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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성경 몰입교육 (딤후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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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몰입교육 (딤후 3:12~17)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우리 자녀들과 후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날입니다. 성경에 비추어 다시 한 번 올바른 교육관을 정립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들은 교육열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교육의 문제라면 전 국민이 열을 냅니다.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참 교육’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열을 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의 문제입니다. 

몇 달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신정부의 교육정책을 ‘영어몰입교육’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인데, 취지는 좋지만 비현실적이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결국 대통령이 뒤늦게 “영어몰입교육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고 말함으로써 슬그머니 들어가 버렸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영어 교육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앞으로 국제화 시대에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실력이 갈수록 크게 요구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같이 인적 자원 외에 딱히 내세울 만한 자원이 없는 나라는 더욱 그렇습니다.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앞으로 다음 세대에는 영어를 못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마저 듭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고양이가 쥐를 발견하고 뒤를 쫓아갑니다.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던 쥐가 쥐구멍으로 쏙 하고 들어가 버립니다. 고양이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약이 오른 고양이가 쥐구멍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래 기다려도 쥐가 나오지 않자 고양이가 머리를 썼습니다. “찍~ 찍~ 찍~”하며 쥐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쥐구멍 안에 있던 쥐가 자기 동족인 줄 알고 살금살금 기어 나옵니다. 바로 그 순간 고양이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쥐를 낚아채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거야! 요즘 같은 시대에는 외국어 한두 가지는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영어 공부도 시켜야 되고, 여러 가지 공부를 시켜야 됩니다. 요즘은 대학 졸업하고도 취직이 잘 안 되어서 자녀들도 부모들도 걱정이 많습니다. 오죽 하면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삼태백(30대 태반이 백수), 장미족(장기미취업자), 대오족(취직을 위해 대학에 5년 재학), NG족(취직을 위해 졸업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No Graduation) 등 신조어들이 속속 등장하겠습니까? 이런 상황이니 자녀들도 부모들도 모두 다 공부에 몰입되어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또 그래야 21세기에도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 공부 하는데 과연 바른 교육이 이뤄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많은 공부를 시키면서 지식이 많아지고, 기능이 좋아지고 있기는 한데 과연 그게 교육이냐 하는 겁니다. 예전보다 학력은 높아져가고 있는데, 오히려 세상은 갈수록 부패해지고 험악해져가고 있습니다. 

말을 꺼내기도 민망합니다만. 며칠 전 보도를 보셨죠? 대구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벌인 집단 성폭력 사건 말입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작년에는 중국에 수학여행을 갔던 고교생 수십 명이 현지에서 성매매를 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가운데 공부만 시키면 뭐 합니까? 공부 많이 하고, 대학 졸업하고, 박사가 되어도 사람의 내면이 ‘참 인간’의 모습으로 형성되지 못하면 말짱 헛일입니다. 진정한 교육은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핵심을 빼놓고 지식만 주입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입니다. 

작년 10월 하버드 대학교 총장으로 드루 길핀 파우스트(Faust)가 취임했습니다. 하버드 역사 상 최초의 여성 총장이라 화제가 됐는데, 그분이 취임사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게 아니라,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교육의 본질은 지식이나 기능을 집어넣어주는 게 아니라, 지식이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참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컴퓨터로 말하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소프트웨어가 신통치 못하면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를 갖고 있어도 고철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식이나 기능 위주의 교육은 절름발이 교육입니다. 사실 지식이나 기능은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게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영어몰입교육보다 지식몰입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몰입교육(聖經沒入敎育)입니다. 늘 성경을 읽고 배우고 가르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말하자면 성경이란 바다에 풍덩 빠지듯이 몰입될 때 우리의 내면이 변화될 겁니다. 세상의 지식은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인간의 거죽만 변화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의 내면을 넉넉히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1] 성경 : 하나님의 말씀, 영원불변의 진리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성경이 어떤 책인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16절(상).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 ” 여기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호흡을 불어넣었다(NIV : God-breathed)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영감(靈感)으로(KJV : by inspiration of God) 되었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경을 기록할 인간 기록자가 자기 혼자 쓴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간섭하셔서 모든 내용이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그 뜻을 가르쳐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가리켜 성령의 조명(照明 Illumination)이라 부릅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제시해주시는 ‘영원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의 특징 몇 가지만 살펴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이 몇 권입니까? 66권이요? 맞습니다. 한 권이요? 그 말도 맞습니다. 66권이 한 권으로 묶여 있는데, 그 하나하나가 일목요연하게 한 가지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삶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게 되면 66권이 일목요연하다는 사실이 말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A.D. 1세기 이전 약 1,600년 동안 기록된 책입니다. 기록자는 40명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기록자들이 한데 모여 편집회의를 단 한 번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기록자들의 면면이 너무 다릅니다. 베드로는 불학무식한 어부 출신입니다. 모세나 바울 같은 사람은 학문에 능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66권이 완전한 ‘통일성’과 ‘정확무오성’을 갖고 있어서 한 권이 된 겁니다. 그리고 기록 이후 단 한 번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준 적이 없습니다. 정말 신비로운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따져 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일 수박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2] 성경과 인생 : 인생의 매뉴얼

특별히 성경은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너무 중요한 책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인생의 매뉴얼’ 즉 ‘인생의 안내서’입니다. 흔히 성경 66권을 가리켜 정경(正經 Canon)이라 부릅니다. Canon은 헬라어 ‘카논’(κανων)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카논은 본래 ‘갈대’입니다. 고대에는 표준 자가 없었죠. 그래서 갈대를 꺾어 대충 길이를 측정했습니다. 그래서 카논이란 단어가 ‘갈대’라는 의미 외에 ‘척도’ ‘표준’ 등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성경 66권은 모든 진리의 ‘표준’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절대 기준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이 인생의 매뉴얼이며 성공적인 인생의 안내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성경이 우리 인생에 어떤 것들을 제시해 줍니까?

① 구원의 길 :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안내해 줍니다. 본문 15절(하)을 보시죠. “ ...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대속의 십자가를 증거해 줍니다. 그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성경 말씀을 들을 때 마음 속에 믿음이 생긴다는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엡1:13을 보시죠.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印 seal) 치심을 받았으니”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 십자가 복음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는데, 그 때 성령으로 인 쳐 주신다는 겁니다. 인 친다는 것은 확인 도장을 찍는 겁니다. 말하자면 입국비자에 스탬프를 찍어주듯이 믿는 성도가 죄와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받고 천국 영생을 얻었음을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모두 성경 말씀을 들을 때 이뤄진다는 겁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구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고 출신한다 해도 구원받지 못하면 영원히 멸망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억만금보다 육신의 생명이 귀합니다. 억만금 아낀다고 목숨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물며 영원무궁한 영혼의 생명은 얼마나 귀한 것이겠습니까? 영혼 구원의 문제는 인생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가치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인디애나州에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13세에 혈우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런데 치료 도중 병원 측의 실수로 수혈 과정에서 에이즈에 감염됩니다. 졸지에 아무 조치도 못하고 죽음만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겁니다.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하지만 그 소년은 부모도 의사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항상 밝은 모습으로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위로했습니다. 그 소년의 사연이 보도되자 전 미국인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시 대통령 레이건과 가수 마이클 잭슨 등 유명 인사들이 줄을 이어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일반 신문에 보도되지 않은 내용이 크리스천 잡지에 실렸습니다. 아빠와 아들의 대화록입니다.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내가 더 이상 아무런 선물도 줄 수 없어 정말 미안하구나.” 소년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뇨, 아빠! 저는 지금까지 많은 선물을 받으며 살아왔어요. 특히 아빠는 제게 가장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천국 열쇠를 주셨잖아요. 저를 어려서부터 교회에 데리고 나가셨고, 그래서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잖아요.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죽어도 천국인 걸요.” 소년은 그 후 몇 년 살지 못하고 18세에 천국으로 떠났습니다. 인간적으로 너무 슬픈 이야기이지만, 하나님을 소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의 실재를 증거하시고,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녀를 위해서 가장 큰 축복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겁니다. 이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게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부모가 되어서 자녀를 사랑한다면서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을 가르쳐주지 않고, 십자가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아 자녀를 멸망 길로 내몬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심지어 자녀들이 교회 나가는 것 방해한다면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겁니까? 

여러분, 혹시 ‘중간고사 경기(景氣)’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요즘 시험을 보고 석차를 매긴다고 하니까 학생들이나 학부형들이나 야단입니다. 중간고사 때가 되니까 집에서 꼼짝하지 않으니까 매출이 뚝 떨어지고, 겨우 음식 배달점만 된다고 합니다. 공부 열심히 하면 좋죠. 문제는 그 바람에 각 교회 주일학교 출석수가 뚝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기말고사 때는 더 하겠죠. 그리고 고2, 고3 때는 아예 교회 끊게 되겠죠. 그러다 신앙 조기 졸업 하는 겁니다. 학교에서 조기 졸업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신앙 조기 졸업하는 것은 영원히 신앙을 버리게 되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위험한 일을 감행하는 부모들이 있다는 슬픈 사실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성경을 통해 구원의 길을 발견하고, 자녀들에게 구원의 길을 안내해 주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② 의의 길 :

성경은 우리에게 ‘의의 길’을 안내해 줍니다. 여기서 ‘의’(義)라는 것은 쉽게 생각해서 ‘정직’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정직은 인간의 최소한의 도리(Minimum)입니다. 그게 안 되어서 죄인이고, 구원을 위해 십자가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은 후에는 성경의 기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게 성도들이 추구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작정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성령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본문 16절을 보시죠. “모든 성경은 ... 교훈(teaching)과 책망(rebuking)과 바르게 함(correcting)과 의로 교육하기(training in righteousness)에 유익하니" 성경은 우리에게 의의 길을 가르쳐 줍니다. 거기서 벗어나면 책망하고 교정해 줍니다. 그리고 반복해서 바른 길을 가도록 훈련해 줍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의의 길을 걸어가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게 해 줍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한 곳이기에,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고 불의한 길로 이끌어 가려고 기를 쓰기에 정말 그렇습니다. 바울은 본문 12절~13절에서 세상이 어떤 곳이라고 말합니까?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의의 길을 걸어가려 하면 오히려 박해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세의 세상 풍조를 설명한 대목이 앞에 나옵니다. 딤후3:1~4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한 마디로, 말세에는 세상이 복마전(伏魔殿) 같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복마전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게 지혜로울까요? 대충 타협하고 세상 물결 치는 대로 휩쓸려 살면 될까요? 그게 성공적인 처세술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함께 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의 길, 정직의 길을 가야 뒤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 속에서 더듬거리고 방황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빛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합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보십시오! 재임 시에는 인기가 없는 대통령이었지만 그의 신앙과 도덕성으로 인해 두고두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가 이런 고상한 도덕성을 갖추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5살 때 호기심으로 교회의 헌금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훔쳤습니다. 그 날 아버지에게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평생 정직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됐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잠시 타협하면 거액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런 정직성으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요즘 우리 부모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얼마나 정직의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있나요? 혹시 정직한 삶을 강조하기보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워라, 수학 점수 1점 더 올려라, 이런 데 열중하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부디 우리 자신도 자녀들도 성경 말씀을 통해 의의 길을 인도 받고 항상 정직한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래서 갈수록 하나님이 축복하는 인생 되기를 소원합니다.

③ 선의 길 :

성경은 우리에게 ‘선의 길’을 안내해 줍니다. 여기서 ‘선’(善)은 ‘사랑’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생이 추구할 최대한의 도리입니다. 무한히 실천하고 또 실천할 가치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인생이 비로소 존귀한 인생, 영광스런 인생이 됩니다. 

본문 17절을 보시죠.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우리에게 참 사랑을 가르쳐주고, 더 나아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줍니다. 사람들이 무엇이 의로운 일인지, 무엇이 사랑인지 잘 압니다. 그런데 잘 안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로 부패해져서 사랑의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없고 사랑의 길에서 벗어납니다. 지식은 그런 능력을 공급해주지 못합니다. 만을 그렇다면 벌써 세상이 좋아져도 수천 번 좋아졌겠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만이 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고 사랑의 능력을 공급해 줍니다. 

이태리의 조각가이며 화가인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역사에 남는 위대한 예술가 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가 14세 때 보톨로 지오바니의 문하생이 되려고 찾아갑니다. 지오바니가 그의 대단한 재능을 보고 물었습니다. “너는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미켈란젤로가 대답했습니다. “예, 재능과 기술을 꾸준히 갈고 닦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지오바니가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무엇을 위해 조각하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해야 되는 것이니라.” 그러면서 그를 데리고 두 군데 구경을 시켜 줍니다. 하나는 술집 입구의 조각품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당 앞의 조각품입니다. 둘 다 아름다운 조각품이지만 그 목적이 전혀 다르다는 교훈을 준 겁니다. 스승의 의도를 알아차린 미켈란젤로는 힘을 주어 대답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제 재능과 기술을 갈고 닦겠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선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출세하려고 하는지 알려줘야 줘야 합니다. 성경에 그 길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 자녀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빛내는 존귀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최선의 교육 : 성경 몰입 교육 

이와 같이 죽 생각해 볼 때 최선의 교육은 과연 무엇인지 저절로 결론이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두말할 것 없이 ‘성경몰입교육’입니다. 

여러분, 옛날에 KS라는 말이 유행했죠. 코리언 스탠다드(Korea Standard), 한국 표준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말이 유행하나요? GS,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 즉 세계표준이란 말입니다. 세계적 기준에 부합한 사람이 승리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BS, 비브리컬 스탠다드(Biblical Standard) 즉 성경적 표준입니다. 이것은 시공을 초월해서 항상 승리할 수 있는 온전한 기준입니다. 

성경적 표준이 얼마나 중요하고 확실한 것인지 그 증거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본토에 6백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 등지에 디아스포라 1,500만명에 불과한 작은 민족입니다. 그런데 세계를 움직입니다. 미국을 쥐락펴락합니다. 미국에서는 유대인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면 대통령이 되기 힘듭니다. 후보가 되면 한번은 이스라엘에 다녀와야 합니다. 100년이 넘도록 역대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서 유대인이 빠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비결은 한 권의 책과 한 개의 건물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과 회당(교회당)입니다. 

유대인들은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수천 년 동안 계속 성경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6장 그대로입니다. 신6:4~9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를 가리켜 ‘쉐마 교육’이라 부릅니다. 쉐마([m'v])는 히브리어로 ‘들으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가 ‘쉐마 이스라엘’이죠. 쉐마 교육이 바로 성경몰입교육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몰입하고 우리 자녀들이 성경에 몰입할 때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겠습니까?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어린이주일에 다시 한번 성경의 중요성을 재인식하시고 성경을 늘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읽고 쓰고 공부하시고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성경을 최고의 유산으로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도 복을 누리고, 자자손손 하나님의 축복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의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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