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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꽃보다 아름다운 것(마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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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것(마 18:1~6)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은 인간 모두의 이상이며 꿈입니다. 가정은 행복과 사랑의 보금자리이며 모든 생활의 근거입니다. 고달픈 인생살이의 안식처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직접 세운 세 기관은 가정과 교회와 천국입니다. 가정은 타락하기 전 인간의 행복을 위해 세우신 것이며, 교회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세우신 것이며, 천국은 구원받은 인간을 위해 만드신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인간조직입니다. 가정을 천국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가정의 창시자이시고 행복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섬기고, 모시고 사는 것이고 여호와의 주신 기업인 그 자식이 천국을 이루어 가는 희망의 기초가 될 때입니다. 

칼릴 지브란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자녀 교육의 시가 있습니다. 

"너희들의 아이는 너희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흠모하는 생명이어. 저들은 너희를 거쳐 왔으나 너희로부터 온 것이 아니니 저들은 너희와 함께 있으나 너희에게 속하지 않는다 너희는 저들에게 너희의 사랑을 줄 수 있으나 너희 사상을 주지 말지니라. 너희를 활이라 하면, 그들은 활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산 화살이라. 하나님은 궁수요, 영원한 도전을 향해서 과녁을 정하고, 너희를 칼로 구부리게 하나니 화살이 멀리 갈 수 있도록 그 과녁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라." 

우리의 그 목표 지점을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궁수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우리는 활이 되어서 화살 된 자녀를 위하여 구부릴 때, 하나님 목표를 향해서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태의 열매(Children)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축복의 일부라고 적고 있습니다. 자녀는 여호와의 상금입니다. 자식은 힘센 장수의 수중에 있는 병기(화살) 같아서 그 가정을 지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다스리고 주장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흔히 가정은 하나님에 대한 최초의 교육기관이라고 하고, 인격의 요람이며 잠재적인 위대한 교사인 동시에 선교기관이라고도 하고, 문제의 교환지, 악에 대한 장벽이 되며, 교회의 방파제이며 국가의 초석이 된다고들 합니다. 현 시점에서 정말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께 대한 효과적인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온갖 악에 대한 방파제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튼튼히 서서 국가의 초석이 되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제임스 톰슨 박사는 가정에서 마땅히 가르쳐야 할 5가지 교훈을 지적했습니다. 이 5가지 교훈을 가정에서 배운 자녀들이 잘못 서는 것을 자신의 상담경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적한 교훈은 첫째, 하나님에 대한 경건 둘째, 이웃에 대한 사랑 셋째, 권위에 대한 존경 넷째, 말씀에 대한 순종 다섯째, 자기에 대한 절제입니다. 

가정이 가정으로 굳게 서게 하는 이러한 교훈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은 어버이가 키우지만 아이들은 어버이의 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버이의 살아가는 모습이 곧 어린이들의 거울이 되어 교과서가 됩니다. 그러기에 어떤 무명시인은 다음과 같은 시를 통해 거울이 되고 교과서가 되는 어버이의 역할의 중요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어린이가 비평과 함께 살면 그는 정죄라는 것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증오와 함께 살면 그는 싸우는 것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고통 속에 살면 그는 자학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수치 가운데 살면 그는 죄책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관용과 함께 살면 그는 참된 것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격려와 함께 살면 그는 자신감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칭찬과 함께 살면 그는 감사를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공정한 가운데 살면 그는 정의를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안정한 가운데 살면 그는 믿는 것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인정 받으며 살면 그는 스스로 사랑함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용납되는 환경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살면 그는 세상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것을 배운다. 

마땅히 가르칠 것을 말로서가 아닌 모범을 보임으로, 생활을 통해서 가르칠 책임을 어버이가 가지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 자녀들을 주 안에서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자기 발견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어른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어린이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데 촉매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오늘 한국사회 속에서 어린이들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은 시간과 활동의 공간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마치 영재교육을 시키듯이 부모가 열의를 보이고, "공부하라" 반복적인 명령에 따뜻한 대화의 창구를 잃어버린 어린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는 자녀들과 인격적인 성장을 위한 따뜻한 대화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감시 당하고 감시하는 비뚤어진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경시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어린이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생각을 펼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대화의 장을 통하여 억압과 피해의식에 잡혀 있는 아이들의 사랑결핍을 치유해야 합니다. 

부모의 기준으로 자녀를 대할 것이 아니라, 자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용납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용납을 믿고 자란 자녀는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며, 나아가 다른 사람과 사회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둘째는 봉사정신을 갖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그릇된 가치관을 권력과 물질 만능의 가치관입니다. 기독교 신앙과 예수의 정신에서 볼 때에 사회 속에 이러한 병리현상은 큰 문제입니다. 은연 중에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큰 사랑, 높은 사람이 되라, 많은 가진 부자가 되라"는 암시적인 압력은 가치관의 전도와 생활관의 파멸의 씨를 뿌리게 되는 것입니다. 권력과 물질 지향적인 가치관 내지 생활관은 결국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의 인간이 되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크리스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섬김의 가치관을 분명히 터득시켜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꽃과 같다고 하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이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꽃은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그 모습 그대로를 보존해 가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방법으로 분장을 하거나 꾸미지 아니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어른들처럼 화장을 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어른들처럼 고운 옷을 입지 않아도 귀엽고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꽃을 바라보게 될 때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어린이도 진실합니다. 꽃은 사람을 속일 줄 모릅니다. 문자 그대로 순결합니다.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어린이의 티 없이 맑은 눈동자 속에서는 진실하고 순전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린이의 세계는 어른들 세계처럼 중상모략이 없는 세계입니다. 가면을 쓰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구조의 복잡하고 골치가 아픈 것을 모르는 세계입니다. 인기 전술을 쓰거나 자리다툼을 모르는 아름답고 순진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들과 함께 지내면 늘 즐겁습니다. 정직하고 순진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과 만나면 기쁨이 사라지고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기조차 싫어집니다. 그러나 순진한 어린이는 만나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시19:8에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그 말씀이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꽃에서 향기가 나듯이 어린이에게는 무언가 모르게 어른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꽃이 아름답고 순결하기는 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꽃에는 열매라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망스러운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린이의 마음속에는 천국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에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H.F. 아미엘이란 사람은 "어린 아이들 틈에서만, 우리는 이 지상에서 천국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의 생활은 고스란히 하늘에 속한다"고 말했습니다. 

꽃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는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꽃에서 순결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에게서 더 맑은 천진난만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에게서 천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인 타고르는 "모든 아이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절망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품고 탄생 된다"고 했습니다. 

아들의 그림 일기

사업을 하는 어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바쁜 그의 일과 때문에 가정의 일과 자녀교육은 자연히 아내의 몫이 되었지요. 자연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에게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 녀석이 아빠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하루가 멀다고 졸라대는 겁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는 할 수 없이 공휴일 하루를 택해서 이 아들을 데리고 집 근처의 저수지로가서 하루 종일 낚시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해야 될 업무를 준비하면서 그의 업무수첩에 “오늘은 아무것도 한 일없이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내일은 더 바쁘게 움직여야겠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런데 한쪽 곁에서 어느 새 새근새근 잠이든 아들이 펼쳐놓은 그림일기가 이 아버지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에는 “오늘은 아빠와 함께 낚시를 갔다 왔다. 정말 재미있었다. 오늘은 최고의 날이다. 난 아빠가 좋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자기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그 날의 낚시 여행이 아들 녀석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 아버지로 하여금 뭔가 새로운 사실에 눈을 뜨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이 아버지처럼 아버지의 관점과 가치관으로 아들을 바라보면서 본의 아니게 아들의 바램을 소홀히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그래서 아들의 요구를 귀찮아하거나 짜증스럽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 아들이 10대 청소년시기에 들어서기만 해도 이들은 부모와 함께 하기를 꺼리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 부모가 아이들의 요구와 느낌을 무시한다면 나중에 아이들로부터 똑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후회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자녀인 아이들의 신분을 귀중히 여기면서 말씀을 앞에 놓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최고의 가치 있는 시간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끔씩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요구를 기쁘게 들어 주는 겁니다. 이 같은 부모의 사랑을 통해 아이들은 하나님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사하며 자라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는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아이들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의 메시지, 미래를 위한 가능성을 보셨던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것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어린이입니다. 어린이는 인생의 계승자, 소망의 씨앗, 내일을 밝히는 등불, 남자와 여자가 사랑해서 이룩하는 오직 하나의 진실입니다.

'나는 어린이들이 좋다'라고 하는 아래와 같은 글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 나는 어린이를 좋아한다 / 모두가 어린이가 되었으면 하고 / 어린이가 되지 못한 어른이 싫다 / 내 나라에는 어린이들만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 이것은 영원으로부터 결정되어 있었다고 / 꼬부라진 어린이, 등이 굽은 어린이, 주름살 간 어린이, 하얀 수염 난 어린이 / 어떤 어린이든 좋다 / 다만 한 가지, 어린이면 된다 /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법칙 / 어린이 외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 나는 어린이를 좋아한다 / 그들 속에서는 내 모습이 아직 흐려지지 않았고 / 그들은 내 모습을 일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 아직도 새롭고 순수하여 찌그러졌거나, / 얼룩진 모습이 도무지 없다 / 그들의 모습은 나를 용케도 닮았다. /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것은 / 그들이 아직도 자라는 중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어른들에게서는 /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 이미 더 크지도 자라지도 않는 어른들이 / 스스로 완성되었다 믿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 나는 어린이를 좋아한다 / 그들은 아직도 몸부림치고 싸우고 / 아직도 죄를 범하기 때문에 / 또 그것을 스스로 알고 정직하게 고백하며 / 다시는 범죄치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 그들은(어른들은) 누구에게도 잘못한 일이 없고 / 가책 받을 일이 하나도 없다 / 나는 그들에게 용서해 줄 것이 없고 / 그들은 내게 용서받을 것이 없다고 한다 / 슬픈 일이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니 /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특히 내가 어린이를 좋아하는 것은 / 그들의 눈 때문이다 / 그 눈 속에 그들의 젊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 내 나라는 다섯 살 난 어린이 눈밖에 없다 / 어린이 눈만큼 아름다운 것을 나는 모른다 / 그렇기에 그들 마음 속에 내가 살며 / 그 영혼의 창문을 들여다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길에서 순결한 눈을 만날 때 / 그 안에서 미소를 짓는 것은 바로 나다 / 하지만 어린이 얼굴에 / 빛 잃은 눈동자처럼 서글픈 것도 없다 / 텅 빈집에 열려진 창문처럼 / 두 눈은 있어도 바라보는 눈길이 없다 / 이럴 때면 나는 슬픔에 잠겨 / 그들의 문 앞에서 추위에 떨며 노크한다 / 빨리 그 집안에 들어가고 싶어서 / 가엾게도 그는 혼자다 / 이 어린아이는 마침내 살이 찌고, 굳어지고, 메말라 늙어 버린다… / 가엾은 늙은이! 하나님은 탄식하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어린 늙은이들이여! / 모두 문을 열어라, 바로 나다. / 너희에게서 어린이를 부활시키러 온 / 부활한 영원자다 / 서둘러라 때가 왔다! / 너희에게 다시 한 번 아름다운 얼굴과 / 어린이의 맑은 눈을 주러 / 내가 왔다… / 나는 어린이들이 좋다 / 모두 어린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어린이를 좋아하신다고 하는 어린이 예찬의 긴 글입니다. 물론 이 글 속에는 영적 의미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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