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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한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행 8: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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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행 8:26~39)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산소 같은 사람이 되십시오.  지금 몸을 담고 있는 조직이 활력을 잃어버리면 금방 무너집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망하는 조직은 조직원들이 활력이나 재미를 잃었는지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이 조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망하는 조직에는 활력이 없고 헌신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직에 활력이 있으려면 조직원들이 활력이 있어야 됩니다.  어느 조직이든 활력이 철철 넘치지 못하면 불신과 불만과 권태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 조직에 다시 활력이 살아나면 불만도 불평도 권태도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고, 지도자들에게 활력이 넘쳐야 부흥이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철철 넘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 교회에 생명의 활력이 철철 넘치게 하옵소서.
성령이여! 나로 하여금 우리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산소 같은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조직에 활력이 넘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조직의 구성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 속에 활력을 갖고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 안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활력이 철철 넘쳐흘러야 합니다.  이 교회는 내 자녀들이 꿈과 비전을 안고 자라갈 내 교회입니다.  내 뼈를 묻어야 할 사명의 자리라는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어쩌다가 마음이 맞지를 않아서 떠나가는 철새들이 머무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철새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수많은 오물들만 남습니다.  그러나 주인 의식이 분명한 사명자가 머물다 간 자리에는 헌신과 따뜻함과 아름다운 손길이 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활력이 넘치는 교회에 가보면 성도들의 헌신이 넘쳐납니다.  교회 구석구석에 성도들의 아름다운 손길로 인해서 따뜻함이 가득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 공동체와 서로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생명력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직에 활력이 넘치려면 조직을 일으키는 스타가 있어야 합니다.  성공이 무엇이며, 성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성공의 경험이 전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문제가 됩니다.  유명한 야구팀이나 축구팀을 보십시오.  거기에는 스타가 있습니다.  결국 조직이 일어나려면 스타가 있어야 됩니다.  그 조직 안에서 특별한 하나님의 역사에 눈을 뜨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직은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업무 달성을 위해 존재합니다.  교회 또한 하나님의 지상 명령인 전도를 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성공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조직은 절대로 활성화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누군가 스타가 있어야 됩니다.  그 조직이 갖고 있는 특정한 목표와 업무 달성을 위해 존재함을 깨닫고, 권한의 위임을 받았으면 자기가 달성할만한 목표를 자기 스스로 설정을 하고 나가야 됩니다.  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의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교회를 살리는 스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조직에 활력이 넘치게 하려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직의 활력이 죽어 가는 것은 바로 내부의 갈등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에 갈등이 크게 일어나면 안됩니다.  작은 갈등이라도 그 갈등을 잠재워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매우 이기적인 존재들입니다.  이기적인 존재들로 모여 있으면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영적인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조직 내부에 있는 갈등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것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하나님 안에 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영적인 사람들이 함께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영적인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지는 것을 막아야 됩니다.  먼저 자기 스스로가 굳어지지 않으려고 힘쓰고 애를 써야 됩니다.  심령이 굳어져서 완악해 지는 불쌍한 영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끊임없이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 밭을 갈아엎어야 됩니다.  성경은 마음이 굳어져서 완악한 이 땅의 백성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 마음을 기경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시대는 가고, 역사는 갑니다.  사람도 흘러갑니다.  그러나 어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가졌던 꿈은 영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이 가지고 있는 사명과 꿈이 있어야 됩니다.  비전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우리 교회가 일어나서 나라와 민족 앞에 기여한다는 비전과 그것을 붙잡으려는 사명 의식이 투철해야 됩니다.
"나는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서 살리라.
이 한 생명, 오직 주를 위하여 살리라."
우리는 이 한 사명에 끝없이 미쳐서 살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가난하고 무식한 갈릴리 어부가 있었는가 하면,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저주하는 세리 출신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세상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제자들의 삶을 사도행전의 삶으로 바꾸어 놓았습니까?
무엇이 자신을 따라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제자들을 복음을 위하여 불꽃같이 목숨을 버린 사도행전의 삶으로 바꾸어 놓았을까요?
 
기억하십시오.  그들을 변화시킨 한 복판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님이 임하실 때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세우시겠다고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십니다.

주님의 약속처럼 일어난 복음의 물결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제자가 되기를 결단했습니다.  사도들은 한결같이 이전의 삶에서 벗어나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생명의 바람은 예루살렘에서 유다를 거쳐 사마리아까지 번져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마리아가 어떤 땅입니까?  유대인의 눈에 비친 사마리아인은 동족의 피를 더럽힌 저주받은 민족이었습니다.  신앙적으로 얼어붙은 땅과 같았던 사마리아에 복음의 강물이 흘러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위대한 복음의 역사 한 가운데 성령의 불꽃을 지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이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한 사람, 우리는 오늘 그 빌립이라는 사람 앞에 서 있습니다.

성령님이 빌립에게 말씀합니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사마리아 땅에서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  흑암의 땅 사마리아에 다가온 부흥을 뒤로하고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명령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자에게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 가슴이 뛰고 흥분하는 것이 전도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이곳 사마리아, 빌립이 서 있는 이곳에는 성령의 뜨거운 역사와 함께 복음을 받아들이고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빌립에게 아무도 없는 광야로 가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과 영혼을 향해 불타는 전도자에게 광야로 가라는 말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빌립이 누구입니까?  8장 6절에서 보면 그가 사마리아에서 어떻게 사역했는지 나타납니다.  물론 빌립이 처음에 사마리아에 들어갔을 때 이런 기대를 품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저주받은 땅이라 여겨진 사마리아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를 사마리아로 보내셨을 때 그는 잠잠히 순종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린 것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의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무리가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행하는 표적도 보았습니다.  한 마음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았습니다.  말씀의 역사뿐 아니라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습니다.  그래서 8절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한 그 결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성에 기쁨이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는 가끔 우리들에게 이렇게 찾아오십니다.  빌립에게 주어진 명령은 마치 그 옛날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명령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미 75살이나 된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지시도 없이 그냥 떠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수구초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란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민족과 고향과 심지어 아버지 집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기반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현실은 어떻습니까?  비록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몸이 움직이는 순종이 있기까지는 생각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이지만 들었다고 반드시 순종이 기계처럼 나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과 믿는 바대로 나의 몸을 움직이는 순종의 거리가 마치 머리에서 가슴의 거리처럼 멀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유를 알아야 몸을 움직입니다.  어느 정도 결과를 예측해야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유가 없고 미래가 불확실해도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을 뿐 아니라 믿는 바대로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인가를 보기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이라는 것이 누구에게서 나오는 것입니까?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온전히 신뢰할 때 나오는 것이 순종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나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이 순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빌립에게는 돌봐야 할 수 천명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전도해야 할 수만 명의 사마리아인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인간적인 생각으로 본다면 이곳 사마리아는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고, 명예도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엄청난 부흥을 일으킨 성공한 전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 인정과 존중을 한 몸에 받는 자리에서 광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사역을 뒤로하고 한 사람에게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높은 곳을 바라는 세상입니다.  따뜻한 곳을 바라는 세상입니다.  큰 것이 신이 되어 가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향해 광야로 나아가라는 이 말씀은 얼마나 어리석게 보입니까?  순종이란 것이 사람의 눈에는 이렇게 어리석게 보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순종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어떤 역사입니까?
생명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보기에 사마리아 땅에 불어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성령의 역사를 두고 빌립이 광야로 가야 할 명확한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마리아 땅에 남아야 할 이유는 확실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빌립은 가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더 이상 큰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내 생각이 논리적이고 타당하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순종하기까지 눈에 보이는 이유를 기다리는 사람, 표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믿고 나가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생각을 뒤로하고 주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참된 순종이 있을 때 영적인 진보가 있습니다.  주님께 온전히 맡겨보는 결단이 있을 때 신앙인의 맛과 멋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지나치게 앞뒤를 따져보고 재보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이 보기에도 정말 부담스럽습니다.
 
아십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재보고 따져 보았더라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지도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십자가의 역사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우리에게는 생명과 부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찬란했던 사마리아의 성령의 역사를 뒤로하고 광야를 향해 길을 떠나는 이 빌립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가 어떤 마음으로 광야로 갔을까요?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광야로 내 몰아치는지 영문도 모른 채 불평하는 마음으로 마지못해 갔을까요, 아니면 이렇게 위대한 역사 가운데 나를 불러내시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품고 떠났을까요?

분명한 것은 빌립은 기대감에 부풀어서 떠났을 것입니다.  사마리아에서 주님의 역사를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메마른 광야에서도 반드시 역사를 일으키시리라는 믿음으로 떠났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기대감이라는 것이 아무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비전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도 무엇인가 일어난다는 기대감은 하나님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한 삶의 기대입니다.  이 기대감이 있어야 삶이 행복합니다.
 
이 기대감을 품는 사람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어제의 태양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나를 위해 보내신 특별한 한 날의 선물로 여기고 오늘도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런 사람은 오늘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롭습니다.
 
오늘 만나는 한 사람은 어제와 동일한 그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보내신 특별한 한 사람으로 여기고 오늘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 분에게 어떤 기적을 행하실는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가 예수님을 이미 믿고 있다면 나로 말미암아 더욱 온전한 자로 세움을 입게 할 것이며,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오늘 나와의 만남을 통해 한번은 만나야 할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지 않으실까 순간마다 긴장감과 기대감을 가지고 사람을 대합니다.
 
오직 성령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발견되는 이 기대감.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도 성령님께서 주시는 이런 기대감으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성령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하실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를 통하여 어떤 역사를 이루실까?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예배를 통하여 어떤 은혜를 주실까?"
우리에게는 이런 기대감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는 채 광야로 향하는 빌립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마른 광야에 한 생명을 예비하신 하나님.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종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순종할 때 광야에도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미지근한 신앙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고 체험하는 살아 있는 신앙의 경험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저 멀리 광야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빌립의 눈에 하나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빌립의 눈이 커져가고 가슴은 뛰기 시작합니다.  그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메마른 광야를 지나가는 한 사람을 보면서 빌립의 가슴은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성령님께서 빌립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빌립아,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빌립은 지체하지 않고 달려갑니다.  마침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빌립이 묻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습니까?"
내시가 말합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내시는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앉게 합니다.  빌립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수레에 뛰어 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빌립에게 이러한 담대함을 주었을까요?  빌립이 가진 눈은 사람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비치는 구스 내시는 구원받아야 할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할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바라본 것은 한 나라의 장관의 마차행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잃어버린 한 영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하나님을 알아야 할 사람 두 종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눈은 너무나 상대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 우리의 평가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가 어떤 직장을 다니는지,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어떤 가정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외면적인 것으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하여 좀 더 낫다고 생각하면 우쭐하든지, 열등하다고 생각하면 주눅이 드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비교 우위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많은 것, 좀 더 나은 것을 추구하려고 달려갑니다.  좀 더 좀 더 추구하다가 인생을 맞이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이란 이렇게 살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는 고귀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불러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람을 대할 때 가져야 할 눈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사람을 보실 때 가진 절대적인 눈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알아야 할 사람인가?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가진 자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어야 할 사람인가?
 
천한 자든 높은 자든 주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는 눈,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일생 주님이 찾으시는 영혼을 향해 살아가야 할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바라보는 주님의 이 눈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침 구스 내시는 구약에서 예수님을 가리키는 이사야의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그 말씀에서 시작하여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완벽한 예비하심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 구스 내시에게,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자 빌립에게 동일하게 내리시는 완벽한 하나님의 예술은 광야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 예수님을 예언하는 말씀을 읽게 하시고 구세주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구스 내시의 완전히 변화된 모습은 즉각적인 세례로 나타났습니다.  한 영혼이 탄생되는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주신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빌립은 묵묵히 성령님께 순종하며 달려갑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 어쩌면 빌립이 본 것은 황막한 광야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황막한 광야 가운데 구원받아야 할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은 구스 내시라는 한 사람, 아니 어쩌면 빌립이 본 것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그로 말미암아 구원받아야 할 에디오피아의 수백만 명의 잃어버린 영혼들이었습니다.
 
빌립이 바라본 것은 에디오피아의 한 영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은 당시 땅 끝의 한 부분으로 여겨졌던 에디오피아의 한 영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구스 내시라는 한 사람을 통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세계선교의 문을 여셨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한 민족을 보셨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한 민족을 가슴에 품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이후로 저와 여러분도 한 영혼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 비전에 영의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인간적인 시선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 바로 이것이 성경에서 일관되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나이든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  한 사람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는 하나님.  한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패역한 이스라엘의 죽은 신앙에 불길을 일으키신 하나님.  베드로 한 사람을 사용하여 예루살렘의 지도를 바꾸시는 하나님.  빌립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흑암의 땅에 성령의 불길을 일으키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하나님의 가슴을 품고 세계를 향하여 불타오르기 시작했을 때 평범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세계를 향하여 달려가는 위대한 거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들어간 자리에는 흑암이 물러가고 예수님의 광명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상과 거짓의 가르침이 물러가고 복음과 진리가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선교 역사도 마찬가집니다.  100년 전 암울했던 조선 땅을 향해 순교의 각오로 바다를 건너온 한 사람 한 사람들.  이들로 말미암아 어둠으로 뒤덮인 한국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때로 자신의 젊음을 이 땅에 바치기도 했고 자식들을 풍토병으로 죽게 하기까지 하면서 그들은 생명의 복음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로 말미암아 오늘날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을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삶을 통해 그 절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신 예수님은 왕으로 삼겠다는 무리들을 뒤로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로 나아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밤이 맞도록 진리에 갈급하며 찾아온 니고데모를 만나셨습니다.  창녀처럼 살아갔던 사마리아 여인을 변화시키셨습니다.  38년 동안 아무런 소망 없이 살아온 병자를 일으켜 세우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부와 명예를 쥐고도 고독하게 살아온 삭개오를 만나시고 무의미했던 삶에 감격을 심어주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저 멀리서 외치는 나병환자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신 우리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99마리의 양을 사랑하셨지만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위해 밖으로 나가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가 오심은 우리 한 사람을 위해, 그리고 잃어버린 나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모든 관심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야 할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구원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을 향한 주님의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얻으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모든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대할 때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집중되어 있습니까?  사람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이 여러분의 관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나 한 사람을 통해 가정을 변화시키고 민족과 세상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침에 눈을 뜨면 여러분의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찾으시는 한 영혼이 가슴에 떠오르십니까?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려보신 적이 언제입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주님이 찾으시는 영혼을 위해 나아가야 할 주님의 동역자들입니다.  내가 오늘 만나는 사람이 마치 이 땅에서 만나는 마지막 사람인양 진지하게 우리의 모든 사랑으로 나아갑시다.  그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우리는 그와 함께 주님을 찬양할 것이요, 그가 예수님을 믿으나 구원의 감격이 없는 자라면 그를 온전히 세워 헌신하게 할 것이요, 그가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오늘 바로 그 순간이 구원의 감격이 일어나는 위대한 날로 만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순간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보여 주시는 한 사람이 떠오르십니까?
나로 말미암아 구원받아야 할 한 사람, 나로 말미암아 다시 신앙의 감격을 회복해야 할 한 사람이 떠오르십니까?
성령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사람인줄 믿고 그에게로 나아갑시다.  그로 하여금 살아 계신 주님을 체험하게 하십시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켜 가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시간은 우리를, 그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이지만,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서의 영원한 형벌입니다.

인도의 수많은 버려진 영혼을 향해 일생을 불태운 테레사 수녀를 기억하십니까?  그녀 앞에는 수 만명의 영혼이 있었지만 그녀가 바라본 것은 한 번에 한 영혼이었습니다.   '한 번에 한 사람' 이라는 글에서 그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번에 한 사람씩.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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