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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을 전수하라 (신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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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전수하라 (신 6:4~9) 

  기독교는 2천년 동안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따라,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래서 다른 민족을 선교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자기 후손들에게는, 신앙을 전수하지 못했다. 

  2천 년 동안 하나님의 복음의 촛대는, 초대 교회로부터 유럽을 거치고, 북미를 거쳐 한국에 오기까지, 계속 옮겨 다녔다. 초대 교회가 있었던 예루살렘과 터키에는, 무너져버린 교회의 흔적만 있을 뿐이다. 지금 그곳에는 복음이 없고, 성령의 역사가 없다. 그저 관광객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신앙을 자손 대대로 전수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의 과오를 보여준다. 남의 자식은 천국에 보내 놓고, 내 자식은 지옥 보낸다면, 이것보다 슬픈 일은 없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신앙을 자손 대대로 전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앙을 전수하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깝다. 

  교회 나오지만, 그 안에서도 문제가 많다. 젊은이와 어른들 간에, 엄청난 문화차이와 세대차이로 갈등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유대인은 세대차이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 신앙, 율법을 자손 대대로, 가장 잘 전수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믿는 신앙을 자손 대대로 전수시켜왔는지, 반드시 배워야만 한다. 유대인들은 AD 70년, 예루살렘이 망한 후에, 1,900여 년 동안 나라 없는 설움을 겪었다. 가는 곳마다 미움과 박해를 당했고, 나치 정권 하에서는 600만 명이 참혹하게 학살되었다. 

  유대민족은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유랑의 삶을 살다가, 1948년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 나라를 건국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2천년 가까이 흩어져 살던 그들은, 각기 다른 문화와 역사 속에 있었는데도, 신앙, 종교의식, 전통, 음식, 언어, 문화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신앙교육을 잘했기 때문이다. 신앙교육 때문에 지금도 3-4대가 함께 살아도, 세대 차이를 전혀 못 느낀다고 한다. 유대인은 신앙교육으로 세대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자녀들의 무한한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만들어, 각계각층에서 세계를 장악해 가고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미국이고,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유대인이라고 하니까, 그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다. 대대로 해왔던 신앙교육 하나 때문에, 후손들이 이처럼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난 인물들이 나오기를 원한다면,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수하는 일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젠센 박사는, 유대민족의 지적능력이, 다른 민족에 비해 우수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유대인의 성공비결은 다름이 아닌, 숱한 고난 속에서도 그들이 지켜온 신앙교육에 있다. 따라서 제1순위 선교지는, 자녀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1. 믿음을 전수하려면, 참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말씀을 ‘쉐마’라고 한다. 쉐마는 들으라는 히브리어다. 신앙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을 잘 믿고,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봉사보다, 헌신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신앙생활을 할 때, 열심히 봉사하다가, 열심히 헌신하다가 시험에 빠진다. 왜 그런가? 말씀을 잘 듣지 않아서 그렇다. 봉사하다가 흔들리고, 헌신하다가 시험에 들기에,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고대근동의 신관은 다신론이다. 범신론과 자연숭배 사상도 다신론이다. 다신론은 음란하다. 바알과 아세라는 부부신이다. 바알은 남신이요, 아세라는 여신이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려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하는데, 비는 바알과 아세라가 부부 관계를 맺을 때, 비가 내린다고 믿었다. 

  신들이 관계를 맺도록 하기위해서, 성전 안에 많은 매춘부를 준비해 놓고, 관계를 맺으면 바알과 아세라가 인간들이 모습을 보고, 신들도 흥분해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런 잘못된 믿음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그 신들은 거짓된 신들이요, 거짓신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요, 참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거짓 신들에게 한 눈을 팔지 않는다. 거짓 신에 빠지지 않으려면, 마음을 다하여 섬겨야 한다. 거짓신은 죄를 말하지 않는다. 

  그토록 막강했던 로마가 왜 망했나? 외세의 침략 때문이 아니다. 부패했기 때문이다. 권력이 썩고, 지도자의 마음도, 백성의 마음도 부패하였다. 칼과 창은 있었지만, 깨어 있는 정신과 사상, 도덕성이 없어서, 망하게 되었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칼도, 권력도 아니다. 정신과 사상이다. 

  바른 정신과 사상을 후대에 전하고, 계승하는 민족의 문명은, 결코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과 사상보다, 훨씬 더 우대하고 강한 것이 있는데 신앙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이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해도, 다음 세대에 전수되지 못하면 소용없다. 

  우리 자녀들에게, 올바른 사상과 정신을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올바른 사상과 정신을 심어주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을 심어주어야 한다. 말씀이 기준이 될 때, 세대 차이를 극복할 수 있고, 타락을 막을 수 있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부모님과 어른들을 하늘처럼 알았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부모님께 대들고, 심지어 부모님을 죽이는 일도 있다. 옛날에는 결혼하기 전에는, 당연히 순결을 지켜야 했지만, 요즘은 미리 경험하거나 살아보고 결혼한다고 한다. 학교에는 일진회, 이진회, 이런 조직이 생겼다.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마음에 없으면, 수평문화가 된다. 수평문화는 평등사상으로, 눈에 보이는 표면문화요, 계속 바뀌는 유행문화다. 그러나 수직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문화요, 거의 바뀌지 않는 정신세계의 문화다. 수평문화에 물들게 되면, 아이들이 행동이 산만해지고, 가벼워진다. 

  TV는 수평문화보급의, 가장 큰 주범이라 할 수 있다. 또 창의력발달에 가장 큰 장애가 된다. 예일 대학교 심리학자 ‘제롬 싱어’ 박사는, TV가 우리 자녀들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라 했다. 특히 오락 프로그램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일수록, 아이들을 바보로 만든다. 

  사람은 무얼 보고 들으면, 뇌 속에 기억된다. 그리고 나중에 언젠가,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대구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보라. 학생들은 음란물을 보고, 흉내 내는 방법으로 비정상적인 성행위까지 강요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TV를 봐도, 좋은 프로그램을 봐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수직문화를 전수하기 위해, 효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 수직문화가 없으면, 부모님이 늙으면 자식에게 애물단지가 된다. 언제부터인지 효 교육과, 가정교육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전부 입시 위주의 교육에만 매달린 결과, 부모님을 공경할 줄 모른다. 

  효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 명령이며(출20:12), 부모공경을 통해 하나님 공경을 배울 수 있다. 보이는 부모도 섬기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보이는 부모님을 잘 섬김으로써,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다. 


2. 믿음을 전수하는 방법(7-8).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기호를 삼고” 

  그리스도인의 최고 소원은, 믿음을 자손 대대로 전수시키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부동산을 물려주고 많은 돈을 물려주는 것보다, 믿음을 물려주고 전수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신앙교육은 교회에서도 해야 하지만, 가정에서 부모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모들이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1) 정기적으로,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기회를 만들어서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밤낮 장소를 불문하고 입만 벙긋하면 말씀이 튀어나오도록,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쳐서, 자녀들을 말씀 맡은 자로 키워야 한다. 

  여행을 가도, 쇼핑을 할 때도, 집에 있을 때에도,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말씀을 암송시켜야 한다. 우리의 신앙교육이 잘못되는 이유는, 말씀을 암송시키지 않는데 있다. 말씀이 무의식중에 튀어나올 수 있도록 암송시킬 수 있기 바란다.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밤에 잠들기 전이나, 아침에 일어날 때를 의미하는 말씀이다. 아침과 저녁으로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기본이다. 그래서 지금도 정통 유대인들은, 아침과 저녁에 자녀들과 함께, 쉐마의 말씀을 외우며 기도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번,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은 기본적으로, 자녀들과 함께 쉐마를 암송하며 기도한다. 어둔 밤에 밝아올 여명의 영광을 생각하며, 아침에는 희망 찬 하루를 살기 위하여 기도했다. 물론 낮에는 각자 기도하고, 기도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영화배우 남궁원 장로님의 아들이, 미국 하버드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홍정욱씨인데, 졸업하면서 그 쟁쟁한 백인 천재들을 다 제치고, 3개의 상을 휩쓸었다. 어머니 양춘자 권사님은, 홍정욱을 비롯한 3아이를, 한 번도 과외공부를 시킨 적이 없다고 한다. 과외 공부는, 오직 성경 과외뿐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성경 말씀을 가르쳤다. 성경대로 아침과 저녁으로, 또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행할 때에든지,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쳤다. 나중에 아이들이 크자, 자기 실력으로는 성경지식이 달려, 전도사님과 부목사님을 모셔다가, 성경을 가르쳤다. 

  흥미로운 성경의 이야기들을, 사건 중심, 인물 중심, 하나님 중심으로 가르쳐주니까, 아이들의 믿음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 상상력도 커가고, 공부도 항상 1등을 하였다. 어려서부터 성경 공부를 확실하게 시켜놓은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어서도 흔들리지 않고, 절대 탈선하지 않더라고 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암송교육을 했나? 지금까지 잘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말씀교육을 잘하자. 배운 말씀이 흔들리지 않도록, 가르쳐야 위대한 일꾼, 큰 지도자가 될 수 있다. 

(2) 시각적이고 연상적으로 교육해야 한다(8-9).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주님의 말씀을 전할 뿐 아니라, 자녀들의 머리와 가슴에 잘 각인시켜 주기 위해, 시각적이고 연상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 하나님은 먼저 손목에 매라 했다. 손목만 아니라, 이마에 붙이고, 모든 문에 붙여 놓으라고 했다. 유대인을 보면 테필린을 손목에 매고, 이마에 달고 다닌다. 

  예배하고 기도할 때는 반드시, 손목과 이마에 경문을 매야 한다. 메주자 역시 서기관들의 손으로 쓴 쉐마의 말씀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여 놓는다. 유대인은 집이나 방을 드나들 때에는, 항상 이 메주자를 만지며 키스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렇게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집 문설주에 메주자를 사용하면서, 쉐마 교육을 자녀들에게 했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겨야 할 백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묵상하자. 그것이 우리의 재산이고, 유산이고 보배다.  

  쉐마의 말씀은 한두 번 가르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반복해서 가르치고, 반복하고 강조해서 가르쳐야 한다. 죽으면서 유언으로 남겨야 할 말씀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가르쳤다. 문자적인 의미보다, 더 깊은 교훈까지 가르쳐야 한다. 

  손목에 매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을 통해 실천하라는 뜻이다. 이마에 붙이라는 말은, 세뇌시키라는 말이다. 말씀에 집중해서 묵상하고 각인시키라는 말이다. 대문과 문설주에 붙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가정의 호주로 섬기라는 뜻이다. 


3. 믿음을 전수하기 위해, 부모님이 선생님이 되라. 

유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교육의 場은, 가정이며, 교사는 부모님이다. 교육은 교회보다 가정에서 먼저 해야 한다. 가정에서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유대인의 가정교육은 신앙을 위해서이지, 지식이나 직업을 위해서가 아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싶도록 환경을 만들어 줄 책임이 있다. 

  부모님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들은 무의식중에 믿음을 배우게 된다. 또 글을 배우기 전에, 성경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갖게 한다. 유대인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 회당 중심, 랍비 중심으로 살아간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사상을 심어주고, 신본주의 정신과 기술을 가르쳐 준다. 솔로몬은 잘못된 길로 갔다가,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에 돌아오게 되었다(잠4:1-8). 솔로몬은 아버지가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1) 믿음을 전수하기 위한 아버지의 역할 

학교에서도 공교육을 위해서, 교사의 권위가 회복되어야 하지만, 가정교육을 위해서는 아버지의 권위가 속히 회복되어야 한다. 아버지는 존경스러운 이름이요, 든든함의 칭호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위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아버지의 권위가 얼마나 떨어졌는가 하면, 아버지가 아침에 아이를 깨우면 아예 안 일어난다. 그래서 애를 깨울 때,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일어나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퇴근해도 쳐다보고는 인사를 안 한다. 

  “얘! 아빠가 돌아왔는데, 인사도 안하냐?” 그러자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있던 아들 녀석이, 하는 말이 ‘먼저 본 놈이 인사하면 되잖아요?’ 했다고 한다. 자녀 교육 잘 시키고, 쉐마 교육 잘 시키려면 먼저 아버지 권위부터 회복되어야 한다. 아내는 남편의 권위가 회복되도록 도와야 한다.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고 미워하면, 절대 자녀가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할 수 없다. 그런데 요즘 아버지의 권위를 끌어내리고 있다. 오늘날 아버지의 권위를 아내들이 다 망쳐버렸다. 그러나 아빠를 존경할 때, 자녀가 잘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구약시대의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이었다. 

  제사장은 예배를 인도자요, 제사 후에는 축복했다. (민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가정에서 제사장으로서, 자녀들에게 항상 축복기도를 했다. 식사 때나, 잠잘 때나, 일어날 때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금도 축복한다. 축복하는 아버지가 말씀을 가르치고, 교육할 수 있다. 

  아버지는 축복기도만 아니라, 자녀에게 격려와 사랑을 해야 한다. 꿈을 주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어야 한다.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녀가 곁길로 갈 때, 권위를 갖고 엄하게 책망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사랑의 매도 들어야 한다. 매를 아끼면 자녀가 망한다(잠13:24). 

  자녀를 저주하면서 때리거나, 술 먹고 만취해서 때려도 안 된다. 미운 감정을 가지고 때리면 안 된다. 어떤 아이는 타일러도 안 되고, 때려도 안 된다. 기도해도 안 되고, 말씀을 가르쳐도 안 된다. 그때는 아버지가 젊은 날을 돌이키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2) 어머니의 역할 

어머니는 신앙의 전수자로, 절대적 역할을 한다. 유대인은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자식도 유대인으로 인정해 준다. 아버지가 정통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유대인이 될 수 없다. 

  어머니는 자녀의 가슴 속에, 따뜻한 사랑을 심어주어야 한다. 젖은 어린아이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양식이다. 왜 아이들의 성격이 괴팍해지고, 충동적인가? 엄마의 가슴으로부터, 갈수록 격리되어 살기 때문이다. 엄마의 젖은 안 먹이고, 소젖을 먹인다. 

  어머니의 따뜻한 젖꼭지 대신에 싸늘하고 딱딱한 실리콘 우유병 젖꼭지를 물려준다. 비록 모유를 먹인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신경질적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젖을 준다. 남편에 대한 분노, 세상에 대한 원망, 돈 걱정, 집 걱정, 온갖 스트레스가 쌓인 채로 젖을 준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사랑이 메마르고, 성격이 난폭하게 된다. 눈물과 인정이 없고, 개인주의적인 사람, 이기적인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장성하면 부모님의 은덕을 잊어버리고, 그리워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가슴을 잃어버리면, 지존파와 막가파가 나오게 된다. 

  어머니는 눈물의 위로자, 눈물의 격려자가 되어야 한다. 부모님은 자녀에게 믿음을 전수해야 한다. 믿음의 대가 끊기고, 왜곡되고 변질되는 배도의 시대에, 우리 가문 만큼은, 믿음의 명가를 이룰 수 있도록, 쉐마의 말씀을 자녀들의 가슴속에 새겨 넣어야 한다. 

  결론이다. 토라(말씀)를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 말씀은 우리의 생명이요, 힘이다. 천국 안내서이다. 모라(선생님)이 되어서, 믿음교육을 실시한다. 호라(부모)인데, 가정이 학교가 되어서 가르쳐야 한다. 이스라엘의 가정은 학교이자 회당이다. 그래서 믿음을 잘 전수하는 가정이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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