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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편이 되시는 하나님 (시 118: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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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되시는 하나님 (시 118:5~14)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동기는 다양하겠지만 
아무래도, 큰 어려움도 없고 평안할 때보다는, 
시련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사업에 실패를 했다든지, 무서운 질병에 걸려 고생을 한다든지 
뭔가 개인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름대로 의지가 강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자존심 강한 사람들입니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홀로 서 보려는 그 몸부림은 가상하지만 
오히려 겸손히 자신의 연약함과 무지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일입니다. 

어쨌든 어려움 속에서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다행스럽게도 그 어려움을 쉽게 극복하게 될 때도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수학공식처럼 원리대로만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삶은 전혀 호전되지 아니하고 어려움이 계속될 때, 
우리는 쉽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 
혹은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닌가 보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하나님은 누구의 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두고 ‘내 편이다’, ‘네 편이다’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패가 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북 전쟁 중에도 그는 때때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가 기도를 할 때는 텐트 입구에 손수건이 걸려 있었습니다. 
손수건이 걸려 있을 때에는 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매우 합리적인 이유로 기도하는 링컨을 비아냥거립니다. 
“남군의 기독교인들도 승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북군도 그렇게 기도하고, 
하나님이 누구의 편이 되어 주셔야 할지 참으로 곤란하시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우에 뭐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슷한 이유로 하나님께 도와 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특히 수험생을 위한 기도 같은 경우 ‘하나님의 입장이 곤란하지 않겠느냐?’ 합니다. 
서로 ‘우리 아이가 합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보면, ‘걱정도 팔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거야 하나님이 걱정하실 일이지, 내가 하나님 입장까지 염려할게 뭐 있느냐? 
그런 걱정은 하질 말고 기도나 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말로 그런 것입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 아이만 합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까? 

사실 이런 대화는 기도를 안 하는 사람의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진짜로 기도를 하다보면, 그렇게만 기도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무조건 합격하게 해 달라는 기도보다는, 
건강하고 최선을 다하게 해 달라고, 용기 있고 담대하게 해 달라고,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 달라고, 
결과야 어떻든지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달라고 합니다. 

링컨은 그 때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누구의 편이 되어 주시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편이 되느냐가 문제일세.”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의 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분은 ‘하나님은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편이다’라고 
좀 더 객관적인 대답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니까요. 

그러나 그럴 경우에,  문제는,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내가 늘 사랑과 정의를 선택할 경우에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시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하나님이 내 편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주 불안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사랑과 정의만을 선택하며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욕심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몰인정한 선택을 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의롭기 보다는 불의합니다. 우리는 의인이기보다는 죄인입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느 누구의 하나님도 되시지 않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하나님은 누구의 편입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6절) 
그는 고난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을 겪었으나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한 것입니다.(5절) 
하나님은 자기를 돕는 자라고 고백합니다.(7절) 
그리고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그 어느 누구를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때로 고난을 겪게도 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죄를 범하는 때가 있어 우리에게 매를 때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은 내 편이 되십니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놀다가 자주 싸우게 됩니다. 
우리 아이가 잘못을 하고 궁지에 몰려 있을 때에도 아빠가 나타나면 
우리 아이의 사기가 충천해집니다. 
뒤에 든든한 빽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못을 했어도 우리 아빠는 내편을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사람을 용기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까불지 마. 우리 아빠가 너 가만히 안 놔 둘 거야.” 

상대방 아이는 울면서 소리를 칩니다. 
“너만 아빠 있는 줄 알아? 나도 아빠 있단 말이야. 우리 아빠한테 다 일러줄 거야” 

진짜 문제는 누구에게 있습니까? 
일러줄 아빠가 없는 아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아빠가 되십니다. 
든든한 빽이 되어 주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비록 아빠가 나에게 매를 때리는 경우가 있을지언정 
친구에게 매 맞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는 아빠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든든한 빽이 되어줄 아빠가 없는 사람은 정말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람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가난도, 질병도, 사업의 실패도 아닙니다. 
사랑의 결핍입니다.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시험에 낙방을 하고 돌아온 아이에게 
“네가 무슨 낯짝으로 집엘 들어와. 나가 뒤져버려라”고 내쫓는 가족은 없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니. 괜찮다.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 이게 가족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로해 줄 가족이 없다면 그것이 가장 불행한 것입니다. 

자살미수에 그친 사람들의 공통된 대답은 
“이 세상에 내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내 편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혼자라는 것입니다. 
나는 혼자라는 생각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든든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내 편이 되십니다. 
비록 내가 죄를 지었을 때에도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죄인이라고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래도 용서해주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려 주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실패했어도, 낙방했어도, 가난해도, 질병에 걸렸어도 
걱정하지 말고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모두가 다 나를 버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시37:28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시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도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사43:1-3)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희생하기까지 베풀어주신 사랑입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에워싸여 꼼짝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시118:10“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1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2 “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에 불같이 타 없어졌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3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기 때문에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전적으로 나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내 편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담대하게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도 당당하게 아버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죄를 짓고도 뻔뻔스러울 정도로 반복해서 또 용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때문입니다.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꼴로 돌아온 탕자일지라도 
아버지는 무조건 용서하시고 받아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항상 나의 편이 되어주시며 위로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들은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망설입니다. 
그러나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내 편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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