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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성경적인 자녀교육 (잠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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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자녀교육 (잠 13:24)

신앙생활을 그리 성실하게 잘하지 않는 한 남자가 어느 날 외출에서 집에 돌아와 보니 자기 아들이 친구들과 현관 앞에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남자가 물었습니다."얘들아 너희들 뭐하는 거니?"아들이 대답합니다."응, 아빠 우리는 지금 교회놀이를 하고 있어요."아빠는 성실하게 신앙생활 못하지만 아들은 참 기특하다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하는 행동이 예배를 드리는 놀이처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죄다 손이 입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시끄럽게 잡담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의아스럽게 생각한 아빠가 캐물었습니다."교회놀이가 뭐 그래?"그랬더니 다른 한 아이가 대답합니다."네 저희들은 이미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도 드렸고 설교도 들었어요. 그리고 지금 순서는 예배가 끝나고 교회 밖에 나와서 담배 피우며 잡담하는 순서예요."그러더랍니다. 

생각 없이 하는 어른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면 얼마나 놀랍습니까? 아이들은 어른을 그대로 배웁니다. 그래서 교육의 첫 번째 마당은 가정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교육의 제1모본(模本)은 부모입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정말 좋은 부모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아노를 가졌다고 누구나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듯이 자녀를 가졌다고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 있게 자랑할 만한 인격과 성품을 가지고 마땅한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부모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자녀가 어리든 나이가 들었든 여러분은 지금 자녀에게 부모로서 가장 자랑스럽게 내 세울만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가령"아버지 같은 부자가 되어라!"든가"엄마처럼 알뜰하게 살아라!"든가 하는 자식에게 할 만한 자랑 거리가 있습니까? 이런 것도 좋겠습니다만 사도바울을 생각해 봅시다. 바울은 고전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신앙의 자랑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을 가진 부모라면 적어도 자녀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유할 수 있는 정도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먼저 보여주고 꾸준히 보여줌으로 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대부분은 자식은 나 보다 나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기도 더 많이 배워야하고, 돈도 더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출세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부모로서의 당연한 마음이자 바람입니다. 옛날에는 교육열도 없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고 이제 출세하려고해도 이젠 늦었습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거는 기대치가 큽니다. 십분 이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마음이 신앙 생활하는데도 적용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자신은 신앙생활을 잘하지 않으면서도 자녀들에게는 신앙심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 모양으로 살아도 자식은 신앙생활 잘하기를 원한단 말입니다. 좋게 생각해서 부모 된 입장에서 마땅히 가질 수 있는 욕심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이건 지식이나 출세나 가난과는 다릅니다. 돈 없어도 가르칠 수 있는 겁니다. 무식해도, 늙었어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 성수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라난 자녀가 주일 빠지는 것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 법입니다. 거짓 십일조 생활하는 부모를 보고 진실한 십일조를 하는 자녀를 기대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를 잘 봉사하고, 잘 섬기면 자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삶이 교육이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사도바울처럼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오히려"야, 나 같이는 살지 말아라."혹은"애야, 제발 네 아버지처럼은 살지 말아야 된다."하는 소리가 더 강하지 않습니까? 이게 뭡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부모의 책임을 업신여긴 처사입니다.  

히브리 민족의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마땅한 책임으로 느끼면서 교육시켰습니다. 이 교육은 자기들의 자의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잠22:6에 보면 그 명령이 나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먼저는 어머니의 사랑의 교육을 필요로 합니다. 모세나 사무엘이나 디모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아버지에게는 교훈 할 수 있는 책임이 지워졌습니다. 이렇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교육에는 각각 다른 의미가 주어졌습니다. 즉 가정에서의 기독교교육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는데 사랑의 하나님을 보여 주는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었고 공의의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은 아버지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런 교육이 잘못 되어서 실패한 가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삼상2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할 내용입니다. 특히 삼상3:13-14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의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자식들의 잘못 된 모습을 보면서도 그것을 바로 잡아 줄 생각조차 못했고 그 결과는 이렇게 비참한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이런 일이 없어야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런 불행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된 엘리의 잘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똑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우리 부모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과연 성경적인 자녀 교육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야합니다. 오늘은 신앙적 차원에서의 문제와 윤리적 차원에서의 문제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적인 자녀교육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엘리의 자녀 교육 실패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이냐 하면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죄 가운데 가장 심각한 죄입니다. 

삼상2:12을 보면"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들은 제사를 멸시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배에 소홀히 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이 말은 교회를 알고 있느냐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느냐는 질문이 아닙니다. 진정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분을 만나고 마땅히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일들을 하는 자녀들로 양육하고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단순히 교회 다니는 법을 가르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입니다. 직분의 높이가 아닙니다. 착각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아서 자식들이 망하는 것입니다. 출세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면 문제해결의 능력을 알게 되고 그렇게 되면 출세도 하고 성공도 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자녀 교육의 또 한 가지는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성결하고 순결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의 실수도 바로 순결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삼상2:22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이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타락의 정도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알만큼 가장 비참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 하라는 명령을 주신 것은 거룩하지 못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성결 하라는 말입니다. 

세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세상에 사로잡히지는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그렇게 살도록 가르쳐야합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속으로'하이구야, 목사님 그게 말이 쉽지 맘대로 됩니까?'물론 쉽지 않습니다. 어렵지요. 요즈음 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잘 듣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신앙적으로 빗나가고 윤리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 말입니다. 문제는 부모들이 아예 하려고 하지를 않는다는데 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틀려도 틀렸다고 꼬집어 주지 못하고 잘못해도 잘못 된 것을 알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기가 하는 일은 전부 잘한 것으로 착각하고 자랍니다. 

이 속에 무슨 올바른 가치관이 있습니까? 어디에 정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자식 잘되게 하는 것인 줄로 알고 있다면 큰일입니다. 자녀들이 자라서 잘못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무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과잉보호입니다. 둘 다 지나치면 문제입니다. 정말 지혜로운 부모는 이 둘을 잘 균형 있게 이루는 부모입니다. 그런데 특히 요즈음 엄마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자기자식만 최곤 줄 압니다. 그리고 무조건 잘했다고 칭찬해 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성경적인 자녀교육의 한 단면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잠13:24은 이렇게 말합니다."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시쳇말로"오냐, 오냐"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잘못 된 일은 매를 때려서라도 고쳐주어야 하는데 빗나가는 것을 바로 잡아 주지 못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고칠 기회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다 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실패한 자녀교육의 실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사랑한다면 근실히 징계하라고 하셨는데 그걸 못했습니다. 결국은 내가 한 그것이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자식을 올바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잘못된 것도 올바르다고 봐 주는 바람에 내 자식이 잘못되고 말았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것입니까? 

[쿨리(C. H. Cooley)]라는 사회학자의<거울의 자아 이론(looking-glass self)>이 있습니다. 인간의 자아형성 과정을 거울에 비유하여 설명한 이론인데 평생 동안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자아는 주위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한 바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대로 되어 집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오늘도 부모 된 우리가 보아주고 인정해주는 대로 되어져 갑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도 잘한다고 인정해 줄 것입니까? 그러면 이것은 자녀 사랑이 아니라 자녀로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자녀를 망하게 할 것입니까? 흥하게 할 것입니까? 세상의 무엇보다도 앞서 하나님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승리케 하는 유일한 성공적인 자녀교육입니다. 윤리적으로도 성결하게 살도록 가르치십시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라면 매와 징계를 아끼지 않고 사용해서라도 올바르게 가도록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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