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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삶의 조건 (눅 24: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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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의 조건 (눅 24:44~53)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부모님들은 우리의 자라남을 위해 아프거나 문제가 있을 때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치시고 야단도 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되어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은 부활의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권면이요, 명령입니다. 

1.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36절). 

주님이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주님을 잃은 슬픔과 ‘예수님과 한통속으로 묶여 처벌받게 될까?’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제자들 중 일부는 도피했고 일부는 문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에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36절).” 섭섭함과 실망, 책망의 말씀 대신에,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오히려 평안과 용기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영육간에 답답하고 불안하고 염려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위기감에 두려워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부디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력해지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이것은 주로 수십 년 신앙생활한 사람들, 혹은 모태신앙으로 몇 대를 거쳐 신앙생활한 분들에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왜 이럴까요? 

  첫째로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영적원리가 있는데 그 원리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들을 만큼 듣고, 알 만큼 알아서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데 원인이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시며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 번째가 우리 신앙생활이 무기력해지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성령의 실체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역동적이지 못합니다. 
  성숙한 믿음이 되고 하나님과 관계가 친밀해 지려면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을 통해서 변화가 일어나고, 올바른 길 가게 되고,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체험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의 확실성을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이 아니면 우리는 모두 내 판단과 내 주장에 의지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거기서 불완전, 불일치, 미숙함, 실수가 반복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행위를 보아도 영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성령의 존재나 역할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기도를 들어주는 대상이 없는데 허공에다 대고 중얼거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도할 가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것들이 있는데 바람과 전기와 전파가 그렇습니다. 성령도 그렇습니다. 성령을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성령이 역사하시는 현상을 보면 성령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소원을 아뢰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49절 말씀을 보니까 “내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요14:16을 보니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오늘날 그를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성령의 사역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남녀노소를 비롯한 인종을 초월해서 약속하신 성령을 주셨습니다. 

  옷은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나타내는 영적인 의복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역사하심, 주관하심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오신 증거, 성령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성령의 제복을 입고 권위, 신분, 영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약속은 하나님의 약속이요 사랑입니다. 이 약속은 항상 계속되고, 누구에게든지 여전히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위로자, 보호자, 능력자, 진리가운데 인도하시는 분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되면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성령의 제복을 입어야합니다. 성령이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여 주십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하며, 성령이 우리 안에 가하시면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절후에 베드로는 강하고 담대한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오순절이 이를 때까지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을 체험한 베드로의 설교는 권위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마음의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은 사람들 중에 마음에 찔림을 받아 “우리가 어찌 할꼬?”(행2:37)라고 탄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2. 부활을 믿게 하기위하여 가르치시고 설득하십니다.   

  성령 안에서 그 약속의 신실함과 영원함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약속을 믿습니까? 성령 하나님의 인격성 때문입니다. 인격적 행위가 아니면 성령은 위로자, 보호자, 능력자, 진리의 영이 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17에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성령은 “그는”, “그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물을 지칭하듯 “그것”, “이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이 인격적인 분이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자 하나님”, “성부 하나님”처럼 성령도 “성령 하나님”이 되십니다. 

  성령이 인격이시라는 사실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인격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롬8:26)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며 신실하신 분입니다. 
  성령의 제복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성품이 그 인격과 삶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령 충만으로 변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창조하십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사람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야합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여러분의 삶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이것이 성령의 능력이며 우리가 추구하며 이룩해야 할 능력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8) 

  어떤 사람에 대한 증인이 되려면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가끔 보면 길에 '목격자를 찾습니다.' 하는 프랭카드가 붙어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가해자가 뺑소니를 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랭카드를 걸어 놓고서 어느 날 몇 시에서 몇 시 사이에 일어난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주님을 따르면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증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지 못한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침식을 같이 나눈 사람만이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3. 이 모든 일에 증인이 되는 복음증거자가 되라 명령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제지들에게 나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네 가지 일에 관해서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가까이 가서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분이 예수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식사할 때에 그들의 눈이 밝아지게 해서 그 분이 예수인 줄 알게 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이러한 것을 말할 수 있는 제자가 증인입니다. 
  영안이 열리면 우리 주님이 여기 계신 것을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고 대화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의 눈이 열리고 영의 귀가 열리고 영의 입이 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열려지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깨달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 장도 읽기 전에 벌써 졸음이 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은 책은 책이지만, 내 마음대로 읽어지는 책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알아지는 책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을까요? 마음 문이 열려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마음 문을 열어준 사람만이 성경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의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예수님이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제자들은 그것을 목격하고 체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분명하게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고난을 당해서 좌절하시는 모습을 보았고, 죽으시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았고 장사지내는 모습도 보았고 그리고 당당하게 무덤을 헤치고 부활하신 것을 보는 체험을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주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사실 회개가 없는 곳에는 주님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회개하는 곳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고, 회개하는 곳에서 주님의 영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회개가 저 밖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중에서도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대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부터 시작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능력을 받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이 다니는 것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가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 능력을 받고 나가야합니다. 능력이 나타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서, 껍데기로 다니지 말고 알맹이를 갖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난에서, 질병에서, 악한마귀에서 벗어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 그리고 하나님의 영계를 바라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영안이 열려져서, 마음 문이 열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허세가 필요한 것이고 실력이 없는 사람이 가장이 필요한 것이지,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무슨 허풍이 필요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하나님의 성에 머물러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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