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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다시 서는 가정 (창 1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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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는 가정 (창 13:8~18)

1. 교회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한 젊은 형제가 스펄전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젊은이는 목사님께 문제가 없는 좋은 교회, 완벽한 교회를 하나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때 스펄전 목사님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형제여 형제가 만약 그런 완벽한 교회를 찾거든 나에게 꼭 일러주시오. 나도 그 교회에 다니고 싶소. 그러나 만약 그런 교회를 찾거든 당신은 절대로 그 교회의 교인이 되지 마십시오." 
"왜요?'하고 물었더니 스펄전 목사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끼면 그날부터 당신 때문에 그 교회의 완전은 깨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가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가정에 이런 저런 문제가 있습니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어떤 가정들은 그 갈등 때문에 가정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가정은 그 갈등 때문에 더 화목하고 복된 가정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갈등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2. 오늘 우리는 우리들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가족간의 갈등을 어떻게 대처하여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아브람과 롯의 가정에 닥친 갈등과 위기를 아브람이 어떻게 해결하는가 주목해봅시다. 

창세기 11:27 이하를 보면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 세 아들을 낳았는데, 하란은 아들 롯을 낳고는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롯은 할아버지 데라 밑에서 삼촌 아브람과 나홀의 도움을 받으며 삽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데라도 하란에서 죽습니다. 이제 롯은 삼촌 아브람을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며 함께 살게 됩니다. 아브람은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이주하여 살게 되는 데 그 땅에 가뭄이 있어서 먹고 살기 위해 아내와 조카 롯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에서 아브람은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여서 아내를 애굽왕 바로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아내를 바로에게 준 댓가로 양과 소와 노비와 나귀와 약대를 많이 보상받았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노하셔서 아내를 되찾게 되어 애굽에서 나와 다시 전에 살았던 가나안으로 올라왔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깁니다. 아브람과 조카 롯은 애굽에서 나오면서 양떼와 소떼 등 가축의 소유가 아주 많아졌습니다. 그 많은 짐승들에게 먹일 목초지가 부족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습니다. 목초지 때문에 아브람의 일꾼들과 롯의 일꾼들 사이에 다툼이 자주 생겼습니다. 

여러분, 부당하게 번 소득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킵니다. 잠시 호화롭게 살른지 모르지만, 그 돈 때문에 가족간에 불화하고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람과 롯의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소유가 풍부해지면서부터입니다. 그러니까, 갈등의 원인은 욕심입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형태의 갈등, 그 원인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노부모 봉양문제, 자녀교육문제, 경제적 문제, 본가와 처가 두 집안 사이의 문제, 이런 문제들은 공히 누가 좀 더 고생을 적게 하려고 하나, 누가 좀 더 피해를 적게 입나, 누가 좀 더 지분을 많이 차지하나, 누가 더 힘을 많이 행세하나로 귀결합니다. 겉으로는 부모봉양문제, 자녀교육문제, 경제적 문제, 두 집안 사이의 갈등문제이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옛 사람과 새 사람 사이의 갈등입니다. 육체의 욕심대로 살 것이냐, 성령의 뜻대로 살 것이냐 사이의 갈등입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충동과  많은 사람의 종이 되라는 부르심 사이의 갈등입니다. 다시 말하여, 가족 갈등의 본질은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좀 더 낮아지지 못하고, 내가 좀 더 섬기지 못하고, 내가 좀 더 대접받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생깁니다. 남편에게 섭섭하다고, 아내에게 섭섭하다고 느끼는 감정, 소위 섭섭증이라는 것은 영적인 문제요 신앙의 문제입니다. 결국 부부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이렇게 가족갈등의 본질을 사회학적으로, 성적으로, 생물학적으로만 보지 않고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볼 때 문제는 의외로 단순하고 쉽게 풀릴 수도 있습니다. 


3. 아브람과 롯 사이의 갈등을 아브람이 어떻게 대처하고 풀어나가느냐 살펴봅시다. 
8절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목초지 문제 때문에 서로 다툰 것 자체가 아브람은 조카 롯에 대해 섭섭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키워주었더니 이제 삼촌과 경쟁하려한다.” 삼촌의 자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조카가 몹시 싫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존심이고, 삼촌의 지위고, 체면이고 다 포기하고 조카 롯을 만났습니다. 솔직한 자세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너와 나는 한 핏줄인데, 내 목자와 너의 목자간에 다투는 일은 생기지 말게 하자는 것입니다. 

갈등이 생길 때에 갈등을 해결하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말을 걸라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힘있는 사람, 우위에 있는 사람이 먼저 말을 걸라는 것입니다. 
말을 걸되, 대화를 하되, 잘 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덧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운전을 하다가 “오늘은 왜 이리 차가 많이 막히는 거야?” 라고 하는데, 아내가 “왜 그리 성급해. 느긋하게 생각해. 별로 안 막히는구먼.” 이렇게 반박하면 말한 사람이 또 화가 납니다. ‘내가 뭐 성급하다고? 안 막힌다고.’ 이러다가 더 큰 문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차 많이 막힌다’ 고 하면, 어떻게 말하면 됩니까? 
“야, 정말 많이 막힌다. 당신, 많이 힘들겠다.” 이렇게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먼저 공감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만든 후, 다음 단계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적극적인 경청’ 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면서 듣는 것을 말합니다. 

대화를 하되, 적극적인 경청을 하면서 말하는 것,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합니다. 


4. 9절을 보십시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역시 아브람이 어른입니다. 조카 롯에게 양보합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합니다. 롯이 먼저 좋은 곳을 선택하도록 양보합니다. 

갈등을 해소하는 두 번째 단계는 이것입니다. 힘있는 사람이 먼저 양보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양보와 포기, 이것은 어른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어린아이는 절대로 양보 안 합니다. 끝까지 자기 것을 지키려 합니다. 자기 주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양보하는 사람,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 그 사람이 어른이요, 더 성숙한 사람입니다. 끝까지 싸워서 이기는 것,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경쟁에서 이길지는 몰라도 인간관계는 깨어집니다. 많은 경우에, 지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5. 여러분,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브람도 처자식이 있고, 꿈이 있고, 성공해야 하는 부담도 있는데 말입니다. 조카의 얄미운 행동을 바로 잡아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약자를 배려하여 양보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본문에서 찾아봅시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브람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13장4절을 보면, 아브람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먼저 한 일이 하나님께 단을 쌓고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즉,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18절에도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고 했습니다. 

아브람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거기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의 삶을 살았습니다. 가정의 갈등과 위기를 지혜롭게 풀어가는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 바로 예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 위로, 치유, 평안을 얻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할 때, 가족간의 갈등을 신앙의 문제, 영적인 문제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그러면 단순하게 풀어갈 수 있습니다. 
“내게 문제가 있구나.”  “내가 잘 도와주지 못했구나.”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이렇게 깨닫게 되면, 갈등은 해소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일상생활에서 늘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집중함으로  가족간의 갈등을 지혜롭게 대처하고 해소해갈 수 있는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하나, 아브람이 지혜롭게 갈등을 풀어갈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에서 나왔습니다. 아브람은 롯을 데리고 높은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롯이 사방을 둘러보니 동쪽 요단강쪽의 평야지대가 물이 넉넉하고 에덴동산같이 풍요로왔습니다. 그곳이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롯은 넓은 평야지대인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선택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지역이었지만, 13절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고 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나중에 이 소돔과 고모라 지역이 유황불로 망하지 않습니까? 

롯이 좋은 평야지대를 선택하고 이제 남은 곳은 험하고 쓸모없는 산악지대입니다. 그곳이 아브람이 거주할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괜찮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막에서도 강을 내고 광야에서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하신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았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

아브람은 어디로 가든지 거기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그곳이 천국이요 축복의 땅임을 믿었습니다. 
어디에 있든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심을 믿었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셔 말씀하십니다. 
14-17절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은 삼림이 우거진 숲입니다. 목초지가 아닙니다. 좋은 땅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삭막한 땅을 보라고 합니다. 그 메마른 땅에서 아브람의 후손들이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라” - 이 말씀은 현재를 보지 말고 미래를 보라는 뜻입니다. 
현재는 쓸모없는 땅처럼 보여도 앞으로 노다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당장은 손해보는 것 같아도, 먼저 양보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십니다. 

1867년 미국은 소련 땅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를 주고 샀습니다. 그 땅은 거대한 얼음덩어리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쓸모없는 땅처럼 보였습니다. 미국 본토의 1/5이 넘는 엄청나게 넓은 땅 알래스카, 그 땅을 사자고 당시 미국 국무부장관 윌리엄 수어드는 상원의원들을 설득했습니다. 
의원들은 “그렇게 큰 얼음통(Ice Box)이 도대체 어디에 필요한 겁니까?” 
“얼음이 필요하다면 미시시피 강의 얼음을 깨다가 장관 집이나 채우시오.”

수어드 장관은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눈 덮인 알래스카를 보고 그 땅을 사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감추어 있는 무한한 보고를 바라보고 사자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자는 것입니다.”

미국이 알래스카를 산 지 30년이 지난 후인 1897년 알래스카에서 금광이 발견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소 냉전체제가 시작되자, 소련 코 앞의 알래스카에는 소련을 향한 공격 및 방어용 미사일이 배치되었습니다. 소련 정부는 두고두고 후회했습니다. 1968년 에는 알래스카에서 대형 유전이 발견되면서 대박이 터졌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현재를 보지 말고 미래를 봅시다. 우리 세대만 생각하지 말고, 다음 세대를 생각합시다. 지금 좋은 것을 선택한 롯은 소돔 고모라의 멸망으로 아내를 잃고 가진 재산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좋은 것을 조카에게 양보한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잘 되고 형통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정을 보면, 어려운 가정도 있습니다.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으십시오.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가족간의 갈등을 신앙의 문제, 영적인 문제로 보고 풀어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에도 아브라함의 축복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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