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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백발로 자랑스럽게 하라 (레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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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로 자랑스럽게 하라 (레 19:32) 
 
  의료기술의 발달, 영양과 환경조건의 개선, 각종 기술의 현대화 등등을 통하여 인간의 평균수명이 예전에 비하여 많이 길어지므로 말미암아 노년층이 우리 사회에 점점 증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도 노인의 문제가 이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노인이 존경 받던 우리의 좋은 전통과 부모가 공경 받는 그 선량한 풍토는 사라져가고 백발이 부끄러움의 상징이요, 노인이 귀찮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취급당하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해가고 있는 추세에 놓여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안되겠다는 소리가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 해결책을 살펴볼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반가(八反歌)'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부모공경과 자녀사랑이 대조되는 여덟 가지 사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 아이가 욕하면 기쁘게 받고 부모가 노하면 도리어 불감을 가지니 아이와 부모를 대하는 마음이 어찌 그리 다른고. 다시는 부모가 꾸짖거든 아이를 생각하고 마음을 고쳐라. 

  2) 아이들은 아무리 짓거려도 듣기 싫지 않고 부모는 한 번 말해도 잔소리 많다 하니, 이것이 잔소리가 아니라 걱정이다. 늙도록 지내온 경험으로 일깨우는 것이니 그대는 늙은이 말을 공경하여 받들고 시비하며 나무라지 말라. 

  3) 아이의 오줌똥은 싫지 않은데 늙은이의 침 뱉는 것은 싫어하니 여섯자 네 몸이 부모의 정혈로 된 것이 아니냐! 부모는 젊어서 너를 귀하게 키우느라 애쓰다가 이제 늙고 시들었다. 그대는 부모를 공경하고 잘 대접하라. 

  4) 아침에 일찍 장마당에 나가 떡을 사오기에 부모 공양하는 줄 알았더니 아이는 배부른데 부모는 맛보지도 못하였구나. 자식의 마음이 어찌 그리 부모 사랑만 못한고. 그대는 떡을 많이 사다가 얼마 남지 아니한 부모를 공양하라. 

  5) 거리의 약방에는 아이가 살찌는 약은 있으나 어버이 튼튼케 하는 약은 없다. 아이 병 고치는 데는 열심이나 부모 병은 등한히 여기는 때문이다. 네 다리를 베어내도 그것이 부모의 살이니 그대는 부모의 건강을 잘 보살피라. 

  6) 부귀하면 부모 공양하기 쉬우나 부모의 마음은 늘 평안치 못하고, 가난하면 아이 기르기 어려우나 아이 배고픈 일은 없다. 부모를 위한 마음이 아이를 위한 마음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부모를 아이 생각하는 만큼 하고 범사에 가난하다 핑계하지 말라. 

  7) 부모는 두 분이나 형제간 모시기를 싫어하여 서로 밀고 아이는 열이라도 남 주기는 싫어한다. 아이는 배불러도 배고픈가 늘 묻고, 부모는 배고프고 추워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대는 힘을 다하여 부모를 공양하라. 그대의 먹고 입는 것이 당초 부모의 것이니라. 

  8) 부모의 십분 사랑은 그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아들의 일분 효도는 자랑한다. 부모를 대함에는 어둡고 아이를 생각함은 밝으니 누구 부모의 자식 기르는 사랑을 알리오. 권하노니 부질없이 아들의 효도를 믿지 말라. 그대는 아들의 부모도 되고 부모의 아들도 되는 자리에 있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모님 주일, 즉 경노주일을 맞이하면서 노인의 백발로 자랑스럽게 해드리는 일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백발은 염색을 해서 감추어야 하는 누추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얼굴의 주름은 땡겨서 숨겨야 할 부끄어운 것이 아닙니다. 늙은이 이의 아름다운이 바로 백발이요 주름인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 미친 사람이고 한답니다.
50살이 넘어 자기의 집 팔아 사업하겠다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고,
60살이 넘어 박사학위 하겠다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고,
70이 넘어 외국으로 이민 가겠다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고,
80살에 비아그라 찾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고,
90살에 건강진단 받겠다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고,
100살에 산에 가지 않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고.....

  결국 늙어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억지를 쓰는 자를 미친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성도들은 늙어가는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센 머리, 즉 백발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사회와 가정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몇가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백발로 자랑스럽게 하려면 힘,물질과 같은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요즘 여자를 공에 비유해서 말합니다. 
10대 여자는 축구공-쫓아다니는 사람이 많으니까(22명), 20대 여자는 농구공-쫓아다니는 사람이 줄어서(10명), 30대 여자는 골프공-오직 한 사람이 쫓아다니니까, 40대 여자는 탁구공-서로 미루니까, 50대 여자는 피구공-서로 필사적으로 피하니까. 그러면 60대 여자는 그럼 무슨 공일까요? ..........
  결국 이러한 시각들이 힘과 물질과 같은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60세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 3개월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1개 이상의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노인 1인당 월평균 소득은 국민평균소득의 3분의 1도 못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런 처지에 놓여 있는 노인을 힘이나 돈으로 그 가치를 따지고 판단한다면 결코 백발은 자랑거리일 수 없습니다. 힘이 없고 수입이 적다는 물질적 가치로만 노인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말세입니다. 말세가 되면 부모를 거역하고 돈을 부모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힘의 원리나 물질적 가치로는 도저히 따질 수 없는 것이 백발의 가치입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백발로 자랑스럽게 해 드리려면 센 머리 앞에 서야 합니다.
  본문의 "센 머리"란 백발을 의미합니다. 장수하여 머리가 희어진 부모를 가르킵니다. 노년은 장수의 복을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이다. 기피해야할 혐오의 시기가 아니라 인생의 완성의 시기입니다. 노년없이는 인생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센 머리 앞에 서라는 말은 곧 사례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센 머리 앞에 인간은 누구나 감사하고 공경의 뜻을 표해야 합니다. 백발은 우리의 가정과 이 사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수고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노인들이 가정과 사회를 위해서 그의 일생을 바쳐 수고한 것에 대한 감사나 공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다만 노인의 문제로 취급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샌 머리 앞에 서라는 말씀은 노인 공경이나 부모 공경이 단지 이론만으로 그쳐서는 안되고 실천적 행동까지 수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임금이 된 후에 그 모친 밧세바에게 그러했습니다(왕상 2:19-20). 

어머니가 올 때에 왕이 일어나 영접하고 절하면서 그 어머니의 소청을 경청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 대신이었지만 그 아버지 야곱을 맞이하기 위하여 일어나 마중을 나갔습니다(창46:29). 레갑의 아들 요나단은 그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손들은 이것을 실천했습니다(렘35:14). 이렇게  샌 머리 앞에 일어서라 함은 부모공경의 행동과 실천을 뜻합니다.             

  셋째는 백발이 의로운 길에서 얻어지도록 해야 백발이 자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백발 즉 노년이 영화의 면류관이 되게 하려면 의로운 길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고, 사람 앞에서 선하고, 덕이 있는 삶의 길에서 노년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백발이 자랑스러운 것이 됩니다. 죄만 짓고 살다가 백발을 맞이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결코 그 센 머리 앞에 누가 서려고 하겠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주님의 뜻을 따라 무흠한 인생 길을 걷다가 백발노년을 만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됩니다. 노인의 문제는 치료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노년은 인생이면 누구나 다 가는 길을 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노인을 우리 가정의 일원으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인들로 하여금 그 백발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경노고 참된 부모 공경입니다. 죽어서 야단법석을 떨면서 효도하는 척하지 말고 살아 생전에 효도하는 것 살아 계실 때 공경을 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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