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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내 자녀는 누구인가? (시 1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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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녀는 누구인가? (시 127:1~5)

가장 중요한 것인데 내 맘대로 잘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뭘까요? 돈 버는 것일까요? 중요한데 내 맘대로 안됩니다. 건강 문제일까요? 그것도 중요한데 내 맘대로 안됩니다. 인간관계일까요? 그곳도 중요한 문제인데 역시 내 맘대로 안됩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자식입니다. 

자식교육은 정말 내 맘대로 잘 안 되는 것입니다. 

10년이 넘었는데 제 고등학교 시절 스승이셨던 선생님이 저희 교회 성도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어느날 전화가 와서 심방을 갔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 “목사님, 자식 교육은 정말 내 맘대로 안 되네요”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분은 고3 전문가로 수년동안 학교에서 고3 대학 진학률을 높이는 전문가로 각 고등학교에서 인정받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 입에서 자식은 내 맘대로 안 된다고 울면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들이 고3때 공부도 안하고 속을 썩이고 나중에는 가출을 하며 속을 썩였습니다. 

자식교육,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면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신 사람 중에도 자녀 교육에 실패한 지도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 하나 꼽으라면 ‘엘리’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그는 시원찮은 사람이니 자식이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당대에 최고의 선지자였던 ‘사무엘’도 자식 교육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사무엘상8장1~3절을 보면 그의 아들들이 아버지를 이어서 사사가 되었습니다. 장자는 요엘이요. 차자는 아비야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엄청난 일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이익을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했던 것입니다. 극악한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 무서운 심판을 받을 짓입니다. 

결국 사무엘이 그 백성들의 간청을 따라 그 아들들을 버리고 사울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게 됩니다. 위대한 선지자도 자식교육에는 실패한 것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다윗은 여러 명의 부인과 여러 명의 자식을 둡니다. 삼하3장과 역대상 3장을 보면 성경에 나오는 부인만 최소 8명입니다. 혹시 여기 계신 남자들중에는 “복도 많다”할찌 모르나 절대 복이 아닙니다. 그 자식들은 아들만 15명, 딸까지 16명 그것도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아들까지 치면 엄청납니다. 

그러니 아무리 위대한 왕 다윗이라도 가정이 이 지경이니 그 자식들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결과가 뭐지요? 

여러 아들 가운데 맏아들 ‘암논’은 이복 여동생 ‘다말’을 건드립니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버립니다. 그러자 그 원수를 복수한다고 그 여동생의 친오빠 ‘압살놈’이 그 큰형 ‘암논’을 죽입니다. 형제간의 피의 비극입니다. 그러니 그 아버지 심정은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리고는 그 압살놈이 나중에는 다위 신하들을 꼬여서 구테타를 일으킵니다. 아버지 다윗왕을 궁궐에서 쫓아내고 죽이려 따라다닙니다. 이것이 다윗의 자녀 교육의 한계와 결과입니다. 

둘째 아들 아도니아는 다윗이 죽기 전에 제가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신하들을 꼬여서 난리를 칩니다. 그러다가 솔로몬이 왕이 되어 겨우 목숨은 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찮은 욕심 때문에 죽게 됩니다. 다윗이 노년에 품에 품고 있었던 ‘아비삭’이라 하는 여자를 아내로 달라고 밧세바에게 요청했다가 솔로몬이 그를 처형합니다. 그러니 가만 살펴보면 위대한 왕 다윗도 자식 교육은 대단한 실패자입니다. 

다윗만이 아닙니다. 그 아들 솔로몬도 ‘르호보암’이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도 아버지의 지혜를 물려받지 못하고 어리석은 신하들에게 놀아납니다. 결국 이스라엘 나라가 두 쪽으로 나눠집니다.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분열됩니다. 

그러니 자식교육은 아버지가 훌륭하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자식교육은 아버지가 교육자라고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식교육은 그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신앙교육은 어릴 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태중에서부터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태교입니다. 어찌 보면 태교는 성경적입니다. 

‘윌버트 챠프만’ (Wilbert Chapman) 박사가 미국에서 4,500명이 모인 집회에서 얻은 통계자료가 있습니다. 언제부터 예수를 믿었느냐 하는 조사인데 그 4500명중 1000명은 14살 이전에 예수를 믿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1600명은 14-20살 사이에 예수를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4500명중 2600명이 20세 이전에 예수를 영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흥미를 느낀 챠프만 박사는 더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통계를 얻었답니다. 

25세 이후에는 천명중에 겨우 한 명이 영접했고 35세 이후에는 5만 명에 겨우 한 명, 45세 이후에는 20만 명에 겨우 한 명, 55세 이후에는 30만 명에 겨우 한 명, 그리고 75세 이후에는 70만 명에 겨우 한 명꼴로 예수를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외국의 경우이고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생각해 보건데 어릴 적에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이 들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마음은 백지와 같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배워 가슴에 자리 잡은 신앙은 잘 박힌 못처럼 됩니다. 그의 인생관, 가치관을 주님께로 의심 없이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바른 길, 축복의 길로 인도됩니다. 

흔히 스는 말처럼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어린 시절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비록 세상으로 나갈지라도 다시 주님께로 되돌아오며, 주님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양육하는 자녀들, 그들이 누군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인데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성장해야 훌륭한 인물로 쓰임을 받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의 자녀들이 누구이며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이 세우시고 지켜야 할 자들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우리가 가르치고 우리가 기른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그것은 인본주의 교육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주신이도 하나님이시고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1절 말씀을 다같이 보세요.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운다, 성을 지키신다 하셨는데 그것은 공동체를 말합니다. 가정 공동체, 국가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그 속에 포함된 우리 자녀들도 하나님이 세워주셔야 하고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할 대상입니다. 

물론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특히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면 부모가 아무리 가르쳐 보려고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소용없고 아무리 보호해 주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잘 아셔야 합니다. 

왜요? 인간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얼마나 한계가 많은가요? 똑똑한 부모가 자식 잘 가르친다고요? 천만에요. 많이 가진 부모가 자식 잘 가르친다고요? 천만에요. 한계 있습니다. 그저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지금도 눈동자처럼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요즘 어린이 유괴 살해사건 때문에 자녀들 보호문제가 심각합니다. 안산의 어느 교회는 성도들을 조직해서 아동보호 순찰대를 만들어 가동한다고 신문방송에 나왔습니다. 좀 가슴이 아팠습니다. 교회가 그런 일로 순찰대를 조직해서 운영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믿음 없는 행동 같아 가슴 아팠고 한편으로는 교회라도 그런 일을 해야 하는가 생각하니 답답했습니다. 교회가 바로 세워주지 못하니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 아닌가 책임의식도 갖습니다. 

그러나 참된 대책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 하나님만이 완벽하게 온전하게 지키시고 세우실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지키시지 않으면 우리의 노력, 우리의 수고가 다 허사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useless”라 했습니다. 쓸모없다는 것입니다. “vain”이라 했습니다. 헛된 짓이란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 시편은 솔로몬이 지은 詩입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똑똑한 왕입니까? 얼마나 뛰어난 왕입니까? 그런데 그가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왜요? 자기 말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상을 섬기고 수많은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니 자식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여러분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게 하고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만들면 하나님이 그 아이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全知全能하심을 믿습니까? 그분이 여러분 자녀를 여러분에게 보내준 분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보호하시고 세워주시는 것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어릴 때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을 보세요.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소년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유를 누립니다. 병으로 숨졌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예수님을 만나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죽어서 장사지내러 사람들이 메고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나 살았습니다. 많은 어린이들 중에 벳세다 들녘에서 때 묻은 수건에 싸왔던 오병이어를 주님께 아낌없이 바치자 그 떡으로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전부 어린나이에 주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분명 이 모든 사람들이 부모가 할 수 없는 한계상황 속에서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러니 그들의 미래가 어찌 되었을까 상상해 보세요. 그러니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게 하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임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2.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자녀들, 그들은 부모의 수고와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사람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절 말씀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2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왜 아침 일찍 일어나고 왜 밤이 늦도록 수고를 하시지요? 왜 회사에 그처럼 꼴두 새벽에 나가야 하지요? 왜 밤늦도록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해야 하지요? 왜 한순간도 편히 쉬지 못하고 죽도록 고생들 하시지요? 

대답해 보세요. 새끼들 가르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 자식들 학원비라도 벌 것 아니냐?” 왜 회사의 상사들에게 온갖 모욕을 다 당하고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참아야 하지요? 나 혼자라면 에~라하고 때려 쳤을 것 아닌가요? 그러나 자식이 그 맘을 알아주나요? 몰라주지요... 그래도 부모는 죽으라 일하고 노력합니다. 

요즘 기러기 아빠들이 심각합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해외 유학생은 대학생 16만명, 초·중·고생 1만5000명 가량. 이들을 위해 유학 어학연수비 명목으로 해외에 송금된 돈이 2조 2000억 원이랍니다. 공식 집계에서 빠진 편법 송금까지 감안하면 총 규모는 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정부가 추산하고 있습니다. 기러기 아빠들의 월평균 송금액은 418만원이랍니다. 뻔한 수입에서 매달 평균 90%를 보내야 하니 혼자 남은 외로움에다 먹을 것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그 삶의 고단함은 말할 것이 없답니다. 

그러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 생기거나 현지에 따라간 엄마가 외로워 딴 짓하다 가정 파탄 나는 경우가 허다하답니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자식이 뭔데 부부가 생이별하고 살아야 합니까? 왜 자식을 그렇게 길러야하나요? 그러면 자식들이 큰 인물 되고 성공하여 우리 엄마 아빠 고생했다고 효도할 것 같나요? 그러길 희망하지요. 그러나 희망사항입니다. 절대 희망사항입니다. 오늘 본문은 무엇이라 하나요? 

“헛되도다.” 따라서하세요. “헛되도다” 

통계학적으로 공부 잘한 자식보다 공부 못한 자식이 효도합니다. 사실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보세요. 그러니 기러기 아빠되어 고생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 말을 서 현자 집사가 호주에서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하는 수 없습니다. 

부모의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이 말을 잘 생각하세요. 누구에게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답니다. 어떤 잠이죠? 그냥 쿨쿨 잠 많이 자면 사랑하시는 자인가요? 여기서 잠은 그냥 잠이 아닌 평안의 잠입니다. 안식의 잠립니다. 근심 걱정 염려가 없는 잠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은 누구죠?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백성인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사랑의 댓가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에 베풀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조건에 따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누구를 사랑하시나요?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입니다. 당신의 백성이기에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외모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계명을 지키는 자, 성결을 목숨처럼 여기는 자, 몸 된 교회를 위해, 복음을 위해 사랑하는 자들이 사랑을 받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백성 되시고 자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신입니다. 

내 자식은 누구인가? 


3. 하나님이 주신 기업과 상급입니다.  

3절을 보세요. 
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여기서 ‘기업’이란 말은 ‘토지나 가옥처럼 상속권을 가지고 물려줄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자녀를 기업’이라고 말한 것은 주님으로부터 상속으로 물려받았다는 뜻이 담긴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돌려드려야 한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녀는 하나님의 재산에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소유를 내가 잠시 맡아서 키우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명심하세요.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결코 아닙니다. 내가 낳아서 키우기는 했지만 그것도 내가 키운 것 보다는 하나님이 키워 주신 것입니다.  

내 자녀가 하나님의 소유인데 내 마음대로 키우려고 하니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뭔 말인고 하면 부모 마음에 원하는 대로 키워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만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엄마는 자기 젊은 시절 못다 이룬 꿈을 자식에게 이루게 하기 위해 이것 저것 다 강요합니다. 파아노 배워라, 수학 학원, 영어 학원, 태권도 학원, 아이들이 피곤해서 죽으려하는데도 해야 합니다. 엄마더러 한번 해보라 해야 합니다. 아마도 하루도 못하고 포기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에게 주신 사명이 뭔가를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돕고 섬겨야하는데 부모의 명예를 위해, 부모의 한을 풀기위해 공부시키는 것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여러분에게 맡길 때 놀라운 뜻과 섭리가 가 있어 보내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하나님께로 보냄을 받아 세상에 태어 낳듯이 여러분 자녀도 하나님의 뜻과 섭리, 계획과 목적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든 자식이 아닙니다. 내 소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빨리 아는 부모는 자녀를 위해 기도로 섬기게 됩니다. 그리고 꿈과 비전을 보여주며 인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 오셨을 때 잘했다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은 ‘상급’이라고 한 것입니다. 
잘 기르면 상을 받게 되는데 그 잘 기른다는 기준이 무엇일가요? 사회적인 출세와 부귀영화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기준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그 자녀를 세상에 보낼 때의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맞추어 길렀느냐 아니냐 입니다. 

그러니 어렵지요. 힘들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이 세우시면 능히 하나님이 길러 내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서울이 어떤 성도 가정에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탄생했습니다. 너무 낙심되고 고통스러워 교회를 나가지 않고 슬퍼하며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심방을 가셨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집사님 하나님이 이 아이를 누구에게 맡길까 하고 세상 여러 가장을 찾아보았는데 감당할 사람이 집사님밖에 없다고 여겨 이 가정에 맡긴 것이라오, 그러니 힘내시고 일어서세요.”했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가 잘못하여 자녀가 그리 된 것이 아닙니다. 죄가 많아서 된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자녀들을 택하시고 하나님이 지명하여 불러내십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내시고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러면 그 자식은 가문의 복이 되고 모든 이의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4~5절을 보세요.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자식이 장사의 손에 들린 화살 같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엄청난 권세, 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많은 것은 힘이 많고 복이 된다고 분명히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왜요? 그 자식이 부모의 권위를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성문에서 원수와 말할 때란 재판사건에 휘말렸을 때 자식이 부모의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많다보면 부모의 체면과 권위를 세워주는 자식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렇습니다. 많은 자식이 있었습니다. 골치 아픈 자식도 있었고 심각한 놈들도 있었으나 솔로몬이 아버지의 권위를 세웁니다. 솔로몬이 아버지의 힘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를 한 두 명 낳고 포기하신 성도 여러분! 
누굴 위함입니까? 나를 위함입니까? 자식을 위함입니까? 여러분 후대를 생각해 보세요. 계속 하나씩만 낳으면 몇 대 내려가면 심각해집니다. 사촌이 없어집니다. 고모 이모, 삼촌이 없어집니다. 얼마나 삭막합니까? 어려울 때 누가 그를 세워줄 수 있나요?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많은 자가 복이라 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성도가 잉태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일 기분이 좋습니다. 
전도를 못하면 낳기라도 해야 하는데 낳지도 않고 자기혼자만 편하게 살려 합니다. 

다음 주 설교 제목을 보세요. 주보 하단에 뭐라고 쓰여 있나요? 효도는 종신보험이라는 설교를 하려 합니다. 자식 많이 낳는 것이 효도이고 자식 하나님 앞에 떳떳이 기르면 그게 효도고 그게 종신 보험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분 결단하세요. 

자녀를 갖는 방법은 여러가집니다. 가슴으로도 낳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자식을 맡길 때 복의 기업으로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상급으로 자식을 주셨습니다. 원수가 아닙니다. 골치 덩어리가 아닙니다. 복의 통로요, 상급임을 믿고 사랑으로 축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은 11번재 아들이고 다윗은 8번째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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