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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주안에서 행하는 자녀교육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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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행하는 자녀교육 (엡 6:4)

여러분 반갑습니다. 요즘 긴 연휴에 이어있는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어쩌면 하나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와야 할 일이지만, 목사의 입장에서는 이런 연휴가 낀 주일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이 그렇게 예뻐보이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아마 세월이 더 흐르면 이렇게 연휴에 낀 주일에 예배에 나오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는 일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전에 모여 예배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넘치는 그런 예배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잘 아시듯이 우리나라는 36년간 일본의 식민지 생활을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어린이들을 ‘이놈’ ‘어린 것’ ‘애새끼’라는 말로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천대받던 시절입니다. 당시에 일본 유학생이었던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이를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민족의 미래는 다음 세대를 귀히 여기는데 있다고 확신한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했을 때 존댓말 쓰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때 처음으로 ‘어린이’(어리신 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어린이도 하나의 인격체임을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1921년의 일이었고, 다음해인 1922년 5월 1일에 처음으로 ‘어린이 날’ 제정을 제안하고, 1923년에는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 합니다. 그 해 5월 1일에는 아동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창설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어린이날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회는 1956년 5월 5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선포했습니다.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늘날을 생각하면 어린이날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 매일 어린이 날이니까. 있는 집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과잉보호, 물량공세 이런 것들이 오늘의 어린 아이들을 오히려 유약하게 만들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늘 진 곳도 많이 있습니다. 부모들의 무책임한 행동, 가출, 이혼 등으로 어린이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대책 없는 성문화 속에서 어른들의 희생물이 되거나, 심지어는 몇 일 전 대구에서 발생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 어린아이들의 성추행 사건과 같은 일이 우리아이들을 유혹하고 또 위협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는 우리들은 가정과 가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절감하며 말씀으로 재무장하고 기도로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유대인들은 성경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고 가르치고 암송했습니다. 그들은 성경 구절을 써서 암송하고 그것을 손목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세계 민족 가운데 가장 두뇌가 우수한 민족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영재교육, 조기교육이라 해서 4-5세부터 과외를 시킵니다. 과외도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영어, 피아노, 미술, 웅변, 컴퓨터, 태권도 등을 가르칩니다. 그 뿐입니까? 자녀 교육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미국, 호주, 캐나다, 싱가폴, 필리핀 등지에 가 있고 남편은 혼자 한국에서 청소하고 빨래하며, 라면 끓여 먹으며 삽니다. 집을 팔고 부부가 헤어져 있으면서 자식을 공부시키지만 우린 아직 노벨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르친 유대인들은 노벨상 단골 수상 민족입니다. 

우리나라 말에 “자식농사가 가장 어렵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고 자녀를 돌보는 것, 이것이 가장 신중한 일이고 소중하지만 또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다 사랑합니다. 오히려 너무 사랑해서 탈이 날 때도 있습니다. 부모 사랑이 너무 지나쳐서 때때로 해가 되는 결과를 빚는 현상도 보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이 본능적이고 감정적이고 너무 충동적인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녀들이 잘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어린이주일입니다. 주신 말씀을 통해 자녀 교육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은혜를 받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딱 한절의 말씀, 참 짧은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눈여겨보면서 이 짧은 시간이 이 말씀 여러분 마음속에 외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오늘 본문은 ‘아비들아’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자녀 양육의 궁극적인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이 어머니가 자녀 양육의 책임에서 제외된 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녀 양육의 궁극적인 책임을 아버지에게 묻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정의 가장은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가정의 머리로 세우셨습니다. 한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청소년 탈선의 원인 가운데 심리학자들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적하는 요소는 아버지 역할의 부재입니다.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하지 못하는 가정에서 온갖 불량 청소년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역할이 부재한 가정, 아버지가 있으나 마나한 가정에서 청소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성경은 부모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낳았다고 다 아버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올바른 양육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자녀를 대하는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일 것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무엇이나 아내에게 미루지 말고 자녀교육의 책임을 다하는 아버지가 되기를 위하여 노력합시다. 노력합시다. 노력합시다. 이렇게 말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도 설교를 준비하며 돌이켜 보건데, 그동안 자녀교육을 아내에게 모두 미루어 놓고 나는 그것과는 마치 관계 없는 것처럼, 구경꾼처럼 때때로 그들을 비난하고 있었던 때가 없지 않아 있었음을 깊이 반성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자녀교육의 문제가 아내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책임을 미루지 않고 자녀교육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쓰는 그런 아버지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로 본문에 보면 ‘노엽게 하지 말라’는 표현이 있는데, 부모는 가끔 자녀들을 화나게 하고 노하게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훈련과 징계와 교정이 즐거운 경험이 된 적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특성상 불쾌하고 화나게 합니다. ‘노엽게 하다’ 라는 말의 뜻은 사람을 지독히 노하게 하고 분노케 한다는 의미입니다. 미국의 시인 롱 펠로우는 “찢어진 옷은 쉽게 수선할 수 있어도 폭언으로 상처받은 어린 가슴은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를 받아들이면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하셧습니다. 우리는 집안에 주님을 모시고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 중에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시대가 변한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란 세대에 자녀들을 맞추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란 세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세대 간에 일어나는 정상적이고도 자연스러운 변화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지나치게 통제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지나치게 훈육하고 제재하는 것은 자녀의 성장을 막고 자녀를 자극해서 반항하도록 해서 부모로부터 도망가도록 만듭니다. 셋째로, 통제가 너무 없는 것도 자녀를 노엽게 합니다. 이것은 산업화 된 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인 문제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거나 부유한 자들은 자기의 자녀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게하고, 자녀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잘못된 헌신과 사랑 때문에 자녀들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둡니다. 넷째는, 자녀들 앞에서 일관성 없는 삶을 사는 것도 자녀들을 노엽게 합니다. 자녀들에게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은 합니다. 일관성 없는 부모가 자녀들을 노엽게 한다는 말입니다.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선물을 맡아 관리하고 보호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양육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고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할 때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안정되고 평안한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끼며 살게 하는 가정과 사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하십니다. 주의 교육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이 가장 좋을까 하는 자신의 생각과 개념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양육한다’는 말은 ‘꽃을 기른다’, ‘애완 동물을 기른다’, ‘몸을 돌본다’는 말을 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화단과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단은 잡초를 뽑고 잘 돌봐야 아름다운 화단이 됩니다. 아이들도 잘 자라도록 가르치고 인도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비인격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이들을 잘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녀 양육의 방법은 첫째로 교양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교양’(파이데이아, paideiaj)이라는 단어는, ‘온전하게 자녀를 양육하고 훈련하는 것’인데, 심성과 도덕성을 함양하고, 명령과 훈계를 가르치고, 교정과 징벌을 가하며, 실수를 고쳐주고, 격정을 제어케 하며, 덕을 길러 주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로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훈계’(누데시아, nouqesija)는 상담과 권고와 교정을 의미합니다. 말로써 타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양과 훈계는 둘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들입니다. 교양이 없는 훈계는 잘못된 것이요, 훈계가 없는 교양도 또한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주일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녀 교육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깊이 있게 가르쳐 왔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자녀 교육을 잘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자녀들로 양육하기 위해 인내와 사랑으로 자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솔선수범하여 모범된 삶을 살아가도록 힘쓰며 가르쳐야 합니다. 날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기업이 될 것이요, 우리의 상급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미래입니다. 미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훌륭한 인격의 사람으로,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잘 양육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는 여러분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다시 축원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이 믿음으로 바로서야 합니다. 특별히 가치가 흔들리고 불안한 시대에 믿는 자들의 가정이 굳게 서서 이 사회와 국가의 초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대로 

허락하신 자녀에 대한 양육의 책임을 다하는 부모, 특별히 아버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부모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녀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꾼들이 되도록 성경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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