 머리 됨, 리더십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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