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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승주일] 선생님의 도리 (출 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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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도리 (출 4:10~12)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선생님은 학생들이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귀한 존재였습니다. 오죽하면 군사부일체라고 해서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같이 귀한 존재라고까지 했겠습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선생님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아는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아니 선생님 자신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또는 투쟁을 위한 선봉으로 여기고 있는 현실이 그런 시대상을 불러왔는지도 모릅니다. 어찌됐든 선생님은 아이들의 일생을 좌우하는 인생의 지름길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요즘의 아이들을 보면 선생님을 우러러보는 것이 아닌 먹고 살기 위한 한 직업인 중의 하나로 평가하고 또 그렇게 대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매를 들었다 하면 금방 경찰서로 선생님이 폭력을 휘두른다고 빨리 와서 잡아가라고 신고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성경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에 대한 가르침은 여전히 변함없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도 갈라디아서 6장 6절로 7절을 통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르치는 선생님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은 곧 그 가르침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은 곧 스스로 속이는 것이요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렇게 되면 결국은 자기가 심은 그대로 거두게 된다. 다시 말해서 말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그 결과 그 책임을 스스로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곧 인생이 어떻게 바른 삶을 살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유업을 누릴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인데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뒤틀려진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요 따라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도 잘 알 것입니다. 

오늘은 스승 주일을 맞아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를 선생님으로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로 14절에서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믿은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초를 누군가에게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아직은 젖을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젖을 먹는 자는 아직 어린 아기이기 때문에 옳은 말씀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단단한 음식은 어른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훈련을 통해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압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생활을 통해 성장하게 됨에 따라 우리 모두는 당연히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주셨던 마지막 말씀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가서 그들을 제자 삼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곧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성령께서도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은사를 허락하여 주셔서 바른 선생이 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가 선생이 되어야 한다고 하심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우는 선생님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는 원래 히브리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애굽의 바로는 히브리 사람들이 너무나도 빨리 인구가 늘어나는 것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부모는 석 달 동안 모세를 숨겨서 키웁니다. 하지만 아이가 점점 커감에 따라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되자 광주리에 담아 애굽의 공부가 목욕하러 잘 나오는 갈대밭에 띄웁니다. 그래 공주의 눈에 띄게 되어 공주의 양자로서 애굽의 궁중에서 자라나게 됩니다. 

그렇게 애굽의 왕자로서 40년간 훈련을 받던 중 어느 날 민정 시찰을 나갔다가 히브리 사람들을 애굽 사람이 괴롭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흥분해서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맙니다. 한데 그것이 발각이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래 도망친 미디안 광야에서 만난 그곳 제사장 이드로의 양들을 돌보며 그 사위가 되어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한 것이 또 다시 40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광야 서쪽으로 양떼를 몰고 갔습니다. 그래 하나님의 산인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의 불꽃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 나무는 불붙고 있었지만, 타서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가까이 가서 이 이상한 일을 살펴보아야 하겠다. 어떻게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가 그 나무를 살펴보려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무 사이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며 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더 가까이 오지 마라. 네 신발을 벗어라. 너는 지금 거룩한 땅 위에 서 있느니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애굽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또 애굽의 노예 감독들이 내 백성을 때릴 때에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를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을 애굽 사람들에게서 구해 주려고 내려왔다. 나는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해 내고 그들을 넓고도 좋은 땅으로 인도하여 갈 것이다. 그 곳은 젖과 꿀이 넘쳐흐를 만큼 비옥한 땅이며, 가나안 사람, 헷 사람, 아모리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그리고 여부스 사람들의 땅이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고,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너를 바로에게 보내려 하니, 가거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라!”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제가 누구인데 그런 일을 합니까? 어찌하여 제가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네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낸 후, 너희 모두는 이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인데, 이것이 너를 보내는 증거다.” 모세가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그들에게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다’라고 말했을 때, 그들이 ‘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서 스스로 있는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여라.”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내 말을 믿지 않거나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만약 그들이 ‘여호와께서는 너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셨고 이에 “제 지팡이입니다.”라고 모세가 대답하자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땅에 던져라.”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자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뱀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손을 펴서 뱀의 꼬리를 붙잡아라.” 그래 손을 펴서 뱀의 꼬리를 붙잡자 뱀이 모세의 손에서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너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믿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옷 안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모세는 손을 옷 안에 넣었습니다. 모세가 다시 손을 빼어 보니 손에 문둥병이 생겨서 눈처럼 하얗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손을 옷 안에 다시 넣어 보아라.” 그래서 모세가 다시 손을 옷 안에 넣었다가 빼어 보니, 손이 그전처럼 깨끗해졌습니다. 몸의 다른 살과 똑같아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들이 너를 믿지 않고, 또 첫 번째 기적을 못 믿을지라도 이 두 번째 기적은 믿을 것이다. 만약 백성이 이 두 가지 기적을 다 믿지 못하거든, 나일 강에서 물을 퍼다가 땅에 부어 보아라. 그러면 그 물이 땅 위에서 피로 변할 것이다.” 그때 모세가 하는 말이 “하지만 주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전에도 그랬지만,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지금도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말을 느리게 할 뿐만 아니라 훌륭하게 말하는 법도 모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만들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를 만들고, 듣지 못하는 자를 만드느냐? 누가 앞을 보는 자나 앞을 보지 못하는 자를 만드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그러니 가거라! 내가 네 입과 함께하겠다. 네가 할 말을 내가 가르쳐 줄 것이다.” 

모세 그는 애굽에서 왕자로서의 수업을 40년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말도 잘 할 줄 모른다고 하면서 뒤로 내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입과 함께하겠다고 하시면서 네가 할 말을 내가 가르쳐 줄 것이라고까지 하십니다. 하지만 모세는 “주여, 제발 보낼 만한 능력 있는 사람을 보내십시오.” 하고 또다시 뒤로 물러섭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화를 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레위 집안 사람인 네 형 아론은 말을 아주 잘 하지 않느냐? 네가 할 말을 내가 가르쳐 줄 테니, 그것을 아론에게 말해 주어라. 너희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내가 가르쳐 줄 것이다. 아론이 너를 대신해서 백성에게 말을 할 것이니, 너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아론에게 전하여라. 그러면 아론이 너를 대신해서 그 말을 할 것이다. 네 지팡이를 가지고 가거라. 그것을 가지고 기적을 보여라.” 그래 어쩔 수 없이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으로 가서 바로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는 모세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고생스럽게 일을 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을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가서 “나는 못하겠습니다. 나는 말도 잘 할 줄 모르는데요”라고 두 번씩이나 거듭해서 못하겠다고 합니다. 한데도 하나님은 굳이 모세로 하여금 이 일을 하도록 만드셨고 그 결과 나중에는 모세가 힘차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와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자 하시면 거기에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 역시 처음부터 그냥 예 하고 순종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나님이 화를 내시면서까지 가라고 하시니 그제서야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실컷 얻어맞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기쁘게 순종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비단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슨 명령을 하시던지 그 말씀대로 기쁨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백성들과 바로의 태도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게 하여달라고 할 때 곧바로 거절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아 큰 공사를 진행해 왔는데 그들을 떠나보내면 하던 모든 일들을 중단해야 합니다. 아니 그 일을 큰돈을 들여 자기들이 해야 하는데 이건 너무나도 큰일입니다. 그래 딴 소리 못하도록 오히려 더 힘들게 노역을 하도록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나타내는 열 가지 재앙 앞에 결국은 무릎을 꿇게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건 재앙이 닥치면 모세를 불러서 이 재앙이 멈추도록 하여주면 네 백성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가도 막상 재앙이 그치게 되면 그 마음이 고집스러워져서 나 못해 하고 거절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무슨 말이 따라 나오는가 하면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바로를 여전히 고집스러운 채로 두셨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경우 화를 내시면서까지 고집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경우는 그가 고집을 부리도록 그냥 두셨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애굽과 그리고 바로 자신이 철저히 망하지 않습니까? 열 가지 재앙 앞에 애굽이 신으로 섬기던 모든 것들이 다 심판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애굽의 모든 첫 아들이 다 죽임을 당하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습니까? 한데 그런 가운데서도 중간에 타협하자고 나서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멀리 가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남자들만 가라고 합니다. 나중에는 다 가되 양과 소는 남겨두고 가라고 합니다. 

보세요. 처음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될 때 뭐라고 세상 사람들이 그럽니까? 교회 다닌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와 꼭 다른 모습으로 살 이유가 뭐냐고 합니다. 그냥 우리와 똑같이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살라고 합니다. 그래 안 된다고 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는 또 뭐라고 합니까? 꼭 온 가족이 다 믿어야 할 필요가 뭐 있냐? 그냥 한 두 사람이 대표로 믿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되면 꼭 그렇게 십일조를 내야 되는 거냐고 합니다. 아니요 거기서 멈추지 마십시오.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하고 그 길은 온 가족이 다 함께 살아가야 할 길이며 또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와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되게 하여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심은 그대로 거두리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그렇다고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어땠습니까? 그들은 사사건건 모세를 붙들고 늘어집니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조금만 힘들면 금방 모세를 원망합니다. 결국 시비를 걸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다 저것이 문제다 이것 때문에 못 하겠다 저것 때문에 안 되겠다고 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망하게 만들려고 인도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미디안 광야 르비딤에서 아말렉 군대가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칠 때 어떻게 했습니까? 

신명기 25장 17절로 18절에 보면 “여러분이 애굽에서 나오던 때, 아말렉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한 일을 기억하시오. 여러분이 피곤하고 지쳤을 때, 그들이 길에서 나와 여러분 뒤에 처져 있던 사람들을 다 죽였소.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소.”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뒤처지지 마십시오.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해서 뒤에 쳐지게 되면 곧 사탄의 공격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뒤로 쳐지는 사람이 누굽니까?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비하는 사람입니다. 앞서서 수고하는 사람은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내 능력 밖의 어떤 일을 하라고 할 때도 “나로 하여금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족한 나를 세우심은 나로 더 능하게 하시기 위함인 줄 알아 감사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그런 우리로 하여금 이 일을 하도록 하심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으로 풍족하게 채우시고자 하심인 줄 알아 감사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줄 믿어 또한 감사합니다.” 이렇듯 앞서가는 사람의 특징은 감사와 찬양입니다. 하지만 불평과 원망과 시비로 가득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느냐 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죄악된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었습니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보다 지음받은 피조물들을 더 예배하고 섬겼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끄러운 욕망의 노예로 살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하찮게 여겼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타락한 생각에 빠지게 하시고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다는 말을 거듭해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으니 하나님께서 그냥 죄악된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네 멋대로 살아보라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무엇입니까? 심판입니다. 멸망입니다. 

바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이 당연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듯 하나님께서 모른 척 내버려 두시는 삶이 돼서는 안 될 줄로 압니다. 왜 버려두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불순종하고 원망하고 시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외면하시더란 말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바깥 어두운데 내어쫓겨서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바로에게도 처음에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 신앙으로 돌아오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오죽하면 그 신하들이 바로가 마음을 돌이키도록 요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여전히 자기 고집을 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고집부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가 비록 애굽의 왕이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는 보잘 것 없는 한 인생일 뿐입니다. 저를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 것은 그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이끌게 하심이 아니었겠습니까? 

그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이라고 하는 것은 가르침을 받는 자들을 복된 인생이 되도록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우리에게 어떤 직분을 주어 맡기시는 것은 그 직분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토록 하기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이라는 자리에 있기에 어떤 직분을 맡았기에 더 빨리 망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십시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항상 감사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며 귀한 상급을 받아 누리는 귀한 백성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입이 둔한 자라고 하면서 도망치려고만 하지는 않았습니까? 나는 이래서 안 됩니다. 나는 저래서 안 됩니다. 이거는 이래서 못 합니다. 저거는 저래서 못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세우실 때 이미 허락하여 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네 입과 함께하겠다. 네가 할 말을 내가 가르쳐 줄 것이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필요한 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을 다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할 말은 해야죠. 그런데 그 할 말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합니까? 할 말을 하되 기도로 할 말을 하십시오. 믿음으로 할 말을 하십시오. 그리고 감사로 할 말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할 말만 하고 행함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할 말을 하되 기도 가운데 믿음으로 이제 그 말을 행동으로 나타내십시오. 

다시 말해서 받은 은혜대로 순종하십시오. 누가 천국 백성입니까? 누가 천국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이렇게 기도와 믿음과 감사로 말을 하며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남들이 하니까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은혜대로 앞장 서서 말을 하고 믿음으로 말을 하며 감사로 말을 하고 순종하여 따름으로 말미암아 천국 백성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와 복을 누리는 제자 삼는 선생들이요 직분자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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