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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년주일] 청년아, 창조주를 기억하라 (전 11:9 ~ 전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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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 창조주를 기억하라 (전 11:9 ~ 전 12:2)

우리 교단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에서 청년주일을 제정한 지 25주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청년주일에 성년의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청년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31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여 33세에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12제자들 역시 20대의 젊은 청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선지자로 활약한 순교자 세례요한도 3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의 복음을 들고 내한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나이 26세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25세 때에 수도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프란시스 사비에르는 28세 때에 예수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27살에 95개조문의 반박문을 내걸고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으며, 요한 칼빈도 27세 때에 기독교에 있어 불후의 명작인 기독교강요를 저술하였습니다.   18세기의 유명한 부흥사인 죠지 휫필드는 21살 때에 노방전도로 명성을 날렸고, 스펄전 목사는 17살 때부터 설교자로 나셨습니다. 그리고 27살 때에 영국에서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대각성운동의 선구자인 D.L 무디는 20살 때에 설교자로 전도자로 활약하였으며, 아프리카의 아버지 리빙스톤은 23살에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청년의 때의 위대한 꿈을 실현하여 일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간 사람을 들어보라고 하면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여러분, 청년이란 말을 말하거나 들으면 가슴이 설레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까?  나이가 들면서 지나가는 청년들을 보기만 해도 정말 좋아 보입니다.  우리에게도 청년 시절이 있었지만, 그 때는 청년이 좋은 줄 몰랐는데, 이제는 청년들이 모여 일하는 것만 보아도 멋져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젊었으니까 그렇습니다.  아직도 성장할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실 때에, 어린 아이로 지으시지 않고, 노인으로 지으시지 않고 한참 일할 수 있고, 사랑하고 가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청년으로 지으셨습니다.  청년의 날은 열심히 일해야 하는 때입니다. 

가수 안치환은 ‘청년’이란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사가 참으로 좋습니다.  

“우리들은 저 차가운 파도를 가르며 불어오는 바람이어라/ 우리들은 저 영광의 초원을 달리는 불타는 정열이어라/ 너와나 가슴 언저리에 쌓여있는 고통의 그늘을 벗고/ 시들지 않는 강철 같은 꽃잎으로 피어오르리라// 우리들의 자그맣고 따스한 손길이 이웃의 소금이 되고/ 우리들의 힘찬 깃발 펄럭이는 곳 사랑의 빛이 되리니/ 너와나 가슴 언저리에 쌓여있는 고통의 그늘을 벗고/ 꺼지지 않는 정의의 횃불로서 이 세상을 밝혀 나가리”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전도자가 청년을 부르고 있습니다.  전11:9절에서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하십니다.  

청년들에게 젊을 때, 젊은 날을 기뻐하며 즐기라고 하십니다.  청년의 때에는 자기의 마음의 소원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에 소원하는 것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의 눈이 보는 대로 좋은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청년의 때에는 무엇이든지 해보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를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전도자가 강조하는 것은 청년이란 때는 인생의 황금기로서 자기의 꿈과 이상을 펼칠 수 있고, 자기의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적성에 맞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시면 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어떤 일을 하느냐, 무엇을 전공하느냐, 어떤 일에 전문가가 되느냐는 것은 여러분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는 성실과 정직을 생명처럼 알고 살아간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황토를 가지고 도자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불이 없이는 도자기는 탄생할 수 없습니다.   진흙덩어리가 도자기가 되려고 하면 고운 흙가루가 되기 위하여 메질을 하고, 물에 담가놓고, 발로 짓이기고, 물레 위에서 도공의 손에서 규모 있게 빚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어떤 그릇이 만들어졌다고 하여 도자기가 된 것이 아닙니다.  뜨거운 불을 만나야 아름답고 화려한 도자기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올 때에 그것을 인내하면서 받아들일 때에 명품 도자기가 나오는 법입니다.    뜨거운 수천도의 고로에 들어갔다고 나와야 멋진 도자기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고장 난 냉동실에 얼어죽은 청년”이란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한 청년이 더위에 지쳐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눈앞에 커다란 냉동실이 나타났습니다. '냉동실은 얼마나 시원할까 !' 청년은 호기심을 물리치지 못하고 냉동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철컥하고 냉동실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안에서는 냉동실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은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습니다.  그는 몇 시간을 그렇게 매달리다가 절망감에 사로잡혀 인생을 포기하면서 유서를 썼습니다. “이젠 완전한 절망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죄어온다. 내 몸은 점점 얼음으로 변하고 있다.  조금 후면 꽁꽁 얼어 죽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틀 후 냉동실에서 숨진 청년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냉동실은 놀랍게도 고장이 나서 전혀 작동이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실내온도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섭씨 15도였으며 산소도 충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싸늘히 식어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절망이라는 이름의 독약입니다.   절망과 공포는 썩은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냉철하게 판단하시고, 침착하게 행동하시고,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솔로몬 왕은 인생이란 무엇보다도 책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사람은 그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도 자기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런 선택에는 무한책임도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새번역에 보면 “다만, 네가 하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라.”고 하십니다. 

전도서라는 책은 솔로몬왕의 저작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솔로몬 왕은 젊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였고 이어서 왕궁을 짓고, 태평성대를 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이방 여인들을 첩으로 맞이하면서 향락에 빠지고 죄악에 빠지므로 마지막이 좋지 않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마침내 하나님 앞에 설 때가 다가오면서 사람이란 자기의 인생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이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청년의 때는 순수해야 합니다. 정의로워야 합니다.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뜻을 이루어드리는 때로 살아야 합니다. 

시119:9에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한 사람을 쓰실 때에, 깨끗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어떤 부잣집에는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나무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습니다.  어떤 그릇은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인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은 준비된 그릇인데,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큰 집의 그릇의 비유를 말씀하신 바울은 결론적으로 청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딤후2:22입니다.  “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의 때에 세상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영국의 극작가 골드 스미스라는 분은 “청년은 친구를 통해 세상사를 배운다”고 했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을 통하여 세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통하여 세상사를 배운다는 말은 참으로 중요한 말입니다.   그래서 친구를 잘 새겨야 하고, 친구를 잘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못한 친구를 새기므로 잘못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10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고 하셨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젊음도 검은 머리도 물거품 같은 것, 네 마음에서 걱정을 떨쳐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스러운 일을 흘려버려라.” 근심을 물리치고, 우리 마음에서 악을 제거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세요.  부정적인 생각은 흘려 보내세요.   우리의 삶에서 ‘내일’이란 단어를 사용하다 보면 모든 것은 내일로 미루는 습성이 생기게 됩니다.  ‘오늘’ 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일본의 한 사상가는 “오늘이란 말은 승자들의 단어이고, 내일이란 말은 패자들의 단어이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실패하는 사람은 항상 계획만 하다가 인생을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4에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세 종류의 인생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말하는 세 종류의 인생이란 다른 각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글을 보니, 세상에서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첫째, 다가가면 향기가 나고 왠지 포근한 사람. 둘째, 가까이 다가가도 맹물같이 무덤덤한 사람. 셋째, 하도 괴팍하여 가까이 가기가 두려운 사람이라”고 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라고 하니,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법학자요 정치가였던 프랜시스 베이컨 경이 말한 세 종류의 인간형이란 말도 있습니다.  베이컨은 인간을 곤충에 비교하면서 거미형, 개미형, 꿀벌형의 인간이 있어 거미형은 있어서는 안 될 사람, 개미형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사람, 꿀벌형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최근에 어떤 글을 보니, 세 종류의 인생을 말하는데, 첫째는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인생, 두 번째는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인생, 세 번째는 사명을 목적으로 하는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생존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좋으나, 사명을 목적으로 하는 인생이 정말 바람직한 인생입니다. 

일전에 “기적을 만들어낸 세여인!”이란 글을 보았습니다.  여성포털 사이트인 ‘이지데이’의 좋은 글 코너에 올라있는 글이었습니다.   

보스턴의 한 보호소에 앤(Ann)이란 소녀가 있었습니다.   앤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술에 절어 사는 아빠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다 보호소에 함께 온 동생이 죽는 것을 보고는 앤은 충격으로 미쳤고 실명까지 했습니다.   앤은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고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결국 앤은 회복 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치료를 포기했을 때 노(老)간호사인 로라(Laura)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로라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그냥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과자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을 쏟았지만 앤은 담벼락처럼 아무 말도 없었고, 앤을 위해 가져다 준 특별한 음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라는 앤 앞에 놓아준 초콜릿 접시에서 초콜릿이 하나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용기를 얻고 로라는 계속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앤은 독방 창살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조금씩 반응을 보이며 가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얘기했고, 그 얘기의 빈도수도 많아졌습니다. 

마침내 2년 만에 앤은 정상인 판정을 받아 파킨스 시각장애아 학교에 입학했고, 밝은 웃음을 찾았습니다. 그 후, 앤은 자기를 구해준 로라가 죽는 시련도 겪었지만 앤은 로라가 남겨준 희망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했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에도 성공했습니다.  앤은 시각장애를 극복하였고, 시각장애자들이 배우는 점자를 익혀 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수술 후 어느 날, 앤은 신문기사를 봤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  이라는 구인광고였습니다. 

앤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그 소녀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람들은 못 가르친다고 했지만 앤은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결국 사랑으로 그 아이를 20세기 대 기적의 주인공으로 키워냈습니다.   그 아이가 "헬렌 켈러" 이고, 그 선생님이 앤 셜리번(Ann Sullivan)입니다. 노간호사 로라는 미쳐버린 앤과 함께 있어주었고 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앤을 정상인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앤도 헬렌과 48년 동안 함께 있어주었습니다. 헬렌이 하버드 대학에 다닐 때는 헬렌과 모든 수업에 함께 하면서 그녀의 손에 강의내용을 적어주었습니다.  세상에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3중고의 어린 소녀를 하버드대학의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곁에 있어준 사람, 앤 셜리번이란 여성은 모든 선생님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보면 인생을 성공하는 것은 물론, 정말 보람 있는 생존이 될 것입니다. 

전12:1-2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곤고한 날이 다가옵니다.  아무런 낙이 없다고 할 때가 이릅니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는 날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청년의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한 동영상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넘어질 때가 있지만, 툭툭 털고 일어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명을 목적으로 하는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고, 자랑스러운 상급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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