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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약속이 있는 첫 계명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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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있는 첫 계명 (엡 6:1~4)

여러분,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자식들 얼굴 자주 보려면 죽을 때까지 돈을 움켜쥐고 있어야 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한 대학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맞는 말입니다.(숭실대 정재기 교수, 조선일보 2007년 12월 11일자 참조) 60세 이상의 부모님과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 보았답니다. 그 결과 부모의 소득과 자녀들이 부모를 찾아오는 빈도수가 정비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특기 사항 한 가지는 OECD 국가들 중에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그런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유독 우리 한국인들 가운데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겁니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란 이름을 가졌던 이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안타깝습니다. 

실제로 이런 현상을 반영하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게 됩니다. 수년 전 행정도시 예정지가 처음 발표되자 그 지역에 갑자기 효자 마을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인즉슨 평소 명절 때나 겨우 찾아오던 자식들이 주말마다 손자 손녀 데리고 뻔질나게 오더라는 겁니다. 왜 그랬는지 뻔할 ‘뻔’자 아닙니까?   

세태가 이러다 보니까 부모님들의 섭섭한 마음을 표현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지만 한번 들어보십시오. “아들을 낳으면 1촌, 아들이 대학 가면 4촌, 아들이 군대 갔다 오면 8촌, 아들이 장가 가면 사돈의 팔촌, 아들이 애 낳으면 동포, 아들이 이민 가면 해외 동포!” “자식들을 결혼시키면 아들은 큰 도둑, 며느리를 좀도둑, 딸은 예쁜 도둑” 이런 이야기와 전혀 무관한 부모님들은 행복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와 무관한 자녀분들은 효자들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웃기는 하지만 뒷맛이 씁쓸합니다. 그리고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오늘의 현실을 리얼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 시대가 성경에서 경고했던 대로 패륜(悖倫)과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 딤후3:1~2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구구절절 오늘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과연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지 함께 생각해 봅니다. 모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패륜과 배은망덕의 시대에 빛의 자녀로 살리라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부모의 존재 : 하나님의 대리자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모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돌봐주시는데, 특히 부모를 통해서 그렇게 해 주신다는 겁니다. 

실제로 부모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식들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여러 가지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생명의 대리자 :   

무엇보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생명의 대리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보내주셨죠. 하지만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라, 부모를 통해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후에는 부모가 보살펴 주심으로 장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잘 난 사람이라도 스스로 태어난 자가 없고, 스스로 자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대리자로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신 분들입니다. 

② 지혜의 대리자 :   

부모는 또한 자식들에게 지혜의 대리자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지혜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 같지만 사실은 거의 전부가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걸음마부터 밥 먹는 것, 대소변 가리는 것, 언어, 기본 예의범절 등 ...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은 학교에서 배운 게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우리에게 인생의 지혜를 전수해 주신 분들입니다. 

③ 사랑의 대리자 :   

부모는 자식들에게 사랑의 대리자입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상당 부분을 부모를 통해 받게 됩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흡사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무조건적인 사랑, 무한대의 사랑입니다. 물과 공기 등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대가 없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특히 독생자 예수님을 인간으로 보내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대속의 제물이 되게 하신 그 사랑은 엄청난 사랑입니다. 주고, 또 주고, 또 주는 사랑!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부모님이 그런 사랑을 자식들에게 베푸는 겁니다. 물론 하나님처럼 완전하지는 못하죠. 그러나 인간의 수준에서 가장 큰 사랑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님은 하나님은 대리자로서 우리에게 인생에 필요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분들입니다.

이와 같은 부모님이 없다면 우리가 과연 생존할 수 있었을까? 한 마디로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법칙, 자연의 법칙으로 부모의 본성을 주셨습니다. 만일 이런 본성이 없다면 결코 이 세상은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뿐 아니라 미물이라도 이런 본성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펭귄은 주로 남극에 서식하는데, 아주 두꺼운 얼음덩어리 위에서 삽니다. 그들의 생태 중 특이한 점 한 가지는 어미의 모습입니다.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 어린 것을 발등에 올려놓습니다. 인간과 달리 동물은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지만, 어린 펭귄이 차가운 얼음을 견딜 만큼 발바닥이 두껍지 않으니까 발이 시리지 않도록 어미의 발등에 올려놓는 겁니다. 그리고 뒤에서 감싸 안음으로 매서운 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이런 본성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겁니다. 

인간 부모는 더욱 더 그런 존재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부모를 주셨습니다. 부모가 없으면 아예 생존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한시라도 부모님이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 부모 공경의 계명 : 약속이 있는 첫 계명   

부모님이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사실 때문에 본문 성경은 자녀들이 당연히 부모를 공경해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먼저 1절을 보시죠.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옳다는 것은 ‘자연 법칙’(Natural Law)이라는 겁니다. 인간이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인간도 아니라는 겁니다. 

또 2절을 보시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여기 보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은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① 가장 중요한 계명 :

부모 공경은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순서 상 첫 번째라는 뜻도 있지만, 가장 중요하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출애굽기 20장, 신명기 5장을 보면 십계명이 나오죠. 십계명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지킬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계명~4계명, 그리고 5계명~ 10계명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관계에서 지킬 계명입니다. 그래서 대신계명(對神誡命)이라 부릅니다. 5~10계명은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어서 지킬 계명으로 대인계명(對人誡命)이라 부릅니다. 부모 공경의 계명은 제5계명이니까 대인계명 중 첫 번째입니다. 대인 계명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올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② 약속이 딸린 계명 :   

5계명을 보면, 부모 공경의 명령 뒤에 부록처럼 약속이 딸려 있습니다. 그래서 약속이 있는 계명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십계명 중에 2계명 뒤에도 약속이 붙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축복의 약속과 더불어 저주의 경고도 있고, 이것은 비단 2계명뿐 아니라 십계명 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축복의 약속이 붙어 있는 것으로는 5계명이 유일합니다. 

계명은 본래 의무이지만, 5계명은 축복의 약속이 딸려 있다는 점에서 의무를 넘어 특권입니다. 지키면 지킬수록 수지맞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빳빳한 만원권 지폐를 007 가방에 가득 채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떨까요? 무겁겠습니까? 가볍겠습니까? 들어보지 않아서 모르신다고요? 아니요. 들어보지 않아도 압니다. 내 것이면 가볍습니다. 남의 것이면 무겁습니다. 5계명이 마치 그런 겁니다. 내가 지킴으로써 약속된 축복을 받을 수 있으므로 무거운 부담이 아니라 가벼운 축복입니다. 

부모 공경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자연 법칙입니다. 인간이면 당연히 지켜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이후 죄의 본성이 생겨서 이 당연한 것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망합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특별히 강조하는 뜻으로 포상을 약속하신 겁니다. 너무 중요한 것이니까 인센티브를 내걸으신 겁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로또 복권 살 생각하지 말고 이 말씀대로 살아! 그러면 내가 축복하마!” 

그러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은 어떤 것들입니까? 3절 보시죠.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형통의 축복과 장수의 축복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까? 그때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길을 열어주시고, 승리를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할 때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음으로 부모 공경 원칙을 지키면 하나님이 승리를 보장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 믿으면 영생합니다. 가장 좋은 장수의 축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육신을 갖고 있기에 건강 장수는 분명 큰 축복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건강 장수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효자 중에도 일찍 가시는 경우는 봅니다. 그런 경우는 다른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건강 장수한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이 하는 괜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절대 펑크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부모 공경에 대해 축복의 약속이 있는 반면, 부모 공경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의 경고가 있습니다. 신27: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출21: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성경의 많은 인물들을 보면 이런 원리가 그대로 적용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모 공경한 사람들은 반드시 축복을 받고, 반대인 경우는 반드시 저주를 받은 것을 봅니다. 이삭이나 요셉 같은 효자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거역한 사람들을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암살롬입니다.(사무엘하 15장~18장 참조) 그는 아버지 다윗의 속을 엄청 썩입니다. 나중에는 반역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기까지 합니다. 노구를 이끌고 궁궐에서 쫓겨나가는 다윗의 모습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하지만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는 전쟁터에서 노새를 타고 달라다 평소 그렇게 자랑하던 긴 머리털이 나뭇가지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요압 장군의 칼에 맞아 즉사합니다. 그런 자식도 자식이라고 소식을 듣고 통곡하는 다윗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압살롬은 정말 ‘압살(壓殺) 놈’입니다. 불효자는 그 말로가 다 이렇게 비참합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은 인생의 축복과 저주를 좌우하는 중요한 원리 중 하나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부모 공경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하나님 앞에 칭찬받고 축복의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3] 부모 공경의 방법 : 순종, 존대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모 공경을 하면 좋을까요? 효도 방법입니다. 

① 순종 :  

먼저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1절 보시죠.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순종한다’는 단어를 주목해 보십시오. 이 단어는 성경 원어 헬라어로 ‘휘파쿠오’(uJpakouvw)인데, ‘아래에서’라는 뜻의 ‘휘포’(uJpo)와 ‘듣다’라는 뜻의 ‘아쿠오’(akouvw)의 복합어입니다. 그래서 ‘아래에서 듣는다’ ‘귀를 기울이다’라는 뜻은 가지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을 위에 모셔놓고 겸손히 그 말씀을 들으라는 겁니다. 부모님은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내 생각과 다르거나 격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시는 경우도 있죠. 그래도 차마 지키지는 못해도, 최소한 겸손한 태도로 들으라는 겁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부모님보다 위에 계신 분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부모님 말씀보다 상위법이라는 겁니다. 부모님이 하나님을 모르셔서 정반대의 것을 요구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너 예수 믿지 마라! 하나님이 어디 있냐? 교회 나가지 마!” 그렇게 말씀하셔도 따를 수는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결코 과격하게 반응하지 말고 온유한 태도로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나올 때마다 후회되는 게 있습니다. 제가 청년 시절 신학교에 가겠다고 어렵사리(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닌데) 결단한 후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노발대발합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도 그러셔서 참다 못해 버럭 소리를 지르고 가슴에 못 박는 말들을 퍼부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됐을 텐데 ... ” 하는 후회가 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부모님 앞에서 온순한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② 존대 :  

다음으로,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공경’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와 좀 구별됩니다. 2절을 보시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공경한다는 단어는 성경 원어 헬라어로 ‘티마오’(timaw)인데, ‘가치를 인정하다’ ‘존귀히 여기다’ 등의 뜻입니다. 이 단어가 구약 성경 원어 히브리어로는 ‘카베드’(כבד)인데, 본래 ‘간’(肝)이란 뜻이 있습니다. 간은 인체 가운데 크기에 비해 아주 무거운 부위입니다. 그래서 ‘무거움’이란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경한다는 말은 부모를 무겁게, 귀중하게 여긴다, 존대(尊待)한다는 뜻입니다. 부모님은 귀중히 여기면 다른 것은 저절로 됩니다. 보살펴 드리고, 봉양하고, 섬겨드리고 ...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려울 때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부모에게 어린 시절 받은 상처 때문에 잘 안 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는 생각에, 부모가 자기에게 해 준 게 없다는 생각에 부모님을 귀중히 여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부모는 나에게 무엇을 많이 해줬다고 공경하는 게 아닙니다. 부모라는 그 이유 한 가지로 공경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그 한 가지만 해도 큰 것을 해 준 겁니다. 

부모가 해 준 것을 갖고 따지지만, 부모 입장에서 보면 자식이 무엇을 해줬나 따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부모는 무조건적으로 자식에게 해 주지만, 인간인지라 때로는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왜 삼성 이건희 회장 같이 부자가 되지 않았어요? 그럼 내가 덕을 좀 볼 텐데 ... ” 황당해진 아버지가 이렇게 되받아칩니다. “그러는 너는 왜 박지성 같이 되지 않니?” 이렇게 생각하면 피장파장입니다. 부모가 무엇을 해 주고 안 해 주고 그런 것을 따지면 자기만 어리석어지는 겁니다. 

재미교포 가운데 상원의원 신호범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네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떠돌아다니며 거지 생활을 하다가 다행히 미군부대 하우스보이가 됩니다. 그 후 미군 장교 집에 입양되어 미국으로 갑니다. 그때 나이가 19세였습니다. 입양될 수 없는 나이였는데, 하나님의 기적이었죠. 공부를 한 적도 없었던 그가 영어로 공부를 시작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박사가 되고, 대학 교수가 됩니다. 그리고 워싱턴州 상원의원이 됩니다. 출세한 것이죠. 

한국에 방문하는 기회가 여러 번 생기면서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왜 자기를 버렸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수소문해서 찾아갔더니 판자집 같은 데서 새 어머니와 이복 동생 5명이 가난하게 삽니다. 그런데 찾아갈 때마다 아버지가 술이 취해 계십니다. 대화가 안 됩니다. 그래서 한번은 연락도 하지 않고 급습하듯 찾아갑니다. 맨 정신이지만 아버지가 돌아앉아서 말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대뜸 물었습니다. “왜 그때 나를 버렸습니까?” 그러자 아버지가 더듬거리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기 핏줄을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때 나는 머슴으로 팔려갔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나오면서 가슴에 맺혔던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그 후 부모님과 이복동생을 모두 미국으로 초청합니다. 생활 기반 잡아주고, 공부시키고, 일체를 도와줍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신 장로님의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미국 사람인데(대개 냉정한 것으로 알고 있잖아요) 식구들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쳐주고, 경제적으로 도와주느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 전심으로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면 못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래야 됩니다. 부모가 무엇을 해 줘서가 아니라 그냥 부모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그래서 또 한 가지 우리가 유의할 것은 자녀를 신앙을 잘 교육시켜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들로부터 효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아야 하겠기에 그래야 됩니다. 그리고 솔직히 자녀들에게 효도 받으면 좋지, 나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자녀 교육은 본보이기로 해야 됩니다. 먼저는 부모 자신부터 부모 공경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 옛말에 이런 말이 있죠. “부모가 온 효자이면 자식은 반 효자이다” 부모 자신부터 신앙생활 잘 하고 부모 공경을 실천해야 자녀들이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잘 가르쳐야 합니다. 4절.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똑바로 시켜야 합니다. 신앙 없이 하나님 없이 세상 공부 많이 시키고 재산 많이 물려주면, 자식들이 “우리 부모님 정말 고맙다!” 그럴 줄 아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실컷 그렇게 해줘도 나중에는 자기들 잘 나서 잘 된 줄 압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신앙 없으면 대개 그렇게 됩니다. 

소록도에서 목회하는 어느 목사님이 쓰신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70세가 훌쩍 넘은 한 노인이 목사님을 찾아왔답니다. 그러면서 소록도에서 살게 해 달라고 통사정을 하더랍니다.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40년 전 자식들 중에 한 아들이 나병이 걸렸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있고, 도저히 키우지 못하겠더랍니다. 그래서 고민 고민 하다 어느 날 그 아들을 데리고 산 속에 갔습니다. 슬쩍 뒤로 가서 큰 바위 돌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빗맞고 맙니다. 또 하루는 그 아들을 데리고 물속에 같이 빠져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들이 울면서 자기는 죽어도 괜찮지만 다른 형제들 생각해서 아버지는 절대 죽으면 안 된다고 만류합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아들이 소록도로 가게 됩니다. 그 후 태어난 자식들까지 9남매를 잘 키웠답니다. 공부 다 시키고, 나눠 줄 것 다 나누 주고 그랬답니다. 

그런데 아내가 죽고 나이가 들면서 자식들 눈치가 보여서 이 집 저 집 전전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인생이 뭐 이런가 한탄하다가 문득 그 아들이 생각났습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소록도에 찾아갔다 만났습니다. 그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만나서 정말 기쁩니다. 40년 동안 하루도 아버지를 잊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나 같이 나쁜 애비를 왜 기억했냐? 잊어버리지 ... ” 아들이 말합니다. 
“아뇨.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됐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꼭 아버지를 만나게 해 달라고. 아버지도 예수 믿고 구원 받게 해 달라고.” 

아버지는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생애는 그 아들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다행히 그 아들이 나병에서 치유되어 음성나환자촌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이렇게 간청한 겁니다. “목사님! 제발 여기서 살게 해 주세요. 그 아이에게 지난 40년을 보상해 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바쳐 기른 아홉 놈(!)은 그 아버지를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버린 한 아들이 그 아버지를 거두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겁니까? 단 한 가지 ‘신앙’ 때문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부모 공경에서 더 나아가 웃어른, 어르신을 공경해야 합니다. 한 살이라도 더 잡순 분들, 어떤 의미로든 내 위에 계신 분들을 존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경제 발전이 덜 돼서 문제가 아닙니다. 어르신을 공경하는 문화가 사라지는 게 문제입니다. 패륜의 나라는 반드시 망합니다. 어르신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법칙입니다. 
레19: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여러분! 오늘 어버이주일입니다. 부모 공경, 어르신 존대가 하루짜리가 아니라 일관된 삶의 태도로 정착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마땅한 일일 뿐 아니라,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이 나라가 사는 길입니다. 부디 하나님을 경외하는 저와 여러분이 솔선해서 이런 삶을 실천해서 우리 모두 복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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