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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한없는 하나님의 은혜 (행 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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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없는 하나님의 은혜 (행 11:1~18) 
 
가로되 내가 욥바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사도행전 11:1-18

사람은 치료할 수 없을 만큼 자기중심적이라 누구에게나 편견과 차별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집단적으로 사람은 편견을 갖고 차별합니다. 나와 인종이, 종교가, 수준이, 자질이 다르다고 다른 사람들과 벽을 쌓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본문에 보면 베드로사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도 자기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지 검토해보고, 우리 속의 모든 편견과 차별의식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1절). 유대에 있는 열두 사도들은 기독교의 창시자입니다. “형제들”이란 예수를 믿는 유대교인들을 말합니다. 베드로가 욥바라는 곳에서 기도하던 중에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베드로는 정기적으로 기도를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도 중에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메시지를 주시고 환상과 꿈을 보여주시고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도 베드로처럼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과 꿈을 보고 그 음성을 들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자주 듣고 싶으면 자주 기도하십시오. 어쩌다가 한 번 듣고 싶으면 어쩌다가 한 번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는 기도 안에서 여러분을 만나주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이 있었습니다. 사도들과 초기 유대 기독교인들 역시 그런 편견과 차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에서 큰 보자기가 내려왔는데 그 안에는 온갖 짐승과 벌레와 새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평소에 싫어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십니다. 짐승, 벌레, 새들은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베드로는 그것들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대답합니다. “하나님,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저런 것들은 싫어합니다. 먹지 않습니다. 왜 저런 것들을 먹으라고 하십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저는 제가 싫어하는 것은 안 먹습니다.” 

편견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좋다면 좋은 것이고 싫다면 싫은 것입니다. 저는 베드로의 대답에 무척 놀랐습니다. 편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면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는데도 끄떡하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들이 제법 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거룩한 주일에 점잖은 옷을 입지 않고 왜 저렇게 화려하게 입은 거야?” 한다든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고 싫어합니다. 그리고 차별대우를 합니다. 집단적 편견과 차별의식도 있습니다. 사도들과 초기 유대 기독교인들에게도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상 중에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더럽다고 하지 말라. 이 모든 짐승은 네가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전부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인데, 네가 뭔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나쁘다 하느냐?” 베드로가 그 환상을 세 번 본 후에 보자기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곧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온 이방인 로마사람들 세 명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제야 그 환상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깨끗하게 하실 때 유대인이 그것을 더럽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방인들과 사귀거나 함께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집단적 편견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이것에 대해 베드로를 질책하신 것입니다.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편견을 깨고 그 로마사람들을 따라 고넬료라는 로마 장교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돌아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소문을 들은 유대인들이 베드로를 비난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2절). “힐난하다”란 ‘다투다, 싸우다, 비판하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수제자라 하는 당신이 어떻게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할 수 있단 말이오? 하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을 위해 있는 것이지 않소?”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이것은 ‘이방인은 상종할 것이 못 된다’는 집단적 편견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편견이요, 사도들과 바울의 편견이기도 했습니다. 이 편견이 깨져야 온 세계만방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이 기록될 당시는 유대교적 기독교였습니다. 유대교적 기독교의 편견과 차별의식이 깨어져야 비로소 세계적인 기독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을 상대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현대에도 기독교문화가 발달된 나라일수록,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이나 미국 같은 서양 국가들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편견과 차별이 훨씬 적습니다. EU의 슬로건은 “유럽연합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별대우는 반대한다”(For Diversity, Against Discrimination)입니다. 사람은 인종과 문화와 언어가 서로 다르므로 유럽연합은 그 다른 것을 인정하며 개인적 편견과 차별대우를 적극 반대한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터키는 EU에 가입하기를 원합니다. 국토의 한쪽은 아시아에 다른 한쪽은 유럽에 속한 터키는 어떻게 해서든 유럽 쪽에 붙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벌써 10여 년 동안 EU에 들어가기 위해 애를 쓰는데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터키에는 이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차별정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이슬람, 불교, 기독교 등 모든 차이를 서로 인정하지만 터키는 이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하므로 이 생각을 고칠 때까지는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종차별은 인간의 뿌리 깊은 편견 중 하나입니다. 흑인은 흑인대로, 백인은 백인대로 모두 자기 인종의 우월성을 주장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흑인의 우월성을 얼마나 자신 있게 말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흑백간의 차별이 있고, 특히 한국 사람들은 백인은 높이 보는 반면 흑인은 종종 무시합니다. LA에서 어느 한국사람 둘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중간에 흑인이 타자 “깜둥이가 탔네” 했습니다. 그러자 그 흑인이 “깜둥이가 뭐야?”라며 소리를 쳤답니다. 그는 한국에서 군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에 이민 간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 자식을 키우고 성공했는데 깜둥이가 뭡니까? 좋지 않은 편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성을 즐기라고 까만 사람도 만들고 흰 사람도 만들고 우리처럼 황색인종도 만드셨습니다. 인종차별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할 짓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인종차별의식이 있었다면 오늘 이곳에 내려놓고 가십시오.

계급차별도 사람에 대한 심각한 편견입니다. 인도 힌두교 사회에는 2억5천만 명의 ‘달리트’라는 불가촉천민이 있습니다. 인도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급입니다. 그들은 교육의 기회도, 사회보장의 기회도 못 받습니다. 참 억울하지요. 똑같은 인간인데 천한 계급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라에서 혜택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기독교, 천주교가 힘을 합하여 그들에게도 교육과 사회보장의 혜택을 주기 위해 오랫동안 애를 썼습니다. 두 달 전에 드디어 국회에서 달리트에게도 똑같은 교육과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주도록 결정을 했습니다. 기독교는 편견과 차별과 인간경시를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됩니다. 싸워서라도 계급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평화와 평등을 누리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모든 민족과 언어와 종족을 다 똑같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동일한 사랑과 자비와 은총을 베푸시고 같은 기회를 주십니다. 이것이 기독교 사상이요, 복음의 특징입니다.

성차별도 문제입니다. 한국은 예전에 비해 남존여비사상이 많이 줄었고 여성들의 사회진출도 활발합니다. 지금까지는 국가적, 가정적으로 남자들의 능력에 많이 의존했지만, 점차 노인세대가 늘고 인구가 줄어들면서 여자들의 능력과 참여가 필요해졌습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을 보면 제일 출세한 사람들이 여자들이었습니다. 운전이나 사회생활 등 예전에 한국에서는 갖지 못했던 기회들을 갖게 되니까 잠재 능력이 마구 나타났던 것이지요. 남자들은 오히려 위축이 되었어요.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영어를 못 하니까 바보가 됩니다. 말 못하는 사람이 바보 아닙니까? 저도 중국에 가서 말이 통하지 않아서 몇 번 바보가 된 적이 있었지요. 요즘 한국 여성들의 능력이 곳곳에서 발휘되는 것은 참 바람직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억눌렸던 것들을 다 풀어줘서 이제는 남자와 여자의 능력이 100% 발휘되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 인도에서는 신분증에 제3의 성(Gender)을 표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신분증에 성별을 표기하는 인도정부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들, 즉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들을 어떻게 나타낼지 고민하다가 ‘제3의 성’(The Third Gender)으로 표기하기로 했습니다. 성 전환자들은 “우리도 드디어 인도 국민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고 좋아했답니다.

앞으로 성희롱이나 성차별을 하면 고소당할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1일에는 딜라트라는 회사가 성희롱과 성차별에 관한 손해배상청구에 졌습니다. 그래서 차별대우를 받았던 여성에게 50만 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지난 3월 28일에는 센트럼이라는 대학도 성차별을 하여 한 학생에게 20만 불의 손해배상을 했다고 합니다.

연령차별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무시하고, 젊은이를 대접하고, 노인을 경시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나이 들어 힘없는 노인들을 우습게보지만 연령차별을 하면 고소를 당할 수 있습니다. 렌힐스테핑이라는 회사는 나이 많은 직원을 해고했다가 소송을 당해서 5억 8천만 원을 배상해야 했다고 합니다. 록히드마틴이라는 회사도 같은 경우로 77만3천불을 배상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나이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젊은 사람만 사랑하십니까? 아니지요. 어린 아이도, 청소년도, 장년도, 노년도 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두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나이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합니다. 

종교의 차별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지만 다른 종교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모슬렘 국가는 기독교를 절대 인정하지 않지요. 사우디아라비아에는 교회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습니다. 기독교 국가들은 모슬렘을 인정하고 모슬렘 사원을 세우는 것도 허용합니다. 종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최근에 스리랑카의 불교와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이 교회를 심하게 핍박하고 있습니다. 제가 매주 인도나 스리랑카의 기독교 인사들의 이메일을 받는데 기독교인이 맞았다거나, 죽었다거나, 불이 났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기독교를 너무 심하게 핍박합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다가 잡히면 감옥에 갑니다. 이런 종교적인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성전을 지으면서 장애인들을 배려하기 위해 많이 고심했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더 들지요. 하지만 우리보다 약하고 부족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우리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절대다수 장애 없는 사람들의 의무입니다. 장애인들이 우리와 비슷한 삶의 질을 갖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입니다. 

경제적 차별도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종족 사람들에게만 직장의 특혜를 줍니다. 은행 대출도 말레이족 사람들에게만 주고, 다른 종족들을 무시합니다. 중국과 인도 등 다른 종족들도 같은 경제적 권리를 얻기 위해 계속 싸우고 있는데 힘이 듭니다. 우리나라에도 과거에는 중국 사람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요즘은 새로 들어온 중국 사람들 외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제가 미국의 미시간에 있는 어느 중국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중국 사람이 장사를 하는데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지요. 정말 옛 맛 그대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주인에게 어떻게 미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그의 집안은 3대를 인천에서 살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중국인들을 쫓아내는 바람에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편견이요, 차별대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로 경제적 차별로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방색도 편견의 하나입니다. 저는 미국에 가기 전에 대한민국이 큰 나라인 줄 알았습니다. 막상 미국에 가보니 한국은 너무 작은 나라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작은 나라입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무슨 지방색입니까? 때로는 교회 내에도 지방색을 띤 그룹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 고향사람들만 사랑하지 말고 모두를 사랑하십시오. 몇 사람들끼리 편애하는 것은 믿는 사람들의 행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노예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모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햇볕과 비를 내려주십니다. 이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가 섬기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닮게 되기를 원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이방인에게도 천사를 보내주셔서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방인 고넬료 가족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과 생명을 주셨고, 이방인이 회개하고 영생을 얻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편견이 없으십니다.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과 저도 마음을 넓게 열어 예수님을 닮고 하나님을 닮고 성령님을 닮도록 기도하십시다. 차별이 있는 곳에서 차별을 제거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그릇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 기독교가 훌륭합니까? 기독교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든지 하늘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들어오라. 아무나 들어오라.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사했다. 다 오라. 값없이 오라. 돈 없는 자들도 오라. 목마른 자도, 배고픈 자도 오라.”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마음의 문을 열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마음에 품은 사람들이 되어 우리가 가는 곳에서 편견이 사라지고 차별대우가 사라지고 벽이 허물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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