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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가정에 은혜가 넘치게 하라 (엡 5:31 ~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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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 은혜가 넘치게 하라 (엡 5:31 ~ 엡 6:4)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

  지금은 가정 사역에 있어서 한국을 대표한다고 인정받는 한 목사님은 신혼 초에 부부 싸움만 하면 늘 피비린내 나도록 싸웠답니다. 아무렴 신혼 때 피비린ㄴ마너무 끔찍한 말이라 ‘정말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목사님이 사모님에게 불만이 있을 때 사모님의 마음에 가장 큰 상처를 준 말이 “역시 피는 못 속인다!.” 는 말이었답니다. 잘못했으면 당사자만 걸고 넘어가지 왜 부모는 들추고 조상은 걸고 집안 내력을 들추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모님도 지지 않고 “그럼 당신 피는 어떻고?” 하고 맞대응하였답니다. 여러분도 부부싸움을 할 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십니까? 

5월 가정의 달을 맞아서 여러분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 드리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특별한 선물을 주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이 민수기 6장 22절 이하의 말씀으로 축복을 선언해 주었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신약 시대에는 축도의 내용이 보다 명확해졌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 축복이 우리 가정에도 충만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 축복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는 가정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신약 성경 매 책마다 반복되는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할지어다” 하는 축복이요 성경책 맨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이 이 축복입니다. 
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가정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쳐나는 곳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그러면 은혜가 넘치는 가정은 어떤 가정인가? 예수님이 모든 가족 관계의 중심에 계신 가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에 은혜가 넘치게 하라는 말은 가족들을 대할 때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엡 5:24  “교회가 주께 복종하듯이 복종하라”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엡 5:25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  
자녀는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엡 6:1 “주 안에서 순종하라”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엡 6:4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런 가정이 은혜로운 가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말이 좀 애매하게 들리십니까?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분이기에 우리도 가족들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남편의 죄가 아내의 죄이고 아내의 죄는 남편의 죄이고, 자식의 죄가 부모의 죄이며 부모의 허물이 자식의 허물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고 은혜가 넘치는 가정은 그런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은혜가 있다 없다.”는 무엇으로 말하는 것입니까? 서로 허물과 죄를 지적하고 비난하는 곳에는 은혜가 없는 것이고, 서로의 허물과 죄를 대신 짊어지려고 하는 곳은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 가정 뿐 아니라 교회도 속회도 선교회도 찬양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은혜로운 교회는 목사의 설교가 달라서 은혜가 있고 없고가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은 것 다 아시지요? 교인들끼리 서로 허물이 드러날 때 서로 죄를 짊어지려고 하는 교인이 있으면 그 교회는 은혜로운 교회입니다. 서로 남의 허물만 지적하고 따지고 판단하는 교회는 은혜가 없는 교회입니다. 속회도 마찬가지고 선교회도 마찬가지고 찬양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는 서로 상대방의 허물과 죄악을 내가 짊어지는데서부터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 안에 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텍사스에서 전도 집회를 할 당시 한 신문 기자가 사모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미국 가정마다 이혼의 위기, 고통을 경험하고 사는데 목사님 사모님은 남편하고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남편은 365일 전도 대회로 돌아다니고 미국에서 5남매를 엄마 혼자 키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그랬더니 그 질문에 사모님 대답이 “이혼은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죽이고 싶은 생각은 들었다.”고 했습니다. 은혜가 필요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가정에서처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것은 큰 복입니다. 가정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어느 해 가을,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 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20년 이상 복역한 장기수, 모범수의 가족까지 초청된 특별 행사였습니다.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를 방불케 했습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부모님을 등에 업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효도관광 달리기 대회였습니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하나 둘 출발선상에 모이면서 한껏 고조됐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푸른 수의를 입은 선수들이 그 쓸쓸한 등을 부모님 앞에 내밀었고 마침내 출발 신호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주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들의 눈물을 훔쳐 주느라 당신 눈가의 눈물을 닦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의 축 처진 등이 안쓰러워 차마 업히지 못하는 아버지……. 
  교도소 운동장은 이내 울음 바다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니, 서로가 골인 지점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듯한 이상한 경주였습니다. 그것은 결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레이스였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1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함께 있는 시간을 단 1초라도 연장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버려도 가족은 버릴 수가 없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이지만 상대방의 허물과 죄를 대신 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 죄를 스스로 해결하기도 불가능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를 담당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하면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가정에 넘쳐날 수 있습니까?
우리 가정에 은혜를 달라고 울면서 기도하면 됩니까? “하나님, 우리 가정에 은혜가 넘치게 해주옵소서.” 여러분도 그런 기도를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한다고 은혜가 넘치지는 않습니다. 기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은혜의 역사는 이미 나를 통해서 시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 십자가의 은혜가 넘치려면 가정 안에 정말 십자가 은혜를 알고 그 십자가의 은헤를 충만하게 누리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 안에 은혜가 흘러넘치게 됩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은혜를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가정입니다. 우리의 죄성이 가정 생활 중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결혼 후에는 자신의 단점이 여지없이 폭로가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적나라하게 나타나는지. 어떤 때는 자기 속에 있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단점이 결혼 후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혼자서 살 때는 자신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둘이 같이 살아보면 깜짝 놀랍니다. 내게 그런 모습이 있었는지 스스로가 깜짝 놀랍니다. 배우자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그렇게 해주기는 커녕 상처만 주고 삽니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상처를 줍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걷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데이트 할 때는 사람이 멋있고 괜찮았는데 약혼식을 한 이후 사람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래서 속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습니다. 약혼식 전에는 말도 조심하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하더니 약혼식을 마치고는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 있느냐고 불평을 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려 깊고 인내심이 있고 점잖고 예의가 바르고 이성적이며 절제가 있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들어오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난 데 없이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 진짜 모습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혼자 살 때는 몰랐는데. 자기 속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하나, 둘 튀어나오면서 가족들을 괴롭게 합니다.
결혼 할 때 배우자 될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했고. 그 마음은 분명히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행복하게 해 주기는커녕 마음에 상처만 주고 사는 자신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죄성이 가장 정확하게 드러나는 곳이 가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관계 속에서 자신 속에 있는 적나라한 죄성이 드러나는 것이 얼마나 괴롭습니까? 가정 생활을 해보면 부부 사이에 또는 부모 자녀 사이에 우리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얼마나 말만 하는지 얼마나 위선자인지 다 드러납니다. 가정 생활에서 처럼 십자가 은혜가 필요한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 생활해 보면 십자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십자가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흘러 넘쳐서 온 가족들도 그 은혜를 누리도록 말입니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저의 죄로 인하여 괴로워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실까?‘ 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너도 다른 사람들을 이처럼 용납하라!‘ 눈물을 흘렸습니다.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게 하려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가족을 판단하고 변화시키려 해서는 진정한 가정의 변화가 없습니다.

  어떤 부인이 말했습니다. “저한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남편 앞에서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남편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으니까요.” 
  저는 자라면서 정리정돈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치약을 사용할 때도 그냥 편하게 짜서 쓰곤 했죠. 그런데 남편은 달랐어요. 굉장히 작은 일인 것같은데 싸움은 거기서부터 출발이 돼요. 
 변화는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가족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우리 스스로는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내가 예수님 안에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충만하게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학교 본부장이신 김성묵장로와 어머니학교 본부장이신 한은경권사 내외의 간증입니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 내조만 하기로 한 다음부터 오히려 부부 사이에 위기가 왔습니다. “남편에게 올인했더니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게 되더라고요.” 남편은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고 자꾸만 밖으로만 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의 외도 문제까지 생기면서 이혼을 결심했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에게 조심스레 의사를 확인했더니 "난 엄마도 필요하지만, 아빠도 필요한 걸요.’하며 엉엉 소리 내서 우는 아이를 보며 서류를 조용히 폐기했답니다. 그렇다고 같이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혼할 수도 없는 상황에 있을 때, 한 친구의 소개로 3박4일 영성수련회인 뜨레스디아스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남편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당혹스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었지만 정말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 ”그동안 내가 잘못했다.“ 고 용서를 구했답니다. 그러나 아내는 매섭게 돌아섰습니다. ”다른 사람은 용서해도 당신만은 용서할 수 없어요.“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부부를 위한 성경공부에 참석하였는데 끝날 무렵, 목사님이 “세상에서 절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남편이고, 아내입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하시는 거예요. 아내의 반응이 궁금했던 남편은 슬쩍 눈을 떠서 아내를 보았답니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하던 아내는 잠시 후 털썩 엎드리더니, 조금 후에는 어깨가 들썩거리다가 나중에는 대성통곡이 터져나왔답니다. 아내 속에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도 눈이 뜨이게 되었답니다. 너무 좋았답니다. 용서의 물꼬가 터진 것입니다. ”문제는 남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안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보여주시더라고요. 그 쓴 뿌리가 독이 되어 남편에게 내뿜고 있었던 거죠."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은혜를 달라고 울면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신 안에 은혜가 넘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 생활을 해보면 십자가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먼저 십자가 은혜를 누리십시오. 예수님을 은혜를 사모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남편에게서 아내에게서 부모에게서 자식에게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제일 먼저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누리십시오.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절대로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할 때 외면하실 리가 없습니다.  

  기도로 매일 기적을 체험한 사람 존하이드 전기를 보았습니다.  
  1904년 시알코트 대부흥 집회를 앞두고 친구 팽원 존스선교사가 보니 12시간을 기도하더랍니다. 기도 후 얼굴이 환하여 일어나더랍니다. “놀라운 환상,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온 것입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빛이 발산, 기쁨으로 가득하였답니다. 그의 말을 듣는데 팽원존스선교사의 눈에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늘 듣고 알던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대하여 수없이 들었지만 그 때처럼 생생히 느껴졌던 때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늘 영광을 스스로 떠나서 죄로 가득한 세상에 들어오시고 인간이 되심에 대하여 그렇게 은혜로울 수 없었답니다. 저녁을 먹는 것도 잊고 몇 시간 동안 오직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했습니다. 그리고 시알코트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가 넘쳐 흘러간 것입니다. 

  인도 부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존하이드선교사님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12시간 동안 주님과 함께 거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만난 것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설교 준비만 그렇습니까? 가족을 사랑하는 일에 더욱 그렇습니다.

가정에 은혜가 넘치기 원한다면 자신이 주님과의 은혜의 자리에 늘 머물면 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은혜만 사모합니다”. 하고 주님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러기만 했는데도 어느덧 가정에는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신앙이 좋았던 자매가 믿음 좋은 집안이라고 중매로 시집을 온 뒤에 ‘속아서 결혼했다.’고 하였습니다. 모두 껍데기 신앙이더랍니다. 그래서 탄식하며 가정을 등한히하고 교회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마저도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믿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어설픈 신앙을 가진 가정이 더 악랄해지는 것을 봅니다. 전혀 자기 고집을 바꾸려 하지 않고 방어벽을 구축하며 자기는 변화되지 않으면서 남을 탓하고 원망하고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정의 위기가 아니라 신앙의 위기로 봐야 합니다. 

  지금 유럽 국가들이 어떻게 기독교 국가가 된 줄 아십니까? 그 조상이 바이킹이요 해적이었습니다. 당시 해적들은 배를 타고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면서 바다를 무대로 강도질을 일삼던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여자들을 강제로 잡아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중 신실한 기독교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나는 왜 이래요?” 탄식하며 허구한 날 울고 지내면서 가정을 등한히 했습니까?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해적의 아내가 되었지만, 여기에 보내신 뜻이 있는 줄 알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남편을 잘 섬기고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잘 양육했고 말씀으로 잘 키웠습니다. 
  그러므로 해적들이 변해서 마침내 기독교인들이 되었고, 바로 저들이 개척 정신과 신앙을 합쳐서 청교도, 퓨리탄이 된 것입니다. 기독교 여인들을 통해서 그 가정과 사회가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선교사로 보냄을 받은 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스스로 십자가의 은혜 안에 사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가족 안에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충분한 것입니다. 내 속에 예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면 예수님은 우리 가정을 변화시킵니다. 

  어느 여 성도의 남편은 참 마음을 열지 않던 분인데,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했답니다. 이유는 아내의 믿음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부부는 그 마음 속에 믿음이 있는지 정말 압니다. 아내가 늘 “맡긴다 맡긴다.” 하는데 정말 어느 순간부터 주님께 맡기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없이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지 믿어지지가 않더랍니다. 그래서 자기도 한 번 믿어 보아야 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가정 축복. 오늘 여러분이 먼저 은혜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성찬을 받습니다. 여러분, 성찬이 주님의 깊은 은혜 속에 들어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냥 오늘 주님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주님, 아무 대가도 요구하시지 않고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죄값은 주님이 다 치르시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던 자가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은 나와 한 몸이 되시고 내 생명이 되시며 지금도 임마누엘하신 주님. 이미 다 믿고 아시는 것인지 몰라도 오늘 그 은혜 속에 여러분이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을 위해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가족을 위해서 여러분이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이제 우리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주님, 제게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더 충만하게 부어주시옵소서. 눈을 뜨고 주님을 보게 하시고 제 심령 속에 은혜가 넘치게 하여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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