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청년주일] 청년들아, 배우자 (전 12:1~2, 딤전 5:4)

  • 잡초 잡초
  • 377
  • 0

첨부 1


청년들아, 배우자 (전 12:1~2, 딤전 5:4)

휘트만이란 분이 말했습니다. “두 여인이 거닐고 있다. 젊은 여인은 예쁘다. 늙은 여인은 더 예쁘다”. 일반적으로 젊은 여인은 예쁩니다. 젊음 그 자체가 예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늙음도 예쁩니다. 아름답게 나이 드신 어른들이 참 많습니다. 나이 들면 미워지고 예쁘지 않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합니다. 젊은 사람은 늙은 사람을 통하여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르신들을 통하여 인격의 성숙함과 인생의 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면에서 배우는 사람입니다. “나는 가르치기보다 배우는 사람이 될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 지혜로운 자가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기원전 3세기 인도에 ‘마누법전’(Code of Manu)이 있었습니다. 이 법전에는 인생의 4주기에 대한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수명을 4등분한 길을 의미합니다. 인생을 80년 정도로 가정하여 적용시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학생기(0-20세)입니다. 이 때는 지식과 세상사를 배우는 시기입니다. 
둘째는 가장기(21-40세)입니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일하고 자기계발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셋째는 임주기(41-60세)입니다. 이 시기에는 일에만 매이는 생활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앞으로 인생을 생각하고 축적해온 연구, 기술, 능력을 체크하는 시기입니다. 
넷째는 유행기(61세- )입니다. 이때는 자신이 쌓은 연구와 기술과 능력을 후세에 남기고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활동하는 시기입니다.

  사막의 교부들의 말을 모아 편집한 ‘깨달음’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너무 일찍부터 남을 가르치지 말라. 그러면 남은 평생을 무지 속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한 평생 동안 이 세상을 아무리 많이 배워도 평생 다 배우지 못합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입니다.

  젊은이의 특권은 배우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게 되면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모든 사람에게서 항상 배우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기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배움으로써 젊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청춘이란 나이로 따지는 것이 아니며 태도의 문제입니다. 배움에 있어 앞으로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되, 삶에 대해서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진지하고 보람이 있고 즐겁습니다. 학자란 말은 히브리어로 ‘람단’이란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람단’이란 말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보다도 배우고 있는 사람이 더 존귀하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부모, 기성세대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입니까? 아무리 젊은 폐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생의 경륜은 절대 따라가지 못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더 많이 배우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을 배웁시다.

  전도서 12:1에는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청년의 때는 하나님을 배우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이 무슨 말입니까? 청년의 때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과 소망에 부푼 황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곤고한 날’은 히브리말로 ‘예메 하라아’이란 말입니다. 원어의 뜻은 ‘악한 날들’(the evil days)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노년에 맞게 될 ‘쇠약한 날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날이 오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인터넷에 떠 있는 고3 학생들의 급훈을 보면 치열한 경쟁을 실감하게 합니다. 공부할 때가 있습니다. 늦어서 후회말지 말고 공부할 때 해야 합니다.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2호선에 우리 인생이 있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등 재미 있는 급훈들이 많이 있습니다. 곧 곤고한 날이 이르게 됩니다. 공부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때가 옵니다. 얼마나 시간이 빠릅니까? 우리 교회 아이들도 보면 대학에 간다고 합니다. 얼마쯤 지나고 보면 졸업한다고 합니다. 또 잠시 지나면 결혼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방 아기 낳았다고 합니다.

  청년의 때는 하나님을 배우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청년의 때는 가장 명석한 시기입니다. 가장 힘이 있을 때입니다. 가장 힘이 있을 때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때는 무엇이든지 하기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건강은 언제 지켜야 하나요? 건강할 때입니다. 힘은 언제 지켜야 하나요? 힘이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건강하고, 힘이 있고, 기억력이 좋을 때 쌓아야 합니다. 바로 이때가 하나님을 배울 때입니다.

  ‘너의 창조자’는 ‘보레에카’란 말입니다. 이 말은 ‘바라’라는 창조하다는 말의 분사형으로 복수입니다. ‘너의’란 말은 2인칭 단수입니다. ‘창조자’란 말은 복수입니다. 개인의 창조자입니다. 모든 개인이 창조자로 고백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지음 받은 존재가 지으신 분을 모르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나를 만드신 그 분을 열심히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을 만드신 하나님을 열심히 배우세요.

  옛날 어른들이 믿던 그 하나님을 열심히 배우세요. 구약성경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조상 대대로 믿어오던 하나님입니다. 그 조상이 믿고 가르쳐주던 하나님입니다. 우리도 우리 부모, 선조들을 통하여 그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에 충성하는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주일성수하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십일조 하는 정성을 배워야 합니다. 봉사하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 성경 읽는 모습,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옛날 어른들의 예수 믿는 모습은 정말 감격적입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부흥회를 보면 월요일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했습니다. 새벽기도 마치고 아침 먹고, 오전 성경공부하고 점심 먹고, 오후 성경공부하고 저녁 먹고, 저녁에 또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토요일 새벽기도까지 했으니 얼마나 열심히 했습니까? 요즘은 줄이고 줄여 월요일 저녁부터 수요일 저녁까지 해도 강사님을 청해놓고 목사가 애간장이 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 때와는 환경이 다릅니다. 그래도 더 달라진 것이 우리의 믿는 자세입니다. 옛 어른들을 통하여 신앙의 삶을 배울게 너무나 많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설교를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행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든지 열심히 힘써 배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호세아 6:3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가장 힘써야 할 일은 하나님을 아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배우는 일입니다. “주를 알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씀처럼 무엇보다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 좀 더 욕심을 내야 합니다. 간절히 소망하고 원하므로 하나님을 잘 아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에릭 호퍼라는 이가 말했습니다. “시대가 급변할 때 미래를 물려받는 자는 바로 배우는 자(learner)이다. 흔히 배운 자(learned)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배우는 자만이 미래에 적응합니다. 미래를 전수합니다. 미래에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제자란 말의 헬라어는 ‘마세테스’입니다. 성경에 이 단어가 269회나 나옵니다. 문자 그대로 ‘마세테스’는 배우는 자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는 모든 예수 믿는 자를 제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제자입니다. 제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누구나 다 배운 사람이 아니라 계속 배워야 하는 사람입니다.

  공자는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하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큰 위험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이렇게 바꾸어 보세요. “배우되 하나님을 모르면 실패하고, 하나님을 알되 배우지 않으면 큰 위험에 빠진다”. 하나님을 이미 알지만 계속 배우지 않으면 아집에 빠지고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고, 자신에게도 유익이 없는 삶을 삽니다.

  바울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많이 배우세요. 성경은 책망하고, 교훈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천국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이 지혜를 배우세요. 인격을 배우세요. 하나님을 배우세요. 여러분의 부모님, 어르신들을 통해 하나님 그리고 바른 신앙생활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부모님 교회 안 다니시는데요?” 그러지 말고 꼭 교회에 다니시게 하세요.

둘째, 삶의 지혜를 배웁시다.

  디모데전서 5:4에는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고 합니다. 삶의 지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십니까? 효입니다. 효는 인간에 대한 모든 지혜의 근본입니다. 효를 알지 못하는 삶의 참 지혜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효가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라고 합니다. ‘먼저’란 말은 헬라어 ‘프로톤’으로 ‘첫째로’(first of all)란 의미입니다. 집안에서 효를 행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중요한 일임을 가르칩니다. 효가 인간관계의 가장 우선이며 근본인 것을 말합니다.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고 합니다. ‘보답’이란 말은 되돌려 줄 것을 주라는 의미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보상하라는 말입니다. 효를 배우고, 보답을 배우는 것이 삶의 근본을 배우는 것입니다. 삶의 근본 지혜는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이며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옛말에는 ‘효문(孝門)에서 충신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양의 격언에는 “어려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나이 들면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효는 삶의 근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모든 일이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비결입니다. 이것이 성경적 가르침입니다. 효도해서 손해보고, 안 되는 사람을 혹시 봤습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늙은 원숭이는 덫에 걸리지 않는다’, ‘늙은 고양이는 절대로 화상을 입지 않는다’, ‘사냥할 때는 늙은 개가 제일이다’는 서양의 말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경륜과 삶의 지혜란 나이가 들면서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이런 삶의 지헤가 중요합니다. 젊은이들은 어른들로부터 이런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레위기 27:16에는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합니다. 때로는 젊은이들이 부모가 무엇을 가르치거나 나무라면 “그 때하고는 달라요”, “엄마는 몰라요”, “아빠는 차원이 틀려요”라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말은 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말들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지고 진보했다고 하지만 사람이 사는 근본은 절대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것은 성경대로 하면 저주받을 것입니다. 무섭지요? 저주 받지 않고 축복받는 젊은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 네로 시대의 철학자 세네카는 “삶 전체를 통해서 사람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인생을 통해서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 어른들을 통하여 삶을 배우세요. 그리고 죽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인생에는 연륜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아무리 좇아가도 따를 수 없고, 아무리 애써도 능가할 수 없는 지혜가 어른들에게는 있습니다. 세상에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게 가르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눈을 열고, 귀를 열고, 가슴을 열고 많이 배우세요. 이것이 현명한 삶의 자세입니다. 삶을 진지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희랍의 신화에 이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젊은 이카로스가 태양까지 가보려는 욕망에 꾀를 냈습니다.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여 태양을 향해 날아갑니다. 그는 힘이 있다고 너무 높이 날아서 밀랍이 녹아 바다 속에 추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늙은 아버지 아이달루스는 높이 날지 않고 낮게 비행하여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힘만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지혜가 힘을 능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라는 스승을 통해서 영감을 받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디모데는 스승이며 아버지 같은 바울을 통해서 목회를 배웁니다. 마가는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전수받아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삶의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엘리사는 길갈에서 여리고까지 끈질기게 스승에게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따라갑니다. 엘리야는 따라오지 말라고 했지만 엘리사는 끝까지 따라갑니다. 이 열정이 엘리사가 엘리야 못지않은 선지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스승보다 더 많은 기적을 베푸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생의 축복입니다. 좋은 삶의 스승을 만나는 것은 영혼의 축복입니다.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부모와, 스승과, 어른이 꼭 있기를 바랍니다. “스승만한 제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스승은 훌륭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도 있습니다. 푸른색이 남색에서 나왔지만 남색보다 더 푸릅니다. 스승에서 제자가 나왔지만 스승보다 제자가 더 훌륭합니다. 스승보다 나은 제자가 되세요. 부모보다 나은 자녀가 되세요. 잠언 23:25에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합니다. 언제 부모가 기뻐합니까? 더 많이 배우고, 더 성장하고, 부모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이름을 드러내어 부모를 영화롭게 하고, 삶의 지혜를 가지고 살고, 세상에서 지헤롭게 잘 살고, 건강하게 살면 기뻐할 것입니다.

결론 

  로마 정치가 카토는 80세에 그리스어를 배우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어떻게 어려운 그리스어를 배우겠느냐?”고 했더니 그는 “내게 남아 있는 날 가운데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네”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늙어서 배우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잠언 4:3에는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라고 합니다. 부모에게 자녀는 누구나 어린아이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부모 보기에는 유약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하지만 부모가 보기에는 아직도 어린 아기같이 지혜가 부족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세계 최고의 사람, 일류에게도 코치가 필요합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배워야 완벽으로 나아갑니다. 젊을 때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세요. 우리의 부모가 우리의 신앙과 인생의 코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어르신들과 스승과 선배가 인생의 코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의 청년들이 부모님, 어르신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신앙과 인생의 지혜를 배워 그들을 능가하는 사회와 교회의 인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