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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주여! 부모 공경의 은혜를 주옵소서 (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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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부모 공경의 은혜를 주옵소서 (엡 6:1~3)

오늘 설교 제목은 저의 기도제목입니다. 불효자인 저를 위한 기도제목이고, 이 시대의 자녀들을 향한 기도제목입니다. “주여! 부모 공경의 은혜를 주옵소서”

지금 이 시대는 효가 약해진 시대입니다. 2004년 한 해 동안 61세 이상 노인 중에 자살한 노인이 4,220명입니다. 하루에 10명이상 자살한 것입니다. 가출한 노인의 숫자는 6,149명입니다. 하루에 약 17명꼴로 가출을 한 것입니다. 그만큼 자녀들의 부모 공경이 약해진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잘 공경한다면 자살하는 노인 가출하는 노인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요즘은 개만도 못한 자식들이 많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변호사에게 공증해서 유산 물려줄 사람을 미리 정합니다. 자녀들에게 50%, 교육기관과 복지시설에 30%, 교회에 20%, 이런 식으로 유산을 분배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자식이 있는데도 한 푼도 물려주지 않고 자기와 함께 오래 살았던 개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말은 자식이 개만도 못했다는 뜻입니다. 어떤 분은 딸이 출가하면서 키우던 개를 달라고 해서 주었는데 결혼 후, 딸은 거의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문을 긁어서 나가보니 옛날 키우던 개였습니다. 그 개를 보고 그분이 “니가 딸보다 낫구나!”고 하며 그 개를 데리고 살았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효도를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하고, 그 말씀대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실 요즘 모든 것의 기준이 돈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이 있으면 효도를 받고 돈이 없으면 효도를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일직이 섹스피어는 그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르는 척 하지만 아비가 돈 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효자가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시대상을 잘 아시는 노인 한 분이 자식 이름으로 몇 개의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그 통장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효도를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노인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자식들이 통장을 열어보니 통장에는 2만원씩만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성경에는 공자의 효 사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 사상이 율법으로 주워졌습니다. 십계명에 보면 하나님과 관련된 계명이 1계명에서 4계명까지 나옵니다. 그리고 이웃과 관련된 계명이 5계명에서 10계명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인간과 관련된 계명 중에 첫 번째인 제 5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효를 강조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마치 기독교가 불효의 종교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제사 문제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 살아계실 때는 속만 썩이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제사를 드린다고 난리법석을 떠는데 웃기는 일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낙원과 음부로 갑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제사 밥을 차려도 부모님이 와서 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세상 사람들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성경 딤전 5:4에 보면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효도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말입니다. 골 3:20은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효도도 불효도 심는대로 거둡니다. 

효도는 축복이 약속된 계명입니다.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은 효도하는 자들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엡6:2에 보면 부모공경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엡 6:3에서 하나님이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주신 약속을 말씀합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는 일마다 안 되고 사는 것이 지옥 같은데 장수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불행입니다. 또 땅에서 하는 일마다 잘 되는데 단명한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땅에서 하는 일이 잘되고 장수한다면 그것은 큰 복입니다. 하나님은 효도하는 사람에게 큰 복을 주시고 싶어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대표적으로 효를 실천한 사람은 룻입니다. 룻은 이방인이었지만 남편을 잃은 후에도 시어머니 나오미를 잘 섬겼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재덕이 겸전한 보아스라는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다윗의 할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도 들어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도 효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탈무드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던 랍비 요시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요시아가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시아야, 너는 하늘나라에 가면 레네스라는 푸주간 주인 곁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푸줏간 주인을 멸시했는데 하나님을 잘 섬겼던 랍비가 푸줏간 주인 곁에서 살것이라고 하니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메시지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랍비 요시야는 레네스라는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랍비는 시골에 레네스가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레네스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레네스가 오질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요시아가 직접 찾아가 레네스에게 “왜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레네스가 “제가 노모님을 모시고 있는데 노모님이 병석에 누워 계셔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시아는 그 순가 하나님께서 왜 그 꿈을 보여주셨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국에서는 부모를 귀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은 곳에 두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불효하면 큰 저주가 있습니다. 효도하면 복을 받는 것처럼 불효하면 하나님의 벌이 있습니다. 잠 30:17에 보면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불효자라고 판명된 사람은 이유를 묻지 않고 끌어다가 죽였습니다. 신 27:16에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나중에 자녀들에게 효도 받으려면 지금 부모님에게 잘해야 합니다. 정채봉씨가 지은 [멀리 가는 향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집에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인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간혹 다투더니 갈수록 잦아지고 싸움이 커지는 것입니다. 부부사움의 이유는 할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할머니를 모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합의를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묵을 방을 하난 얻어서 내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낙엽이 우수수 지는 날, 온 식구가 달려들어서 할머니의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그런데 소년은 종이와 연필을 꺼내 와서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헌 옷장 1, 전기장판 1, 담요 1, 밥통 1...”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너, 왜 그런 것을 쓰니?” 소년이 대답하였습니다. “다음에 어머니를 내 보낼 때 내가 챙겨드릴 품목이에요” 보는 것이 배우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잘해야 나중에 효도 받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

사실 부모님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우리를 보살펴주시는 분입니다. 유대 속담에 “하나님은 모든 집에 다 계실 수 없어서 집마다 어머니를 두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나를 만드신 분들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가장 가까운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농사짓는 일입니다. 씨를 뿌리면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자연 법칙 안에서 인간이 곡식을 생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수고해서 농사를 지었지만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농사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협조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또 하나는 아기 낳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후로는 인간이 인간을 생산하도록 정해 놓으신 자연법칙입니다. 우리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래도 자식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합니다. 아기를 낳는 일도 인간과 하나님이 함께하는 창조적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의 동역자로 나를 키우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미국 정부가 중산층에서 아이를 낳아 18세까지 키우는데 드는 돈을 통계 내 보니까 과외비와 학비를 제외하고도 고등학교까지 가르치는데 1억 6천만 원이 든다고 발표했습니다. 과외비와 학비까지 포함한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자녀가 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부모가 헌신했다는 뜻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자식의 울타리가 되어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양우리의 울타리는 양들을 짐승들로부터 보호를 해줍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식의 울타리로 자식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자식이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학교에 젊은 교장이 취임하자마자 운동장의 울타리와 담장을 헐어버렸습니다. 담장이 아이들의 정서를 구속하고 아이들의 사고를 좁아지게 만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울타리가 없어진 후에 나타난 현상은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놀기를 꺼려하더라는 것입니다. 갑자기 울타리가 없어지니까 모두 교실 안으로 들어와 아이들의 행동반경이 더 좁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울타리는 구속의 상징이 아니고 심리적 안정의 한계선임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울타리가 없어진 후 아이들이 더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울타리를 세웠다고 합니다. 부모의 훈계는 자식들에게 잔소리가 같고 자녀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서 보모를 통해서 쳐놓으신 울타리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자식을 사랑하시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를 통해서 자식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부모님입니다. 특히 한국 부모의 자식 사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초기에 한국에 와서 쓴 한 외국 선교사의 논문에 보면 “조선의 아버지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선의 어머니는 남편의 출세와 자식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의 몸을 불태운다. 이 나라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환경에서 오천년이나 이렇게 꿋꿋하게 살아남은 것은 조선의 아버지, 어머니의 헌신적 삶의 철학 때문이다.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 T.V에 보니까 노모를 집에 모시지 않고 컨테이너에 방치한 아들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머니를 컨테이너에 가두고 문을 잠그고 먹을 것도 잘 주지 않아서 결국 어머니는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노모는 아들 며느리에게 혹시나 피해가 갈까봐 아들 며느리가 잘해준다고 먹을 것도 잘 준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끝까지 자식을 변호합니다. 이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고려장 설화를 다룬 김형영의 [따뜻한 봄날]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봄꽃 구경 가자고 꼬여 엎고 산속으로 갑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혀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멀어지자 어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뭘 하게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이 걱정이구나, 산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 공경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순종’이란 헬라어(휘파쿠오)를 보면 ‘경청한다, 따른다, 복종한다’라는 뜻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따르고 복종하는 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순종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눅 2:51에 보면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조상 중에 고생을 제일 적게 한 사람이 이삭입니다. 이삭의 장점 중에 두드러진 것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부분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을 때 이삭은 20세 전후의 청년이었고, 아브라함은 120세 전후의 노인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기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고 칼을 들고 죽이려고 하는데도 아버지를 밀쳐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충분히 할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중에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야곱이 눈이 흐려서 앞을 보지 못할 때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대신해서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의도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아버지에게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그 일로 20년간 죽도록 고생하게 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 즐겁게 하며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잠 23:25에 보면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인 것처럼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는 것이 효도 잘하는 것입니다. 

일본에 소문난 효자 대학생이 있어서 하루는 그의 친구가 어떻게 효도하는지 보자하고 시골집에 따라갔습니다. 효자가 집에 가자마자 샤워를 하는데, “어머니, 비누 좀 주세요” 또 “어머니 수건 좀 갖다 주세요”, “어머니, 물 좀 더 주세요” 하며 자꾸 어머니를 시켜먹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친구가 ‘아지 효자 자식이 뭐 이렇게 어머니를 시켜만 먹나’라고 생각하고 실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조용할 때 친구를 불러 “나는 네 행동에 실망했네. 효자란 놈이 엄마를 부려만 먹는데 효자가 아니라 불효자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효자가 “자네, 우리 어머니의 뜻을 몰라서 그러네. 어머님은 그런 심부름 하시는 것을 큰 기쁨으로 알고 있네. 내가 그것을 하기 싫어서 시키는 것이 아니라네” 하더랍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그 속을 시원케 해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옛날 시골 가난한 집에서 아들 하나를 키웠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서 생선을 먹으면 어머니는 머리만 발라먹고 아들에게는 몸통을 주었습니다. 아들이 “엄마는 왜 머리만 드세요?”라고 물으면 어머니는 “나는 머리가 맛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실은 몸통에 살이 많으니 아들에게 살을 먹이고 싶어서 어머니가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후에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선물을 보냈는데 그 선물이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선물꾸러미를 풀어보니 커다란 상자 안에 생선 머리가 가득한 것입니다. 미련한 아들이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고 어머니가 생선 머리를 좋아하시는지 않고 몸통은 지가 먹고 머리를 상자에 잔뜩 담아서 보낸 것입니다. 


올바로 살고 열심히 사는 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시 127:3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고 상급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영광이 될 수도 있고 수치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로 살고 열심히 사는 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산리금식기도원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 어머니께서 잠간 다녀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에 어머니께서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상기된 목소리로 전철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시는데 굉장히 기쁨이 충만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오산리기도원에서 집으로 가시는 길에 전철을 타셨는데 몇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데 마경훈 목사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마경훈 목사를 아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분들이 잘 안다고 하면서 제 칭찬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제가 마경훈 목사 엄마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분들이 훌륭한 아들을 두셔서 좋겠다고 하면서 게속 친찬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저에게 전화를 하신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본의 아니게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자식이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사는 것만큼 부모에게 큰 효도도 없습니다.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사는 것이 효도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무디 기념교회를 담임한 조지 스위팅(George Sweeting) 목사님께서, “현대 가정은 정원보다는 정글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생존의 법칙이 적용될 만큼 반목이 심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어떤 부자가 배로 강을 건너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이 좀 모자라는 바보였습니다. “아버지, 형제란 무엇인가요?” “형제란 한배에서 나왔기 때문에 형제라 하는 것인데 먼저 나온 사람이 형이 되고 나중 에 나온 사람이 동생이 되는 것이다” 어느덧 배는 강을 건너 언덕에 닿았는데 아들 녀석이 아버지보다 먼저 뛰어 내리면서 아버지한테 하는 말이 “오늘은 내가 배에서 먼저 나왔으니까 내가 형이예요. 오늘은 아버지가 나보고 형이라고 해야 돼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가 등을 지고 만나면 싸운다면 보모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반대로 한 배에서 나온 형제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해준다면 부모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입니다. 

효도하려면 먼저 부모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용서하라.
최근의 어느 앙케이트에 의하면, 젊은이들 가운데 백 명 중 약 칠십 명이 자신의 부모를 미워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가장 사랑해야 할 관계가 오히려 가장 상처가 많은 관계로 변한 것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발생한 불행 중 하나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좋은 부모도 많지만 간혹 짐승 같은 어미 아비도 있습니다. 부모가 꼭 짐승 같기 때문에 자녀들이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상처를 받는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부모의 언행심사를 통해서 자식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상처가 되었든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자녀들이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면 진정한 효도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효도를 하기 전에 먼저 부모를 용서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이 가슴에 많이 맺혀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모 공경해라. 그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라고 한다고 부모 공경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옳은 말이지만 옳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를 위해서는 부모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님도 상처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상처는 쓴 뿌리를 만들고 쓴 뿌리는 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쓴 뿌리로 인해서 자식들에게 쓴 열매를 내뱉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자식들에게는 또 상처로 남게 된 것입니다. 사실 상처를 받으면 ‘보복 모방의 심리’가 생깁니다. 어머니를 늘 폭행하는 아버지를 혐오하던 아들이 장성하여 자기의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알코올중독에 걸린 아버지 때문에 피눈물 나는 세월을 보낸 아들이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방종한 패역을 본받게 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보복적인 모방의 심리”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자신도 모르게 수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오셨습니다. 그 상처들로 인하여 ‘보복 모방의 심리’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부모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가 쉬워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서 부모를 사랑하라.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실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을 처음 주실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계명 앞에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켜 행하기에는 지극히 작은 계명도 우리에게는 무거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 20:6이나 신 5:10에서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 14:15에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늘 주의 사랑 안에 깊이 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진정한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점령하면 계명이 없이도 계명을 몰라도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십시오. 그러면 다른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보모님을 공경하는 자식이 될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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