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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웨슬리]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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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오늘은 교회력으로 초교파적으로 삼위일체주일입니다. 그리고 감리교에서는 감리교의 창시자이신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회심 270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삼위일체주일은 스톨이 하얀색이고, 대부분의 교회들이 오늘 하얀색의 스톨을 하겠지만, 우리는 요한 웨슬레의 회심을 기념하고 그가 성령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기념주일이기에 오늘 우리교회는 빨간 스톨을 하기로 정하였습니다. 오늘도 이 의미있는 주일에 모여 함께 예배하는 우리의 자리에 여러분의 심령에 요한 웨슬리에게 역사하셨던 성령의 역사하심이 공히 우리 속에도 역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 목요일-금요일에 예정하였던 대로 우리 교회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모시고 지리산에 다녀왔습니다. 온 교인과 교회가 그 분들을 대접하는 행사였기에 어르신들도 아주 즐거워하고 흐뭇해하시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박장로님이 어느 목사님이 하시는 부흥회 Tape를 갖고 오셔서 함께 들었습니다. 장로님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진짜 웃기는데, 한 번 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귀기울여 잘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정말 웃기고, 교인들은 많이 웃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강사 목사님이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기도 하지만, 먼저 모인 사람들이 처음부터 웃을 준비가 되어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러니 강사 목사님이 무슨소리를 해도 웃습니다. 강사 목사님이 ‘아이고 여러분, 오늘 참 잘 오셨습니다.’하기만 해도 와~ 하고 웃습니다. 손만 들어도 와~ 하고 웃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 교인들은 안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설교 시간에 웃는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은혜 받을 준비, 아멘으로 화답할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Wesley 회심 기념주일 오늘 이 시간에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주시는 말씀을 받아 ‘아멘’으로 응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살아있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의 마음의 문이 열려야 우리에게도 큰 은혜와 복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저 와서 안 웃을 준비하고 와서 마음 문 꼭 닫고 앉았다 가시지 마시고, 마음을 활짝 열고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은 어떤 말씀인지 기대하며 한 말씀이라도 한 단어라도 내게 주시는 말씀을 받아 간직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때 ‘아멘’해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많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선물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독생자 예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령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좋은 선물이 내 것이냐 다시 말하면 진짜 예수님을 영접 했는가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나 영적으로 만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책으로, 지성으로, 이론으로 아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는데 도우미가 성령이며, 진정한 예수님과의 만남의 증거가 성령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 두 가지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내가 진정 예수그리스도를 만났느냐, 정말 내 속에 있는 성령을 인식하고 그것을 밝히 드러내고 있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 여러분의 것이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1735년 10월 14일 그의 동생 찰스 웨슬레와 같이 신대륙 아메리카의 인디안을 위한 선교사로 배를 탔습니다. 그의 일기에 보면 1736년 1월 25일 토요일, 몇 일 동안 계속되는 높은 파도에 겁에 질리고 지쳐있는 그들 앞에 전혀 다른 모습의 독일사람 모임을 보게 됩니다. 영국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으나 독일 사람들은 조용히 찬미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웨슬리는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당신은 무섭지 않았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아니요,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부인들과 아이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부드럽게 ‘아닙니다. 우리들의 부인들과 아이들은 죽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 후 배가 사바나(남쪽 조지아)에 도착 한 후 어느 날 독인인 그룹 리더인 오글돌프 목사를 만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중에 웨슬레에게 묻습니다. ‘그대는 예수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나는 잠시 있다 ‘나는 그가 온 세상의 구세주인 줄 압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이에 응답하기를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바로 당신을 구하셨다는 것을 믿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나는 그가 나를 위해 죽으셨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였다. 1736년 2월 7일의 일기 내용입니다.

이런 모습의 이런 부끄러운 모습의 웨슬레 목사는 미국 인디안 선교를 실패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2년 4개월 만에, 1738년 2월 1일 영국 땅으로 돌아옵니다. 영국 옥스퍼드의 대학교수였고, 누구보다 많이 알고, 누구보다 경건한 생활과 규칙적 생활을 하였으며, 열정적 신앙으로 봉사하고 헌신하였던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실패의 아픔이요 갈등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 웨슬레 목사를 그냥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1738년 5월 24일 그의 일기에 보면,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 더 스케잍 거리에 있는 한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아홉시 15분전 경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구원을 위해 다만 그리스도만 믿고 있음과 그 위에 주께서 나의 죄를, 아니 나의 죄까지도, 다 걷우어 가시고 나의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 주셨음을 믿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다. 나는 그 때 전력을 다하여 유별나게 나를 모욕의 대상으로 삼고 또 핍박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나는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 앞에서 방금 내가 처음으로 내 마음 속에 느낀 바를 공개적으로 간증하였다. 

그 후 웨슬레 목사의 발걸음은 달라졌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따르기 시작하였고 그의 움직임은 감리교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전 영국에 그리고 신대륙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원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감리교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는 1703년 6월 17일에 태어났으며, 88세의 나이로 1791년 3월 2일 오전 10시에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의 출생일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요. 그의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요. 1738년 5월 24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이상하게 그의 가슴이 뜨거워 진 날, 곧 성령을 받은 날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날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의 세례받음. 그의 기도 생활과 성경공부. 성직자가 된 것과 설교, 전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헛된 것이란 말인가? 쓸데없는 일이란 말인가? 물론 그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묻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런데 그들은 대답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 ‘어떤 제자들’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의 제자는 물론 아니고 사도행전에서 (누가의 자료)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나중에 보면 세례 요한을 따랐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또 하나 세례 요한이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며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세례요한은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성령을 받지 못하였단 말입니까?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성경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 자체가 성령의 감동하심이 없이는 불가능 하다면 ‘성령이 있음을 듣지 못하였노라’는 말이 과연 무슨 말이겠습니까. 성령을 받지 못하였음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하심을 몰랐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습니까? 그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면, 이미 여러분에게는 성령이 임재하셨습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의 충만하신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경우에도 이미 성령의 도우심이 그를 목사로, 선교사로 세우시고 열심을 주셨지만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1738년 5월 24일 밤. 그의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으로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 5-6절에 보시면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방언도하고 예언도 하였다’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하신 선물 두가지는 곧 독생자 예수와 성령인데 이것은 상호 보완관계요 곧 하나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또 다른 선물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것이 동시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을 때에 성령은 이미 내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있음을 듣지 못하였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바울의 말도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자극하기 위하여 의문문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방언도하고 예언도 하였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믿을 때에 임하셨던 성령님, 이미 그들 속에 함께 하시매도 알지 못하고 있는 그 성령님을 바울이 안수하므로 드러나게 된 것을 말한다고 믿습니다. 

바울이 성령을 불러오는 사람도 성령을 배급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만 자극하여, Touch하여 안수하여 성령이 들어나게 하시고 그 성령의 역사하심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내가 믿을 때에 성령이 내게 임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 시간 목사인 제가 여러분을 자극하여 여러분 속에 있는 성령님이 밖으로 들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임재하여 계신 성령이 기도하므로 충만하여 역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성령이 들어나시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가슴에 손을 얹으십시오. 육체의 연약한 부분이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 손을 대십시오. 이제 이 종이 바울이 안수하였듯이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성령님이 밖으로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이미 내 속에 임재하신 성령님이여,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고 원하옵기는 이제 그 성령님이 밖으로 드러나기를 바라고 원하옵나이다. 사랑의 능력으로, 기쁨과 평안의 능력으로, 방언과 예언의 은사로, 치유의 역사로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 놀라운 능력으로 드러나기를 바라고 원합니다. 그 성령을 억제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 못된 생각으로 그 성령을 소멸치 않기를 바랍니다. 그 성령이 내게 없다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여 이 시간 오셔서 바울의 기도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예언하고 방언한 것처럼 오늘 우리 속에 있는 그 성령이시어, 밖으로 드러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옛 날에 일본에 ‘우찌무라 간조’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 밑에서 공부한 제자들 중에 함석헌, 김교신과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일본인 제자 중에 ‘야히하라’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가 우찌무라 간조 밑에서 성경을 배우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경 제국대학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이 하는 짓이 못마땅하게 여겨졌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고 중국 대륙을 쳐들어갈 때 이래서는 안 된다고 외쳤습니다. 결국은 나라에서 그를 교수직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게 됩니다. 나라의 정황이 바뀌면서 그는 존경받는 인물이 됩니다. 제국대학교가 아닌 동경대학교의 총장이 되어 귀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어느 날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총장님, 만일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면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습니까?’ 총장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안 태어나고 싶습니다’ ‘어째서요?’ ‘일본은 우상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일본에서 예수를 믿게 된다는 것은 매우 적은 확률입니다.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고 대답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예수를 알고 예수를 만나 구원 받았다는 사건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를 믿음으로 보혜사 성령을 선물을 받게 된 것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드러내십시오. 그 성령님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그 성령을 없다하지 마십시오. 드러내십시오. 증거하십시오. 그리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함께 충만하여 여러분의 생애를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웨슬레와 함께 하셨던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이 나라를 바꾸어 놓으실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부흥케 하신 성령의 불같은 역사가 오늘 이 교회 위에도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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