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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아버지 이야기 (시 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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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야기 (시 127:1)
                                                                                      
가정의 달,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은 아버지에 국한시켜 설교하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는 다음 기회로 넘기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육신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제게도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제 아버님께서는 15년 전에 76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6.25 당시 북한 땅을 수시로 드나든 케일로 부대의 한국 측 대표셨습니다. 가족들에겐 출장 간다고만 말씀하시고 공작원들과 북쪽으로 잠입해 들어가곤 하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아버님 키는 170cm도 못되었지만, 몸무게는 무려 90킬로그램도 넘겼습니다. 유도로 단련되셨기 때문에 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깨 근육이 발달하셨습니다. 게다가 완전히 대머리 신사셨습니다. 머리 감는 샴푸는 당연히 필요 없으셨지만, 비누는 좀 많이 사다두셨습니다. 세면하시는 면적이나 면도하시는 부위가 워낙 넓으셨기 때문입니다. 

머리카락 하나 없고, 둥그런 얼굴에 긴 귀, 남산만한 배에 자주 웃으시는 모습으로 그 옛날 ‘금복주’라고 하는 술병에 그려진 할아버지랑 영락없이 비슷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아버님의 이런 외모 때문에 어린 저는 창피해했습니다. 함께 목욕탕 갈라치면 떨어져 걷곤 했습니다. 

제가 인도네시아 선교사 시절 2003년, 아버님께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제가 귀국해도 거처할 곳이 없다는 것에 대해 늘 미안해하시던 아버님께서 마지막 병상에서도 염려하셨습니다. 거칠게 숨 쉬며 마지막을 기다리시는 아버님께 제가 이런 말씀드린 것이 생각납니다. 

아버님을 유난히 닮은 모습으로 태어나 이 땅을 살아가는 특권 하나로도 이미 감사하며, 아버님 가신 이후에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넉넉히 보살펴 주실 것이라고요. 그러자 아버님께서는 눈물 많이 흘리시다 이내 평안해지셨고, 결국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제 아버지로서 제 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아버지학교라는 귀한 프로그램에 참석한 적 있습니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복창하면서 성경적인 아버지가 되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때론 아버지학교에서 강의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 여러분 앞에서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렵니다. 

저희 가정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아정체성 흔들리는 제 딸이 요즈음 들어와 부쩍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온 가족이 찜질방을 찾게 되었습니다. 제 곁에 앉은 딸이 자기 허벅지가 제 허벅지처럼 굵다고 속상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한마디 해주었습니다. “별로 중요치 않은 일로 너무 신경 쓰지 마!” 

그 다음 날 아침, 제 딸이 어제 저녁 일에 대해 너무 섭섭했다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당황한 저는 교회 일 신경 많이 쓰는 바람에 깊이 공감해주지 못한 것이라고 변명하며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제 딸이 울게 된 것은 단순히 어제 저녁 사건 때문만은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자라면서 저에 대해 비슷한 것을 자주 느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빠가 싸늘한 눈길로 나를 쳐다볼 때는 어려서부터 정말 힘들었어. 아빠가 하나님 일로 바쁘고 힘든 것 알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해. 나는 이제 이렇게 다 커버렸는데.” 그 말은 아빠 때문에 만족스럽지 못한 자화상이 형성되어버렸는데, 지금 와서야 아빠가 후회하면 무슨 소용 있느냐는 절규로 들렸습니다. 

교회로 출근하는 운전 길 내내, 딸의 말은 제 귀에 쟁쟁거렸습니다.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해. 나는 이제 이렇게 다 커버렸는데.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해. 나는 이제 이렇게 다 커버렸는데.” 저는 무거운 죄책감에 눌려 내내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딸에게 용서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구하는 마음으로 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아침 성애가 아빠 지적하는 말 듣고 참 많은 것 생각하며 운전했다. 

"과연 나는 몇 점짜리 아버지인가?" "내 안에는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아버지 상이 얼마나 있는가?" "성도들 앞에서 본보이며 하나님 말씀 증거 해야 했던 선교사로서 또 지금은 교수이자 목사로서 과연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인가?" 

오늘따라 돌아가신 아빠의 아빠가 유난히도 많이 생각났다. 워낙 늦은 나이에 태어나 대화 상대 되지 못한 아빠에겐 늘 과묵하게만 느껴졌던 아빠의 아빠. 

아빠의 고등학생 시절까지를 기억해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을 방문했었다. 아빠의 아빠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금세 환한 얼굴로 떠나가곤 했지. 많은 사람들이 아빠의 아빠를 존경했다. 철부지였던 난, 아빠의 아빠가 그렇게 훌륭하신 분인 줄 몰랐다. 

바라던 대학교에 아빠가 입학하자 입시지옥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으로 아빠는 방황했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다 나열할 수 없다. 고졸 이후 서울로 유학하기 전이나 방학 때 부산 고향 가서 친구들이랑 어울려 술 마시느라 외박하고 새벽에 귀가하기 일쑤였고, 집에서 온통 토하고 괴로워했을 때,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라 그러다 몸 상한다." 도리어 내 몸을 생각해주셨던 아빠의 아빠! 철부지였던 난, 아빠의 말 수 적은 아빠가 그렇게 따뜻하신 분인 줄 몰랐다.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사업체가 소송까지 걸리게 되었다. 여유 없는 가계를 꾸려야했던 아빠의 아빠가 가끔씩 서울 신림동의 내 자치 방에 들르셨다. 그리고 "너는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라."하시며 아빠의 손에 용돈 들려주고 가시곤 했다. 철부지였던 난, 아빠의 아빠가 그렇게 날 귀하게 여기시는 줄 잘 몰랐다. 

아빠가 신학교 진학해서 주의 종 되겠다고 아빠의 아빠에게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 예수님 믿지 않으시던 아빠의 아빠는 신기하게도 참 신기하게도 반대는커녕, "네가 교회 나가기 시작할 때 그 길로 갈 것 같았다." 말씀하시며 자식의 선택을 도리어 축복해주셨다. 철부지였던 난, 아빠의 아빠가 그렇게나 날 위하시는 줄 잘 몰랐다. 

아빠의 아빠가 수년간 중풍병과 싸우며 고생하시다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누님들께서 아빠의 중풍병이 시작된 경위를 알려주셨다. 성애 네가 태어나자마자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얼떨결에 전해드리자 그 충격 때문에 아빠의 아빠가 쓰러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가슴아파할 수 있으니 쓰러지게 된 이유를 아빠에겐 절대로 알리지 말라는 아빠의 아빠 부탁도 있었다고 누님들께서 덧붙였다. 철부지였던 난, 아빠의 아빠가 나를 그리고 성애 너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줄 잘 몰랐다. 

그런 아빠의 아빠를 생각해보면, 지금 이 아빠는 너무도 아니다 싶다. 성애가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선교하러 온 식구가 인도네시아로 옮겨갔다.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녀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알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돌보고 가꾸어가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러면서 아빠는 인도네시아에서 소위 "하나님 일"에 뛰어들었다. 

그 "하나님 일"이 미궁에 빠졌다. 수시로 받는 스트레스를 주체하기 어려웠다. 때때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집에서 쏟아놓을 때, 어린 성애도 어쩜 그 밝지 못했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꼈을 것 같다. 가정 가꾸기가 더 중요한 "하나님 일"일 수가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에서 따뜻하게 돌봐주시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어린 성애로선 엄마 사랑 외에 아빠로부터도 인정을 받고 싶었을 터인데. . . 아빠마저 바쁘게 지내느라 어린 성애는 더욱 외로웠을 것 같다. 

우리 가족은 결국 인도네시아에서 쫓겨나야 했고, 향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가 후원교회들의 배려로 영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배웠고 미국에서 선교학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공부 마치고 싱가포르로 옮겨가서 선교 일하다가 결국 귀국하여 교수가 되었다. 교회도 옮겨 지금에 이르렀다. 정신없이 진로가 바뀌고 이러 저리 여러 나라 옮겨 다녔구나. 그동안에도 아빤 아빠의 사역과 진로를 더 많이 생각했지. 

너무도 많은 사람과 너무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고 또 헤어져야 하는 성애를 스쳐 생각하기는 했어도 그리 깊이는 의식하지 못했다. 무척 힘들어했을 성애 곁에 아빠가 함께 하지 못했고, 성애 마음을 아빠가 공감하지 못했다. 

요즈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성애를 보면서, 아빠의 지난 세월을 동시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좀 우울해진다. 나라고 딸의 존경과 인정을 받지 않고 싶겠니? 나라고 푸근하게 딸을 품어주는 아빠라고 인정을 받지 않고 싶겠니? 하지만 인정받기에는 기울인 노력이 너무 부족했다. 참 미안하구나. 아무리 화려한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해도 가정과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합당치 못할 것 같다. 

오늘 아침 대화중에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해. 나는 이제 이렇게 다 커버렸는데"라는 말에 아빠 마음 한 구석은 무너지고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시계를 거꾸로 돌이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정도 다시 꾸려보고 싶다. 성애, 성무도 더 잘 키우고 싶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는 이제 바꿀 수 없구나. 지금은 늦었다는 말 한편으로 맞다. 

그래도 모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 아빠는 믿는다. 나처럼 달라진 사람이 또 있을까? 그것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강력한 증거다. 아빠는 대학 시절 참 많이 방황했다. 그런 내 생애도 하나님 만나니 오늘처럼 되었다. 물론 아빠로서의 점수는 부끄럽지만 말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에겐 유일한 소망이다. 아빠로서의 점수도 새롭게 갱신되길 소망한다. 그렇게 될 거야. 

지나간 시절이나 지금 이 순간도 우리 성애에게 반드시 축복으로 다가올 거야. 과거나 지금의 성애가 겪는 아픈 경험은 도리어 하나님 축복이었다고 언젠가 고백할 날이 있을 거다. 비슷한 경험을 하는 다른 영혼들을 넉넉히 섬겨내는 훌륭한 사람 될 거다. 

성애가 하나님 생각하면서 아주 벗어나지 않고 견디어 가느라 대견하다. 나는 참 부족한데 이만큼 자라준 것 만해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성애가 고맙다. 좋은 아빠 되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제 딸이 답장을 써왔습니다. 딸의 허락 받고 읽어봅니다. 

아빠에게, 아빠가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긴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 대한 사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거 같아. 그러니 아빠가 모르는 사이에 아빠도 아빠 역할을 하고 있는 건가봐. 

몇 점짜리 아빠인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 같아. 백점짜리 아빠가 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아마도 그런 아버지상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인 하나님께만 있지 않을까 생각해. 

아침에는 내가 너무 심하게 했던 거 같아. 딸이 아빠를 지적한다는 건 보통 아이가 아니고선 그렇게 하지 못할 거 같아. 미안해, 나도 앞으로는 표현을 좀 더 부드럽게 하도록 노력할게. 

아빠와 딸이 관계회복하고 싶다는데, 우리 둘 다 노력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도 도와주실 거 같아. 그리고 다 컸다고 이미 늦어버렸다고 말은 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불가능이란 없는 거 같아. 

그러니까 아빠 우리 서로 노력해보자. 화이팅 ㅋㅋ 

하나님 도우심과 용서 구하는 마음으로 자식과 화해하니 참 다행이었습니다. 물론 완벽한 아버지, 친밀한 부모 자식 관계는 아직도 요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많이 힘들어하시는 분도 계시지요? 

행복한 가정 이루는데 도움 주는 세미나가 많습니다. 훌륭한 상담가도 주변에 있습니다. 다 필요하고 귀한 도구들입니다. 하지만 가정 문제 해결은 결국 우리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세미나에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하고, 상담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판에 박힌 말 같이 들리시지요? 그렇지만 사실입니다. 본문 시 127편 1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생각할수록 저는 부끄러운 아버지이고, 제 아버님은 훌륭하신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완벽하신 아버지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창조하셨고 가정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뿐만 아니라 죄와 고통가운데서 우리를 살려내기 위해 어쩌면 자신보다 더 귀중한 외아들 예수님마저 희생시키셨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 사랑 잘 모르고 지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있는 모습 이대로 우리를 귀하게 여겨주십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신음하고 탄식하는 우리를 흔쾌히 도와주기 원하십니다. 죄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는 우리를 결코 더럽고 추하다고,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우리가 짊어지고 있을 그 무거운 짐으로 인해 더 가슴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쁘게 용서하시며, 조건 없이 품어주고 사랑해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성령강림절이기도 합니다. 몇 대째 팔레스타인 땅 밖에서 흩어져 지내던 유대인들이 2천 년 전의 오순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예수님 부탁대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오순절 날, 성령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제자들은 팔레스타인 땅 토박이들인데 해외에 나가본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자신들의 지역어를 구사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니 사람들은 회개하고 하나님 큰 일이 언어 장벽까지 뛰어넘어 소통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에도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면 각 가정마다 마음의 벽이 무너지고 깊은 마음까지 소통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성령이 각 가정에 임하시면 서로 용서구하고 용서해주는 화해의 물결이 반드시 넘쳐날 것을 믿습니다. 성령이 각 가정에 임하시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국이 될 줄 믿습니다. 

이 순간 가족이 옆에 앉아계시다면 서로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만일 떨어져 예배드리고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으시기 바랍니다. 눈을 감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은 하나님과 부모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또한 부모님을 더욱 공경하는 자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주의 말씀과 사랑으로 양육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다. 또한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는 부모 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간구하십시다.  

깨어진 가정이라면 회복되도록 합심하여 부르짖으십시다. 건강한 가정이라면 더 건강해지도록 소리 내어 부르짖으십시다. 오늘 성령강림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각 가정 위에 폭포수 같이 부어지도록 간절히 부르짖으십시다. 모든 막힌 담이 허물어지도록 간구하십시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이장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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