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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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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시골에 가면 빈 집이 많습니다. 담이 무너지고 유리가 깨지고, 잡초가 무성합니다. 빈 집에 들어서면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냉기가 느껴지고 햇살 좋은 가을이라도 눅눅합니다. 
내 마음도 비어 있는 집이라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요? 

누군가 내 마음에 들어설 때 내 마음의 분위기가 그에게 차갑고 눅눅하게 느껴진다면 나는 비어있는 집인 셈입니다. 우리 각자 마음의 집에 사람의 온기가 묻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 마음의 집은 정겨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따뜻하고 밝고 편한 그런 안락한 안방 같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따듯함이 있는 마음이 되게하기 위해 날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생각의 방을 닦고 말과 행동의 정원을 가꾸는 일 만으로도 우리는 생의 한 가운데를 아름답게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휴경지 같은 인생이며, 다른 하나는 경작지 같은 인생입니다. 
휴경지 인생은 이미 이루어 놓은 열매에 만족하여 자만에 빠집니다. 그는 나가서 영적인 일들을 위해 움직이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습니다. 

그는 부흥회로 몰려가는 사람들, 금식하는 사람들,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사람들을 보고 조금은 비웃음섞인 미소를 지으며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라고 말합니다. 그는 현재의 안락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결코 자신의 둥지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게는 추수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휴경지 인생의 저주스러움은 더 이상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람의 모습은 모든 면에서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화석처럼 되어 버립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보면서 가슴아파하지도 않습니다. 반면 다른이의 기쁨에는 시기심에 못이겨 배 아파하기 일쑤며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을 쉬지 않습니다. 

반면에 경작지 같은 인생은 끊임없이 마음의 밭을 갈아 엎는 회개를 통해 자기 방어의 울타리를 걷어버리고 고백(자복)의 쟁기로 영혼을 깊숙이 갈아 옥토 같은 마음을 유지합니다. 
이런 경작지 같은 인생을 성경에서 옥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옥토와 같은 사람은 열매 없는 생활에 대한 반성, 주변 상황의 압력 그리고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 자기 잘못을 깨닫고 언제나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을 갖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방어의 수단을 포기하고, 진정한 평안을 얻기 위해 마음을 활짝 엽니다. 

휴경지 같은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러나 경작지 같은 인생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서 4:6절을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람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 보면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아는것 자체가 마음에 하나님을 모신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에 모실 수 없습니다. 만일 알지 못하고 모신다면 그것은 맹목적 신앙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계시해 주신 책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본문에서 말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생이 하나님을 알 수 있을 까요? 신학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하는 이론을 불가지론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무한하신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불가지론은 어떤 면에서는 맞고 어떤 면에서는 틀립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제한된 인간이 알 수 있습니까? 양심적인 사람들은 알 수 없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하나님을 알 수 없다면 “하나님을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기록된 본문의 말씀은 권위를 잃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간이 제한적인 범위에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에 관련된 지식들을 모두 비밀에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인간들에게 개방하셨습니다. 하나님에 관해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의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에 관련한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하시고 계십니다. 

첫째는 일반 계시라고 부르는 자연 우주 만물을 통해섭니다. 
일반계시에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에 관한 일반적인 정보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둘째는 특별 계시라고 부르는 성경의 기록입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존재와 속성 그리고 영원하신 계획과 작정에 관련된 정보들이 들어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들이 비밀 암호와 하여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암호를 푸는 열쇠가 믿음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풀한 포기에도 하나님의 솜씨와 사랑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있는 것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열쇠를 사용하여 성경을 보면 성경의 많은 이야기 속에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그의 온전하신 계획과 작정들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고 늘 성경읽고 기도하며 그속에 담긴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 또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이나 사고 그리고 사람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 뜻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교과서 또는 교육 교구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관하여 우리는 알아야 하고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실까요? 구체적으로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하는 문제입니다. 

1) 우리 삶의 근원이십니다. 
호6:2절에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리시며 라는 말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일으키리니 라는 말은 살게 하시는 분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틀과 삼일은 여호와의 회복이 아주 빠르게 나타날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살자가 없습니다. 
즉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분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2)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절 이하에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라고 했습니다. 
찢으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범죄함으로 매맞고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찢으셨다는 말의 원어 타라프는 사자가 먹이를 움키고 찢어 삼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적으로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면서 번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번영은 하나님을 섬김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백성들의 타락을 부추겼습니다. 

호4:7절에 보면 그들은 번성할수록 하나님께 범죄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안일만 취하였고 서슴없이 퀘락과 자기안위만을 추구하였습니다. 
부자들은 고아와 과부들을 억압하였고 권력을 가진자들은 부정직한 소득과 부당한 대우를 통해 이득을 취했고 약한 자들을 착쥐했습니다. 

호12:7절에 보면 “저는 상고여늘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사취하기를 좋아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장에서 얼마 후에 하나님은 앗스르를 통하여 그들을 찢으시겠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8:1절에 보면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예언은 bc 722년에 앗스르가 침공해 와서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 대로 그들은 찢김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경고 하면서도 그들에게 회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3) 변함없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가 어떤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3절 하반 절에 보면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이 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새벽 빛 같이 어김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새벽이 되면 반드시 새벽빛이 어둠을 물리치고 광명한 새 날을 밝히는 것 처럼 하나님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그 은혜의 빛을 어김없이 비추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변하고 역사도 변합니다. 그러나 불변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70%에 육박했었습니다. 그런데 취임 후 단 2-3개월이 지난 지금 민심은 지금 지지율이 30%대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민심도 믿을게 못되고 사람의 마음도, 여론도 믿을 게 못됩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다 가진 것 같았던 것이 어제였는데 오늘은 그를 향해 욕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도 변하고 땅도 변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바로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보단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롬 8: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라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변함없는 은혜의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중국 내지 선교의 선구자였던 허드슨 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성경에 말씀하셨듯이 그분은 말씀한 그대로 지키시며 또한 약속하신 모든 것을 행하실 것이다”
변함없으신 하나님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때 결코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힘이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못난 사람을 은근히 얕잡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한 없이 못나고 한없이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언제나 은혜로 바라보시며 사랑으로 변함없이 대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못생겼다고 늘 무시를 당하며 산 한 남자가 있었답니다. 
무슨 말을 하든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자라면서 너무 절망적이어서 자살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자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답니다.
"왜 사람들이 저를 자꾸 무시하죠! 이제 정말 지쳤습니다!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는 거 이제 정말 못 참겠습니다! 제발 제게 무시 안 당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이 사람은 점쟁이에게 눈물까지 보이며 울부짖었답니다. 그러자 점쟁이가 큰 소리로 "다음 사람!"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힘이 없는 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힘 있는 자 만이 살고 성공할 수 있다” 는 사상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유유력자가능생 惟有力者可能生)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권력, 체력, 재력, 지력, 영력 등을 쌓으려고 애를 씁니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을 넘어 강자생존의 시대에선 힘이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고 행복과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을 찾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18: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소자라도 주님은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할 때 매를 때리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때리시던 매를 거두시고 다시금 어루만져 고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치셨다가도 다시 싸매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매를 맞았어도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찢김 받았어도 망한 것이 아닙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죄를 버리고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자리에서 돌아와야 합니다. 울며 회개하며 돌아 오면 돌아오면 다시 싸매주시고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찬송가 527장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 보다 넓고 넓어..

그러므로 하나님 알기를 힘쓰는 삽시다. 하나님의 그마음을 알고 그 사랑을 알고 그 변함없는 은혜의 깊이를 알아야 알기위해 믿음의 열쇠를 가지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체험하고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삶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찢으셨을 지라도 도로 낫게 하시고 싸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은혜와 사랑에 있어서 변함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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