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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과 복을 택하라 (신 3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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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복을 택하라 (신 30:11~20)

사람은 누구나 사망과 화를 싫어하고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생명과 복은 저절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망과 화를 면하고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려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는 올바른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느 책에서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말씀은 모세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기록했습니다. 때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의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이 마쳐갈 즈음이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둔 모압 평지에서 모세는 자기의 사명을 다했음을 알았습니다. 그 때는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되었던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죽었고, 그들의 자녀 세대가 성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모두 죽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고 사사건건 원망, 불평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자기의 사명을 마칠 날이 가까운 것을 안 모세는 온 백성을 그 앞에 불러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행할 법도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명기는 모세의 유언과도 같으며, 구절마다 이스라엘 자손을 향한 모세의 간절한 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저는 본문 말씀에 근거해서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는 길에 대하여 상고함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생명과 복을 누리려면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복 주시는 분으로 계시합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1)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고 하셨습니다. 

방금 인용한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인생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시므로 우리에게 능히 복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아닌 자들은 복을 내려줄 수 없습니다. 능력 있는 천사들도 우리에게 복을 줄 수 없으며, 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복을 주는 일이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오직 하나님께 복을 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우상에게 절하며 복을 구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이사야 41장 21절로 24절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21)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22)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23)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24)과연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흔히,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아 불가능한 일을 하는 것을 일컬어 한자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합니다. 곧 물고기를 얻기 위해 나무에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 구해야지, 우상에게 가서 복을 구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이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도님 여러분은 우리로 하여금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생명과 복의 주관자이심을 알았으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 생명과 복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모세는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입성을 앞둔 백성들에게 복 받는 방법을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너희에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 그것은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무엇을 행해야 할 지 알아보고자 사자를 하늘에 보낼 필요가 없으며, 먼 바다를 건널 것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너에게 심히 가깝게 있다. 그 말씀은 돌판에 새겨졌으며, 책에 기록되어 네 손에 들려 있다. 다시 말해서,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가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지켜 행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매우 쉬운 것입니다. 어른들은 물론이요 어린아이들도 얼마든지 듣고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이 너무나 난해하고 행하기 어려워서 준행하지 못했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신구약 성경 66권이 곧 하나님의 명령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한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 같지 않아서 애매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한 번 하신 말씀을 뒤집거나 취소하는 법이 없으십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한 말을 실행하지 못하고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그만큼 신실하지도 못하고 그만한 능력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외하는 하나님은 진실무망하신 분이시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 23:19) 하신 대로 절대적으로 신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이 우리 손에 들려져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보통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것으로 그 속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고,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는 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치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성경을 가까이 하여 읽어야 합니다. 세상 학문은 아무리 많이 알더라도 영적인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소위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는 망발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하심으로 그러한 자들을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기를 위하여 성경 말씀을 부지런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를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창조주되심과 그 크신 능력과 지혜를 알게 될 것입니다. 율법서를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법도의 의로움과 그 속에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 오경과 선지서들을 통해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을 대합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의 복음서를 통해서 메시야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이 온전히 성취된 것과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에 대하여, 그리고 다른 서신서들을 통해서는 교회와 성도를 위한 권면을, 마지막으로 계시록을 통해서는 종말에 있을 사건들과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고, 또 생명과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성경 말씀을 사랑하여 부지런히 읽고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10)라고 하였고, 솔로몬은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 6:23)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다원화 시대 또는 탈규범의 시대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지켜온 도덕규범이나 생활 방식이 힘을 잃고, 사람들은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자손들과 같이 저마다 제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불변하는 규범인 하나님의 법도에 착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풍조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몰려간다고 해서 바른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길은 어느 것이나 생명과 복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본받지 말고 성경 말씀에 입각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 째로, 우리가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려면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모세는 당부하기를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려면 우리의 신앙생활의 두 가지 면을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 하나는 신앙의 대상을 올바로 선택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신앙의 방법이 올발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잘못되면 올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먼저, 신앙의 대상에 관하여 생각해 봅시다. 우리 신앙의 대상, 경배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십니다. 이 세상에 민족과 종족에 따라서 셀 수 없으리만치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인도인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이 얼마나 많은지 팔천만이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이 다 신인 셈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 전도 여행을 갔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겨진 제단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은 이름이 있건 없건 간에 다 헛것이요 무익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섬기는 하늘의 해와 달, 별들이나 바다, 바위, 나무 등은 손으로 만들어 세워 놓은 우상들과 마찬가지로 말도 못하고 화를 내리거나 복을 내릴 수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지음 받은 피조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거역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을 우상의 노예로 만듭니다. 에리히 프롬은 말하기를 “우상들은 자유로워질 수 없는 신들이다. 우상을 숭배하면, 인간은 스스로 사로잡힌 존재로 행동하고 자신이 해방되는 것을 포기한다. 우상들은 살아 있지 않은 신들이다. 그러한 신들을 숭배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 사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하기를 현대인들에게는 돈이나 쾌락, 명예, 권력과 같은 것들이 우상이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돈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돈을 사랑하게 되면 그 때부터 돈이 우상이 됩니다. 황금만능주의, 배금주의 사상이 현대인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고 하였습니다. 또 현대인들은 쾌락 추구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먹고 마시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시간과 정력과 돈을 낭비합니다. 그것은 쾌락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고 하였습니다. 

또 현대인들은 권력을 추구합니다. 정치적인 권력을 얻기 위한 정치가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일반인들 역시 권력을 추구합니다. 곧 사회적인 출세, 성공을 병적으로 추구할 때 그것이 곧 우상 숭배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서 11장 38절에 보면, 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세력의 신을 공경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비록 일월성신이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섬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우상 숭배자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도 자칫 방심하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상 숭배자로 전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상이냐, 아니냐?”를 분별하는 가장 유력한 기준은 “내가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느냐?”를 따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남편이 우상이 됩니다. 아내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아내가 우상이 됩니다.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녀가 우상이 되고, 부모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부모가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미워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우상이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자들을 미워하십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헛된 우상들에게 돌리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30장 17절로 18절에서 경고하기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꿈에도 그리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나 모세가 우려한 대로 우상 숭배에 빠졌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졌으며, 북왕국은 앗수르에게, 남왕국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유형적인 우상 뿐 아니라 무형적인 우상도 거부해야 합니다. 오직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만 섬김으로 생명과 복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네 번째로,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려면 올바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을 섬김으로 신앙의 대상을 올바로 선택하였으나 여전히 생명과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에나 올바른 방법이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도 법도가 있습니다. 사람의 머리로 고안해 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섬겨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 생활을 할 적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아론과 그의 네 아들을 구별하여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다가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죽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반드시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도에 따라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한량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신명기 6장 5절에 보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함은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 선다는 말과 같습니다. 아합 왕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 서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 또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서서 머뭇거리고 있는 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고 그 결과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최상의 사랑을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하신 시편 91편 14절 말씀과 같이,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섬기는 데 삶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일에 우선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과연, 여러분들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삶의 최 우선순위에 두고 있으십니까? 초창기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주일 성수에 각별하게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부득이한 사유가 없이 예배에 몇 번 결석하면 공개적으로 징계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의 산정현 교회에서 시무할 때였는데, 어느 주일날 그 교회의 장로님이신 고당 조만식 선생님이 예배 시간에 지각을 하였습니다. 강대상에서 채 장로님이 예배당 문을 들어오는 것을 본 주 목사님이 “장로님, 예배 시간에 늦었으니 그곳에서 신발을 들고 서 계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채 장로님은 그 말씀에 순종해서 예배 시간 내내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에 주 목사님 앞에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제가 길에서 친한 친구를 만나서 잠시 안부를 묻다 보니 늦었습니다.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사죄했다고 합니다. 조만식 선생은 오산 학교에서 주기철 목사님을 가르친 스승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배시간에 늦은 것에 대해 책망을 듣고서 진심으로 회개하였으니 과연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 주일에 손님이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마는, 그럴 때는 그 손님을 모시고 교회로 나오는 방법을 택하든지, 그렇게 하지 못할 형편이면 한 시간만 집에서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손님 대접하는 것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우선시해서는 안 됩니다. 

가급적이면 주일에 먼 길을 떠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더구나 예배를 드리지 않고 길을 떠나는 것은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입니다.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느 성도님은 주일에 당직이 걸리면 국경일이나 명절에 당직이 든 사람과 바꾸어서 근무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이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결심을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복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결단을 촉구하면서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앞에도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가 놓여 있습니다. 과연, 어느 편을 택하시겠습니까? 신앙은 선택이고, 선택은 결단입니다. 또 자진해서 복종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나 생명과 복을 누리기 위하여, 먼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과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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