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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얘들아, 교회 가자 (신 31:11~13, 마 19: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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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교회 가자 (신 31:11~13, 마 19:13~15)

  앤더슨(Leith Anderson)은 그의 책 ‘21세기를 위한 교회(A Church for the 21st Century)’에서 몇 가지 교회의 유형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가족농장(family farm)과 같은 교회입니다. 둘째는 학교(school)와 같은 교회입니다. 셋째는 가맹점(franchise)과 같은 교회입니다. 넷째는 일반상점(general store)과 같은 교회입니다. 다섯째는 쇼핑몰(shopping mall)과 같은 교회입니다. 여섯째는 전문점(speciality shop)과 같은 교회입니다. 일곱째는 유령의 집(haunted house)과 같은 교회입니다.

  쇼핑 몰은 상업적으로 시작한 도시 공간입니다. 쇼핑몰은 도시인의 삶의 한 현장입니다. 어른들은 물건을 사기 위하여 쇼핑몰에 갑니다. 젊은이들은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기 위하여 갑니다. 십대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구경하기 위하여 갑니다. 청소년들에게 쇼핑몰은 돈이 없어도 재미있는 곳입니다. 돈 없이 종일 다녀도 누구하나 제재하거나 말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쇼핑몰은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곳입니다.

  쇼핑몰 교회는 크고, 매력적이고, 편리하고, 광범위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놀랄 만큼의 많은 예배를 제공하고 새로운 얼굴들을 사귈 수 있고 오랜 얼굴들을 만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쇼핑몰 교회는 누구나 들어와서 마음껏 자신의 취향을 느낄 수 있고 손쉽게 들어와서 모든 것을 자신의 것처럼 누릴 수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쇼핑몰과 같은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원스톱 교회’(One-Stop Church)로 만들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모든 재미있는 것들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교회에 오면 은혜를 받고, 구원의 감격이 있고,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는 즐거움이 있고, 삶의 온갖 지혜를 배우는 기쁨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교회는 모든 세대 즉 어른이나 어린아이들을 다 포용할 수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어린이는 보호받고, 사랑받고, 성장하고, 인정받아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못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어린아이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납치되고, 심지어 살해 되고 있습니다. ‘혜진-예슬 법’이 제정되게 된 동기도 참 안타깝습니다. 혜진이와 예슬이 이름은 부모의 요청에 의하여 빠진다고 합디다. 아이들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 빼달라고 했답니다.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법이 만들어진다고 나아지겠습니까? 법이 문제가 아니라 의식이 문제입니다.

  요즘에는 맹랑한 아이들도 많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충격 그 자체인 사건이 대구에서 일어났습니다. 대구 아이들이 좀 빨리 깨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성인 동영상을 보고 다른 아이들에게 돌려 보게 강요하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3, 4학년에게 성행위를 시키고, 동성애까지 강요하고, 심지어 성폭행까지 했답니다. 어린이들이 좋지 못한 인터넷에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성인 사이트를 운영하여 돈을 버는 초등학생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어린이들에게 교회는 개방되어야 합니다. 즐거움을 주어야 합니다. 마음껏 기뻐하며 자연히 은혜와 구원을 알게 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아이들은 내 아이, 내 가족처럼 돌봐 주고, 사랑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부모님들, 어른들, 기성세대에게 주신 책임입니다.

  어느 치과 대기실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치아를 두 번이나 공짜로 주셨다. 세 번째 치아 비용은 우리가 지불해야 한다.” 참 당연하면서도 의미 있는 말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첫째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습니다. 둘째 우리에게 아이들을 주셨습니다. 교회와 아이들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제 셋째로 우리에게 주신 교회와 아이들에게 투자하고 관리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오늘을 어린이 총동원 주일로 정하고 “얘들아, 교회 가자”는 표어를 정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이들을 향해 열려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편안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즐기고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 하나에게도 실망을 주지 않는 교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첫째, 아이들을 쫓지 말고 오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아이들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과 가치가 있습니다. 천국이 자신들의 집입니다. 자기 집에 오는 아이들을 쫓아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어린이가 교회의 주인입니까? 아니면 어른이 주인입니까? 누구 중심의 교회입니까? 주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주인 노릇하고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천국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교회의 주인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주인이 되고 어린아이들이 소외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얘들아, 너희가 주인이다!”

  마태복음 18:3에는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천국 주인인 어린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얘들아, 교회가자.”

  유대인들은 남자아이들이 6세가 되면 회당에서 율법 공부를 시작합니다. 티베트 라마교에서는 10세가 되면 사찰에 들어가 3년을 고행을 합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10세가 되면 황야로 나가 성인식인 ‘비전 찾기’(vision seeking)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어릴 때에 교회로 와서 하나님 찾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아이들을 불러 “얘들아, 교회 가자”고 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성전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어머니 품을 떨어져서 제사장 엘리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회에서 자라게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세상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회를 집같이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교육적 사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는 어린아이들이 들어오기에 편하게 설계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어린아이들에게 친밀감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 이슬람의 포교 정책 가운데 하나가 모든 건물에 모스크의 돔 같은 설치하게 되면 모든 비용을 이슬람에서 제공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이슬람에 대한 친밀감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그 이상의 친밀감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에 어린아이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교회 건물의 계단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어린아이들을 교회에서 내 쫓는 일입니다. 의자가 너무 높아 어린아이들이 매달려 공부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을 교회에서 내쫓는 일입니다. 화장실이 불편하여 가기 싫으면 어린아이들을 교회에서 내쫓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뜻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마태복음 18:14에는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십니다. 어린아이 하나라도 잃는 것을 하나님은 결코 원치 아니하십니다. 모든 어린이에게 다 오라고 손짓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한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루디아를 만나 빌립보 교회가 설립되는 일입니다. 15절에는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루디아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자신만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이 말은 어린아이들까지 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매를 맞고 갇혀 밤새 찬송하는 가운데 옥문이 열렸습니다. 

간수는 바울이 도망한 줄로 알고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은 자신이 도망하지 않은 것을 알립니다. 그 때 간수는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느냐?”고 묻습니다. 33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어린아이들이 예수님을 믿은데 소외됐습니까? 어린아이들이 세례 받는데 소외됐습니까? 아닙니다. 어린아이들도 다 세례를 받고 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 어린아이들도 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다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어린이를 소외하거나, 외면하거나, 배척한 적이 없습니다. 어린이가 천국의 주인이므로 모든 어린아이에게 “얘들아, 교회 가자”고 외쳐야 합니다.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어떤 가족 치료 전문가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는 바로 아이들의 귀에 거슬리게 비판을 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까? 어린아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는 그 무엇도 하나님 앞에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교회들은 주류교단들에 대한 불신감이 점점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흔히 전자기술과 스크린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주류교단들이 주역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단들이 어린아이들 그리고 청소년들의 새로운 트랜드와 사고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류교단의 교회들이 아이들에게 전혀 매력 없는 교회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법적 재제만 하는 교단을 떠나 독립교회로 남아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경직된 교회관, 사고, 어린이에 대한 편견 등이 어린이들을 교회에서 쫓아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어린아이들을 쫓아내지 말고 어떻게 하든지 불러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얘들아, 교회 가자”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둘째, 아이들을 축복하고 칭찬해야 합니다.

  “저의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안수의 의미는 다양합니다. 구약에서는 동물을 제물로 드릴 때에 안수하고 죽였습니다. 범죄자를 돌로 칠 때 치기 전에 안수하고 돌로 쳤습니다. 아간을 돌로 칠 때도 먼저 그에게 안수하였습니다. 신약에서는 병을 고치실 때 안수하여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축복할 때 손을 얹고 복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 공통적으로 어떤 직분을 주실 때 안수하고 그 직분을 위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안수를 어린아이들을 축복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교회는 아이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어린아이들을 늘 사랑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축복하고 안수할 때에 그들의 삶이 달라집니다. 그들의 미래가 아름답게 보장됩니다. 그들에게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흰 도화지가 있습니다. 이 도화지를 한 장씩 나누어주며 아무 그림이나 그려보라고 아이들에게 나누어줍니다. 무엇을 그리느냐에 따라 같은 흰 도화지가 각양으로 달라집니다. 축복과 칭찬을 하면 그들의 그림이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욕을 하고 비판하면 그들의 그림이 더러워질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축복하고 칭찬하면 그들 평생의 인생 그림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비판을 받고 자라면 비난을 배우며, 적대감 속에 자라면 싸움하는 것을 배우고, 비웃음과 함께 자라면 부끄럼을 배우고, 창피를 당하면서 자라면 죄의식을 배우고, 용서와 함께 자라면 인내를 배우고, 용기와 함께 자라면 신뢰를 배우고, 찬양과 함께 자라면 감사를 배우게 되고, 공정하게 자라면 정의감을 배우고, 안전하게 자라면 신앙을 배우고, 허락과 함께 자라면 자신감을 배우고, 인정과 함께 자라면 사랑을 배운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이 달라지고 그들의 그림이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칭찬과 축복은 어린아이들을 교회로 이끌게 되고 어린아이들의 장래에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그림을 그리게 할 것입니다.

  ‘슈퍼맨’ 놀이하다 높은 데서 뛰어내려 다치기도 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슈퍼맨 놀이를 많이 하게 되자 어느 초등학교 학교 선생님이 슈퍼맨 같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슈퍼맨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어린이가 “예,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깜짝 놀라 “슈퍼맨이 어디 있지요?”하니 그 아이는 “우리 동내 슈퍼가게 아저씨요”라고 하더랍니다. 아이들이 참 엉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어리석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아이는 기발하고 상상력이 최고라고 칭찬해 주십시오. 그 아이는 분명히 비범한 사람으로 자랄 것입니다. 아이들을 축복하고 칭찬하면 그들의 장래가 빛납니다.

  ‘다이아몬드의 4C’는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첫째는 ‘투명도’(Clarity)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우선 투명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둘째는 ‘색상’(Color)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색상이 아름다워야 가치가 있습니다. 셋째는 ‘중량’(Carat weight)입니다. 다이아몬드의 중량은 그 자체가 품질입니다. 넷째는 ‘연마’(Cut)입니다. 다이아몬드의 원석을 어떻게 연마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는 11등급이 있다고 합니다. ‘색상’은 무색에 가까울수록 귀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1캐럿은 0.2그램입니다. 그만큼 다이아몬드는 작지만 가치 있는 것입니다. 위의 4C중 세 가지는 자연이 부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임의로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연마’는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모두 58면으로 연마합니다. 보석을 세공하는 다이아몬드 연마사의 기술이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어린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원래 그들이 타고난 것을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이들을 신앙으로 닦고, 씻고, 다듬으면 모두가 가치 있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축복과 칭찬은 속에 있는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힘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라는 논쟁이 벌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불러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5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영접이란 기쁘게 초대하고 대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얘들아, 오너라”고 그들을 영접해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초대해야 합니다.

  인적자원관리협회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직장을 떠나는 이유 중 79%가 포상 및 인정의 부재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가 싫어서 떠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떠난 사람이 다른 교회에 가는 것으로 봐서 교회가 싫은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떠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교회에 한 번 안 가본 사람이 있을까요?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에 한 두 번은 다 가봅니다. 그런데 왜 교회를 떠납니까? 끝까지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을 축복하고 칭찬하면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사랑해주는 사람만 만나면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어린이주일을 ‘꽃주일’이라 부릅니다. 어린이는 꽃과 같이 때문입니다. 북한 가요 가운데 “녀성은 꽃이라네”는 노래가 있습니다. 꽃을 잘 보세요. 꽃은 한 번 시들기 시작하면 다시 피어나게 하지 못합니다. 꽃은 감동을 줍니다. 꽃을 피해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까? 꽃이 무섭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이맘때면 피해 다닙니다. 왜냐하면 알레르기가 심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꽃은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어린아이는 이렇게 사랑받고 칭찬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린아이들은 영접하고 교회에 초대할 가치가 있습니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헐록 박사는 1925년에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 대조군에게는 칭찬을 하였습니다. 두 번째 대조군에게는 나무랐습니다. 세 번째 대조군에게는 무관심하게 대했습니다. 그 다음 날 칭찬한 대조군은 다른 대조군보다 매우 좋은 수업 태도를 보였습니다. 수학 시험을 본 결과 학습 효과가 71%나 향상되었습니다. 반면에 꾸지람 대조군은 19%, 무관심 대조군은 5%밖에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축복과 칭찬은 아이들을 성장하게 만듭니다. 교회를 떠나지 않게 만듭니다. 평생에 필요한 중요한 인격을 만듭니다.

결론 

  폴란드의 크라코프 마을 천주교회에 카롤 보이티야란 복사가 있었습니다. 어린 카롤은 공습경보를 매일 들으면서 살았습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습격하여 6살에 어머니가 죽었습니다. 12살에 형이 죽었습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2년 뒤에는 아버지마저 죽었습니다. 전쟁 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폴란드를 점령하였습니다. 천주교회의 크라코프 대주교의 자리가 공석이 되자 공산주의자들은 카롤을 지지하여 대주교로 세웠습니다. 카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 훗날 그가 교황 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요한 바오로 2세입니다. 그는 폴란드 공산주의 몰락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사특한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의 인정과 축복 그리고 칭찬은 평생 그를 지배합니다. 결국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어린아이들을 축복하고 교회로 인도하면 그들의 장래가 복을 받습니다.

  능력 있는 직원들이 기업을 떠나는 이유를 묻자 다수가 “아무도 자신들을 붙잡지 않아서”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도 자신을 붙잡지 않아서 떠납니다. 최근에는 교회학교의 위기라고 많이들 말합니다. 몇 년 후에는 주일학교의 공과 책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때에 우리 교회가 다시 어린아이들을 교회로 초청하여 그들을 잘 붙잡아 평생에 그들이 신앙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얘들아, 교회 가자.” 이 구호가 오늘뿐만 아니라 매주일 아이들에게 들려지는 소리이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가득 차서 우리교회가 한 때 최고의 교회학교였던 그 위치를 되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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