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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롬 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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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롬 8:12~17)

할렐루야! 
은혜와 평강이 충만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50일째 되는 날,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불같이/바람같이 임하신 성령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고 하셨습니다.

이에 120명의 사람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 때 성령이 임하셔서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전하면서(행2:11)
초대교회 부흥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오늘은 그 당시 성령이 임했던 것을 회상하는 날이 아닙니다. 
그때의 일을 기념하는 날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오늘 이 자리 … 이 순간에도 … 성령이 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을 모인 곳에 나도 그들과 같이 있겠다”
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모하는 자에게 오늘도/지금도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회복되고 
영육간에 병든 이들이 치료받는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부흥의 역사가
여러분의 가정, 일터, 그리고 우리 교회에
다시 한 번 일어나기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기대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때마다 일마다 성령 충만한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교회절기 상으로는 「성령강림절」이며
정부가 정한 「입양의 날」이기도 합니다. 
5월 11일을 입양의 날로 정한 이유는
한 가정에서 한 명씩 아이들을 책임지고 
함께 입양하여 기르자는 뜻이라고 합니다.

한국전쟁(6.25전쟁) 이후, 
전쟁고아와 국제 결혼한 사람들의 자녀에 대한 대책으로
공식적인 입양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민족, 한 핏줄을 부르짖으며 단일민족국가라고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
‘고아 수출국’이라는 부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많은 어린아이들을 해외로 보냈습니다. 

다행히 지난 해 부터 국내입양수가 해외입양수보다 앞서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입양을 했다가 취소하는 
파양(罷養: 그만둘 파, 기를 양)의 경우가 
전체 입양 어린이의 20%에서 40%에 이른다고 하니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2008. 5. 5. SBS뉴스보도 참조)
입양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입양을 했으면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책임지고 길러야지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파양을 하는 사람들은 입양 안하느니만 못합니다.
자기 배로 낳은 자식도 미울 때가 있습니다.
마음에 안들 때도 있고 심한 경우에 죽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미국의 워싱턴(Washington)주 밴쿠버(Vancouver)에 있는 
글래드 타이딩스(Glad Tidings) 교회 릭 맥퍼슨(Rick McPherson) 목사께서 
“손자는 자식을 죽이지 않고 기른 부모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미국 사람들도 자식을 기를 때 정말 실망스럽고 미워서 
‘아유 저 놈을 죽여, 살려’라고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참고 잘 기르면 손자가 선물로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도 이렇게 죽이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하물며 입양한 자식도 속 썩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길러야지, 중간에 파양하는 것이 서글픈 일입니다.

이제 이 사회에서 입양문제는 예수 믿는 우리들이 져야 할 책임이자 
또 다른 사명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자녀를 낳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정이 필요하고 부모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주고 행복한 가정을 선물하는 것도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망설이다 망설이다 시간을 놓쳐 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할 수 있는 이들은 하시기 바랍니다. 
입양을 한 이들을 격려하고 주변에서 한 마음이 되어 사랑으로 함께 양육해야 합니다. 

예배실로 올라오는 계단에 붙은 
390명이나 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기도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맺은 인연도 귀히 여겨야 합니다.
마음속에, 입양한 가족으로 삼고 
여러분이 가족을 위해 기도할 때 입양한 아이들, 
후원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후원금을 제 때 내야 합니다.
여러분이 후원하는 아이는 여러분과 약속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후원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후원하지 않으면 그 아이는 먹을 수도, 입을 수도,
공부하는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기억력이 나쁜 사람은 연말까지 계산하여 아예 미리 내시기 바랍니다. 
오래 살 것 같지 않은 사람은 
후원하는 아이의 18살 때 까지 계산하여 미리 내시기 바랍니다.
간혹 이민을 떠나거나 멀리 이사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를 기르기로 한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혹시 제가 미워도 그 아이들은 미워하지 말고 
후원금을 제 때 제 때 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도 후원하는 일에 동참하지 못한 분들은 
용기를 내어 여러분도 해외에 있는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주십시오. 
형편이 된다면 입양도 하십시오.

양자의 영을 받았으니

입양은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입양의 단계를 거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새로운 생각을 가졌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본문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 … ”(롬 8:15) 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양자’라고 하면 
고아 또는 입양된 사람/어려운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본문이 쓰여진 당시 로마에서‘양자’는 매우 높은 특권이었습니다. 
양자는 자신의 뜻을 잘 이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친자보다 더 귀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양자가 되면 양자되기 전에 가졌던 권리는 모두 버려야 합니다.
이전의 권리가 굉장한 것이든, 하찮은 것이든 … 
다른 집의 양자가 되는 순간 양자 된 집에서 받게 되는 권리를 행사하고 
그에 따른 의무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 우리는 
- 죄의 종이었습니다.(롬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었더니 … ”(롬 6:17)
- 불순종의 아들이고 진노의 자녀였습니다.(엡2:2~3)
“전에는 우리도 …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엡2:2~3) 
그러나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양자가 된 순간부터
‘죄의 종’이라는 위치와 ‘진노의 자녀’라는 신분으로부터 끊어지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지위와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자녀들은 아버지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지게 되는 새로운 의무에 순종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살던 습관을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안산1대학 학장으로 계시는 김득중 박사께서 미국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5살짜리 여자아이를 입양했답니다. 
그런데 입양한 다음 날부터 문제가 생기더랍니다.
가족들이 아침 식사를 하는데 입양한 딸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다른 식구들 먹는 것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더랍니다. 
김박사님 가족은 미국에서 살던 습관대로
빵과 우유, 계란후라이 등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좋아했지만
입양한 딸은 아침에도 꼭 밥을 먹는 타입이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새로운 가정에 들어와 그 가정의 막내딸이라는 신분을 얻었지만
예전에 살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었고,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된 분은 성경을 찾으려면 잘 못 찾고, 
기도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찬송가도 잘 못 부르고 
교회 나올 때는 교인 같다가도, 밖에 나가면 교회와 아무 상관없이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옆에서도 지켜 봐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해도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새로운 신분에 맞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여전히 죄인처럼 살고 죄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 …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요 16:13)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설교 시간에 듣는 소리를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필요한 때, 생각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삶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방법을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빠 아버지

예수 믿는 사람/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최고의 특권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빠/아버지’라고 부르는 관계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가까운 사이입니다.

우리교회에 교육 전도사들이 많습니다. 
모두들 맡은 부서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아주 제 마음에 듭니다. 
전도사들을 보면 든든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배움의 과정에 있는 그들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것/아는 것/
할 수 있는 것 … 모두를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신문을 보다가도 
전도사들이 알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기사가 나오면 복사해서 나눠줍니다. 
책을 읽다가 전도사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책은
제가 사다가 읽으라고 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범했던 실수들을 
그들의 목회에서는 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사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시키는 것도 많습니다.
때로는 꾸중도 합니다. 그런데 심하지는 않습니다. 믿어주세요.
제가 얼마나 부드럽고, 친절하고, 온유하고, 편안한 사람인데
아무려면 심하게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자기들끼리 모여 있을 때는 웃으면서 이야기 잘 하다가
제가 나타나면 얼굴이 굳어지고 하던 말도 멈춰 버립니다.
어쩌다 제 사무실로 부르면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들어와 부동자세로 섭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명은 다릅니다.
제가 불러도 다른 전도사들처럼 긴장하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들어와서 
묻지도 않고 이 것 저 것 들고 가기도 합니다.
가져간 것은 이해되는데 가져갔으면 다시 갖다 놔야 되는데 … 누구겠습니까? 
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들입니다.

미국에 3억 가까운 인구가 산다고 합니다.
그 3억 인구 중에 제가 누구를 보고 싶어 하겠습니까?
부시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하겠습니까?
오바마, 힐러리 …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도 제가 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보고 싶은 사람 한 명 있습니다. 
제게 ‘아버지’라고 부르는 작은 아들입니다.
급할 때, 돈 필요하면 ‘아빠’라고 부르는 아들입니다.

‘아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는 설명이 필요 없는 친밀한 관계입니다.

기도는 유창하게 문학적으로 멋있게 하는 것 사실은 의미 없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이야기 하듯 대화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빠’라고 부르고 아들이 아빠에게 친밀하게 하듯이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보통 사람들이 사용했던 아람어로
"아빠(abba)" 는 우리나라 말‘아빠’와 발음도 뜻도 같습니다.
아람어에서는 ‘아버지’라는 존칭이 따로 없고
우리말의 ‘아빠’에 해당하는 말만 사용합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황송하게 생각해서 
서기관들이 성경을 옮겨 적다가 ‘여호와(야훼)’라는 말이 나오면, 
목욕재계하고 새로운 붓으로 그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애정 어린 호칭 ‘아빠’로 부른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되어
하나님을 권위와 위엄이 있는‘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친밀하고 편안한 “아빠”로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어린 아이가 자기를 사랑해주고 놀아주고 
투정도 받아주는 아빠를 부르듯이,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받았습니다. 

자녀이면 … 상속자요

그런데 여러분이 …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합니까?
우리 스스로 … 우리가 …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거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신다고 했습니다.

16절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했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를 아들 예수님과 우리를 동일하게 사랑하시고 (요17:23)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co-heirs -NIV)로 삼으셨습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3) 

하나님은 “…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엡1:3)
예수 믿는 우리에게 주시고 흠 없고 거룩한 자녀로 하늘의 영광을 예비하셨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1:3)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 …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17:24)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 아빠로 부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될 십자가가 있습니다.
때로는 고난도 받고/비난 받고/희생하고/소외당하고/따돌림을 …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아빠로 부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쁘게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은 사람입니다. 
유업은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 하나님의 일을 유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어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 잘 감당해야 합니다.

특별히 잘난 것이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 것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 옆에 앉아 있는 분들,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대충 보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분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분입니다.
축복하며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언제/어디서나/어떤 경우에도 … 두려워하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살면서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참고 견뎌야 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성령은 2천 년 전에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그냥 스쳐지나간 존재가 아닙니다.
지금도 예수 믿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 믿는 우리 속에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역사하십니다.(요14:26)
성령은 이미 예수 믿는 우리 속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2:38
“ … 회개하여 …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고린도전서 12:3
“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요한일서 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 

요즘 야구 시즌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의 야구라고 해도 야구장에 가면 응원하는 노인들이 계십니다.
옛날에 그 학교 졸업한 졸업생들입니다.
지금 그 학교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학교 이기라고 목청 높여 응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 마음속에 그 학교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집이 많고, 아파트가 많은데 예배 끝나면 여러분은 어디로 가십니까?
자기 집에 갑니다. 그 속에 자기 집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속에 여러분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식구들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면 
‘어디서 감히 …’하며 덤비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마음속에 교회를 품고 있는 성도라면
밖에서 누군가 우리 교회에 대해 이상한 얘기를 할 때
‘우리 교회가 그랬나?’라며 흔들려선 안됩니다.

적어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내가 그 교회 다니는데 …
뭘 알고 그런 말 하느냐’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는 순간 여러분 속에 성령 하나님이 들어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로마서 8:9
“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예수 믿는 우리 속에 계시며 가르치십니다. 생각나게 하십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
하나님의 자녀로/양자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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